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야 했다. 마감시간까지 채 5분도 남지 않았다. 집하지에서 차가 떠나버리면 중간 집하지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야한다. 방금전에 갔던 회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다행히 토요일 오후라 출근을 하지 않는 회사가 많아서 그런지 산업단지내 도로는 한산했다. 영업소에 막 도착했을때 지방으로 내려가는 5톤 윙바디 트럭이 물건을 다 실었는지 한쪽 문을 닫고 있었다. 현이 1톤 택배트럭을 윙바디 트럭옆에 주차했다. 평소 안면이 있는 기사였다.
"늦었네. 물건이 많았나 보네."
"죄송합..니..다" 현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대답했다.
트럭소리를 들었는지 소장님과 다른 택배기사가 사무실에서 나왔다.
현이 물건을 내리려고 택배트럭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물건을 받으면서 지역별로 구분을 해 놓아서 그런지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을 듯 했다.
"현아, 넌 이층 올라가서 씻고 정장으로 갈아입고 텔릭스로 가봐라. 무슨 일인지 몰라도
널 찾더라." 소장님이 물건을 내리려고 탑차안으로 들어가던 현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네? 무슨일인지." 현이 탑차에서 내리며 소장님의 얼굴을 의아한듯 바라보며 말했다.
"모른다. 얼른 준비하고 내려와라. 여긴 우리가 마무리 지을테니."
아무 영문도 모른체 이층으로 올라왔다. 언제 준비해 두었는지 옷걸이에 정장이 걸려있었다.
넥타이까지 가지런하게 책상위에 놓여 있었고, 양말이며 구두까지 준비해 두었다.
그냥 세수만 하려고 옷을 벗자 땀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울을 보니 모자를 쓰고 다녀그런지 엉망이었다. 아무래도 샤워를 해야 할 듯 했다.
옷을 갈아입고 내려오자 5톤 윙바디가 출발했는지 보이지 않았고, 다른택배기사들이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장님이 자동차에 시동을 건채 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가자. 급하다더라." 현이 자동차에 빨리 타라며 채근하듯 말했다.
현이 차에 타자마자 출발을 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공단내 도로는 한산했다. 소장님이 차를 급하게 운전했다. 현의 마음도 덩달아 급해졌다. 아무 영문도 모른채.
차가 회사마당에 다다르자 조금전의 경리아가씨가 현을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조금전엔 제가 너무 심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는걸요."
경리아가씨와 현이 사무실로 들어가며 짧은 대화를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현을 반갑게 맞이했다. 현을 아래 위로 훑어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전에 자네가 회사마당에서 일본인들과 얘기를 하는걸 보았네. 지금 우리회사 김부장이
지방 출장중이라 그러네. 자네가 통역을 해주겠나? 사례금은 주겠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고 그냥 단순한 통역이야. 자네를 우리회사 영업대리라고 소개를 하고 들어가세."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원래 일정에 없던 일이였단다. 물건을 받으러 왔을 때 보았던 일본인들이 바이어들이었고, 담당부장이 출장중이라 사장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당장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돌려보낼 상황은 아니었다. 워낙 큰 규모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회사에서 임원진이 직접 회사를 방문했는데 통역이 없다고 손놓고 있는다면 회사에 치명적인 타격이 올 수 밖에 없었다.
현이 접견실에 들어서자 일본인들이 앉아 있었다. 젊어보이는 사람이 일어서며 현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고 현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사장님의 말대로 어려운 통역이 아니었다. 전자용어가 간혹 나오긴 했지만 이미 학교에서 배운게 대부분이었고, 쉽게 통역을 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딱딱해 지면 현이 가벼운 농담으로 대화의 흐름을 부드럽게 했다. 한시간여 동안 회의가 끝나고 일본인들이 돌아갔다.
일본인들이 타고 온 차가 회사 정문을 벗어날 동안 인사를 서너번을 했다.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보이지 않자, 사장님이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대단하던데....., 통역실력도 실력이지만,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솜씨가 일품이야."
사장님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현을 칭찬했다.
