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안보-전사자 유해발굴은 국가적 책무

오두영200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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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안보-전사자 유해발굴은 국가적 책무
호국영령 마지막 한 분을 모시는 그날까지  
서울시 응암동에 위치한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105세의 김언년 할머니는 59년 전 국군 9사단 28연대 소속으로 전선에 나섰다가 1950년 12월 1일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고(故) 이갑송 일병을 찾아 달라며 채혈에 참여했다.김 할머니는 전쟁이 발발하자 뱃속의 아이와 가족들을 남겨둔 채 전쟁터로 나섰던 자식을 한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오셨다.

전 쟁의 총성이 멎은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시 전투에 참가하신 분들이 어느덧 팔순 고령이다 보니 지금까지 전사자를 찾는 유가족은 처나 형제 또는 자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김 할머니의 경우처럼 어머니가 자식을 찾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처럼 전사한 가족을 찾기 위한 유가족들의 바람이 얼마나 간절한지 우리는 알 수 있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자신의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것은 공통된 현상이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던진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국방부는 전사자유해발굴사업을 10년째 전개해 오고 있다.

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남겨진 13만여 위의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찾아 국립현충원에 모시는 “국가적 보훈사업”이다. 이는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에 대해서 국가가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국가 무한책임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또한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명예를 고양시키며, 유가족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 드리고, 국민들에게는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나라사랑과 호국보훈 의식을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Ⅰ.전사자 유해발굴은 국가적 책무

6·25전쟁 당시 “꼭 살아 돌아오라”고 당부하던 가족들을 뒤로한 채 꽃다운 나이에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호국용사들, 이름 모를 산야에 들꽃과 함께 남겨진 이들이 무려 13만여 명에 이른다. 만시지탄 속에 그나마 지난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경북 칠곡 다부동 328고지(낙동강 전투)에서 첫 삽을 시작으로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개시하였다.

이 어 2003년 호국보훈 관계 장관회의에서 지속 사업으로 결정되어 육군본부에 ‘전사자유해발굴과’와 ‘유해발굴반’이 편성되었다. 2005년에는 국가의 영구사업으로 결정되었고, 2007년부터는 사업 주관 부서를 육군본부에서 국방부로 전환, 미국의 JPAC(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를 벤치마킹하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전문부대로 창설되었다.

2008년에는 추가로 인원을 증편하여 유해발굴사업을 더욱 가속화함과 동시에 ‘6·25전사자 유해 발굴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국가영구사업으로서의 법적인 뒷받침까지 마련하였다.나아가 올해 1월에는 유해발굴사업을 위한 인력을 추가로 확보하고, 최첨단 장비를 갖춘 중앙감식소를 설치하였다.

여기에는 디지털 X레이 촬영기, 유실된 유해를 복원할 수 있는 3차원 스캐너, 실체 현미경과 광학현미경, DNA시료채취 설비 등을 갖춤으로써 그동안 현장 감식소의 육안 위주 기초감식에서 벗어나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감식이 가능해졌다. 또한 올해 5월부터는 그동안 국방부 단독으로 이뤄지던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범정부 차원으로 승격돼 국가적 역량이 집결되고 사업추진이 보다 더 탄력을 받게 되었다.

2000년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발굴된 유해 3,500여 구 중 74분의 신원을 확인했고, 그중 44분만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유가족 DNA 샘플을 그만큼 많이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가족의 유전자 검사를 위한 혈액 샘플이 필요하다. 이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올해 유가족 채혈 3,500명을 목표로 전국 18개 군 병원은 물론 253개 보건소까지 채혈기관을 확대 시행하면서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의 주요도시 순회 채혈도 병행하고 있다.

Ⅱ.한·미 합동 6·25전사자 유해발굴

지난 5월에는 강원도 화천에서 한·미 양국의 후배 장병들이 6·25전쟁 당시 피 흘려 싸우다가 쓰러져 간 선배 전우들을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호국 영령들의 희생정신과 한·미 간의 혈맹적 의미도 새삼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지 난 5월 14일부터 6월 13일까지 1개월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미국의 JPAC가 한·미 합동으로 강원도 화천과 경기도 연천 등 4개 지역에서 6·25전사자 유해발굴을 실시하였다.강원도 화천지역은 1951년 6월 국군과 유엔군이 재북진을 시작했던 지역이다. 미 제9군단 예하의 미7사단과 미24사단이 김화지역으로 진격작전을 펼치면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른 곳으로, 피아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다.

합동유해발굴을 위해 미국의 JPAC에서는 특별히 훈련된 법의학 인류학자와 분석담당, 의료담당, 법의학 사진담당을 비롯한 1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발굴팀이 파견되었으며, 우리 측에서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전문 발굴팀과 지역 책임부대 지원병력 20여 명 등이 함께 참여했다.

국방부는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 한·미 합동 전사자 유해발굴을 통해 양국의 선배 전우들을 찾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혈맹의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함은 물론, 전사자 유품 식별기법 등에 대한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다.

Ⅲ.호국영령 마지막 한분을 찾는 그날까지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발굴 과정에서 유해가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굴착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해당 지역을 일일이 삽으로 파야 하는 탓에 속도를 낼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전사자유해발굴단은 내년부터 DMZ 일대에서 유해 발굴을 하게 된다.

DMZ는 다른 지역보다 발굴과정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인위적인 훼손이 적기 때문에 전쟁 당시의 기록과 제보만 잘 뒷받침되면 유해를 좀 더 쉽게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다른 지역은 개발에 따른 지형변화와 현장 훼손이 심해 증언이 있어도 유해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DMZ 유해발굴을 위해서는 유엔군사령부와 북한 측의 도움이 필요하다. DMZ 출입승인 권한은 유엔사에 있고, 발굴 작업 도중 북한군과 마찰을 피하려면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한다. DMZ의 경우 지뢰를 제거하고 현장을 보전하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다른 지역보다 유해 발굴 성과가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장은 “6·25 참전 세대들이 점차 나이가 들어 가면서 증언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에 앞으로 5년 정도가 유해발굴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며 “이 기간에 노력을 집중하지 못한다면 수많은 호국의 얼이 땅속에 그냥 묻히고 말게 된다”고 우려한다.

현 재 한국군 13만여 명, 유엔군 5만8000여 명 유해가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와 국민적 노력이 함께 이루어질 때 더 많은 전사자들이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름 모를 산야에 들꽃과 함께 남겨진 호국영령 “마지막 한 분을 모시는 그 날까지”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이다.

<국방부 국방교육정책관실>

2009.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