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수명이 요즘의 수학적 접근이지 고대 수학적 접근이지는 생략하겠습니다. 저도 모르기에...
위 족보를 언급한 것은 역사의 흐름을 보기 위해서 입니다.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는 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성경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것이죠.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성경이 없이 신에 대한 구전으로 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그렇다면 27대 정도는 모세가 성경을 쓰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알게 되거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하나님을 믿은 것이냐 모세가 말하길 “출 6: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라고 말합니다.
즉 모세 이전 사람들은 전능의 하나님을 믿은 것이죠. 중요한 것은 모세는 하나님을 산에서 만나지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산에서 만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때 하란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분명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산의 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죠. 성경에서는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을 말합니다.
아람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아람사람들은 모세가 하나님을 산에서 만나것을 알고 산의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신이라는 것은 그 지역을 대표했기 때문에 전능의 신이라고 생각을 그들은 못한것입니다.
“왕상 20:28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 일로 아람은 산에서도 패하고 골짜기에서도 패합니다.
계속 지고 또 지지요.
즉 하나님은 자신이 산의 신이 아니라 어떤 특정 지역의 신이 아닌 전능의 신임을 성경에서는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성경을 쓰기 전 성경은 이 세상에 존재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신이 존재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에게 전해지며 신앙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성경이 없었던 당시 그들의 신앙과 믿음은 전능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신앙의 고백 이였습니다.
그 당시 주변국에서는 우상들을 많이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전능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성경에서는 보여줍니다.
우선 멜기세덱 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사람인지 천사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모세의 장인 이드로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정착하지 않고 생활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대표 인물이 요나답 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섬겨서 “렘 35:19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이런 말을 받습니다.
그리고 모압 사람은 그모스라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중 발람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깁니다.
“민 22:7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로 그에게 고하
민 22:10 발람이 하나님께 고하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라 이르기” 이렇게 말씀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공통적인 것은 유대인만 유일신을 섬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도 없었고 성경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존재 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부르고 찾았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셨던 것을 보여 줍니다.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는 욥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일명 사탄의 유혹을 이겨서 의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의 시험에 대해서는 성겨에 욥기라는 곳이 있으니 읽어 보면 될 것 같고요.
우스 땅은 이스라엘 지역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살던 시대는 족장 시대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욥 42:16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오래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마 아브라함 이상의 시대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 성경이 나오기 전 시대 사람이죠. 그리고 이방인 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하나님이 축복했다고 분명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성경이 있기 전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고 이스라엘과 상관없이 유일하고 전능한 신을 믿는 이들은 유일한 신을 믿음으로 축복 받고 구원 받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성경 자신에게 성경이 없어도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앎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성경은 모세가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왕자로 자랐기에 무술과 학문에 능통했습니다.
모세는 유대인지만 그가 교육 받은 학문은 애굽의 언어와 학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히브리어로 성경을 썼다는 것은 그의 부모에게 어려서 영향을 받았고 글을 쓰는 것을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의 교육을 통해 자신이 유대인이고 자신의 종족이 섬기는 신이 있고 그가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 알 수 있습니다.
그는 80세가 되어서야 신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을 출애굽 합니다. (출애굽 자체도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80세 때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합니다.
신이 이름이 있다는 것은 모순이겠죠. 그렇다면 다른 신이 존재하여 다른 신의 이름을 불러야 하니 말입니다.
이 이름이란 인간이 신을 찾기 쉽도록 하기위해 인간에게 신이 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입니다.
이미 다른 분들이 신의 이름에 대해 글을 올려 두어서 쓸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신이 이름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이 이름입니다.
신의 이름이지만 신의 속성에 대한 한마디의 명제로 정의를 내린 것이며 이 정의로 우리는 신을 생각할 수 있고 신의 특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신은 이름을 부름 받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닌 신을 인간에게 알도로 하기 위해 인간에게 말해 주었다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성경이 나오기까지 23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신의 이름을 알거나 책을 보고 믿은 이들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즉 전능의 신을 인간은 찾았고 그 전능의 신을 구전을 통해 들으며 믿은 것입니다.
