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성형시대(단편)

이구아나2006.09.06
조회367

서기2300년...

우리는 똑같은 얼굴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똑같은 옷을 입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

 

1.

 

"악!"

 

꼬야는 짧은 비명과 함께 눈을 떴다. 또 어렸을 적 꿈... 끔찍했다. 꼬야는 아직도 꿈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 듯, 그렇게 누운 채 눈을 깜빡거리다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오늘따라 얼굴이 무겁고 뻑뻑하다. 하긴 피지제거를 안한지도 1주일이나 됐으니 그럴만도 하다. 원래 3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해 왔건만 요즘은 너무 바빴다.

 

꼬야는 축 늘어지는 몸을 끌며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바라본다. 이제 이 얼굴도 질렸다. 일주일이나 똑같은 얼굴이라니... 사람들이 얼마나 자길 센스없는 여자라고 생각했을까...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정말 바빴더란 말이다. 게다가 이번 얼굴은 꽤나 맘에 들었었다. 하지만 일주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심했다 싶다. 악... 피지가 얼굴에 꽉 차오른 느낌이다. 답답하다. 피부빛도 너무 칙칙해 보인다. 꼬야는 우선 피지제거를 위해 모공확장 크림을 쭉 짜서는 얼굴에 고루고루 발라준다. 모공이 점점 확장되는 것이 느껴진다. 꼬야는 재빨리 모공분출용 마스크를 썼다. 10초도 되지 않아 수천개의 모공에서 노란 피지들이 뽈똑뽈똑 솟아오르기 시작하더니 마스크가득 차올랐다. 꼬야는 마스크를 벗고는 끔찍하단 표정으로  한 동안 자신의 피지를 감상하고는 쓰레기통에 툭 던져버렸다. 꼬야의 얼굴은 마치 뼈라도 드러날 듯 모공이 심하게 열려있다. 꼬야는 애써 거울을 외면하며 모공축소크림을 얼굴에 골고루 발랐다. 크림이 피부에 닿기가 무섭게 모공이 일제히 오므라들더니 꼬야의 피부는 틈하나 찾을 수 없는 매끈한 피부로 돌아갔다. 게다가 피부색도 투명하리만치 맑아졌다. 얼굴이 날아갈듯

개운하다. 이제 꼬야는 본격적인 성형에 들어간다.

 

"어떤 스탈로 해볼까?"

 

지금 얼굴은 너무 상투적인 이미지라고나 할까? 너무 틀에 박혀있다. 사슴같은 눈에 오똑한 콧날 갸름한 얼굴선 앵두같은 입술... 싫증난다. 재미없어... 첨엔 꽤나 맘에 들었건만 왠지 구닥다리라는 느낌이 점점 커져간다. 오늘은 패셔너블하고 개성있는 얼굴을 연출해 볼 작정이다. 그래도 꼬야라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탁월한 감각을 인정받고 있는 여자 아니던가?

 

꼬야는 먼저 플렉서블 레이저를 얼굴에  발사했다. 레이저 광선이 얼굴전체를 덮는가 싶더니 꼬야의 얼굴이 순식간에 뭉글뭉글 해지기 시작한다. 꼬야는 재빠른 솜씨로 자신이 생각해 두었던 이미지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우선 귀여운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동그란 이마를 조금 평평하게 만든 후 눈썹 선을 한층 위로 올렸다. 뭔가 더욱 세련되고 샤프해 보이는 듯 하다. 다음으로 동그란 눈을 옆으로 당기며 조금 위로 올렸다.

 

'너무 사나워 보이나?'

 