"아닙니다. 저도 사장님 덕분에 오늘 좋은 경험했습니다." 현이 넥타이를 풀면서 말했다.
"자 들어가지."
"네. 알겠습니다." 현이 사장님을 뒤따라 들어갔다.
지은이 조교사무실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2학년 학생 관리대장과 신입생 관리대장을 작성하고 있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조용했다. 지은이 두드리는 자판소리만이 학교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조교사무실 문이 조용히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지만 지은은 느끼질 못하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야." 건장해 보이는 사내가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지은의 등뒤에서 소리쳤다.
"엄마야." 지은이 화들짝 놀라며 엄마를 찾았다.
지은이 놀란가슴을 진정시키며 뒤돌아 보았다. 3년전인가 군대를 갔던 상우였다.
"야 놀랐잖아." 지은이 상우의 가슴을 주먹으로 가볍게 치며 말했다.
"하하하. 여전하구나." 상우가 웃으며 말했다.
"휴가? 외박?" 지은이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 어제부로 제대했다."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상우가 말했다.
"뭐? 벌써."
"벌써라니 섭섭하게."
"그래 미안하다. 축하해."
"진작 이렇게 나왔어야지. 뭐 없냐?"
"뭘 원하나? 나가자. 저녁먹으러 가자. 제대 기념으로 내가 쏜다."
"오호라. 가자. 제대 기념으로 내가 쏘께."
지은이 문서를 저장하고선 서류철을 정리했다. 상우가 신기한 것을 본듯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뭐해? 컴퓨터 처음 보니." 지은이 컴퓨터를 끄기위해 시작버튼을 마우스로 눌렀다."
"잠시만" 상우가 지은의 손을 만류하며 말했다.
"왜?" 지은이 모니터를 보고 궁금한 눈빛으로 상우를 번갈아 봤다.
"이 사람 알아?"
"아니 몰라. 근데 찾고 싶은데 어디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어." 어느새 지은의 목소리가
가라 앉아 있었다.
"김현병장이야. 나보다 삼개월 선임병이었지." 상우가 손가락으로 바탕화면에 김현병장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아?" 지은의 눈빛이 빛났다.
"알지. 당연히 몇개월 전만해도 같이 생활했었는데. 잘 알지."
"아니. 연락처를 아냐고." 지은의 음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모른다." 상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지은이 고개를 떨구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김현의 그림자를 보았고 다시 어둠이 내리자 그림자가 어둠속으로 숨어버렸다. 한숨이 나왔다. 상우가 아무런 까닭도 모른채 지은의 옆에서 아무말도 못한채 서 있었다.
"아 맞다." 상우가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치며 말했다.
여전히 지은은 아무말없이 창문너머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은아. 연락처를 알 수도 있겠다."
"어떻게?" 지은이 고개를 돌리며 상우를 쳐다 보았다.
"내가 말년휴가를 다녀온 사이 신병이 왔는데, 김현병장을 잘 안다고 했다네. 그 얘기를 들은 후임병이 오늘 김현병장이 있는 택배회사를 찾아간다고 했어. 이따 아마도 연락 올꺼야."
"정말?" 지은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잔뜩 베여 있었다.
"무슨 사이야?"
"차차 얘기 해 줄께.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지은과 상우가 조교 사무실을 나갔다.
현이 접견실로 들어서자 사장님이 봉투를 꺼내셨다.
"오늘 수고비네. 정말 수고했어."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봉투를 현에게 내밀었다.
"아닙니다. 제가 한게 있는가요?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아닐세. 얼른 받게나. 다음에 또 부탁할 지도 모르잖아."
현이 더이상 거절을 하지 못하고 봉투를 받았다. 인사를 하고 회사 마당으로 나오자 소장님이 기다렸다는듯이 차에서 내렸다.
"수고했다. 얘긴 방금전에 윤사장님과 전화상으로 들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네."
소장님이 사무실로 들어가자 현의 몸에서 긴장이 풀어지는듯 졸음이 쏟아졌다.