이야기를 통해 또는 전능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리고 전능의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신에 대한 인식을 듣고 믿음으로 신앙과 구원이 주워진다고 보는 것이 정확 할 것 입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
마르크스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고 성경책이 없다면 인간이 신앙을 찾지 않는 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산 국가에서는 교호와 성경책을 버렸 습니다. 다만 광고용 교회가 있을 뿐이죠.
그러나 역사는 그렇다고 인간안에 있는 신에 대한 갈망을 없이 하지 못했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은 교회에 성경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그리고 온 만물위에 존재 합니다.
교독기님께서 성경을 싫어하고 교회를 싫어 하지만 아마 교독님안에는 신에 대한 존재의 갈망이 매우 클 것 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신에 대한 갈망과 신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태어 났기 때문입니다.
동물들과 식물은 신앙이나 종교가 없습니다. 그
러나 인간에게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신을 찾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여러 종교가 나오고 자연을 섬기려고 하며 그 속에서 마음에 평정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은 어떤 형상에 존재 할 수 없기에 그것을 거짓된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구원 할 수 없는 신을 왜 믿으며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신을 시간을 들여 왜 섬기겠습니까? 교독기님께서도 교독기님이 되기 전에 기독교였듯 우리의 성품에는 아직도 하나님의 손길이 존재합니다.
성경은 모세 때부터 주어졌지만 이유는 전능의 하나님을 더 구체적으로 알리고 전파하기 위함이며 오실 메시야를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이 쓰이기 전에 전능이 신을 믿은 이들은 신의 아들인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왜냐 하면 신과 신의 아들은 같은 이이기에 신을 믿지 않은 이는 아들을 믿을수 없고 아들을 믿지 않은 이는 신을 믿을수 없기 때문 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 아브라함은 보았지만 예수 옆에 있던 바리세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다고 했지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구원을 못 받은 이유이지요.
이글을 쓰는 이유는 교독기님이 성경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다고 하셔서 써보았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있고 신의 보내신 아들이 존재하기에 그것을 믿고 생긴 것 입니다.
성경은 단지 그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지요.
만약 성경이 존재 하지 않았다고 해도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것입니다.
교독기님께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체험하셨고 그것을 부인 하지 못한다면 성경이 있고 없고 떠나서 교독기님은 이미 기독교인인 것입니다.
신의 성품을 체험한자는 신이 존재한 것을 믿을 수밖에 없고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러기에 교독기님은 하나님의 성품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믿는 자이겠지요.
만약 신의 존재를 알고도 계속 부인한다면 그것에 대한 신의 처벌이 있겠죠.
그러나 처음부터 그분의 성품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교독기님은 처음부터 기독교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학을 마음먹었던 그 순간도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아닌 개인적인 생각과 동기로 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것이 아니라며 교독기님은 처음에 기독교 인이셨고 그리고 신학을 하기까지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보아서는 전자겠지요.
신의 성품을 체험했고 그리고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겠죠.
그러나 단지 기독교를 이루는 세상의 종교인들과 종교 행위를 하는 교회의 모임이 교독기님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고 그로 인하여 기독교인과 교회를 거부하는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즉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교회와 교인의 삶은 부정하는 그러나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신을 섬기고 신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교회와 교인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같은 신을 믿는 자와 있는 것과 다른 신을 믿는 자와 있는 것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그 신념을 붙들고 신이 없다고 말하는 이 세상에서 독불장군으로 있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 사실이 아니고 경험도 없고 신이 없다고 그냥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 믿음대로 살 것이고, 신이 있음에도 거짓으로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 거짓 말에 대한 신의 책망과 징계가 있겠죠.
저는 교독기님이 전자로 믿는 사람으로 회복되어 다시금 신앙을 회복하는 마음에서 글을 쓰고 또한 교독기님을 위해 오늘도 기도했고 어제도 기도했고 내일도 기도할 것 같습니다.
