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1

lalla200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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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가 다시 한번 그녀의 팔을 잡았다. 가려던 그녀가 잡혀 있는 팔을 부여잡은 그의 묵직한 손을 본다. 하지만 그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더 강하게 앞으로 몸을 이끌어 발길을 돌렸다.

“왜...? 안된다는거야?”

“...알잖아...아무리 그래도 너완 사귈 수 없어.”

“왜? 승현이 때문에?”

그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 정면 앞으로 그가 다시 자리 잡고는 고개를 숙인 그녀를 쳐다본다.

“이미 헤어졌잖아. 내가 싫은 건 아니잖아?”

그는 애석하게도 다시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아니 그녀를 다시 붙잡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그녀를 갖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였다.

“싫은거 아니야. 하지만 난 너와 사귀고 다시 그 친구들을 만나고, 그렇게 할 수 없어. 그냥 이대로 친구라면 좋겠어.”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그에게 다시 심지를 굳히듯이 또박또박 말한다.

“난 친구가 싫어. 친구 할 바엔 차라리 널 안보겠어!”

하지만 그도 반박하며 큰 소리로 그녀를 윽박지른다.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팔을 부여잡고 흔든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침울한 표정으로 딴청을 부린다.

“널...갖고 싶어...”

그의 애틋한 음성이 그녀의 온몸을 파고들어 마치 약에 취한 듯 스며든다. 그녀는 온통 머릿속이 복잡하고,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가 몸을 돌려 그에게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가녀린 어깨 너머 흔들리는 그녀를 그는 계속 지켜보고 있기만 할뿐 그녀를 붙잡진 않았다.

그가 다시 제자리로 와서 술잔을 기운다. 그가 거의 술에 취할 때쯤 출입구에서 우르르 몇 명이 들어오더니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고 앉아 모두 그를 노려보듯 쳐다본다.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술잔만 기운다.

“뭐야 이 자식아~! 뭐 하는 짓이야?”

옆에 앉은 유빈이 묻는다. 또 다른 편에 앉은 정훈은 그를 툭 치자 술잔을 들고 있던 팔이 흔들렸고, 그 바람에 술이 쏟아져 손에 묻었다.

“너 미쳤냐? 어떻게 희수한테 그래? 승현이 평생 안 볼거야?”

“...어차피 그 자식이 버린거잖아..뭐가 어때?”

“허참...그래도 그러면 안된다. 승현이랑 희수...더 이상한 관계 만들지마. 어쨌든 합의 하에 헤어졌고, 더 이상 연관지어 만나게 하지 말라고!”

모두들 수긍하는 눈초리로 그를 본다. 그들도 모두 잔에 술을 따라 한번씩 들이키면서 생각에 잠긴다.


그 무렵...그녀는 집 아파트 앞에 있는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다. 스산한 바람도 아니거늘 온몸이 떨려오더니 이내 눈물을 떨군다.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던 그와 자주 데이트를 하던 놀이터 그네. 유난히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그와 자주 이곳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곤 했다. 온 다리에 모기를 물려가면서도 그 순간이 행복했었고, 그녀도 미처 그것을 알지 못했다. 옆에서 삐걱이며 흔들리는 그네의 빈자리를 보면서 그녀는 소매로 눈물을 덥썩 치워 버린다.

“헤어지고 싶어?”

그가 물었다. 기다리는 것도, 무신경한 그의 성격도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화를 냈고, 그것이 그에겐 차라리 헤어지고 싶다고 외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늘 헤어진다는 말은 남자에게서 나왔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그녀의 작은 손이 꽉 잡혀져 들어간다.

“왜? 니가 그러고 싶은건 아니구?”

그녀가 표독스럽게 따져 묻는다.

“헤어지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

그는 힘없이 말했지만 진실로 말했다. 차라리 라고 먼저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전혀 몰라주고 무작정 그렇게 말하는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번이고 그를 이해하고, 기다렸던 그녀였는데 화를 낸다고 그런 말을 지껄이는 그가 정말 이상하게만 보인다. 그녀는 그 뒤로 곧장 뒤돌아 집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그네 위에 사람이 앉아 있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혹여나 하고 그를 빤히 쳐다본다. 하마터면 ‘승현!’하고 외칠 뻔했다.

화가 난 듯 그녀를 응시하는 그는 지원이다.

“일어나!”

그가 먼저 그네에서 엉덩이를 띠며 말한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빨리 일어나?!”

그가 이번엔 언성을 높이며 아무 말 없는 그녀를 재촉한다.

“넌...좋은 놈이야...하지마! 이러지마!...너 보면 더 승현이 생각나...”

그는 그녀의 팔을 낚아채고 마구 끌고 가 듯이 그녀를 잡아 아파트 뒤쪽으로 걸어가더니 갑자기 멈춰서 그녀의 입술을 훔친다.

희미한 가로등 밑에서 그는 그만 손을 놓았다. 아무런 반항도 없이 그를 받아들인 그녀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팔을 떼자마자 그녀는 풀썩 주저앉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너도 잘 알잖아...흑흑...너도...내 이런 마음 잘 알면서...”

그녀는 이제는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에게 등을 돌리며 그가 뒤 돌아섰다. 그래...그도 그런 뼈저리게 슬픈 이별을 했었다. 깨닫지 못했던 공간에서 허우적거릴 땐 이미 늦은 후였다. 그래서 그녀를 더 감싸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에겐 두 달 이였지만 그녀는 지금 벌써 반년이 되어 가고 있었고, 그 치료를 그가 해주고 싶었던 것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