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어느 소녀의 저주...(어렸을 때)

햄스터두마리v200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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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영안이 트인 사람은 의외로 많지만 그걸 일부러 드러내고 다닌 사람은 극히 드물것입니다. 하지만 가끔씩 그런 능력(?)이 느껴질 때면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많아요. 송충이가 손등에 떨어졌을 때처럼 그 순간만이라도 떨쳐내고, 벗어나고픈 그 기억들.
지금도 가끔씩은, 아주 가끔씩은 경험하긴 하지만..
횟수로 17여년전 쯔음...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까르르~~"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널찍한 마당에서 내가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 할머니는 늘상 기둥 반대편에서 고무줄을 붙잡고 계셨을 정도로 나에게 애틋한 정을 한껏 품어주신 분이셨다. 그건 내가 8살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할머니의 사랑은 당신의 손녀에게 아낌없이 배푸셨던 것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항상 몸 어딘가가 불편하셨고,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쯤에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항상 방안에만 앉아 계셨었다.
가끔씩 오가다 들은 동네사람들의 말로는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아 몸이 항상 아프시곤 하셨는데, 급기야 방에서만 생활을 하실 정도로 몸이 불편하신 것이었다.
그렇게 친절하게, 따뜻하게 손녀에게 잘해주신 할머니였는데... 나는 그런 할머니가 가끔씩은 섬뜩할 때에도 있었다.
"안돼~ 안돼 이것아. 우리 손녀만은 안된단 말이야. 선옥이는 손대지마!"
어려서도 잠귀가 밝은 나는 꼭두새벽에, 건너 할머니방에서 할머니의 애타게 부르짓는 소리가 큰방에서 이불을 눌러쓰고 있는 내 귓속에조차 생생하게 들렸었다.
첨엔 그게 손녀인 나를 놀리려고 장난처럼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점차 시간이 흘러갈 수록 그게 장난이 아닌 심각한 일임을 어린 내가 몸으로 느끼기 시작 한거였다.
내가 너무 어려서인가.. 할머니가 알수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나는 할머니와 놀아주는 횟수가 적었다. 그건, 적어도 내가 할머니를 이유없이 다가가기 싫어 했던게 아닐까 하는 17년이 흐르는 지금에서야 느낀 것이다.
새벽에 동이트고 해가 중천에 떴을 즈음에야 활기를 찾은 나는 할머니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할머니. 어젯밤에 할머니 누구랑 얘기 하신거에요? 누가 저 때리러 온건가요?"
할머니는 천진난만하게 자신을 올려다 보며 묻는 손녀를 보고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너무도 잔인하다는 표정으로 나의 눈을 피하고는
"이녀석. 복실이(강아지) 줄 끊어졌더라. 가서 묶고 오련."
하면서 넓은 치마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굵직한 알사탕을 꺼내어 내게 주시고 말길을 피하셨던 할머니였다.
어느날인가, 엄마께서는 생전의 아빠(3대독자)와 의형제를 맺으신분이 있는데, 그 아저씨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초상집을 가서 저승에서 우리 아빠를 반갑게 만나서 저승생활 하라는 기도를 올리고 와야 할것 같다고 먼길을 나셨다. 그날은 어두운 밤을 널다란 방에서 혼자 지새기가 무서워 할머니와 함께 자기로 했었다.
문풍지로 발라놓은 방문의 밖은 캄캄한 어둠만 깔려 있어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새벽즈음..
할머니의 나즈막한 신음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런 날 의식하지 못하는 할머니는 계속 신음을 내셨고 두려운 눈으로 할머니를 주시하는데 문쪽에 누워계신 할머니의 상체가 벌떡 일으켜지더니
"썩 물렀거라, 이것들아! 어디 내가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더냐!"
할머니의 등뒤에서 누워있던 나는 할머니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문쪽을 향해 호통을 치시는데 그 순간이 왜그렇게 무서웠는지 나중에 소변을 지렸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정도였다.
한동안 그렇게 방문만을 노려보시던 할머니..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왔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힘없는 방문을 쾅소리가 나도록 밀치며 마룻바닥으로 나가셨다.
"서낭신을 불러 네놈들을 벌하겠다! 썩 물렀거라 이놈들아!!"
