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향 (靑 香)-마지막회. 46. 행복을 찾아서...

붉은 여우200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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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향 (靑 香)-마지막회. 46.  행복을  찾아서... 청 향 (靑 香)-마지막회. 46.  행복을  찾아서...

 

  46. 마지막회.  행복을  찾아서...


  다음날 아침, 유배지로  떠나기 전에  주변을  정리해야  하는  준이   본가로  돌아가자  청향은  아이를   말갛게  씻기고  따뜻하고  두툼하게  옷을  입혔다.

  대환은  아침 일찍  준의  부름을  받고   환을  찾아   떠날  준비를  마치고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향아, 나리께서  언제  떠나시게  될지  모르니  어서  서두르라  하셨다.  늦으면  큰 마님께서  사람을  보내실 거라고  나리께서  말씀하셨단다.”

“예. 준비 다했어요. 잠시만요... 잠시만... 흑... ”


  아이는  잠기운이  섞인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해맑게  웃으며  청향을   향해  포동포동한  두 팔을  내밀며  작은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청향은  터질 듯한  모정으로  아이를   천천히  안아 들고  아이의   몸에서  풍겨나는  달콤한  살내음과  찹쌀처럼  부드러운  아들의  복숭아빛  살결속에  눈물이  가득찬  얼굴을  묻으며  흐느꼈다.

  아무리  마음을   정했다 한들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지도  모를  어린  아들과의  이별은  결코  쉬운게 아니었기에  청향의  두 눈에서는  진한  모정의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성아... 우리  성이  건강하게... 잘 자라길  어미가  떨어져서도  기도하마... 사랑한다. 내 아들... ”

“향아, 시간이  없다. ”

“네. 여기  준비됐어요. 가시는데  짐이  될까봐  봇짐  하나에  넣은  간단한   아이의  옷 가지외엔   많은 짐을  넣지  않았으니  향이가  오라버니께  모든 것을  맡긴다고... 두 분의  아이로  잘 키워주시기  바란다고   전해주세요. 아, 그리고  이것을...”


 청향은  허리춤에  매인  푸른 모란꽃 무늬의  노리개  반쪽과  금가락지  한 쌍을  빼어  줄에  묶은 후  아이의  옷에   매달았다.


“이 아이에게  전하는  제 마지막  선물이라고... 전해 주세요.  힘드시더라도  아이를  데리고  오라버니를  찾아  맡겨주세요. 오라버니를  못뵙고  가서  너무  가슴 아프네요.  대환아저씨... 미안해요. 힘든  부탁을  드려서... ”


대환은  눈물에  젖은  청향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입술을  깨물며  애써  고개를  돌렸다.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를  찾아  아이를  맡겨주마. 아무  걱정 말고  떠나거라.”

“흑.... 고마워요. 아저씨... 어서 가세요. ”


  대환이  아기를  데리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말발굽  소리가  집 가까이  들려왔다.  준의 핏줄을  거두려고  제안부부인이  보낸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청향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대환을   뒤쫒아  다시금  빠르게  말을  몰아갔다.


“아저씨, 제발... 오라버니께... 우리  준성이를... ”


청향이  아이를  보내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대청마루에  앉아있을 때, 때마침   가마를 타고  연이  도착했다.


“향아, 이제야  소식을  들었구나.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이냐!!!  오라버니는? ”

“본가에  가 계세요. 떠나시는  길에  절 데리러  들른다  하셨어요. ”

“안돼!!  이리  가서는  아니 된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내  얼른  궁에  다녀오마. ”

“언니... 흑.... ”


청향은  연에게  달려가  안기며  울음을  쏟아냈다.


“이미  조정대신들의  의견을  모은 일이고,  대왕대비마마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며...  혹시  언니가  가신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


연은  믿고  싶지 않은 듯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원망스러운 듯  눈물을  흘렀다.