경리아가씨가 늦은 퇴근을 하며 현에게 목례를 했다.
겨울바람이 몹시 차가웠고, 눈꺼풀이 잠에 못이겨 가물거렸다.
"현아 일어나. 방에 가서 자야지."
어느새 차가 영업소에 도착을 했고, 현을 소장님이 깨웠다.
"아 잠깐 잔다는게. 형 미안해요."
"오늘 많이 피곤하겠구나. 식당가서 밥먹고 일찍자라."
"네. 수고하셨습니다."
"오케이."
지은과 상우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연인들이 많았다.
주문한 저녁이 나오자 상우가 음식의 냄새에 도취되기라도 입맛을 다셨다.
"야. 천천히 먹어." 상우의 밥먹는 모습을 보며 지은이 말했다.
"아. 이거 버릇이 되어서." 상우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근데 전화가 왜 안와?"
"잠시만. 전화기 확인해보고." 상우가 주머니를 뒤졌다.
"왜?" 상우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지은이 물었다.
"핸드폰이 없어. 조교사무실에 두고 왔나보다."
"뭐?" 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게?" 상우가 덩달아 일어서며 말했다.
"연락오면 어떡할려구." 지은이 가방을 들고 계산대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상우가 입 안에 음식물을 구겨넣듯 먹으며 지은을 따라왔다.
현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영업소를 향해 힘없이 걸어갔다.
뒤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렸다. 현이 돌아보자 창문이 열렸다. 현이 누군지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텔릭스 사장님이셨다.
"안녕하세요?" 현이 인사를 했다. 금방먹은 밥 때문에 포화감과 졸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저녁은?" 사장님이 차를 인도 가까이 세우고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방금 먹고 나오는 길입니다."
"그럼 내일 시간있나?"
"네. 일요일에 특별히 약속은 없습니다만."
"그럼 내일 점심이나 같이 먹지. 1시까지 영업소 앞에서 만나도록 하지."
할 말이 끝나자 사장님이 가버렸고 현이 영업소 이층으로 올라왔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도 전에 현이 잠에 곯아 떨어졌다.
사진(#6)
서둘러야 했다. 마감시간까지 채 5분도 남지 않았다. 집하지에서 차가 떠나버리면 중간 집하지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야한다. 방금전에 갔던 회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다행히 토요일 오후라 출근을 하지 않는 회사가 많아서 그런지 산업단지내 도로는 한산했다. 영업소에 막 도착했을때 지방으로 내려가는 5톤 윙바디 트럭이 물건을 다 실었는지 한쪽 문을 닫고 있었다. 현이 1톤 택배트럭을 윙바디 트럭옆에 주차했다. 평소 안면이 있는 기사였다.
"늦었네. 물건이 많았나 보네." "죄송합..니..다" 현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대답했다. 트럭소리를 들었는지 소장님과 다른 택배기사가 사무실에서 나왔다. 현이 물건을 내리려고 택배트럭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물건을 받으면서 지역별로 구분을 해 놓아서 그런지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을 듯 했다. "현아, 넌 이층 올라가서 씻고 정장으로 갈아입고 텔릭스로 가봐라. 무슨 일인지 몰라도 널 찾더라." 소장님이 물건을 내리려고 탑차안으로 들어가던 현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네? 무슨일인지." 현이 탑차에서 내리며 소장님의 얼굴을 의아한듯 바라보며 말했다. "모른다. 얼른 준비하고 내려와라. 여긴 우리가 마무리 지을테니." 아무 영문도 모른체 이층으로 올라왔다. 언제 준비해 두었는지 옷걸이에 정장이 걸려있었다. 넥타이까지 가지런하게 책상위에 놓여 있었고, 양말이며 구두까지 준비해 두었다. 그냥 세수만 하려고 옷을 벗자 땀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울을 보니 모자를 쓰고 다녀그런지 엉망이었다. 아무래도 샤워를 해야 할 듯 했다. 옷을 갈아입고 내려오자 5톤 윙바디가 출발했는지 보이지 않았고, 다른택배기사들이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장님이 자동차에 시동을 건채 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가자. 급하다더라." 현이 자동차에 빨리 타라며 채근하듯 말했다. 현이 차에 타자마자 출발을 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공단내 도로는 한산했다. 소장님이 차를 급하게 운전했다. 현의 마음도 덩달아 급해졌다. 아무 영문도 모른채. 