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사랑 (54장/ 또다른 비극!) <실극화>

추림의 풍200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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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아버지몸이 안좋으시다. 왠만하면 엄마 말대로 시골에 내려와서 좀 쉬다갔으면

좋은데, 이놈아 제발 이 엄마 말대로 해주면 안되겠냐. 그리고 성규엄마가 너 소식 묻더라,

성규놈안테 뭔일이 있는지... 아무튼 엄마가 올라갈지 모르니까 그게 싫으면 한번 다녀가

어떻게 된놈이 그지경까지 일을 당했으면 부모 얼굴부터 봐야하는거 아니야. 속타 죽겠다.'

 

어머니와 전화통화하고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뚜렷한 목표가 있는것도 아니고 해서 마음은 온통 심란했다.

죄스런 마음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자식된 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것도 아니면서 결코

작지 않은 일을 치른 지금 부모 형제를 외면하는 자신이 더없이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지난번 친구들과 만난 후 운둔자처럼 고척동 빌라에 몸을 감추다시피 한채로 지내길 한동

안 수없이 전화벨이 울렸지만 추림은 단 한번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간이 물처럼 흘러간 어느날, 시월의 중순이 느리고 힘겹게 넘어가고 있던 날이었다.

도대체 몇번이나 화곡동 근방을 베회했는지 모를 날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어둡게 변해가

고 있었다.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의 연속이었다.

술에 취해 정신없이 잠든 늦은 새벽, 잠결에 아련히 들리는 소리가 마치 어떤 외침처럼 들

려와 그것이 현실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꿈에서 비롯된 소리인지 모호한 느낌이었다.

 

어지러이 집기등이 널린 방 한켠에서 전하벨이 요란하게 새벽을 흔들고 있었다.

한두번이 아니었다. 몽롱한 정신이 전화벨 소리를 모호하게 구분해가면서도 그것이 현실

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 단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잠든 탓에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희미한 불빛에 보이는 벽시계의 초침은 새벽 두시를 넘고 있다.

 

목이 따끔거리고 머리가 띵하게 아파왔다.

수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은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걸려온 전화는 여태

껏 단 한번도 없었기에 특별히 받아들이기보다는 울컥 짜증이 앞섰다.

 

나른하고 무기력한 몸을 움직여 전화를 받을까하다가 기운이 없어 도로 눈을 감았다.

당연히 잠시후 전화는 얌전해져야 했지만 끝도 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끄응."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다리가 부들거리며 떨리고 정신이 핑그르하고 돌았다. 죽자고 퍼마신 술이 가져오는 후유

증이 만만치 않았다.

 

겨우 일어나 냉장고로 다가갔다.

휑하니 텅빈 냉장고 안에 마시다만 음료하며 술병만 서너개가 있었다.

 

벌컥거리며 맛이 다한 음료수를 마시고 아직도 울려대고 있는 전화를 바라보았다.

묘한 느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결코 오지 말았으면 하는 어떤 불길한 예감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하는 이가 누구이던간에 좋은 일을 가지고 연락해 오지 않는다.

좋은 일은 늦어지고 좋지 않은 일은 서둘러지는 법이었다.

 

"여보세요."

 

감각이 서먹한 입을 움직여 말하는것조차도 힘들었다.

상대가 누군지...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그저 동전 떨어지는 찰칵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짜증이 나는 와중에도 이상한 느낌에 애써 마음을 억누르며 상대방을 불러 보았다.

 

-여보...세요. 추림씨?-

 

여자의 목소리다. 하지만 기다리던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음성이지만

낮설게만 들려온터라 추림은 다시한번 상대방을 불러 보았다.

 

"여보세요? 누구신지?"

 

-추림씨, 저 명화예요.-

 

낮선 목소리가 아니다. 너무 잘알고 있지만 잊고 있던 사람의 목소리였다.

 

"명화씨? 이런... 잘 지내셨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아니... 이것참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제가 한번 찾아뵜어야 하는데, 성규하고 잘 지내시죠?"

 

머리가 지끈거려와 인상을 쓰며 추림은 반가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늦은 시간에 전화

통화를 마음대로 할 상대도 아니고 자신의 입장이 편한것이 아닌거라 말투가 베베 꼬여 나

왔다.

 

성규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런데 왜 이리 마음이 불안해 오는지 추림은 이상한 생각이 들

었다.

 

"명화씨, 이 늦은 시간에......"

 

도중에 말을 멈추었다. 명화가 저쪽에서 말을 자르고 말하고 있었다.

 

-추림씨.-

 

흐느끼는 말투여서 추림은 덜컥 가슴이 내려 앉았다.

 

"......?"

 

-추림씨. 미안해요. 지금 좀 와주시면 안되나요? 도저히 혼자 감당하지 못하겠어요.-

 

오랜만에 전하한 사람의 말투가 아니었다.