“그깟  권력이 무엇이건대... 왕좌가  무엇이건대... 사람들의 가슴을  이리도  찢어놓는단 말이냐... 아버님에 이어... 어머님마저... 흑.... 미안하다... 향아, 미안하다... 언니가  널  볼  면목이  없구나. 흐흑... ”

“언니, 그러지  마세요. 서방님도  이 일로  언니가  다시  아프실까   걱정하셨는데... ”

“아니야, 아니야... 흑... ”


 한참동안  청향보다  더 구슬프게  울던  연이  눈물로  부어오른  눈으로  청향을  바라보며  긴 시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향아, 실은  네 노리개의  반쪽을  가진  분을  만났는데... 언니가  차마   말하질  못했구나. 용서해다오. ”


 청향은  자신이  들은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허나  이제 와서... 출생을  안다한들  무슨  소용인가...! 청향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됐어요. 안 들을래요. 이제 와서  제 가족을  찾아본들  무엇을  어찌 하라고... ”

“아니야, 넌  이미  그  노리개의  주인을  만났단다. ”

“네?  그럴 리가... 제가  만나 뵌  분이  누가  있다고... ”

“시전에서  널 구해준  강한수라는  분을  기억하니? ”

“네... 하면  그 분이...?”

“네  배다른  오라버니시란다. 그분의  부친께서  정 5품의 벼슬에  계시고,  네 어머니 또한  정식 부인  이셨다는구나. 넌  양반가의  여식이야 ”

“믿을 수가  없어요!!  우리  어머닌  고귀한  양반가의  부인이  되실만한  분은  아니셨어요. 제  어린  기억으로도...”

“널 낳아주신  친모는  네가  아기일 때  돌아가시고, 그 분의  몸종이  널 키우셨다  하더라. 네 부친도  나중에서야   네 친모가   널 낳았다는  징표로   노리개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고  네  오라버니  되시는  분을  시켜   널  찾게  하였다  하더구나. ”

“그럼, 그 때  그분이  찾던  사람이... 저 예요? ”

“그렇단다. 그 때는  준오라버니도  북쪽에  멀리  계시고, 민란이  일어나는  그 위험한 곳에  기억마저  잃은  널 보낼 수 없어  언니가  숨겼는데.... 너는  양반가의  여식이니,  네가  원한다면  너의 신분을  찾아  정식  부인이  될 수 있단다.   언니가  도와주마.  언니와  이곳에서  오라버니께서  돌아오시길  기다리자구나. 응? ”


청향의  눈에서  쉼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금만  더  빨리  말씀해 주시지... 그 때  말씀해 주셨으면  내 오라버니  얼굴을  한번이라도  다시  볼 수  있었을  것을... 이제  됐어요. 언니. 지금이라도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왜?  네 아이도  정식으로  오라버니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데...? ”


“됐어요. 그  아이만큼은  신분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래요. 이미, 준성이는  잘  돌봐줄 곳으로   보냈어요.”

“향아... 왜... ”

“언니, 제가  늘  입버릇처럼  말했죠?  제겐  서방님만이  제 삶의  모든  것이라고... 서방님과  떨어져서  평생을  기다리느니,  전  하루를  살더라도  서방님과  살겠어요...  준성이는  언니에게  보내고  싶었지만, 언니에게  보내면  제안부부인 마님께서   데려가실 게  너무  뻔하잖아요.”

“차라리, 데려가지  그러니...?  그래... 차마  데려갈 수  없겠지...”


청향의  슬픈  눈빛에서  이미  대답을  들은  연은  다시금  가슴이  메어져왔다.

이럴 때마다  비록  왕실에서  지워졌다해도   자신이  공주라는  사실이  못 견디게  숨막혀져왔다.


“언니, 제가  혹  못 돌아오더라도   부디  아프지마시고, 두번 다시  험한  생각은  아니하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네? ”

“흑.... 그래. ”


 그 때  50 인마를  이끈  금부도사의  행렬이  청향의  집에  당도했다.

청향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자리에서  일어나  연을  향해  천천히  큰 절을  올렸다.


“아시지요?  언니는  제게  어머니셨고, 언니셨고,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것을...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해 지세요. 이 날까지  언니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하고  가는 것을  용서해 주세요. ”

“향아, 아니 된다.  향아... 흑...오라버니... ”

“그럼, 연아  잘 있거라.”

“안돼!!!!  향아~!!! 오라버니~!!! ”


  연의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지만  천만리  머나먼 길로  떠나는  유배 행렬은  매정하리만치  눈앞에서  빠르게  멀어져갔다.


