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둘이서만 알콩달콩살면 얼마나 좋을까?

길진 않지만 12년차2006.08.30
조회669

길진 않지만 지나온 결혼생활을 생각해보니 참 나도 기구한 삶을 산것 같다.

삼형제의 둘째를 연애 6년 만에 결혼해서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장남은 결혼해서 처음부터 분가해서 살았고

우린 남편이 가정을 이끌어 왔다고 해서 시집에 들어가서 살게 됐다.

1년후에 분가 하기로하고...

같이 살게된 동기는 돈이 없어서다.

남편은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부터 아버지일을 도왔다.

그흔한 사춘기도 남편은 느낄새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뼈빠지게 일을 했어도 큰아들은 결혼해서 너희들 끼리 잘살라고 주위에서 손벌리면 형편이 안핀다고 하며 처음부터 살림을 따로 차려 주었고 우린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 데리고 살다 분가 시킨다고(말로는 무척 위해주는척) 하며 데리고 있었다.

결혼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시어머니 아침에 부엌에도 안나오고 직업상 새벽에 출근하는 아들 거들떠도 안보고 잠만 주무시고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난 그래도 새벽3시에 알람 맞춰서 일어나 신랑도시락 챙겨 보냈다.

보름쯤되니 아침에 일어나 식사도 대충 드시고 한증막가신다며 가시고 오후에 시골에서 시이모님 올라오셔서 한증막가서 6시가 넘도록 안오시는 시어머니 보고 팔자가 늘어졌다고 하더라.

우리 시어머니 생각은 며느리를 보면 모든일은 며느리가 하고 당신은 두손두발 놓으시고 왕비가 되는줄 아셨나 보다.

큰며늘이한테 받지 못한 시어머니 대접을 작은며느리에게 받으려고 하신건지도 모른다.

참고로 형님은 백화점에 근무했기 때문에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에 늦게나 참석하는 수준이었다.

결혼 4개월 만에 남편이 지방에서 다쳐서 수술하고 중환자실에 있었다.

물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드문드문 다녀가시는게 다였고 난 보호자 대기실에서 3월달에 난방도 안되는 차가운 곳에서 침식을 하며 남편을 간호했다.

그곳에서 임신이 된것을 처음 알았다.

계속 지방에 있을수 없어서 사는곳으로 옮기고 난 입덧도 심했고 남편없는 시댁에 있기도 불편하고 병원다니기도 불편해서 친정으로 갔다.

 병원엔 아침마다 오빠가 차로 데려다 주었고 난 입덧을 하며 친정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남편 병간호를 했다.

그게 친딸 같으면 안스러워서라도 나에게 잘해줄려고 할텐데 며느리는 딸이 아니기에 나에 대한 시부모의 불만은 점점 커 갔다.

이유는 시집온 며느리가 친정에만 가고 시집에 오지 않는다고.

어쩌다와서 밥이라도 하고 콩나물이라도 무쳐 놓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안한다고.

그게 시어머니란 사람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

그것도 우리 엄마한테. 사부인을 우습게 본건지...

우리엄마 시어머니보다 15살이나 많다.

입덧때문에 먹은 밥도 넘겨 버리는 며느리에게 하는 소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들을 낳았고 봄이되어 난 분가를 했다.

조그만 빌라. 집주인이 시이모이고 난 세입자로 들어갔다.

그것도 다 빛으로 우리가 갚아 나가야 하는거지만 난 그래도 마음은 편하고 좋았다.

몇년을 그집에서 살다가 전세대란이 있던 어느해. 갑자기 집주인이 집을 알아보라고 한다.

자기가 들어와 살겠다고.

갑자기 집을 얻으러 다니려니 잘 구해지지도 않았고 전세는 가격도 안맞고 월세 밖에 없어서 집도 못구했는데 집구하라고 말한지 한달만에 시이모가 트럭 두대에 짐을 실고 왔다.

우린 우선 한쪽방에 짐을 채워 놓고 이모에게 양해를 구한뒤 시집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다.

솔직히 이모가 너무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끄럽지 않게 하려고 아무말도 안했다.

집이 잘 구해지지 않는다고 했더니 한다는 말이 아이들이 있어서 그런것 아니냐고.

요즘 애들있다고 집주인하고 같이 사는것도 아닌데 집안주는 사람이 있나 싶었다.

그렇게 두달도 못되서 시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시는데 술드시고 주사를 부리셨다.

저녘을 차리는 날 째려보며 욕을하고 날리도 아니었다.

참고있던 남편이 아버지랑 싸움이 일어나고 시아버지 말씀이 니가 해준게 뭐가 있냐고.

시동생이 그자리에 있었는데 시동생보고 그동안 먹여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한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분가해서 살면서 빛갑아가며 시집에 기름보일러 때는거 기름 우리가 댔다.

때때로 남편에게 돈얘기하면(절대로 나랑 같이 있을때는 안한다) 남편성격에 해드린다고 하고 돈드릴때 되면 나보고 상의한번없다가 해드리라고 하고.

그래도 남편이 나몰래 드리는게 아니라 꼭 내손을 통해서 드리게 했다.

우리 어머니 아들이 줬으면 좋겠는데 며느리에게 받으니 그나마 돈얘기가 점점 줄어들더라.

그렇게 시아버지와 싸우고 우린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 둘 데리고 그냥 그집을 나왔다.

남편과 차를 타고 수중에 돈한푼없이 무작정 고속도로를 올라 탔다.

아이들이라고 눈치가 없을리가 없다.

아이들이 차에서 자다가 10시쯤 되니 깼다.

 휴게소에서 아이들 저녘을 먹이고 음료수를 사갖고 차를 타고 다시 동해로 가는데 작은 아이가 그런다 고집불통 할아버지가 왜그런거냐고.

남편과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글썽이는 눈물을 아이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썼다.

그당시 남편은 형하고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때고 있는돈에 빛까지 얻어서 댔을때라 힘들었을때다.

월급한푼 못갖고 오는데 그래도 얼마라도 생활비 내놓으면 좋아라 하는 시어머니 얼굴이 새삼 떠오른다.

길어질것 같아서 다음에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