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와 사슴의 저주였을까요?

신의이쁜이200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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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영물이 들어왔을 때 해꼬지를 하면 

본인이나 자식에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는 걸까요.

옛날에 <이야기속으로>라는 프로에서

마을에 들어온 노루를 잡아 배를 가르고 내장을 발라내서 요리해 먹고는

그 집 자식이 똑같은 형태로 죽은 내용이 생각납니다.

그 날이 하필이면 딸래미 생일인데 노루를 잡아 배를 갈라 잔치를 벌인 것이죠.

그러자 그날 밤 딸도 노루와 똑같은 방법으로 배가 갈라져서 내장이 발라진 채 발견되었죠.

핏방울이 뚝뚝뚝 이 집 저 집으로 흩어져 있어서

동네 어떤 건달놈이 그 처녀의 배를 갈랐는지 피 묻은 집집마다 조사를 벌였지만

나중에 그 딸이 증언하기를 몇 년 전에 죽은 오빠가 귀신과 함께 나타나서

자기 배를 가르고 내장을 다 꺼내서 잘라냈다고 했죠.

노루를 죽일 때 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배를 갈라 내장이 발려진 상태...

결국 병원에서 내장 없이 복부 봉합 수술만 받은 후

집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다 며칠 후 사망...

딸 생일에 부정타게 노루를 죽여서 노루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이 수근거리더군요.

 

그 이야기를 가장 기억에 남는 끔찍한 기분으로 보고 난 뒤에

저희 마을 농장에서도 사슴을 잡을 일이 생겼답니다.

기분 진짜 엿같았죠.

가능하면 농장같은 건 할 짓이 못됩니다.

특히 사슴농장을 하면 주기적으로 피를 보더군요.

숫사슴만 뿔이 나는데 뿔이 굳어지기 전에 잘라야 녹용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굳어진 뿔이 떨어질 때는 아프지 않지만

피가 흐르는 뿔에 톱질하면 엄청 아프겠지요.

1년에 한 두번 행사를 치러야 하는데

사슴들은 마취 당한 채 눈을 가리고 뿔만 잘리는 게 아니고

너무 많은 피를 흘리지 않도록 뿔 밑둥을 동여매긴 하지만 

피를 한 대접정도 흘려야 합니다.

피를 마시겠다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고 피의 양이 부족하면

뿔대를 막대기로 톡톡톡 치기도 합니다.

그 피가 마실 때까지 굳지 않도록 나무 젖가락으로 휘저어야 하는데 

활명수나 소주에 타서 마십니다.

사슴피를 마시고 씩 웃기라도 하면 뱀파이어가 따로 없습니다.

그렇게 2,3년 동안 뿔을 짤리고 피를 흘리는 사슴은 나중에 퇴물이 됩니다.

뿔도 안 나고 그러면 바로 도살입니다.

마을 잔치가 벌어지는 것이죠.

<오늘 사슴 잡는다.>고 하면 남자들이 몸보신하려고 몰려가는 것이죠.

난 그 짓이 끔찍하게도 싫어서 구경도 잘 안가곤 했었습니다.

그날은 S도 사슴 잡는 일에 차출이 되었습니다. 

사슴을 잡을 때면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농장에 불려나가죠.

S는 바퀴벌레도 제 손으로 죽이기 싫어서 꼭 남의 손을 빌리는 귀차니즘이 있고

원래 뭘 잘 죽이는 성격이 못됩니다.

그런데 <부엌에서 도마와 식칼과 된장과 마늘 좀 갖고 나오너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것이죠.

삼겹살 맛있게 구워서 이제 한 점 먹으려고 할 때였는데 S가 후닥닥 뛰어 나가다가

계단에서 와장창 된장을 쏟고 칼과 도마를 떨어뜨리는등 조짐이 안좋았습니다.

<일만 도와주고 재수없으니 사슴고기는 한 점도 먹지 말라>고 내가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날 밤 

S는 반바지에 피를 묻힌 채 들어왔더군요.  

피 묻은 바지라도 잘 빨면 되겠지만

나는 아무도 몰래 바지를 확 쓰레기통에 처밖고

사슴 생각은 잊어버렸습니다.

사슴을 어떻게 잡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사슴을 죽일 때도 끔찍하게 죽이더군요.

모든 고기들을 도살할 때 다 그러나요?.

사슴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정동맥을 잘라 피부터 받는다는군요.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지는 게 아니니 시간도 꽤 걸렸겠지요.

하여튼 피를 받는 동안 사슴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누르고 있는 역할을 S가 했던 것입니다.

바퀴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사슴이 죽을 때까지 눈을 마주치며 눌러야 했던 것인데

그날은 섭씨 36도가 넘는 여름이었습니다.

사람도 땀에 흠뻑 젖었고 사슴도 땀에 흠뻑 쩔었다는데...

더군다나 사슴은 장시간의 출혈을 감내해야 했으니 얼마나 더웠을까요...

지옥의 유황불같았을 겁니다.

사슴의 눈이 얼마나 이쁜지는 다들 아실테고

땡볕 아래 그 사슴과 눈을 마주친 채 움직이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서

사슴을 눌러야 했던 S의 심정...