교독기님께서도 아시듯 완전한 교회, 완전한 신앙인이 이 땅에는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존재는 오직 유일한 전능자만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교독기님이 보시고 분노하신 그 모든 이들은 그들의 불완전함에서 나온 행동들이었습니다.
그 불완전함의 행동으로 보여 지는 불신앙과 불건전한 태도들이 신의 존재를 없이 하진 못합니다.
다만 인간들이 신을 삐뚤어 보게 하는 안 좋은 시각을 형성합니다. 이런 행동을 발산하는 것과 인식을 형성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것이지 신의 영향에 미칠 수 있는 요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교독기님이 보았던 불이한자는 심판 날에 신이 판단하고 심판할 것이며 우리 인간은 단지 신을 존경하고 섬기며 그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이 존재하고 신이 교독기님을 선택했다면 교독기님은 다시 신에게 돌아갈 것 입니다.
바울도 처음에 신을 믿는 자들에게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을 체험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신으로 인정한 다음부터 신을 믿는 이들에게와 믿지 않는 이들에게 “딤후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라고 했습니다.
교독기님에게 이런 일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승리하세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을 축복합니다.
성경이 없다면? 교독기님의 글에대해..
교독기님의 글을 잘 보았습니다.
저는 헬라어나 어원은 배운적이 없기에..
그런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생략하고
교독기님의 글에 답변하고자 합니다.
성경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존재 하겠냐고 하시기에...글을 써봅니다.
역사적인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겠습니다.
우선 모세, 다윗, 솔로몬, 예수, 바울 모두 대다수의 성경 인물은 역사적 인물로 검증된 것이 많습니다. 역사책에 기록된 것을 분명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신이 6일째 되던 날 인간을 창조 합니다.
6일이란 시간은 인간적 시간인지 신의 관점에서의 6일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단지 개념적으로 6일이라고 정의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고 그들은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들은 창조 후 하나님과 이야기 하는 존재였지만 범죄 후 자신이 하나님을 외면하는 존재로 바뀝니다.
아담의 자손은 이렇습니다. ( )<- 수명
아담(930)―셋(912)―에노스(905)-게난(910)-마할랄렐(895)-야렛(952)-에녹(365)-므두셀라(969)-라멕(777)-노아(950)-셈(600)-아르박삿(438)-셀라(433)-에벨(464)-벨렉(239)-르우(239)-스룩(230)-나훔(148)-데라(205)-아브라함(175)-이삭(180)-야곱(147)-유다-베레스-헤스론-람-아미나답-나손(모세)-살몬-보아스-오벳-이새-다윗-솔로몬
위의 수명이 요즘의 수학적 접근이지 고대 수학적 접근이지는 생략하겠습니다. 저도 모르기에...
위 족보를 언급한 것은 역사의 흐름을 보기 위해서 입니다.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는 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성경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것이죠.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성경이 없이 신에 대한 구전으로 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그렇다면 27대 정도는 모세가 성경을 쓰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알게 되거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하나님을 믿은 것이냐 모세가 말하길 “출 6: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라고 말합니다.
즉 모세 이전 사람들은 전능의 하나님을 믿은 것이죠. 중요한 것은 모세는 하나님을 산에서 만나지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산에서 만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때 하란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분명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산의 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죠. 성경에서는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을 말합니다.
아람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아람사람들은 모세가 하나님을 산에서 만나것을 알고 산의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신이라는 것은 그 지역을 대표했기 때문에 전능의 신이라고 생각을 그들은 못한것입니다.
“왕상 20:28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 일로 아람은 산에서도 패하고 골짜기에서도 패합니다.
계속 지고 또 지지요.
즉 하나님은 자신이 산의 신이 아니라 어떤 특정 지역의 신이 아닌 전능의 신임을 성경에서는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성경을 쓰기 전 성경은 이 세상에 존재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신이 존재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에게 전해지며 신앙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성경이 없었던 당시 그들의 신앙과 믿음은 전능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신앙의 고백 이였습니다.
