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적시다 -1-

루호200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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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이 그의 머리를 쏜 것 같다.

연구실 한 귀퉁이 그렇게 전화기를 든 채 한참을 멍하니..공중에 뜬 표정으로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1분, 2분... 점점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아진다. 그는 1, 2 초 전부터..울고 있었다. 전화기를 든채. 내려놓지도, 그렇다고 앉지도 못한채... 멍하니 서서 표정변화도 없는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다. 보댜 못한 아니, 너무나도 놀란, 그의 후배 영란이 그에게로 다가간다.

"선배... 선배?.... 괜찮아요? 선우선배."

그가 고개를 돌려 영란을 보는 표정이... 참 가관이다. 무표정한 얼굴에 눈물이 차고 넘쳐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울고있는 남자아이같았다.  영란이 그의 팔을 붙잡고, 데리고 복도로 나가는데도 가만히 있는다. 그 전같으면 손 뿌리치고, 눈물 닦으며, 금방 웃고 장난인양 넘겼을텐데...복도로 나온 영란은 걱정이 되어 묻는다.

"무슨 일이예요? 대낮에 이런 모습 보이구? 선배답지 않네요."

그제야 말문을 여는  선우는 절망과 슬픔이 한층 뒤섞인 표정으로 묻는다.

"나다운게........... 뭐냐?"

영란은 뭔가 잘못된 질문과 답이라는 생각을 한다. 뭐가 잘못된걸까? 질문이 잘못된걸까? 답이 잘못된걸까? 선우는 초점없는 눈을 가만히 들어 허공을 응시한다. 영란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뭐예요 선배.뭐가 선배를 이렇게 만든거냐구요. 선배....지금 울고있잖아요."

다음순간 영란은 자신의 눈을 믿을수가 없었다. 그 당당하고, 오만하고, 자신감넘치던 사람, 선우가 자기앞에서 자기 눈밑을 적신 눈물을 찍어 입에 슬쩍 묻힌다 그리곤 웃는듯, 우는듯 알수없는 표정으로 차갑게 묻는다.

"내가...........울었네...? 운거 맞니?"

영란은 너무 놀라지만... 원인을 찾아야한다는 연구가적 발상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원인이 선우가 들고 한참을 멍해져있던 그 전화에 있다는걸 직감한다.

"선배...전화........좀.."

영란은 선우를 그렇게  만든 전화한통의 발신을 알기 위해 선우의  핸드폰이 들려있는 한 손에 자기손을 가져간다. 그러자. 본능적으로 그 멍해져있던 선우가 전화기를 반대편으로 들어버린다. 그러고는 일어선다. "니가 상관할일 아니야..."

출입문쪽으로 멀어져 가는 선우를 보며. 영란은 대학문턱을 갓넘은 5년전을 기억해버리고 만다.

캠퍼스의 낭만,  자유로운 토론, 치열하도록 뜨거운 논쟁, 여론의 형성, 축제의도가니, 열정과 유행의 장으로 여러날에 걸쳐 대학은 상징으로 과정으로 남아갔다,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 합격한 영란을 반기는건, 지독한 짝사랑의 추억이다. 당시에도 킹카가 있었다. 의과학생이었던 그는 선우의 친구였다. 그래서 선우를 먼저 공략했는데 영란과 선우는 마침 죽이 잘맞는 선후배로 남을수 있었다. 피를 나눈 오누이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친했다. 선우에겐 여자친구도 있었다. 최시연이라는 조소과 학생, 긴머리에 항상 하얀 두건을 돌돌 말아 감듯이 묶고, 이태원에서 파는 특이한 티셔츠를 몇개 사서 다르게 연출하고, 항상 카고 청바지를 입고 다니곤 했는데. 머리가 워낙 작아 그것마저 잘 어울리곤 했다.말하자면 머리만 보면, 시골에서 밭 메다 나온 아낙같지만 입은 옷을 보면 시골이니, 아낙이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기억 못하게 만드는 가공할 능력을 갖춘 여자였다. 마치 비운의 여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처럼 조각할 돌을 찾아 캠퍼스에 산이며 들이며 강가까지 조각도를 들고 다니기 때문에 신변걱정이 필요없다며 허허 웃던 그녀가 캠퍼스의 돌무더기들을 이리저리 해메곤 하는  모습을 선우가 먼저 보고 꼬셨다고 한다. 꼬시기만 해서는 그 이리튀고 저리튀는 아가씨가 도저히 잡히질 않아서 그녀를 보고 나머지 대학생활 3년중, 2년은 그녀의 일꾼으로, 나머지 1년은 스토커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그녀를 사귀기 전 2학번 아래인 영란이 들어왔을때부터 졸업때까지, 순수한 타의에 의해 고민해결사로 임명된 덕에 영란은 1년 술시중, 1년 고민상담을 맡아해야했다. 그때 선우에게서 순수한모습을 여러번보며, 선우를 이렇게 만드는 사람을 보고싶다고 생각한적이 여러번 있었다.

영란이 대학을 졸업하면서 당시 복학한 선우의 동기들로부터 둘이 헤어졌다더라, 여자가 죽었다더라, 선우가 질려서 차버렸다더라. 등의 소문만 무성했고, 그 뒤로, 같은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선우에게 전에없던 냉철함을 느끼면서 여자가 없다는 걸 직감하고, 무슨 일이 있긴 있었구나 싶어 아예 말을 안꺼냈었다.그런데......오늘............또다시 그 진지한 사람에게서 그 여자의 흔적이 보인다.  선우를...예전모습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던 눈물을 보일줄 알던 사람으로 그렇게 흔들리게 만들어버린.......한통의 전화는 뭘까? 영란은 선우가 나간 출입문을 잠시 보다가 연구실로 향한다.

버스정류장, 선우는 자신이 화이트 가운을 벗지 않고 나왔다는걸 그제야 감지한다. 목이 턱 막혀, 넥타이 매듭을 이리저리 흔들어 반즈음 풀어버리고, 눈물로 가득했던 눈을 닦아낸다. 그리곤 이리저리 오가는 차들속에서 버스를 찾다가 안되겠다 싶어 택시를 잡아탄다.

"어디로 갈까요?"

그 흔하디 흔한 택시기사의 질문한마디가 오늘따라 가슴을 턱 틀어 막는다. 답답한듯 창문을 열며 노을을 보다 나지막히 대답한다 "서울대 병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