  조정대신들은  이 준을  유배시키고도  그가  강성히  살아있는 것  자체가  두려운지  끊임없이  지난날  세조의  후궁에서  궁녀로  전락해서까지  귀성군에게  편지를  보내 죽었던  덕중과의  일을  서로  간통하여  천륜을  더럽힌 일로  몰아갔다.  그러나  그 일들이  결코  사실이  아닌 것을  아는  대왕대비는  귀성군  준에게   더 이상의  무고한 죄를  씌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준과  청향이  떠나자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그들의  예상대로   연은  이 일로  크게  상심하여  다시  한동안  시름시름  앓았다.

  경칩을  넘긴  며칠 뒤  봄을  알리는  비가  쏟아져  내리는  어느 날, 병석에서  일어나  연은   유모와   막금을   불러  모든  가산을   정리해  떠나도록  명했다.


“아씨!  아니  되십니다.  장차   어찌하시려고  그러십니까. ”

“유모,  난  이제  더  이상  속세에  아무  미련이  없네. 그렇다고  다시  죽고자  할 수도  없고... 세상을  떠난  분들과  오라버니와   향이를  위해  부처님께  기도하며   남은   생을  보내려 하네... ”

“아씨, 탈상까지  아직  반년이나  남지를  않았습니까. 이러시면  아니 되십니다. ”

“ 탈상이라... 이미  부처님께  귀의하기로  결심하였으니  그 곳에서  탈상을  마칠 것이야. 내 법당에서  그 분을  위해서도   기도할  것이니  말리지  말게. 더 이상  날  말린다면  내  정녕  다시  목숨을  끊을 것이니...!!! 

  막금이는  재원이를  잘 기르도록  해라. 이제와  생각해보니  서방님의   가까운  친지도  없으신데  네가  서방님의  아이를  낳은  것도  대를  이으라는  천명인 듯  하구나.   부디  내가  감당치  못한   서방님의  후사를  잘 부탁한다. 이만한  재산이면  어디 가서도  사는데 있어  평생  부족함은  없을 게다...”

“흑...아씨.... ”


 

그렇게  대지를   흠뻑  적신  비가  멎자  눈물이  날것처럼  푸르고  청명하게  날이  개었다.

 연은  자신을  따르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유모만을  데리고  빈손으로  여승들만이  수행하는   정업사를  향해  올라갔다.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정업사의  주지  정혜는  출가하겠다며  자신 앞에  무릎을  끓고  단정히  앉아있는  연을   잔잔한  물결처럼   고요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출가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속세의  모든  것을  잊고, 세상을  떠난  부친과  부군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


 잠깐 동안의  침묵이  다시  흐른 뒤, 주지  정혜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주님은  마음에  쌓인  것이  많아  중이 될  상이 아닙니다. 돌아가십시오.”

“하지만  스님, 소녀는  이미  모든  것을  정리하고  왔습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나이에  맞지 않게  맑게  빛나는  주지 정혜의  눈빛이  연의  가슴속까지  들여다볼 듯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까닭으로  속세의  모든  것을  잊고자  하시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소승이  들어드리겠습니다. ”

“실은  어릴 적에  스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시려는지  모르지만...”

“기억합니다... 연꽃을  뜻하는  함자에  유난히  눈빛이  맑은  어린 시주님이셨지요. 제가  이미  아니, 신분은   밝히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억하신다니  말을  하기가  한결  쉽습니다. 실은... 14살에  궁을  나와  조용한 곳에  거하며  지내다가  한  분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원수가  제 아버님 이셨기에  그분은  떠나셨고, 전  그것이  저의  운명이라  생각해  제 곁을  지켜주시던  분과  혼인을  하고, 도성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데  유일한  아들이  마마로  죽고, 전  아이를  낳을 수가  없어졌지요.

  그 때, 스님께서도  아시는  함길도에서  일어난  난리로  서방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버님도  타계하시고   제 형제도  모두  죽거나  떠났지요. 그런데  이런  박복한   제가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으리이까...”