그 당시 주변국에서는 우상들을 많이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전능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성경에서는 보여줍니다.
우선 멜기세덱 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사람인지 천사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모세의 장인 이드로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정착하지 않고 생활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대표 인물이 요나답 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섬겨서 “렘 35:19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이런 말을 받습니다.
그리고 모압 사람은 그모스라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중 발람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깁니다.
“민 22:7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로 그에게 고하
민 22:10 발람이 하나님께 고하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라 이르기” 이렇게 말씀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공통적인 것은 유대인만 유일신을 섬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도 없었고 성경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존재 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부르고 찾았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셨던 것을 보여 줍니다.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는 욥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일명 사탄의 유혹을 이겨서 의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의 시험에 대해서는 성겨에 욥기라는 곳이 있으니 읽어 보면 될 것 같고요.
우스 땅은 이스라엘 지역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살던 시대는 족장 시대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욥 42:16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오래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마 아브라함 이상의 시대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 성경이 나오기 전 시대 사람이죠. 그리고 이방인 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하나님이 축복했다고 분명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성경이 있기 전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고 이스라엘과 상관없이 유일하고 전능한 신을 믿는 이들은 유일한 신을 믿음으로 축복 받고 구원 받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성경 자신에게 성경이 없어도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앎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성경은 모세가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왕자로 자랐기에 무술과 학문에 능통했습니다.
모세는 유대인지만 그가 교육 받은 학문은 애굽의 언어와 학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히브리어로 성경을 썼다는 것은 그의 부모에게 어려서 영향을 받았고 글을 쓰는 것을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의 교육을 통해 자신이 유대인이고 자신의 종족이 섬기는 신이 있고 그가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 알 수 있습니다.
그는 80세가 되어서야 신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을 출애굽 합니다. (출애굽 자체도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80세 때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합니다.
신이 이름이 있다는 것은 모순이겠죠. 그렇다면 다른 신이 존재하여 다른 신의 이름을 불러야 하니 말입니다.
이 이름이란 인간이 신을 찾기 쉽도록 하기위해 인간에게 신이 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입니다.
이미 다른 분들이 신의 이름에 대해 글을 올려 두어서 쓸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신이 이름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이 이름입니다.
신의 이름이지만 신의 속성에 대한 한마디의 명제로 정의를 내린 것이며 이 정의로 우리는 신을 생각할 수 있고 신의 특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신은 이름을 부름 받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닌 신을 인간에게 알도로 하기 위해 인간에게 말해 주었다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성경이 나오기까지 23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신의 이름을 알거나 책을 보고 믿은 이들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즉 전능의 신을 인간은 찾았고 그 전능의 신을 구전을 통해 들으며 믿은 것입니다.
이야기를 통해 또는 전능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리고 전능의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신에 대한 인식을 듣고 믿음으로 신앙과 구원이 주워진다고 보는 것이 정확 할 것 입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
마르크스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고 성경책이 없다면 인간이 신앙을 찾지 않는 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산 국가에서는 교호와 성경책을 버렸 습니다. 다만 광고용 교회가 있을 뿐이죠.
그러나 역사는 그렇다고 인간안에 있는 신에 대한 갈망을 없이 하지 못했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은 교회에 성경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그리고 온 만물위에 존재 합니다.
교독기님께서 성경을 싫어하고 교회를 싫어 하지만 아마 교독님안에는 신에 대한 존재의 갈망이 매우 클 것 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신에 대한 갈망과 신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태어 났기 때문입니다.
동물들과 식물은 신앙이나 종교가 없습니다. 그
러나 인간에게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신을 찾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여러 종교가 나오고 자연을 섬기려고 하며 그 속에서 마음에 평정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은 어떤 형상에 존재 할 수 없기에 그것을 거짓된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구원 할 수 없는 신을 왜 믿으며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신을 시간을 들여 왜 섬기겠습니까? 교독기님께서도 교독기님이 되기 전에 기독교였듯 우리의 성품에는 아직도 하나님의 손길이 존재합니다.