술 때문인지 어떤 예감 때문인지 입아닝 바싹 말라왔다.

 

"명화씨 진정하시고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입니까? 성규안테 문제가 있습니까?"

 

-흑흑, 추림씨 있잖아요... 있잖아요. 성규...씨가 성규가......!-

 

방 천장이 마구 돌았다. 순간 괴리에 사로잡힌 추림은 전하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방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홀린듯 잠시 멍하게 앉아있던 추림의 입에서 갈라지는 음성이 새어나왔다.

 

"성규야... 성규야!"

 

*******************************

 

구로 성모병원.

성규의 빈소는 쓸쓸한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상객이라고는 아는 몇몇만 다녀간 후 상주가 된 명하씨만 넋이 나간 얼굴로 성규의 텅빈

빈소앞을 지키고 있었다.

 

무엇에 홀린 얼굴로 성규의 빈소앞에 당도한 추림은 환한 얼굴로 웃음짓고 있는 영혼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도저히 믿을수 없는 현실이었다.

뒤에서 명화씨의 흐느낌이 들려왔는데 무척이나 느리고 무거운 소리로 가슴속을 헤집었

다.

 

'크흑! 훕!'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겨우 견뎌내며 성규와 명화씨앞에 차례로 절을 올렸다.

아직 믿을수가 없었다. 성규가 죽었다는 현실이 꿈이라 여겨지고 있었다.

 

"성규야... 성규... 이새...끼! 너 도대체 어떻게?"

 

두서없는 중얼거림이 추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흑흑흑."

 

명하의 흐느끼는 모습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며 눈에 비춰 들었다. 그리고 하나로 합쳐졌

다.

 

왜?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머리속에 끝없이 떠올려지고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떼어놓을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어떤 관계이던지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주는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입장에서 추림에게 성규는 그렇고 그런 인연

이 아니었다.

 

가정사에서 미운 오리새끼마냥 외면당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존재하듯 아닌듯 그런 미비한

친구로 업신여겨왔던 친구였다.

오로지 자신만이 성규에게 희망이었을만큼 지독하게 불운하고 외로웠던 친구였다.

 

불과 이십이세의 나이, 한참 꽃피워져야 할 나이이다.

불공평하다. 아니 이대로 죽으면 안되는 친구였다. 살면서 단 한번도 진정한 웃음을 모르

던 놈이었다. 행복과는 절대로 먼 인생을 살았던 친구였다.

 

"우욱!"

 

도저히 참을수 없는 슬픔이 가슴의 벽을 뚫고 맹렬히 치밀어 올랐다.

 

"욱! 크흑... 성...규야!"

 

다 보내도 성규만은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보낼수 없는 놈이었다.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할 놈이었다.

 

가슴이 터져나가고 참지 못할 고통이 들어찼다.

입술이 찢겨져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도록 입술을 강하게 깨물어 겨우 정신을 수습했다.

 

아직 성규가 왜 죽어야 했는지 이유도 모르고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겨우 명화를 바라보았다.

 

수척해진 명화의 얼굴위로 그녀가 겪었을 고통과 슬픔이 덧 씌어진 채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미안했다. 명화씨에게 진정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무릎꿇고 빌고싶을만큼 미안해서 제대

로 쳐다볼수도 없었다.

 

"추림씨.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자신에게 미안하단다. 다른 여자였으면 성규를 수백번도 더 외면했을 터인데 명화는 그러

지 않았다. 성결하다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여자였다.

 

성규가 소유한 가장 커다란 행복이 명화였음을 사람들은 알까?

그런 명화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죽은 성규, 불가에서 말하는 지옥이 있다면 아마도

성규놈은 팔열지옥에 떨어질 죄를 지었음이다.

 

"왜?"

 

추림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많은것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이 이리도 아프고 뼈저린데 그녀의 마

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물을수가 없었다. 

 

새하얀 상복을 입은 가녀린 명화가 휘청거렸다.

추림이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 자리에 앉혔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두덩이가 퉁퉁부은 모습을 쳐다볼수가 없었다. 안쓰러운 마음조차 그

녀에게 죄스런 마음으로 변해있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명화의 입이 열린것은 추림이 병원에 도착한지 한시간도 더 지난후

였다.

 

지난 봄 이후 한번도 성규와 명화를 만나지 못했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추림과 그들이고보면 그것은 참으로 무심한 일이었지만 당시 추림

은 너무도 힘든 상황이었다.

 

성규가 성정이 나약하고 의지가 굳건하지 못해도 명화를 진정으로 사랑한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성규가 지닌것은 그야말로 그다지 튼튼하지도 않은 육체뿐이었다.

 

사고무친은 아니어도 그것과 별다르지 않을 혈혈단신이란 말이었다.

