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대한 본원적 통찰 - 라쇼몽, 시넥더키 뉴욕

임영롱200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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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1950. 구로사와 아키라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대사들이 쏟아진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이 비극적 언사를 옆에서 듣던 한 남자는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 '무슨 일'에 대한 이야기인 라쇼몽이 비추는 곳은

결국, 진실과 허구의 경계. 그리고 그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가능한 사건과 불가능한 사건의 경계에서 윤리가 탄생하고

나와 타자의 영역의 경계에서 갈등이 발생하듯이

시대를 뛰어넘는 본원적 통찰, 그 끝에는 항상 경계가 존재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기억'에 의해 4개의 조각으로 해체된 실재가 해석학적으로 봉합되는 결말이다.

 

  

시넥더키, 뉴욕. 2008. 찰리 카우프만의 눈부신 연출 데뷔작.

 

연극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는 제유를 통해 주인공은 그의 인생과 마주친다.

이 거대한 마주침에서 형성되는 경계 속에서 포류하면서 자아는 불안과 안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거대한 제유 속에서 형성되는 작고 다양한 경계를 통해서 그는 어떠한 깨달음에 다가가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는 대사로 압축되는 이 깨달음은,

라쇼몽의 해석적 결말과 달리 해체적 현실에 대한 인정과 수용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출을 포기하고 극중의 한 인물 속으로 들어가 맞이하는 결말은 의미심장하다.

 

역시나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는 보는 이의 사유를 촉발시킨다.

난해하기만한 괴작으로 취급받았던 '시넥더키, 뉴욕'을 그래도 끝까지 볼 수밖에 없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