차가 회사마당에 다다르자 조금전의 경리아가씨가 현을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조금전엔 제가 너무 심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는걸요." 경리아가씨와 현이 사무실로 들어가며 짧은 대화를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현을 반갑게 맞이했다. 현을 아래 위로 훑어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전에 자네가 회사마당에서 일본인들과 얘기를 하는걸 보았네. 지금 우리회사 김부장이 지방 출장중이라 그러네. 자네가 통역을 해주겠나? 사례금은 주겠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고 그냥 단순한 통역이야. 자네를 우리회사 영업대리라고 소개를 하고 들어가세."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원래 일정에 없던 일이였단다. 물건을 받으러 왔을 때 보았던 일본인들이 바이어들이었고, 담당부장이 출장중이라 사장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당장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돌려보낼 상황은 아니었다. 워낙 큰 규모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회사에서 임원진이 직접 회사를 방문했는데 통역이 없다고 손놓고 있는다면 회사에 치명적인 타격이 올 수 밖에 없었다. 현이 접견실에 들어서자 일본인들이 앉아 있었다. 젊어보이는 사람이 일어서며 현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고 현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사장님의 말대로 어려운 통역이 아니었다. 전자용어가 간혹 나오긴 했지만 이미 학교에서 배운게 대부분이었고, 쉽게 통역을 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딱딱해 지면 현이 가벼운 농담으로 대화의 흐름을 부드럽게 했다. 한시간여 동안 회의가 끝나고 일본인들이 돌아갔다. 일본인들이 타고 온 차가 회사 정문을 벗어날 동안 인사를 서너번을 했다.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보이지 않자, 사장님이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대단하던데....., 통역실력도 실력이지만,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솜씨가 일품이야." 사장님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현을 칭찬했다. "아닙니다. 저도 사장님 덕분에 오늘 좋은 경험했습니다." 현이 넥타이를 풀면서 말했다. "자 들어가지." "네. 알겠습니다." 현이 사장님을 뒤따라 들어갔다. 지은이 조교사무실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2학년 학생 관리대장과 신입생 관리대장을 작성하고 있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조용했다. 지은이 두드리는 자판소리만이 학교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조교사무실 문이 조용히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지만 지은은 느끼질 못하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야." 건장해 보이는 사내가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지은의 등뒤에서 소리쳤다. "엄마야." 지은이 화들짝 놀라며 엄마를 찾았다. 지은이 놀란가슴을 진정시키며 뒤돌아 보았다. 3년전인가 군대를 갔던 상우였다. "야 놀랐잖아." 지은이 상우의 가슴을 주먹으로 가볍게 치며 말했다. "하하하. 여전하구나." 상우가 웃으며 말했다. "휴가? 외박?" 지은이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 어제부로 제대했다."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상우가 말했다. "뭐? 벌써." "벌써라니 섭섭하게." "그래 미안하다. 축하해." "진작 이렇게 나왔어야지. 뭐 없냐?" "뭘 원하나? 나가자. 저녁먹으러 가자. 제대 기념으로 내가 쏜다." "오호라. 가자. 제대 기념으로 내가 쏘께." 지은이 문서를 저장하고선 서류철을 정리했다. 상우가 신기한 것을 본듯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뭐해? 컴퓨터 처음 보니." 지은이 컴퓨터를 끄기위해 시작버튼을 마우스로 눌렀다." "잠시만" 상우가 지은의 손을 만류하며 말했다. "왜?" 지은이 모니터를 보고 궁금한 눈빛으로 상우를 번갈아 봤다. "이 사람 알아?" "아니 몰라. 근데 찾고 싶은데 어디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어." 