가족과 친구가 있어도 여느 이들처럼 가깝지도 행복하지도 끈끈하지도 않은 현실을 살아

가는 성규에겐 하루가 마치 마지막 삶처럼 여겨졌다.

 

만약 그런 성규에게 명화마저 없었다면 그의 현실은 그야말로 너무 명약관화한 일이리라.

쓰러지고 넘어질때마다 그를 일으켜주고 응원해준 명화.

 

그녀만이 오로지 성규의 진실이고 삶의 모든것이었다.

결코 못하지 않은 삶을 살고싶은 욕망은 온통 명화에게서 비롯된 일이었음이었다.

 

성규가 지닌 재주는 예인(藝人)의 그것이었다. 그 특별한 재주는 곧바로 그에게 살아갈 방

식이 되곤했다.

제대로 배운것없이 스스로 익힌 재주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낼 지경에까지 이르렀

었다.

 

성규가 지닌 재주는 다름아닌 악기를 다루는 재주였다.

악기의 기본이라 생각되는 기타는 물론 하모니카 드럼, 색스폰과 피아노까지 성규의 재능

은 그저 그런식으로 치부되기엔 놀라운바가 있었다.

 

만약 성규가 제대로 된 명사의 가르침 아래 공부를 했다면 타고난 재능과 열정이 더해져

일가를 이루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그런 능력을 단지 재주꾼의 낱품으로밖에 쓰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성규가 이른바, 밤무대에서 삼류연주가로 활동한 시기는 고작 이, 삼년정도였다.

그 기간동안 성규의 지독한 병폐는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물들었다.

 

근묵자흑이란 말이있다.

검은색곁에 있으면 검게 변한다는 말이다.

 

그 말처럼 성규가 그랬다. 밤은 온갖 부조리가 기승을 부리는 또다른 시간이다.

그곳에서 성규가 물든것 중 하나가 환락이었다. 각종 환락제와 마약류에 물들고 탐닉하며

자신이 썩어가는줄 자각하지 못했다.

 

추림은 누구보다 그런 성규를 잘 알고 있었다.

성규를 다그치고 무너져가는 그를 일으켜 세웠던 장본인이 그였으니까.

 

지난 겨울 추림이 고쳤다 여긴 성규의 타락을 징지하고 나서 성규의 생활에 변화가 왔다.

다시는 그런 환락지대에 발을 들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거 생활이 힘들었지만 성규의 변화에 기운을 얻은 명화는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웠

다고 했다.

 

성규가 택한 일은 단순한 일이었지만 위험한 일이기도했다.

LPG프로판 가스를 배달하는 사원일은 힘들고 위험했지만 몸으로 움지이며 땀으로 하루

를 살아가는 일에 점차 적응해 나갔다.

 

수개월동안 착실히 일하며 생활도 어느정도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유월쯔음 꾸준히 나오던 봉급이 들쭉날쭉하기 시작했다고한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다음달에도 그렇고 팔월에도 다르지 않아 성규가 화를 내기 시작

했다.

 

배달을 하며 즉석에서 가스비를 받지만 큰 식당이나 단골가정 같은경우 적당한 외상도 있

었기에 수금을 따로 다녔었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성규에게 그런 수금일을 제외시키기 시

작했다.

 

배달 사원만 열네명을 둘 정도로 꽤 커다란 회사였고 벌어들이는 수입도 만만치 않았다는

그 회사의 사장이 어느날 부터인가 새어나가기 시작한 돈의 출처를 의심했는데 자신의 과

거를 어느정도 들어서인지 그 대상이 자신이 되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힘들게 얻은 직장이고 조금씩 안정된 생할을 감사하게 생각해서 참고 지

냈다 했다.

 

그러다가 지난주, 정확히 사일 전, 금요일 날 가스회사 사장이 성규를 불러놓고 대놓고 의

심하며 막말을 했다고 했다.

 

전혀 입에대지도 않던 술에 취해 들어온 성규가 잊고 지내던 눈물을 흘리며 서러워했다.

다음날에도 어쩔수없이 출근하면서도 어두운 얼굴이었던 성규가 일하던 도중에 귀가한

일이 있었는데 일이 터진건 그 다음날이었다.

 

회사의 고참 사원중 한명이 수백만원에 이르는 수금한 돈을 가지고 사라진 일이 발생했다.

성규를 의심했던 사장은 경찰에 성규를 신고했고 곧바로 성규는 경찰에서 심문을 받았다.

 

결국 별 혐의 없음이 밝혀진 성규는 경찰에서 나온것이 이틀전의 일이었다.

정작 사건의 종말은 그 직후에 터졌다.

 

어두운 얼굴로 집으로 돌아온 성규는 걱정하지 말자는 명화에게 웃어보인 후 배달용으로

구입한 오토바이를 타고 외출했다고했다.

