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가득했던 버그와의 첫 만남, 그 후

소심한B형200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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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를 즐겨 먹는다는 중국인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난 버그가 싫다. 정말 완전 싫다. 아니 두렵다.

 

나와 버그(벌레)의 악연은 지난 달 12일  이니셜로 'KCC' 빌딩 구내식당에서 시작됐다.

 

회사에 신규 입사한 나는 긴장반 설레임반으로 새로운 동료들과 

 

KCC 빌딩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여기 스타일은 국과 메인반찬을 퍼주고 나머지 밥과 기본 반찬은 자기가 푸는 스탈이었다.

 

그날 메뉴는 미역국 백반.

 

모 2,000원 치고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밥을 양껏 풀 수 있는 점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 런. 데.

 

숟가락에 한가득 미역국을 담아올리는 순간..

 

음.. 손톱만한 크기의 회색버그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입사 첫날 국에서 벌레나왔다고 소란떨기 싫어서 조용히 숟가락 다시 내려놓고 밥이랑 반찬만 먹었다.

 

밥 반 이상 남겼다.

 

그런데.. 다음 날 점심시간, 동료들.. 좋다고 웃으며 문제의 그 건물 구내식당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매일 같이 KCC빌딩 구내 식당에 갔었던 거 같다.

 

내심 "어제는 특별한 경우겠지.." 마음을 달래며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의 메뉴는 우거지국.

 

벌레의 피부칼라가 국색깔과 어우러져 도저히 분간해내기 어려운 고난이도 메뉴였다.

 

나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국을 먹어야 할 것인가? 남겨야 할 것인가?

 

다른 동료들 하나둘 국에 밥을 한아름씩 말아 한웅큼한웅큼씩 먹기 시작했다.

 

좋다고 밥을 먹고 있는 동료들에게.. 버그 발생 가능성을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

 

하는 수 없이 홀홀단신 밥과 반찬을 소극적으로 가끔 집어 먹으며, 버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우거지국 안을 천천히, 그렇지만 아주 정교하게 다른 동료들이 눈치 못채게 수저로 감아돌리고 있었다.

 

그때 어김없이 나타난 우리의 BABY BERG(애벌레)!!!

 

급기야는 그토록 발견하기 힘들다는 우거지국속 애벌레를 내가 발견해낸 것이다~

 

일종의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순간 나는 당당히 수저를 내려놓고, 동료들에게 모든 것을 실토하고 베이비 버그의 변사체를 공개했다.

 

대부분의 동료들.. 머쩍은 듯 수저를 내려놓았으나 L모군과 K씨 두명은 모 대수냐며 국물까지 쪽쪽 다 먹더라..

 

버그의 커밍아웃 후 동료들과 KCC 구내식당에 가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 후로 내겐 씁쓸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23년동안 시켜먹던 단골 짱개집 짜장면에서 벌레 두마리 병살되어 나오질 않나...

 

버그 떼에게 쫓기는 꿈을 꾸질 않나!

 

급기야는 입사 2주만에 회사에서 새로운 별명도 3개나 받았다.

 

소심한 B형, 버그제조기, 사오정...

 

내 인생에서 지금이야말로 버그와 가장 가깝고 우호적인 시기인 것 같다. ㅡ.,ㅡ

 

왜 나한테만 버그가 보이는거냐고라고라고라고라~

 

IT업종인 우리 회사. 아는 사람들 알겠지만, 하루에도 '버그'라는 단어 수십번 나온다.

 

그때마다 사람들 날 보며 키득키득 웃어댄다.

 

그럴 때면 난 줄곧 작년 여름 베이징 여행 중에 만난

 

애벌레를 튀겨먹으며 담소를 나누던 베이징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하곤 한다. 

 

설레임 가득했던 버그와의 첫 만남, 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