어느새 지은의 목소리가 가라 앉아 있었다. "김현병장이야. 나보다 삼개월 선임병이었지." 상우가 손가락으로 바탕화면에 김현병장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아?" 지은의 눈빛이 빛났다. "알지. 당연히 몇개월 전만해도 같이 생활했었는데. 잘 알지." "아니. 연락처를 아냐고." 지은의 음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모른다." 상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지은이 고개를 떨구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김현의 그림자를 보았고 다시 어둠이 내리자 그림자가 어둠속으로 숨어버렸다. 한숨이 나왔다. 상우가 아무런 까닭도 모른채 지은의 옆에서 아무말도 못한채 서 있었다. "아 맞다." 상우가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치며 말했다. 여전히 지은은 아무말없이 창문너머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은아. 연락처를 알 수도 있겠다." "어떻게?" 지은이 고개를 돌리며 상우를 쳐다 보았다. "내가 말년휴가를 다녀온 사이 신병이 왔는데, 김현병장을 잘 안다고 했다네. 그 얘기를 들은 후임병이 오늘 김현병장이 있는 택배회사를 찾아간다고 했어. 이따 아마도 연락 올꺼야." "정말?" 지은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잔뜩 베여 있었다. "무슨 사이야?" "차차 얘기 해 줄께.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지은과 상우가 조교 사무실을 나갔다. 현이 접견실로 들어서자 사장님이 봉투를 꺼내셨다. "오늘 수고비네. 정말 수고했어."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봉투를 현에게 내밀었다. "아닙니다. 제가 한게 있는가요?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아닐세. 얼른 받게나. 다음에 또 부탁할 지도 모르잖아." 현이 더이상 거절을 하지 못하고 봉투를 받았다. 인사를 하고 회사 마당으로 나오자 소장님이 기다렸다는듯이 차에서 내렸다. "수고했다. 얘긴 방금전에 윤사장님과 전화상으로 들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네." 소장님이 사무실로 들어가자 현의 몸에서 긴장이 풀어지는듯 졸음이 쏟아졌다. 경리아가씨가 늦은 퇴근을 하며 현에게 목례를 했다. 겨울바람이 몹시 차가웠고, 눈꺼풀이 잠에 못이겨 가물거렸다. "현아 일어나. 방에 가서 자야지." 어느새 차가 영업소에 도착을 했고, 현을 소장님이 깨웠다. "아 잠깐 잔다는게. 형 미안해요." "오늘 많이 피곤하겠구나. 식당가서 밥먹고 일찍자라." "네. 수고하셨습니다." "오케이." 지은과 상우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연인들이 많았다. 주문한 저녁이 나오자 상우가 음식의 냄새에 도취되기라도 입맛을 다셨다. "야. 천천히 먹어." 상우의 밥먹는 모습을 보며 지은이 말했다. "아. 이거 버릇이 되어서." 상우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근데 전화가 왜 안와?" "잠시만. 전화기 확인해보고." 상우가 주머니를 뒤졌다. "왜?" 상우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지은이 물었다. "핸드폰이 없어. 조교사무실에 두고 왔나보다." "뭐?" 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게?" 상우가 덩달아 일어서며 말했다. "연락오면 어떡할려구." 지은이 가방을 들고 계산대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상우가 입 안에 음식물을 구겨넣듯 먹으며 지은을 따라왔다. 현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영업소를 향해 힘없이 걸어갔다. 뒤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렸다. 현이 돌아보자 창문이 열렸다. 현이 누군지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텔릭스 사장님이셨다. "안녕하세요?" 현이 인사를 했다. 금방먹은 밥 때문에 포화감과 졸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저녁은?" 사장님이 차를 인도 가까이 세우고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방금 먹고 나오는 길입니다." "그럼 내일 시간있나?" "네. 일요일에 특별히 약속은 없습니다만." "그럼 내일 점심이나 같이 먹지. 1시까지 영업소 앞에서 만나도록 하지." 할 말이 끝나자 사장님이 가버렸고 현이 영업소 이층으로 올라왔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도 전에 현이 잠에 곯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