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투데이.... 4

송수민200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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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좀 거만한 것 같지 않니? O.T 때도 좀 봐봐. 지가 콩쿨 대상입상자로 입학했으면, 한 거지. 저 이외에 아무도 없어? 사람들이랑 어울리지도 않고, 따로 놀던 것 좀 봐. 잘난 체 하는 거야 뭐야?"
"뭐... 잘난 체 하는 거 같지는 않았지."
"아니긴, 그럼 왜 장기자랑 준비하자고 다 모였을 때, 쏙 빠지고 그래? 그게 다 튀는 행동이지, 뭐니?"
"걔, 이가 많이 아팠다 잖아."
"이 아프면 다리도 못 움직인데니? 선배들도 은근히 걔가 독무했줬으면 했었잖아, 왜... 무지랭이들 앞에서는 춤 못 추겠다, 아니겠어? ...그런데 너 왜 김현주 편 드는 거야?"
"이편, 저편이 어딨어. 그렇다는 얘기지."
"몰라, 난 암튼 그 계집애 맘에 안 들어."
레슨실 문 밖의 옆벽으로 기대선 현주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김현주...? 여기서 뭐해, 안 들어가구?"
"선배님..."
현주는 가까이 선 주민을 보자, 몹시 당황스러웠다. 
"두고봐. 김현주, 꼭 쓰러트리고 말거니깐. 지가 언제까지나 튈 줄 알고? 우리도 엄연히 실력으로 당당하게 입학했다구. 김현주 들놀이나 하면서 4년을 무용할 수는 없단 말야. 안 그래?"
레슨실 안에서의 이어지는 현주에 관한 이야기가 여전히 밖으로 들려왔다.
"신경 쓰이니?"
현주의 얼굴을 보며 조교인 주민이 말했다.
"해 마다.. 꼭 있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널 질투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거.. 잊지 말고 넌, 열심히 남들보다 더 노력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지금의 그 차이가 바로 실력이었다는 걸 보여주면 되는거구. 내말.. 알아듣지?"
현주는 주민의 손이 어깨에 놓이자 창피했다. 왠지 지금 주민의 손길이 마치 따돌림받고 있는 아이를 다듬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버리면서 자신이 그 안타까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순간 되어버려진 기분에 몹시도 창피했다.
"들어가자. 교수님이 오늘 좀 늦으실 것 같거든?"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하고 표정을 바꾼 주민은 현주에게 눈을 찡긋 감았다가 레슨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주는 물끄러미 그런 주민의 모습을 뒤에서 보다가 다시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지금까지 주위 친구들에게 단 한번도 싫은 소리 들어보지 않았던 현주로써는 이렇게 들어내놓고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속상했다. 그리고 그 속상함이 현주의 마음을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너,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채현은 바로 앞 책상에 앉아 말없이 앞만을 응시하고 앉은 현주의 등을 치며 앞으로 당겨 앉았다.
"그러고 보니깐, 레슨 실에서부터 쭉 너 이런 상태인 거 같네?"
"기운 없긴, 아니야. 그냥...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는데 마지막 강의 들으려니깐, 힘이 빠져서 그런가봐."
"그래?"
"응"
현주는 오늘의 일. 그래서 생긴 속상한 마음을 채현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동기들에게 미움 받고 있다는 그 사실을 채현이가 알게 된다는 게 창피했다.
"괜히 내가 기운 빠지니깐, 너까지 그렇게 보였나보다."
채현이 기지개를 크게 켜며 뒤로 몸을 뉘었다가 책상으로 몸을 엎드렸다.
"너, 그러고 보니깐. 아까 갑자기 사라졌다가 수업도 늦게 들어오고 왜 그랬어? 물어본다는 게 잊었었네."
현주는 머리를 양팔 안에 묻은 채현의 귀로 가까이 얼굴을 대며 물었다.
"비밀!"
채현은 얼굴을 현주의 얼굴로 가까이 대며 웃었다. 그러나 그 표정이 몹시 어색했다.