어느새 할머니의 한쪽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었는데, 칼날을 잡고 계셨는지 고사리같은 손에서 무언가가 뚝뚝 마룻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깔깔깔~
어디선가 메아리 치듯, 그러나 멀어지는 듯한 비아냥거리는 듯한 웃음소리.
분명 들을 수 있었다. 저 머얼리 사라지면서 비웃음 잔뜩 섞인 그 웃음소리를.
그 광경을 본 나는 벽에 몸을 기대며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할머니의 토닥임에서도 한참을 울다가 잠들었는지 눈을 떴을 때는 밖은 이미 환해져 있었고, 엄마가 상을 마치고 돌아오셨는지 밥을 짓고 계셨다.
지난 밤의 일은 꿈이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아랫목에 누워계신 할머니에게 눈길을 돌렸을 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까?
지난 어제보다 할머니의 얼굴은 미이라처럼 바싹 말라 있었고, 간간히 숨소리만 들려올 뿐 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피곤하신걸까, 너무 아프신걸까..
이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아니,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꺼고 일어나서도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렇게 착하디 착한 우리 할머니..
그런 생각에 잠겨서인지 그날부터는 엄마와 큰방에서 자지 않고 할머니 방에서 할머니와 함께 잤다.
"그것들이.... 내림을 받지도 않은 년이 신을 부른다고...비웃으며 매일 나를 찾아와...."
"그것들이.... 니까짓게 무당을 할줄 아냐. 찢어죽일년이라고 퀭한 눈을 달고 비웃으면서 매일 나한테 찾아와..."
낮에는 마루에 앉아 혼자서 놀고 있을 때, 주무시고 계신 할머니의 잠꼬대를 들을 때면 고개를 획 돌려 할머니를 바라볼 때면 온몸에 섬뜩함이 스치고 지나가곤 했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할머니 방에서 자고 있을 때였다.
방한구석 벽장을 등지고 자고 있었는데, 인기척에 잠이 깨었다.
평소 자다가도 잠이 깸과 동시에 눈이 떠지는데 그때는 왠지 눈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왠지모를 싸늘한 기분.
'할머니가 약을 드시나봐. 아프셔서 약을 드시고 있는걸거야.'
스스로 안도감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나의 심장은 이미 두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때문에..
내가 찾은 안도감에 내 스스로도 의심스러웠는지 이불속으로 조심스레 손을 뻗어 할머니를 찾았다. 바른 자세로 누워계시는 듯 가슴에 올려놓은 팔꿈치가 손끝에 닿았다.
휴..
안도감에 한숨도 잠시. 그럼 방금전의 인기척은...?
엄마가 들어오셔서 할머니의 잠자리를 봐드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눈을 떴다. 방문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반사되어 들어오는 희끄무레한 무언가의 움직임.
'할머니의 옷자락인가? 방문을 열어놓지는 않았는데..'
분명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실눈을 떠서 다 보이지는 않을거 같아 조심스레 눈을 떴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할머니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소매 길이만큼 더 나와있는 소매를 한껏 풀어헤치며 얼굴은 고깔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흰 치마에 하얀 버선을 신고 누군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무당이 굿을 할때처럼 모듬발로 통통 튀면서 할머니 머리맡에서 춤을..
그 장면이 너무나도 섬뜩하고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나를 의식했는지 춤을 추던 그것이 순간 동작을 우뚝 멈추었다.
숨이 멎는듯 했다. 내가 지켜보고 있는걸 들킨게 틀림없었다.
그때 갑자기 흰 고깔을 쓰고 있던 그것이 순식간에 얼굴을 들이밀더니
"너도 평생 내림 못받고 썩어 죽을거야.."
속삭이듯 찢어지는 목소리리.. 퀭한 눈에 시뻘건 눈동자가 내 얼굴을 덥치는 순간
"꺄아악--"
급기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울음을 터트리고 할머니도 불러보고 엄마도 불러보면서 살려달라고..
잠시후 밖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안면이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나를 엄습하는 공포심이 사람과 사물을 분별시키지 못하게 했다.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밖으로 끌어내리는 그 사람들..
할머니방에서 나오자 마자 곧이어 울리는 통곡소리..
할머니가 돌아기신 거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를 보러 다시 달려갔지만 누군가 나를 단단하게 잡는 바람에 허공에 매달린채 울면서 할머니만 부를 뿐 큰방에 넣어진 후는 기억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조금씩.... 조금씩 나조차도 느껴지기 싫어하는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주 기분나쁜 그 현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