그는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좋아한다

스타화이트치과200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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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피곤하고 지쳐서 돌아오는 집 앞

내가 출장에서 돌아오기로 되어있는 시각의 공항

시간강사 시절 내 고물차가 세워져있는 대학의 주차장

오늘처럼 연구실 앞 벤치

그런 곳에 예고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타나는 것만 극적인 게 아니다

헤어질 때도 그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게 만든다

한참동안 눈 속을 뜨겁게 쳐다보다가

이윽고 어려운 결단이라도 내린 사람처럼 한번 눈을 꾹 감은 다음

긴 숨을 내쉬며 어깨를 끌어당겨 안는다던지

아니면 흩어지지도 않은 내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한가닥씩 쓸어올려준 뒤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춘다

그리곤 잠긴 목소리로 내일 전화할게 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안타깝게 헤어진 뒤

보름이고 한달이고 소식이 없었다는 점이

종태의 출몰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이다

시사주간지의 사회부기자라는 다소 돌진 성향의 직업 탓도 있겠지만

그는 바람처럼 왔다가 방귀처럼 냄새만 남기고

아무데서도 찾을 길 없이 허망하게 떠나버리는 일을

남자다운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종태는 거의 한달만에 나타난 셈이다

지난번 인사동 감자탕 집에서 헤어질 때가

좀 싸늘한 봄밤이었던 게 기억난다

팔에 걸치고 있던 내 바바리코트를 그가 억지로 입혀주고

목 밑까지 단추를 채워줬었다

입술을 내 귓볼에 바짝 대고는

오늘밤 이불 잘 덮고 자

라고 속삭였던가

 

그런 뒤로 오늘이 처음인데 마치 잠시도

내 곁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듯이 대한다

옷 예쁜데 라면서 날 한번 쓱 훑어보더니

진희 넌 원래 흰색이 잘 받아 정장도 잘 어울리고 한다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으며

내가 그렇게 되도록 관리라도 해왔던 사람같은 말투인 것이다

 

일 안 하고 여기 왠일이야?

지금 일 하고 있잖아

무슨 일

너 만나는 거 말고 나한테 일이 어딨냐

종태의 감동적인 등장과 퇴장

그리고 세살이나 아래인 그의 친밀한 반말투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갖지 않게 된지 오래다

그의 기분을 따르지 말고 철저히 나 자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한다는 것이

그를 대하는 나의 첫번째 원칙이다

그렇지 않다가는 그의 사랑의 변속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중에서

 

사랑을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