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한미교회 흥망사

교독기200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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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 펌..


흥하고 망하는 것까지 미국 교회 따라하는 한국교회


실천신학대학원 은준관 총장 개강 강연…30년 터울로 성장·침체 닮은꼴




입력 : 2006년 09월 22일 (금) 03:50:21 / 최종편집 : 2006년 09월 22일 (금) 03:50:21 [조회수 : 3483] 주재일 ( jeree )





"어쩜 그리 닮았을까. 한국교회는 30년을 터울로


미국 교회가 흥하고 쇠퇴하는 길을 따라가고 있다."


은준관 총장(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은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할 때마다


미국 교회의 최근 역사와 비교한다.


은 총장이 보기에 한국교회는 미국 교회와 비슷한 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 교회가 유럽 교회들처럼 국가가 개입하지 않은 점은 물론,

미국 교회가 부흥할 때와 쇠퇴할 때 처한 사회적 상황과


교회의 태도는 한국사회가 걸은 길과 한국교회의 반응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다.

은 총장은 최근 가을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대다수가 목사인


실천신학대학원 신입생들에게 미국 교회와 한국교회에 관한 강연을 했다.


은 총장에 따르면, 미국 개신교회는 1940~1960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 기간 미국인의 15%인 3000만 명이 개신교도가 되어


개신교인은 미국인의 74%가 되었다.


당시는 세계2차대전, 한국전쟁 등을 치르면서 미국이

제국으로 등극하던 시기였다.

2차대전 때는 히틀러라는 인류의 적이 나타났고,

이후에는 소련 공산주의가 나타났다.


이렇게 미국은 외부의 적과 맞서면서 내부를 결속했다.


미국 교회, 성장과 함께 아메리칸 드림 약속

은 총장은 "바로 이 때 미국 교회는 아메리칸 드림을 약속했다"고 말한다.


예수 믿고 교회 나오면

△물질적 풍요를 얻고

△신분이 중산층으로 상승하며


△행복한 가정을 보장 받는다는 것이다.


은 총장은 "근 1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미국 교회가


강단에서 설교한 내용을 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교회가 성장의 정점에 달한 1960년부터

10년에 걸쳐 갑자기 침체기에 빠졌다.

당시는 히피·흑인·학생·여성운동 등이 일어나

미국 백인 중산층 가치관을 뒤흔든다.


특히 베트남 전쟁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전쟁에서도 패하면서 미국의 권위는 상처를 입었다.


이 때 이혼이 증가했고,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했으며, 킹 목사가 암살됐다.


당시의 미국 사회와 교회에 대해 은 총장은

"사람들은 고향을 잃고 끊임없이 이동했으며 익명에 묻힌

사람이 늘어났다"며 "하지만 미국 교회는 농촌

목회의 모형을 가지고 그대로 세속 도시로 왔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를 읽지도, 대비하지도 못해 결국 침체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교회, 70년 이후 쇠퇴의 길 걸어


미국 교회는 10년간의 침체기를 거쳐 1970년 이후

지금까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고 은 총장은 말했다.

백인 중심에서 다인종 사회로 변하는 이 시기,


백인 중산층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것만큼이나 주류 개신교인 수도

급격히 줄었다.


1970~1980년 동안 감리교는 100만 명,


장로교는 50만 명, 루터교와 성공회는 각각 25만 명씩 줄었다.

요즘은 침례교인 수도 줄고 있다고 한다.


교인 수가 줄어드는 것 못지않게 미국 교회의 위상도 달라졌다.


시대와 소통하면서 역동적인 운동을 펼치기보다는

세례 주고 결혼식과 장례식 치르는 시민 종교로 전락했다는 말이다.

은 총장은 "그나마 인기를 끄는 지도자들은


엔터테인먼트 목사들뿐이다"고 꼬집었다.


은 총장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정확하게


30년 간격을 두고 미국 교회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즉 한국교회는 미국교회보다 30년 늦은 1970~1990년 성장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유를 억압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로 사회를 지탱했다.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왔고 노동 문제가 등장했다.


은 총장이 이 시기 '잘 살아보세'가 상징하듯


물질만능주의가 한국 사회를 지배했다고 말했다.


미국 교회가 성장기에 '아메리칸 드림'을 약속했듯,


한국교회도 이 시기에 '코리안 드림'을 제시했다.

예수 믿으면 삼중 오중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십일조를 잘해야 범사가 잘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고,

치유와 기적이 일어난다는 곳에는 사람들이 운집했다.


한국교회는 사회에서 힘들게 사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역할을 감당하려 했다.



모방주의에 빠진 한국교회는 대안 창출 능력 상실



199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침체기에 빠졌다.


사회는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교인들도 빠져나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교회의 기능적 대행물인 인터넷, 텔레비전, 스포츠, 오락 산업이 발전했다.


은 총장에 따르면, 아직도 성장 신드롬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교회는 예배당과 수양관 건축, 신학교 난립,

무자격 목회자 양산을 일삼고 있다.


문화선교란 이름으로 예배가 엔터테인먼트화되는 모습도 보인다.


이는 침체기 미국 교회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은 총장은 지금을 '교회 성장 이후기'라고도 부른다.


여전히 이데올로기 대립을 하고, 세계 경제 체제의 예속돼

빈부의 차이가 더 늘어나며, 사람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교회는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 민감하지 못하다.


오히려 한 교회가 뜬다고 하면 너도 나도 그 방법만


따라하는 모방주의에 빠졌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기에 대안을 창출한 능력도 없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고 은 총장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