 눈물을  흘리는  연의  이야기를  듣고  난  정혜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


“... 머리를  깎는다고   모든  것이   비워지겠습니까?  마음을  비웠다면  아픈  눈물인들  쏟아지겠습니까?  시주님의  마음 속에  아직도  떨치지 못한  미련들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자신에게  솔직해져 보십시오. 정녕  부처님 전에  모든 것을  떨칠 수  있다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


 순간  연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한 사내의  얼굴이  스쳐갔지만  애써  머리를  저으며  흐느꼈다.


“스님... 그렇기에  더욱  머리를  깎고자  합니다. ”


 말을  마친  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슴품에서  꺼낸   은장도로  비녀를  꽂은  쪽머리를  끊어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연의  행동에  주지도... 옆에  앉아  지켜보던  유모도  미처  말릴  생각을  못하고   작은  신음성을  터트렸다.

 

“으음..."

“아씨!"


 결국  연의   머리는  귀밑에서  삐뚤빼뚤  찰랑거리는  짧은  머리가  되었고,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줄곧  냉담하게  말하던  주지 정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일단은  인연의  때가  될 때까지  수행자로  계시면서  마음을  닦아 보십시오.  그  수행의  결과에  따라  머리를  깎을지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주지의  반승낙에  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절 삼배를  올렸다.

그 절이  멈출 때마다   연의  작고  하얀  얼굴은  흘러내린  눈물로  축축이  젖어있었다.

 주지는  문밖을  향해  수좌를  불러  연이  거처할 곳과  절에서  지켜야할  법도  등과  당분간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게  했다.


“유모, 이제  난  걱정 말고  가보시게. 궁으로  가기  싫다면  막금이에게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거야.”

“아씨께서  머리를  깎고  완전한  중이  되셨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는  못 가옵니다.  그때까지는  저도  수행하시는  아씨의  수발을  들면서  이곳에  있겠습니다. ”

“아까  일화스님이  하신  말씀  못 들었나?  이곳에선  누구나  자신의  할 일을   자신이 해야  한다는 걸? ”

“후... 아씨께서  그 힘든  일들을  어찌 하신다고  그러십니까.”

“배울 걸세. 하나씩... 하나씩  배울  걸세.”


  몇 달이  지나고  뜨거운  태양의  달이   뜨는   8월이  되었을 때, 송원의  3년 상을  마치는  탈상이  있었다.  그러나  짙은  녹음 속에  온 산이  울긋 울긋   붉은 옷으로  갈아입다  하나씩  벗어 내리는  하얀  겨울이  될 때까지도... 부친의  상과  지난  아픔들은   여전히  연의  가슴을  긁어내고  있었다.

 

  연은  워낙  약한  체력 때문에  한 번씩  아프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잘  견뎌내고  있었다.  중도  아니요, 일반  아낙도  아닌  상태로  애써  부군의  남은  탈상을  마치고,   비로소  손에  흙을  묻혀  사찰에서  먹을  채소도  가꾸어  가며... 일이라는  것을  묵묵히  배워갔다.

 그렇게  수행한지  1년이  거진  다  되어갈  무렵  드디어   봄이  오면  삭발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다는  주지스님의  허락이  떨어져  연은  더욱   몸을  정결히  하고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월의  입춘이  지나  우수가  가까워졌으나  아직도  여전히  눈보라가  매섭게  불어오는  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한 사내가  발목까지  빠지는  산의  눈길을  헤치고, 깊은 밤의  고요함속에   퍼지고  있는  은은한  독경소리를  따라   법당쪽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이미  인경도  한참  지나  법당에서  나는  청아한  음색의   독경소리와  목탁 소리 하나를  제외하곤  여승들도  모두  잠자리에  든  깊은  밤이었다.

  사내는  산길에서  종아리까지  빠져있던  하얀 눈을  털어내고  경내를  가로질러   작은  촛불이  켜져있는  법당을  향해  과감히  다가갔다.


 사내가  법당에  들어섰으나, 여승이라기엔  너무  젊고  고운... 단아한  얼굴에  목까지  내려오는  짧은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젊은 여인이  두 눈을  감고  독경에 빠져  아직  인기척을  채  못 느낀  모양이었다.