 

- 엄마 무슨 일 인데.. 아빠가 오빠를 어떻게... 무슨 말이야? -
채현은 울며 전화한 엄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 진건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엄마가 오빠를 걱정한다는 건... 아빠의 오빠를 향한 화의 표현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고, 그랬다면 오빠 또한 아빠에게 반항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채현은 보지 않았어도 그 상황이 머리에서 그려지는 듯 했다. 수화기를 잡고 있던 채현은 손에 힘이 빠지면서 난감한 과정들이 막 지나갔다. 입학식 날 급하게 볼일이 생겼다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던 오빠, 무현. 도무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통 알 수 없던 오빠는 해외 출장에서 부모님이 돌아오신 어제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사실 가끔 그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 없이 나갔다가 뜬금 없이 돌아 올 때가 많았던 지라, 채현은 이번에도 그렇게 나갔다가 부모님이 돌아오시는 날에는 맞춰서 들어오겠지 하며 걱정이 드는 한편으론 마음을 놓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틈틈이 걸려오는 전화로 아빠가 오빠를 물으면 순간의 둘러댐으로 위기를 넘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빠는 오빠가 집에 없다는 걸 알았던 거였다.  그리고 도착한 어제 부로

사람을 시켜 오빠를 찾게 했고, 드디어 오늘 아빠가 오빠를 찾은 모양이었다.

채현은 저절로 긴 한숨이 또 나왔다. 

"채현아!"
현주는 채현의 한 숨소리에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상하게 보지마. 그냥 나온 한숨이니깐."
채현이 머리를 비스듬히 들어 현주를 향해 보았다가 다시 엎드렸다.
현주는 입을 꼭 다물고 채현을 물끄러미 내려다 봤다.
"우리, 미팅이나 한번 할까... 정말루? " 갑자기 채현은 고개를 획 올리며 현주의 눈과 눈 높이를 맞췄다.
"어?" 갑작스러운 채현의 동작에 놀란 건 현주였다.
"아니다, 아니야. 그냥 한 소리!   뭐, 확 기분 전환 될 일이 좀 없을까, 해서.." 채현은 얼른 말을 바꾸었다.
"으 - 휴." 현주는 살짝 웃었다.
채현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책상으로 묻었다.
세상의 걱정거리는 모두 비켜 가는 것 같은 조금 전, 현주의 미소에 괜히 채현은 질투가 났다. 집에 들어가서 맞게 될 그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현주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싫어졌다.
현주는 엎드려 있는 채현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앞쪽으로 몸을 돌려 강의실 칠판을 의식 없는 시선으로 쳐다봤다.

 

"괜찮아. 병원은 엄마랑 가면 되니깐. 신경 쓰지마."
"미안해, 현주야. 집에 좀 빨리 들어가 봐야 해서."
"그래, 알았어."
"전화할게, 미안해." 채현이 부지런히 몸을 돌렸다.
"저 - 기, 채현아."
채현이 뛰어가다가 멈추어 돌아보았다.
"아니, 아니야.. 가." 현주가 망설이다가 손으로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채현은 불러 놓고는 암말도 않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다시 뛰었다.
현주는 혹여 무현오빠 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던 마음을 참아 내었다.
전화연락도 없이 오빠가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다며, 아빠 돌아오시기 전엦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와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하던 채현이... 무현이 돌아왔다면 벌써 말했을 터인데 아직 채현에게서 그런 말을 듣지 못했던 현주는 자연스레 그쪽으로 걱정이 되었던 거였다. 늘 아빠와 오빠사이의 불화를 가장 많이 걱정하던 채현이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들 때문에, 혹여 그때 문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현주에게도 한 층 더 깊게 느껴졌다.
현주는 한참 동안 한곳에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금씩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현주와는 반대로 분주한 신학기로 인해 학교의 양쪽으로 난 길엔 신입생들을 비롯한 학생들이 이리 저리로 이동들을 하며 바쁘게 걸음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기 만한 현주는 그 풍경에서 돌연 혼자가 되어버린 듯한 씁쓸함이 시선을 아래로 떨구게 했다.
"땅에 뭐 주울 거라도 있으면 함께 나눕시다."
현주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무슨 걱정거리 있어요? 그렇게 천천히 걸어 내려오니깐, 다른 사람들하고 차이가 나서 눈에 확 띄던

걸요."
어느새 현주의 앞에 민혁이 우뚝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