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31화> 재활

바다의기억200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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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입니다.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고 계신지...

 

밤 사이 내린 비에 주변이 시원해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조금 있다가 산책이라도 나갔다 오고 싶군요.

 

================== 땀띠야 가라 ===========================

 

 

일단 한 번만 고비를 넘기면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


하지만 그날 이후 민아는


병실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설마.. 정말 이렇게 끝나버리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덜컥 겁부터 났다.


이 일을 대체 어찌한단 말인가?


역시 내가 너무 오버한 건가?



하지만 한편으론,


그 상황에서도 연습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가 괘씸했다.


그녀에게 연극이 중요한 일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한 번 정도는 접을 수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참을 이 문제로 고심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손을 놓아 버렸다.


시간이 약이라고....


공연이 끝나는 게 먼저일지,


범인들이 잡히는 게 먼저일진 몰라도


둘 중 하나만 해결 되도 만사형통일 것이다.


일단 지금 제일 급한 문제는....



기억 - 오늘은 어떻게 할 거야?


한나 - 몰라요, 다 오빠 때문이야.


기억 - ....... 또 여기서 자려고?


한나 - 그럼 어떡해요! 당장 길바닥에서 자는 수밖에 없는데!



민아와 나의 혈전 이후


하루아침에 갈 곳 잃은 어린 새가 되어버린 한나.


난 급한 데로 근처 친구 집이나 기숙사에라도


몸을 맡기길 권했지만,


그녀는 일일이 사정 설명하가며


남에게 빌붙기는 싫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게다가 오늘 오전엔 민아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옷부터 게임기까지 살림 일체를 챙겨다


내 병실에 자리를 잡은 걸보면,


아무래도 이곳에서 장기투숙하기로 마음을 굳힌 듯하다.



기억 - 그러다 민아 오면 뭐라고 하려고?


한나

- 그땐 오빠 말대로 사정 설명 해야죠.


시말서를 쓰든, 사건 경위서를 쓰든...



일단 그녀가 이런 처지가 된 데는


내 잘못이 제일 컸던 만큼,


그녀의 행동을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날 밤, 한나는 다른 병실에서


매트리스까지 가져다가 침대 밑에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병실에 불이 모두 꺼지고


링거에서 떨어지는 약물 소리만


시계 초침소리처럼 들려오는 가운데,


난 한참동안 잠을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새벽녘이 다돼서야 설핏 잠이 들었다.



..........



= 죽어! 죽어 이 새끼야! =


= 완전히 조져버려! =



의식이 몸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느낀 순간,


갑작스러운 악몽들이 나를 덮쳐왔다.


사방으로부터 쏟아지는 발길질,


뼈와 딱딱한 무언가가 부딪히는 느낌,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통증들이 생생히 살아났다.



= 또 날뛰어 봐! 뛰어보라고 인마! =



꿈이라는 건 인식할 수 있었지만 눈은 떠지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소리라도 지르려 했지만


목을 꽉 죄고 있는 무언가로 인해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 야, 야, 더 까불어 보라니까? =



도와줘.... 누가... 좀.... 누가.... 누가 날 좀 도와줘....



= 야, 비켜봐. 다다다... 빠샤! =



도와줘!!!!!!!



기억 - ........!!



=따닥따다다닥따다닥따닥.....=


마지막 순간,


전기에 감전 된 듯 몸을 떨며 잠에서 깨어난 나.


떨리는 턱 때문에 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등에서 흥건하게 베어 나오는 식은땀과


엉망으로 헝클어져버린 이부자리가


그간 내 몸부림을 짐작케 했다.



울음이라도 나올 만큼 무서웠다.


어두운 방안 어디선가 녀석들이 다시 뛰어나올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느껴진 냉기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주섬 주섬 주변의 이불을 끌어다 몸을 덮던 난


결국 한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기억 - 한나야...... 한...한나야....


한나 - ......에....예? 무슨 일이세요?


기억 - 부...불 좀 켜줘..... 불....



아직도 턱이 덜덜 떨리는 탓에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내 목소리에서 이상을 느낀 그녀는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불을 켜주었다.



한나 - 꺅! 오빠, 무슨 땀을 그렇게 흘려요?


기억 - 아...악, 악몽을 꿨어. 악몽....



굳이 그녀의 표정을 살피지 않아도


지금 내 몰골이 얼마나 엉망일지는 대충 감이 왔기에


난 애써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도움이었다.


그것이 동정이건 무엇이건 상관없었다.



한나 - .........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몹시도 서글픈 얼굴로


내 머리를 감싸 안아 주었다.


깁스 안 구석구석까지 소름이 돋아있던 피부에


따듯한 온기가 전해지자 한 결 마음이 놓이는 게 느껴졌다.



기억 - 흑.... 한나야...... 흑흑.....



조금씩 떨림이 잦아들면서


그 부산물 같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창피할 것도 쪽팔릴 것도 없었다.


단지 그녀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고마웠고, 안심이 되었다.


난 분명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처지였고,


내 곁에 있는 건 한나밖에 없었다.



=짹짹짹=



언제 다시 잠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눈을 떴을 땐 아침이었다.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느낀 점은


베게의 촉감이 예전과는 많이 바뀌었다는 것.