 

 사내는  조용히  불상을  향해  두 번  깊이  절을  올리고  여인에게  걸어가  여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낯선  사람의  손길에  흠칫  놀란  얼굴로  뒤돌아  본  여인의  두 눈이  크게  떠지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하얗게  핏기를  잃어갔다.


“ 당신은...?!”


 사내는  고개를  숙여  보인 뒤  가지고  온 천으로   반항할  틈조차  없이  빠르게  여인의  입을  틀어막은 뒤  손을  뒤로  묶어  어깨에  들쳐  메고  빠른  속도로  법당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으읍... 읍.... 읍읍읍”


  여인은  그나마  자유로운  다리로  사내의  등을  세차게  걷어차며  심하게  반항했으나  사내는  여인을  둘러메고  올라온  산길이  아닌 ...당당히  사찰의  일주문을  지나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내는   여인의  반항이  거세어지자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마주보도록  여인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예서  더  발버둥 치면  같이  산 밑  눈 속에  떨어져  죽자는  뜻으로  알고   당신을  안고  저 산  아래까지  구를  것이오. 나야  당신을  안고  구르니  아프더라도  기분은  좋을 것이라  별  불만은  없소만... 그것을  원하면  계속  발버둥 치시구려. 아예. 지금  내려놓고   안아 구르리까? ”

“읍읍...크읍읍...”


  여인은  어이가  없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내를  세차게  노려본 후,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할 말이  있는 양  뒤로  묶인  팔을   들어 보인 후  발을  동동 거리며  천에  막힌  입으로  신음소리를  더  크게  내기  시작했다.

 

 턱에  손을  올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는  짓궂게  웃으며  입을  막은  천을  내려주었다.


“당. 당신이  어떻게!!!.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소리를  치겠... 읖...!!”


  터져 나오는  그녀의  고함소리는  갑자기  막아진  그의  입술에  막혀버렸다.

 사내는  약 올리듯이  짧은  입맞춤을  끝내고  이내  씨익~ 웃으며  충격으로  멍하니  눈이  풀려있는  그녀의  입을  다시   천으로  막고  어깨 위에  들어올렸다.


 잠시  넋이  나가있는  것인지... 그의  말대로  눈길에  사내가  자신을  안고  구를 것이  두려운  것인지  여인의  발길은   조용히  멈추어졌다.

 그런  여인의  반응에  사내는  작게  웃으며  실수로라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내려가는  속도를  조심해서  조절하기  시작했다. 실상  말은  그리했어도  여인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길  바라기에..

 사내는  산 아래에  매어놓은  말 위에  여인을  짐짝처럼   올려두고  자신도  뒤에  올라타고   바람같이  어둠속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  일주문  뒤에서  몸을  드러낸  회색승복을  입은  늙은 여인의  주름진  눈에서  뿌연  눈물이  강물줄기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씨... 이제는  늘  소망하신  바대로  한 여인으로  살아가소서... 부디  행복하시기를... 나무아미타불...’


 한편, 사내는  산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미리  봐둔   산 길  사이로  침착하게  말을 몰아갔다.  그는  어두운  산 속의  외따로  있는  하나의  작고  허름한  초가에  당도하자  말 위에   짐짝처럼  올려놓았던  여인을  내려  이불 짐처럼  가슴 위에  안고  깜깜한  초가 안으로   들어갔다.

 

  불빛 하나  없는  방바닥에   사내가  자신을  내려놓자   미리  군불을  넣어놓은 듯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여인은  조금  안심되었지만,  어둠이  주는  두려움과  방안에  그와  단 둘만  있다는  사실이  터질 듯  가슴을   뛰게하고  있어   못 견디게  숨이  막혀왔다.

 사내는  등잔에  기름을  넣고  심지를  높여  불을 켠 후, 어느새  방안의  구석을  찾아   숨어있는  여인에게  다가와   굵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갈을  풀어 줄 테니  조용히  하겠소? 아니면, 아까처럼  또  입을  막을 지도  모르오. 당신이  조용히  있겠다면  재갈과  손을   풀어 주리다. 어떻소? ”


 발갛게  상기된  얼굴의  여인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흠~! 그러시겠소?  알겠소. 그럼  불편하겠지만   그렇게 주무시오. 당신의  생각이  바뀔 때 쯤  돌아오리다.”