 

성규가 외출한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외출 후 성규는 다섯시간만인 오후 아홉시경 물레동 고가에서 시체로 발견되기까지 그가

도대체 어디를 다녀오고 어떤 일을 벌였는지 밝혀진건 아무것도 없었다고했다.

 

사건을 접한 경찰은 수사 후 정황으로보아 술에취한 성규가 질주하던 와중에 추돌 사고를

냈는데 추돌 차량은 뺑소니로 도주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성규가 타고있던 오토바이는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울만큼 조각으로 부서

졌고 그 당사자인 성규마저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한다.

 

두개골 파열에 척추가 모조리 분리되었고 팔과 다리의 뼈 할것없이 모조리 부러져 나갔다.

아마도 육중한 트럭과 부딪히고 트럭이 그대로 오토바이와 성규를 깔고 지나갔을 것이다.

 

너무도 잔인한 죽음이었다.

 

명화의 설명을 들은 내내 추림은 이를 악물어야했다.

죽음이 잔인해서도 그의 작음이 슬퍼서도 아니었다. 물론 성규의 죽음이 잔인함과 동시에

비통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추림은 전혀 다른것을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성규가 취했을 행동이 저절로 떠올려지고 보이는듯 했기 때문이었다.

 

성규의 빈소가 차려진 후, 회사의 동료들 몇몇만이 다녀가고 사장은 커녕 요직에 있는 사

람들은 흔적도 없었다고했다.

 

가슴이 아려왔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성규의 죽음을 어찌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고 그들의 동정을 구할것이며 남겨진 명화는 어

찌해야할지 막막하기만했다.

 

성규나 명화, 모두 가엽고 불쌍한 영혼이었다.

단 한번이라도 진정 행복이라는것을 느끼기나 했을지 의문이 들만큼 이둘은 서럽고 가난

한 한쌍이었다.

 

성규가 이대로 가기엔 너무도 아까운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돌이킬수 없었다. 세상엔 이해못할 일이 다반사지만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이상한 현상 따위는 없는 것이다.

 

명화의 슬픈 이야기를 들은 추림은 좀더 차분한 상황으로 현실을 직시했다.

성규의 죽음은 말못할 슬픔이고 애석한 일이지만 마냥 슬퍼할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사자를 보내야 할 의무는 산자들의 몫이었다.

성규에겐 친구도 있고 부모 형제도 있다. 마지막 가는 길마저 놈을 외롭게 보낼수는 없었

다.

 

성규 어머니에게 어찌 연락을 해야할지 벌써부터 막막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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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이별은 미련을 많이 남기는 법이다.

급하게 헤어짐은 기약없는 만남을 예고한다했다. 하지만 그 모든것 조차 약속할 수 없는

이별을 어찌 말로 표현할까.

 

성규의 장례는 삼일장, 화장장으로 치뤄졌다.

이미 성규의 죽음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였기에 성규의 가족 몇몇과 친구들이 몰려듬과

동시에 충격에 휩싸인 장례절차가 진행되었다.

 

성규의 영혼을 실은 장례 버스가 경기도 벽제로 향하는 내내 비통함이 서럽게 통곡으로 울

려 퍼졌다.

 

성규 어머니의 한이 피를 토하는 애절함으로 승화되었고 친구들의 슬픔또한 다르지 않았

다.

 

이십여년을 고단하게 산자의 마지막은 쓸쓸하고 덧없는 허망함으로 귀결되었다.

울수있는 자는 차라리 자유로울수 있을 것이고 통곡할수 있는 자는 기꺼울수 있으리라.

 

하지만 추림은 울수도 자유로이 숨쉴수도 없었다.

자신을 닮으려 애쓴 녀석의 죽음은 아직 추림에게 죽은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보낼수도 끝이라고 말할수도 없었다.

죽기직전에 행복했다고 했다. 그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지 못한것이 못내 가슴에 지울수 없

는 한으로 새겨질것 같았다.

 

놈은 이대로 가서도 편하지 못할것이다. 그래서 추림은 아직 성규를 보낼수가 없었다.

놈이 죽기 직전에 있었던 그것을 알아야 놈을 보낼수 있을것 같았다.

아니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놈은 불행했으며 억울했다. 놈을 편하게 보내고 싶었

다.

 

녀석이 말하는것 같았다. 속삭이는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견딜수 없다고, 너무 슬퍼서 참을수가 없다고, 너무 억울해서 미칠것 같다고.

 

살아가려 한 가난한 자의 죄인가!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무지렁이의 나약함인가! 죽음마저도 이렇게 허무해야 하는가!

하지만 성규는 죽기전 진실로 살고자했다. 그 이유 때문에 추림은 성규를 이대로 보낼수

가 없었다.

 

추림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강한 떨림을 보이던 그날 하나의 영혼이 삭막한 대지위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에 휩싸여 한줌의 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55장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