아직 몸을 일으킬 수 없었던 난


고개를 돌려 내 머리맡에 베어져 있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려 했다.


그리고 곧장 한나의 막강한 바스트와 조우하게 되었다.



기억 - ........



내 머리 위쪽에 몸을 뉘인 채


조금 구부정한 자세로 잠이 들어 있는 그녀.


아마 어제 밤 소동이 끝난 뒤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 것 같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던 내 오른팔은


그녀의 허리 밑에 들어가 있었고,


고개는 그녀가 두 팔로 감싸고 있었기에


실상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그런대로 가만있으면 될 일이지만


문제는 지금 자세가 여러모로 부담스럽다는 점.


특히나 가슴계곡이 정면으로 보이는 이 상황만큼은


올바른 정신건강을 위해 반드시 타개해야했다.



한나 - 음.....



그때, 그녀가 옅은 신음을 내며


내 고개를 그녀 쪽으로 끌어 당겼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내 얼굴은 그녀의 가슴 사이에 묻혀버렸다.



기억 - .........



거대한 케이크에 얼굴을 파묻은 듯한 촉감은


결코 나쁘지 않았지만...


치명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기억 - 음! 으으음!! 으음!



결국 난 목조르기에 걸린 격투기 선수처럼


매트를 두드리며 기브업을 외쳤다.


필사적인 내 몸부림에 잠에서 깨어난 그녀.


이후 상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병실에 한 바탕 작은 소란이 일고야


그녀는 준비를 마치고 학교로 떠났다.


그녀가 자리를 비우고 얼마 안 되어


병실로 들어오신 어머니는


밤사이 많이 바뀌어 버린 주변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어머니 - 이 짐들은 다 뭐니?


기억

- 민아랑... 민아 동생 짐인데요,


아무래도 여기 오래 있다 보니까 필요한 물건들이 많아서...



어머니 - 그랬구나. 늘 고마워서 어떻게 한다니.



만약 어머니께 민아와 다퉜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단번에


=네가 무슨 배짱으로 그러니?=


같은 말씀이 나오지 않을까?



입원 8일 째.


난 양다리에 했던 임시 깁스를 제거 했고


붓기가 빠진 왼팔엔 완전한 깁스를 해야 했다.


어차피 통증으로 인해 활동을 할 수는 없었지만


옆으로 돌아누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기억 - 으이짜짜짜짜.....



다리 깁스를 푼 기념으로


침대 발치에 묶어진 끈을 잡고


몸을 일으키는 연습을 시작한 나.


아직 성치 않은 갈비뼈는


이렇게 힘을 쓸 때마다 괴로운 비명을 질러 댔지만,


이렇게 운동을 해주는 게 회복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믿고 참아보기로 했다.



한나 - 조금만 더요! 조금만 더! 그렇죠! 조금만~!!



한나는 벌써 4일 째


내 병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재활을 돕고 있다.


그녀가 매일 조금씩 가져다 나른 가재는


어느새 병실 한쪽 벽면을 차지했고,


이젠 샤워실을 비롯한 병원 시설을 이용하는 데도


아무 거리낌 없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처음엔 몇 번이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던 나지만


부쩍 자주 꾸기 시작한 악몽과


거듭되는 괴로운 물리치료에 점차 그녀를 의지하게 되었다.



한나 - 그렇죠! 꺄악~! 오빠 너무 잘했어요~!!


기억 - 하아.... 하아.... 하아..... 어우 죽겠다.



무엇보다... 이렇게 뭔가 하나를 해낼 때 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재활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한나 - 등 닦아 줄까요?


기억 - 후우.... 나야 고맙지.



고작 자리에 일어나 앉는 것만으로


땀으로 범벅이 돼버린 나는 기꺼이 웃옷을 벗고


그녀에게 등을 맡겼다.


이 기회에 등에 바람 좀 제대로 쐬고 햇빛도 좀 보여줘야겠다.



한나 - ...... 오빠 등 참 잘생긴 거 알아요?


기억 - 응? 등이 잘 생겼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한나

- 겉에서 보기보다 널찍하고,


모양도 잘 잡혔고... 딱 업히고 싶게 생겼어요.



기억 - 하핫, 그래서 공주가 꼭 술 취하면 업어달라고 한 건가?


한나 - 나중에 몸 다 나으면 저도 한 번 업어줄래요?


기억

- 그러지 뭐, 이렇게 도움을 받았는데....


또 바라는 거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다 들어줄게.



최근 그녀에게 받은 도움을 생각하면


업었다 놨다를 360번 해줘도 모자랄 나였기에,


몸만 나으면 영화건 놀이동산이건


그녀가 가자는 데로 갈 요량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는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한나 - 그럼.... 나 용서해줄 수 있어요?


기억 

- 응?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또 나와~.


그런 소린 그만 하자니까.



한나 - 나.... 정말 오빠한테 잘못한 거 많은데....


기억 

- 에이 됐어, 장난 몇 번 친 걸 가지고....


그런 거 이미 다 잊었어.



한나 - 오빠....



내 등을 닦던 한나의 손이 작게 떨렸다.



기억 - 그런 거 다 잊었어. 지금은... 그저 고마울 뿐이야.



유독 하늘도 푸르고 바람도 시원했던 그날.


하늘을 떠가는 구름 속에서도


민아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