성경은 모세 때부터 주어졌지만 이유는 전능의 하나님을 더 구체적으로 알리고 전파하기 위함이며 오실 메시야를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이 쓰이기 전에 전능이 신을 믿은 이들은 신의 아들인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왜냐 하면 신과 신의 아들은 같은 이이기에 신을 믿지 않은 이는 아들을 믿을수 없고 아들을 믿지 않은 이는 신을 믿을수 없기 때문 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 아브라함은 보았지만 예수 옆에 있던 바리세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다고 했지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구원을 못 받은 이유이지요.
이글을 쓰는 이유는 교독기님이 성경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다고 하셔서 써보았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있고 신의 보내신 아들이 존재하기에 그것을 믿고 생긴 것 입니다.
성경은 단지 그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지요.
만약 성경이 존재 하지 않았다고 해도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것입니다.
교독기님께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체험하셨고 그것을 부인 하지 못한다면 성경이 있고 없고 떠나서 교독기님은 이미 기독교인인 것입니다.
신의 성품을 체험한자는 신이 존재한 것을 믿을 수밖에 없고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러기에 교독기님은 하나님의 성품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믿는 자이겠지요.
만약 신의 존재를 알고도 계속 부인한다면 그것에 대한 신의 처벌이 있겠죠.
그러나 처음부터 그분의 성품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교독기님은 처음부터 기독교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학을 마음먹었던 그 순간도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아닌 개인적인 생각과 동기로 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것이 아니라며 교독기님은 처음에 기독교 인이셨고 그리고 신학을 하기까지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보아서는 전자겠지요.
신의 성품을 체험했고 그리고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겠죠.
그러나 단지 기독교를 이루는 세상의 종교인들과 종교 행위를 하는 교회의 모임이 교독기님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고 그로 인하여 기독교인과 교회를 거부하는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즉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교회와 교인의 삶은 부정하는 그러나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신을 섬기고 신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교회와 교인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같은 신을 믿는 자와 있는 것과 다른 신을 믿는 자와 있는 것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그 신념을 붙들고 신이 없다고 말하는 이 세상에서 독불장군으로 있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 사실이 아니고 경험도 없고 신이 없다고 그냥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 믿음대로 살 것이고, 신이 있음에도 거짓으로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 거짓 말에 대한 신의 책망과 징계가 있겠죠.
저는 교독기님이 전자로 믿는 사람으로 회복되어 다시금 신앙을 회복하는 마음에서 글을 쓰고 또한 교독기님을 위해 오늘도 기도했고 어제도 기도했고 내일도 기도할 것 같습니다.
교독기님께서도 아시듯 완전한 교회, 완전한 신앙인이 이 땅에는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존재는 오직 유일한 전능자만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교독기님이 보시고 분노하신 그 모든 이들은 그들의 불완전함에서 나온 행동들이었습니다.
그 불완전함의 행동으로 보여 지는 불신앙과 불건전한 태도들이 신의 존재를 없이 하진 못합니다.
다만 인간들이 신을 삐뚤어 보게 하는 안 좋은 시각을 형성합니다. 이런 행동을 발산하는 것과 인식을 형성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것이지 신의 영향에 미칠 수 있는 요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교독기님이 보았던 불이한자는 심판 날에 신이 판단하고 심판할 것이며 우리 인간은 단지 신을 존경하고 섬기며 그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이 존재하고 신이 교독기님을 선택했다면 교독기님은 다시 신에게 돌아갈 것 입니다.
바울도 처음에 신을 믿는 자들에게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을 체험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신으로 인정한 다음부터 신을 믿는 이들에게와 믿지 않는 이들에게 “딤후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라고 했습니다.
교독기님에게 이런 일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승리하세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