짧은 시간이라도 아주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사슴을 잡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서해안으로 캠핑을 가게 되었지요.

S는 차 안에서 사슴 잡던 순간의 죄의식이랄까 하는 마음을

운전중인 자기 친구에게 리얼하게 표현했습니다.

더워서 가만히만 있어도 피가 끓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피를 쏟아야만 했던 사슴은 오죽했을까요?.

그리고 사슴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힘을 썼던 S도 즐겁지만은 않은 기억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데 쿵!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다행히 경치를 구경하느라 10킬로로 주행중이긴 했지만

꼬마가 차에 뛰어들어 넘어져 있었습니다.

이마가 찢어져서 상처가 확 벌어진 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를 만나서 병원에서 꿰매고 경찰서 다녀오느라

해변에는 늦게 도착했습니다.

사건이 터져서 겨우겨우 숨 돌리고 술과 안주와 밥을 해먹은 뒤에

밤에 텐트 안에서 S의 몸에 이상한 증상이 생겼습니다.

열이 나는 것도 아니면서 몸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솟아서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밤에 엄청난 양의 소나기가 내렸는데다가

바닷가라서 추우면 추웠지 더울 리가 없는데 말이죠.

샘물이 너무 차가워서 손도 얼어터질 정도였으니 말이죠.

그런데 뒤척뒤척 숨을 헐떡이며 잠을 자지 못하길래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S는 더워서 숨이 안 쉬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사슴의 원혼이 활약할 시간일까요?.

남들은 추워서 이불을 덥고 자는데 S만은 숨이 막힐정도로 덥다는 것입니다.

내 기억은 사슴을 잡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더운데 그리고 땀에 흠뻑 젖었는데 (사슴도 온몸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다더군요)

장시간 피를 흘려야 했을 그 사슴의 증상이 S의 몸을 덮친 것이었습니다.

 

몸에서 열이 치솟을 땐 대장에서 반드시 배변을 해야만

그 열이 가라앉는 게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그래서인지 S는 대변이 마렵다고 했습니다.

바닷가 화장실은 다들 알다시피 냄새가 고약하고 가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데나 가서 싸라는 심정으로 두루말이 휴지를 통째로 들고 나섰습니다.

<가자>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혼자 보내기엔 불안했기 때문에 앞장섰던 것이죠.

냄새나는 화장실을 지나서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갯벌에다 싸라고... 멀리서 기다릴테니..

가는 도중  사람이 10명정도 올라가서 놀 수 있는 커다란 바윗돌 옆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물이 빠진 갯벌에 각자 따로 떨어져서 마주보며 주저앉아 응가를 싸기로 했습니다.

나는 혹시 나중에 마려울까봐 흉내만 낸 것이고 S는 실제로 똥을 쌌습니다.

그런데 마주본 상태에서 쭈그리고 앉은 S가

<니 뒤에 귀신이 있다>고 장난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진짜 귀신을 본 것이었죠)

나는 <장난하지 마>하고 신경질을 낸 뒤

똥 닦는 시늉을 하고 S가 다 싸기를 기다렸다가 바위를 지나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S가 여전히 더워서 못 견디면서 바위를 향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기 사람이 있네?. >

칠흙같은 어둠 속 2미터 전방의 바위 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원래 시력이 2.0인데 바위에 사람같은 건 없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두번 세번 보아도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체 뭐가 있다는 거야?>

<저기 있잖아, 저기>

손으로 가리키면서 그러길래 나는 화를 버럭 냈습니다.

<에이 진짜, 18... 헛소리하지 말고 정신차려. 지금 새벽 2시에 거기에 누가 있다는 거야?, 오기나 해>

그러고는 앞장서서 가다가 샘에서 기다렸습니다.

<여기서 등물이나 하고 가>

그렇게 물을 바가지로 떠서 어름짱같은 물로 등물을 해준 후 텐트로 돌아가니

S도 더위를 잊고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S는 그 날 밤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차가운 물로 등물을 했던 사실도 부인했습니다.

그렇게 물이 차가운데 자기가 그것도 밤에 그 물로 등물을 했을 리가 없다나요.

그 말을 꼭 남의 이야기처럼 하길래 나는 기가 막혀서 그를 빤히 보았습니다.

몇 시간 전에 등물을 했던 것도 기억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간밤에 그는 정신이 나간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혼자 나갔더라면 텐트로 돌아오지 않았을 사람이 분명했습니다.

과연 사슴의 원혼이 들러붙었던 것일까요?.

사슴이 자기가 죽을 때 겪었던 고통을 그에게 그대로 안겨주며

피가 끓어올라 적혈구가 녹는 용혈성 증상으로 정신을 돌게 해서 죽이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의 죄책감이 몸에 그런 증상을 일으켰던 것일까요?.

다행히 그는 칼을 직접 손에 들지도 않았고

고기를 한 점도 먹지를 않았기 때문에 무사했던 것일까요?. 

교훈 : 과도한 식탐은 여러분의 가정에 해를 끼칩니다.

스크롤의 압박은 여전했군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