 

“흡.으읍흡....읍읍흡!"


 그는  아무  미련 없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냉정하게  몸을  돌렸다.

그러나  두어 걸음도  가기 전에  여인의  신음소리가  커지자   방문 앞에  우뚝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정말  자신만을  놔두고  나가버리기  전에   풀려나는 것이  우선인 듯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여인의  고개가   세차게  위.아래로  아플  정도로   끄덕여지고  있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여인에게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손을  풀어준 뒤  입의  재갈을  풀어주었다. 여인은  뒤로  꺾여  묶였던  손이  아픈 듯   손목을  몇 번  주무르더니  무방비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사내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쫙~!


“이  무슨  무례한  짓입니까?  전  이미  출가한  사람입니다. 당장  돌려보내주시어요.”


 사내의  입술이  덮쳐오자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재차  그의  뺨을  향해  가냘픈  손이  다시  날아갔다.  쫙~!!


“놓으세요. 짐승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의  입술이  다시  한 번  덮쳐왔다.  쫙~!!!


“놓으라 했습니다. 놓으란 말이예요. 당신이 무엇이기에  이제 와서... 이제 와서...흑... ”


 이젠  얼굴의  뺨 뿐만 아니라  그의  가슴과  어깨를  향해서도  아이처럼  울부짖으며  무차별적으로  때리는   연의  작은  주먹을  환은  묵묵히  맞아주다   가슴에  세차게  끌어안았다.


“미안하오.  미안하오.”

“흑... 이제 와서... 왜 이러시는  거예요. 그날  아침처럼  절 두고  떠나시지... 왜.. 이제야  나타나셔서... 제 속을  뒤집으세요. 가세요. 제발  가시란 말 이예요!!!  

 난  이미  다른 이의  부인이었고, 이젠  출가한  여승이에요. 난  당신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으니  가세요. 제발  가버려요. 이젠  당신을  잊었고, 당신이  싫어요. 제발  더 이상  당신을  미워하게  하지 말고  가세요. 가란  말이예요!!! ”


  가슴에  쌓아왔던  서럽고  고통스러웠던  마음들이  가슴을  에는  통곡처럼  새어나왔다.

말없이  연을  안고  그녀의  울음을  듣고  있던  환은   불현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바닥에  엎드려  가슴에  차오르는  상실감과  절망으로  한참을  울고 난  연은  그가  나가버린  방문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다시  서러움이  북받쳐   더욱  한참을  흐느꼈다. 방안의  군불을  넣은  따뜻한  온기에도  불구하고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드는 듯   연은  제  신세가  서럽기만  했다.


‘무정한 사람... 가란다고  또 다시  날  두고   정말  가버리다니... 나쁜  사람...’


 사찰에서  갈고  닦은  1년여의  수양도  그가  다시  떠난  설움 앞에  모두  사라진 듯  마음을  다스릴  아무런  독경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연은  자꾸  지난날의  서러움마저  밀려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때, 향이의  목소리가   머릿 속에  울려왔다.

‘언니, 제발  마음을  숨기지  말고  사세요. 언니가  아픈 것은  마음에  담아놓은  것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한 번쯤은... 후회도... 회환도   남기지 말고   솔직해 져보세요. ’


연의  가슴속에서  흐느낌이  더욱  크게  새어나왔다.


“안 돼!!!! ”


이제  겨우  그를  보았는데... 그를  만났는데...!!!

또 다시  그를  보내고, 죽을  것처럼  그를  그리워하며... 후회하며  살 수는  없었다.

연은  흐느낌을  멈출  생각도  하지  않고  방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  소리에  어둠 속에  묻힌 듯  초가의  입구에  고뇌에  찬  모습으로  서 있던  환이  뒤돌아섰다. 


“도련님...!!”


뒤돌아선  그의  가슴을  향해  연은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버선발로   뛰어가  안겼다.


“또 다시  절 두고... 떠나신 줄  알았어요.”

“아니오. 그럴 리가... 나 역시  일방적으로  당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데려온 게  아닌가  고민했지만, 떠날 순  없었소. 당신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소. 기다리겠소. 당신의  마음이  다시  내게  열릴 때까지...”


