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아버지에게

기웅서200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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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내 아들 딸 앞에서 부끄러울 것 없었노라고

호탕하게 외치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스스로의 힘으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게 되실

그 언젠가, 언제나 자기 품 안에 있을것만 같았던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구나"

라고 말하실까봐 참으로 겁이 나고 낯이 절로 화끈거려집니다.
이 땅에 모든 아버지들이 아버지 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당신께서 지키고 보호해야 할 가족들 때문이었거늘,
정작 당신이 가족의 그늘 아래 보살핌을 받게 될 그 어느 날이
당신에게는 사형선고를 받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의 날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당신의 굵은 팔뚝과 떡 벌어진 어깨를 놀이터 삼아

매달리고 부벼대던 아들 딸들이
당신의 힘 없고 가느다란 팔을 붙잡아 부축하고

가녀린 어깨를 주물러드릴 때,
당신은 한사코 그럴 것 없다고 손사래를 치시겠지요.
세월의 흔적은 당신의 얼굴을 낙서장으로 만들고
당신의 성성하던 머리칼은 산들바람에도 흩날리는

힘 없고 새하얀 삼오라기같아 지겠지요.

아버지,
당신이 끝끝내 놓아주지 않으시려는 아버지란 이름이
아직도 저에겐 한 없이 높고 오롯한데,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당신의 육신 앞에서 

제가 언제까지 당신보다 유약한 자식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당신을 업어야 할 날이 올텐데,
언젠가는 당신의 대소변을 봐드려야 할 날이 올텐데,
언젠가는 당신 입에 기름지고 맛난 음식을 

먹여드려야 할 날이 올텐데,
언제까지 저는 당신 앞에서 

당신보다 작은 존재일 수 있을까요.

제가 세상의 빛을 보고 벌거벗었을 때

당신에게 받았던 모든 것을
당신에게 고스란히 돌려 드릴 그 날, 
당신은 제가 그랬던 것처럼

철없이 빽빽대거나 버둥거리지 않으시겠지요.

"아서라, 그만 둬라, 내가 하마."

당신은 분명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아버지.
못나고 되먹지 못한 자식이

당신의 가슴에 꽂은 비수들을 다 뽑기도 전에
당신이 영원으로 돌아가실까봐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그 비수들을 간직하시고

늘 푸른 소나무처럼 위풍당당하게 돌아가시겠지만,
그 전에 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이 땅의 모든 아버지!
가슴 속에 있는 말하지 못했던 그 말씀,  
눈빛으로, 고갯짓으로, 손짓으로

수없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던 것,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시던 말,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밥 먹으라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이었고
조심히 잘 다녀와라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이었고
성난 모습도, 매질하는 모습도 죄다 사랑한다는 말이었는데,
이 못난 자식은 왜 곧이 곧대로만 듣는

나쁜 병에 걸려 이 날 이 때까지 살아왔을까요.

이 땅의 모든 아버지!
그저 한 없이 죄송해요. 사랑해요. 감사해요.
저도 당신을 닮아서 차마 말로는 못하겠어요.

아버지는 소리 없는 울음을 우시고

소리 없는 웃음을 웃으시며

소리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분.
빈 수레가 아닌, 속이 가득 차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사랑으로 충만한 당신의 넓은 마음.

당신의 이름, 이 땅의 모든 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