아니다. 꽤 근사해 보이는 듯도 하다. 오늘은 개성을 추구하기로 맘을 먹지 않았던가! 꼬야는 눈두덩이에 있던 쌍꺼풀마저 툭 풀어 버렸다. 순간 꼬야의 얼굴에서 동양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동양적 이미지는 꼬야의 어린시절 한창 유행했던 트렌드지만 유행이란 돌고 도는 것이라지.. 하지만 콧날만은 눈사이에서 부터 날카롭게 다듬어 세우고 코끝은 손가락으로 쭉 뽑아 올렸다. 마치 하늘로 치솟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거 왠지 멋있어 보인다. 더욱 용기를 얻은 꼬야는 도톰하던 입술을 얇게 만든후 옆으로 쫙 늘렸다. 볼록하던 볼도 쑥 넣어버리고 턱선은 귀밑에서 부터 일자로 만들곤 턱에 뾰족한 각을 만들었다. 대충 수정을 끝내고 거울을 본다. 뭐야... 왠지 심각한 역삼각형같다. 꼬야는 다시 한 번 턱을 만져 모서리를 조금 뭉툭하게 만들어 본다. 이젠 좀 나아보인다. 아니.. 그냥 나아보이는 정도가 아니다. 이야~ 이거야! 멋있다. 정말 개성만점인 얼굴이 되었다. 이런 얼굴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특허라도 내야 될 것 같다. 꼬야는 흡족한 맘으로 픽스 레이저를 얼굴에 쏘았다. 얼굴은 완벽하게 틀을 잡고 고정이 되었다. 그렇게 한 동안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꼬야는 자신의 얼굴을 화상에 올리고는 특허로 등록했다. 오늘의 성형은 기가 막힐 만큼 예술적이었건만 시간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성형을 할 때 마다 점점 시간이 단축되는 것 같다. 점점 프로가 되어가는 느낌... 왠지 뿌듯하다. 하긴 언제부터 갈고 닦은 솜씬데... 어렸을 적부터  오늘같은 날만을 꿈꾸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었다. 꼬야와는 판이하게 다른 외모로 유명세를 떨치던 엄마를 우러러보며 그렇게 소망하고 소망하던 셀프성형이었단 말이다. 성형기구는 성장이 멈추기 전까진 절대 작동되지 않는다. 만약 실수로 작동이라도 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더 이상 성장을 할 수 없을 뿐더러 심각한 기형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주위에 그렇게 된 사람들을 보면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마가 얼굴에 반을 차지한 채  살아가야만 하는 소키... 코가 너무 가늘어져 정면에서 보면 코가 보이지 않는 노미... 코보다 콧구멍이 더 큰 위니... 하지만 정말 소질이 없는 사람들은 기구가 준비되어도 너무나도 조잡하고 엉성한 얼굴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짜증이 나서 미칠 것 같다. 차라리 돈을 좀 주고 전문가에게 찾아갈 것을 권하고 싶다. 꼬야는 이제 어제 생각해둔 화장과 머리스탈을 선택한 후 프로그램화 시켜 메이크업 헬멧을 썼다. 5초만에 원하는 스탈이 그대로 나왔다. 오늘은 특별한 날인 만큼 무릎까지 오는 새빨간 스커트를 입을 생각이다. 그러니까 종아리 부분이 더욱 길고 날렵한게 좋을 것 같다. 꼬야는 플렉서블 레이저를 다리에 발사한 후 다리를 엿가락처럼 쭉 늘렸다. 꼬야의 다리가 5센테는 길어진 듯 하다. 됐다. 이젠 완벽하다. 모든 옷을 갖춰입은 꼬야는 집을 나선다. 막 성형을 한 얼굴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더욱 새롭게 보이는 것 같다. 이래서 성형을 한 첫날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만 같다. 꼬야는 벅찬가슴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2.

 

지금 꼬야는 징징과의 데이트를 위해 약속장소로 가는 길.. 오늘은 꼬야와 징징이 정식으로 사귄지도 일년이 되는 날이다. 오늘은 특별한 날인만큼 이제 그들의 만남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꼬야가 오늘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성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 징징은 꼬야에게 뭔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꼬야는 징징의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꿍덕꿍덕 뛴다. 어릴 적부터 짝사랑해온 징징.. 꼬야는 징징을 바라보며 늘 성형할 날만 꿈꾸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징징을 사로잡게 된 꼬야는 세상을 다 얻은 것 만큼이나 기뻤다. 이렇게 걸음을 재촉하는 길에 꼬야는 마주걸어오는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꼬야보다 더욱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새하얀 피부에 분홍색 볼.. 마치 천사가 날아오는 것 만 같다. 팔찌에 부착된 센서가 아니었다면 엄마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하긴.. 꼬야는 엄마의 진짜 얼굴도 모른다. 지금까지 수백가지의 얼굴을 특허로 등록한  엄마는 성형 전문가로 유명하니까.. 꼬야가 이렇게 소질을 보이는 건 아마도 엄마가 성형하는 모습을 늘 지켜보며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

 

"어.. 너 오늘은 정말 몰라보겠다?"

 

"어때? 이거 특허로 등록했어.."

 

꼬야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해 보이지만 엄마의 표정은 왠지 불편해 보인다. 꼬야는 더 이상 엄마의 의견을 묻지 않는다. 엄마는 늘 꼬야의 변신에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다. 꼬야가 셀프성형을 하던 첫날부터 그랬다. 괜히 기분을 잡칠 바에야 물어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나 지금 바빠. 다음에 봐."

 

꼬야는 엄마를 툭치며 지나가 버린다. 엄마의 표정때문일까? 상쾌하던 기분이 순식간에 침울해져 버린다. 그렇게 한 동안 걸어가던 꼬야에게 어디선가 칼칼하게 쉰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것 봐! 저것 봐! 도깨비같이.. 쯧쯧.."

 

또다.. 매일 아침 꼬야의 신경을 건드리는 괴물.. 저놈의 안티셀프성형인은 흉측한 얼굴을 하고서 매일 저기 저렇게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흉을 본다. 어린시절 역사시간에서나 보던 쭈글쭈글한 피부, 새하얀 머리칼, 거뭇거뭇한 저승점.. 왜 저렇게 산담... 안그래도 우울하던 기분이 더욱 우울해져 버린다.

 

"오늘은 좋은 날이란 말야!"