환은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눈물로  젖어있는  연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응시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마음속에  꾹꾹  눌러왔던  그리움들이... 사랑이  다시금  가슴에  차올라  아프도록  저려왔다.


“제가  평생  도련님께  마음을  열지 않으면  어쩌시겠어요? ”

“..... 힘들겠지만  기다리리다. 최소한  당신을  매일  바라보며  살 수는  있으니까.”

“... 이젠  정말  절  떠나지  않으실  건가요?  제가  지금처럼   매정하게  대해도?"

“그러리다. ”

“...죽을 때까지?”

“그러리다.”

“흑.. 전  이제  젊지  않은데도요? ”

“괜찮소. 나 역시  같이  나이를  먹어  주리다. 당신은  내게  여전히  곱기만  하오. ”

“전.. 도련님의  아이를  못 가질 거예요. ”

“괜찮소. 우리에겐  이미  준성이가  있소. 지금은  당신을  데리러  오기 위해  아는  곳에  잠시  맡겨두었소.  연... 당신이  있기에  나도  살고 있소. 당신  역시... 두 번 다시  날 두고  세상을   떠나겠다는  생각은  마오. 너무  괴로웠다오.”


 환의  기다란  손가락이  연의  눈물로  젖은  눈가를  닦아가자  눈물이  더욱  빠르게  뺨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흑... 두 번 다시.. 두 번 다시  절 두고  떠나지 마세요. 이젠  이리  쉽게  용서 안할거예요. ”

“그러리다.”

 

 

 그 역시  젖은  눈빛으로   다시금  연을   자신의  가슴으로  꽈악   끌어안았다. 

두번  다시는  놓아주지  않을 듯이...!!!


연은  그의  가슴속에서  가슴에  쌓아왔던  종기같이  곪은  오랜  슬픔을  터뜨렸다.

이젠, 두 번  다시  그를  보내지  않으리라!  마음을  숨기지도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연은  비로소  그의  가슴에  안겨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향해  내려온  뜨거운  그의  입술을  행복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한편,  경상도  영해의  초가에  안치되어  조용히  자리를  잡은  청향과  준은  푸른  새벽빛 속에  깨어나  부드럽게  사랑을  나눈 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뭐라 하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온전한  둘만의  세상이었다.


“후회하지  않느냐? ”

“피~ 후회할 틈도  없을 것  같은  걸요.”

“무얼하면서  말이냐? ”


청향이  준의  귀에  무엇인가를  속삭이며  장난기가  발동한 듯  귀를  잘게  깨물었지만, 그  놀라운 소식에  준은  벌떡  윗몸을  일으키며  청향을  내려다보았다.


“정말이냐? ”

“음~ 아마도  확실할 거예요.”

“향아~~~!!! ”

“좋으세요? ”

“그래. 좋구나. 이제  비로소  하루하루  우리  향이의  불러오는  배를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향아, 몸조심 하여라. 나에겐  우리의  아이도  중요하나... 너만큼  소중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서방님... ”


  준은  몸을  구부려  아직  불러오지도 않은  청향의  하얗고  납작한  배 위에  얼굴을  묻으며  조용히  웃었다.  그런  준의  머리를  쓰다듬는  청향  역시  입가에  웃음이  번진  얼굴로  그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들의  사르륵. 사르락 거리는  소리가   머지않아  대밭속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꺄르르 거리는  웃음소리처럼  들려왔다.


 주변의  인가와  떨어져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두 채의  초가가  진흙으로  쌓아올린  토담아래  푸른 대나무들로  푸르게  둘러있는  그곳은  그들만의  무릉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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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향 (靑 香)-마지막회. 46.  행복을  찾아서... 

 

 청 향 (靑 香)-마지막회. 46.  행복을  찾아서... 그간  '청 향(靑 香)' 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붉은 여우 드림-

 

* 붉은 여우의 소설  3탄  '청향' 은  마지막회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여우의  통에  옮겨 놓았습니다.  통으로  들어오시면  번거롭지 않게  순서대로  찾아  읽으실 수 있으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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