 

꼬야는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을 꾹 눌러가며 약속장소를 향한다. 징징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거야.. 징징한테 다 말할거야. 징징에게 위로받을 거야. 꼬야는 겨우겨우 마음을 안정시키며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징징은 언제나 늦다. 하지만 징징을 사랑하기에 꼬야에겐 이런 기다림 마저 설렘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늦는 징징이 야속하다.

'빨리 징징에게 위로받고 싶단 말야.'

드디어.. 저기서 징징이 걸어온다. 우아한 갈색머리.. 고대 귀족과 같은 클래식한 얼굴선.. 미소년이란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징징.. 흠잡을 데 없이 너무나도 멋진 징징... 하지만 요새들어 부쩍 피로해 보이는 징징이다. 왜 일까.. 징징은 언제부턴가 더 이상 성형을 하지 않는다. 늘 남다른 클래식한 스타일을 다양하게 연출하던 징징이건만 몇 달간 늘 저 모습 그대로였다. 꼬야는 이것도 불만이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하는 자기와 달리 늘 정체되어 있는 징징의 모습을 보자면 왠지 혼자서만 안달하는 느낌이라 자존심이 상한다.

 

"징징! 왜 이제야 오는 거야!"

 

꼬야답지않게 신경질을 내버렸다.

 

"어.. 미안. 많이 기다렸어?"

 

하지만 징징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자마자 꼬야의 섭섭함은 눈녹 듯 사그라든다.

 

"아냐, 아냐.. 괜찮아, 징징~"

 

꼬야는 징징에게 생긋 웃어보인다.

 

"야~ 오늘 정말 새로운데 꼬야?"

 

징징이 꼬야의 외모를 칭찬해 준다.

 

"응, 고마워.. 근데 징징.. 할 말이 뭐야?"

 

꼬야의 물음에 징징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징징의 표정을 보니 꼬야의 마음 한켠에 쌩하니 찬바람이 부는 듯 하다.

 

"꼬야.."

 

징징이 무겁게 말을 꺼낸다.

 

"응.."

 

징징의 심각한 목소리에 꼬야의 심장은 터질 듯 방망이질 한다.

 

"이젠 더 이상 널 속일 수 없구나."

 

속이다니? 꼬야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징징을 바라볼 뿐이다. 징징이 말을 잇는다.

 

"요즘 내가 성형도 안하구.. 이상했지?"

 

"바빠서 그랬겠지.."

 

꾜야는 불안한 맘을 억누르며 대답한다.

 

"아냐.. 꼬야.. 그게 아냐.."

 

뭐야.. 대체 뭐냔 말야.. 꼬야는 이 순간이 숨 쉬기도 힘들 정도로 벅차다. 도대체 징징이 갑자기 왜 이

러는 걸까..

 

"난 이제 더 이상 기력이 없어. 이제 더 이상 성형을 하면 피부가 찢어질 지도 몰라."

 

"무.. 무슨 말야.. 기계가 고장난 거야?"

 

징징은 꼬야의 눈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징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쳐 보인다. 마치 쓰러질 것만 같다.

 

"꼬야.. 오는 길에 쭈글쭈글한 노인 봤어?"

 

쭈그렁 노인의 이야기에 꼬야는 조금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화재를 돌리기로 마음 먹는다.

 

"어.. 그 흉측한 사람이 말야.. 오늘 나 한테 뭐라 그랬는지 알어? 기가 막혀서.."

 

꼬야는 애써 힘을 내어 수다쟁이 처럼 불만을 늘어놓는다. 징징의 침울한 이야기는 더 이상 듣지 않을 작정이다.

 

"꼬야.."

 

하지만 순간 징징이 꼬야의 말을 가로 막는다. 꼬야는 말을 집어 삼키듯 멈추곤 징징을 바라본다. 한 순간의 묘한 침묵이 흐른 수 징징은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 노인이.. 내 동생이란다."

 

"징징.. 그게 무슨.."

 

꼬야는 이해 할 수 없단 표정으로 징징에게 다가선다.

 

'삐이~"

 

순간 징징의 팔찌에서 날카로운 신호음이 울려펴지고 징징은 다급히 꼬야에게서 돌아선다. 저 신호음.. 인체의 한계를 나타내는 신호음이다. 순식간에 징징의 얼굴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징징의 얼굴은 쭈그렁 노인보다 더욱 흉측한 얼굴로 변해간다. 곧 두명의 수행원이 징징을 수행해 가고 혼자남은 꼬야는 넋을 잃은 채 우두커니 섰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꼬야는 뒤를 돌아 다시 집으로 향한다.

 

"쯧쯧.. 저저.. 꼬락서니 하고는.."

 

쭈그렁 노인은 여전히 꼬야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꼬야는 노인에게 다가선다. 노인은 뜻밖이라는 듯, 주춤 뒷걸음질 친다. 꼬야는 노인의 눈동자에서 언뜻 징징을 느꼈다.

 

"배고프지 않아요? 저희 집에 가요... 제가 맛있는 거 만들어 드릴게요."

 

꼬야가 웃으며 노인의 손을 잡아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