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신(Pregnancy) > - "자기야 힘들지 않아? 차라리 빨리 자고 내일 해라 ......" 나는 박사과정 논문을 쓴답시고 거실의 불을 전부 켜놓고 복사한 페이퍼[paper, 논문]들 을 뒤척거리고 있는 윤정을 향해 짜증 섞인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내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늦게 까지 책잡고 스트레스 받으면 태아의 건강에 안 좋다고 했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말이 기억이 안나남?" 결국 난 거실로 뛰쳐나가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는 그녀의 팔을 강하게 나꿔 챘다. "아우씨, 여보! ... 난 공부하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 받는 다니까? 난 무한한 지적 호기심의 동물이라는 거 몰라? 심심하면 비디오나 보던지..." ‘어이구, 그 놈의 비디오…' 결혼하고 나서 줄 창 나에게 틀어 주던 그 "식물 탐험"인지 "곤충 탐험"인지 모를 비디오 는 결국 테이프가 늘어나서 그녀가 학교에서 새로 구해오기를 3번이나 반복한 끝에 결국 비디오 씨디로 만들더니만 이젠 새로 구입한 DVD플레이어로 틀어대곤 했다. "이제 우리 아기 나오려면 2주도 안 남았잖아? 제발 좀 제때 자고 균형잡인 생활을 좀 하 자.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당신이 너무 많은걸 공부해서 아기는 태어나면 요물이겠 다." 웃으면서 이야기 했지만, 나로서는 정말 심각한 기분이 들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도 휴학 을 하지 않은 그녀는 입덧을 해 가면서도 손에 페이퍼를 들고 화장실에 가는 독한 모습 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 날짜 잘못 맞춰대니까 ... 자꾸 괜찮다고 우긴 당신 때문이잖아? 아이참, 성 가셔 죽겠네 ......" 내가 자꾸 재촉을 하자 그녀는 더 이상 공부에 집중이 안 되는지 결국 거실에 수북이 쌓 은 페이퍼와 자료들을 정리하더니 차가운 생수 한 컵을 들고 안방으로 투덜거리며 들어 왔다. 사실, 주위 결혼한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윤정이는 굉장히 무난하게 임신 기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별다른 음식 투정도 없이, 입덧 때문에 초반에 고생을 좀 많이 했지만 몸이 힘들어 보이진 않았다. 다소 마른 체격의 그녀였기 때문에 배가 불러오면 무척 힘들 어 할거라고 예상한 나의 생각은 멋지게 빗나가 버렸다. "자기야, 빨리자. 오늘도 나 잠들면 또 거실 나가서 공부 한다고 뻘 짓 하면 안 된다. 정 말 또 그러면 나 이제 남편으로서 화낼 꺼다." 나는 태아의 건강을 위해 그녀의 불타는 학구열을 좀 막아 보고자 살살 달래도 보고 협 박도 해 보았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자기 맘대로 못해 짜증이 난 그녀는 토라졌는지 고개를 휙 돌리더니 이내 조용 해졌다. '정말 저러다가 산부인과에서 애 낳으면서 페이퍼 보고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윤정의 모든 면을 되도록 내가 이해해 준다는 마음이었지만, 임신을 한 그녀가 애기에 대 한 배려 없이 자기의 학업만을 위해서 자꾸만 무리를 하거나 고집을 피울 때면 그것만큼 은 너무나 얄밉게 느껴졌다. 그녀는 애기를 생각해서 충분한 영양섭취를 해야 한다는 나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 산모들은 거의 평소의 2배 가까이를 먹어댄다던데 … ) 여전히 평소의 식습관 대로 소 식의 균형을 깨지 않았고 다른 출산 예정인 산모들보다 배도 별로 불러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안심을 한 건 의사가 산모의 뱃속에 있는 태아의 발육이 생각 보다 순조롭고 정상아 의 체중범위에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였다. 그렇지만 역시 모든 것이 완벽 할 수 없듯이, 뱃속의 아기를 둘러싸고 있는 양수의 양이 다른 산모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아 외출을 삼가 하고, 되도록 산모를 무리시키지 말 라는 의사의 말이 나를 좀 불안하게 만들었다. 의사도 그런 산모의 출산 케이스에 대해서 는 굉장한 의문을 제기하고 초기에 염려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아기의 발육과 그녀가 별 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다지 크게 고민할 문제는 아니라고 결론 내렸 다. 하지만 의사의 말에 항상 조심스러웠던 나는 매일 밤 이렇게 그녀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 아악 .. 아 아악 ... 너무 아파 … 여보 … 윤수씨 … 조용하던 그녀가 갑자기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왜 그래? 윤정아? 정신차려 여보야 ... "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흰 눈동자만을 드러낸 채 무섭게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당황 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단 급한 대로 주치의 선생에게 전화를 하고, 차에 윤정 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저기 ... 저기 ... " 막상 병원에 도착했지만, 더 막막할 뿐이었다. 낯선 사람들만이 있는 공간이었고, 아기 의 출산이 처음 이었던 나는 그만큼 더 허둥대고 있었다. 그래도 나의 연락을 받고 급히 도착한 담당 주치의가 아내를 데리고 검사실로 들어간 난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혼이 빠진듯한 얼굴로 한 켠에 마련된 보호자 대기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정신을 수습 할 수 있었다. '내가 초보아빠라 그런가. 다들 출산 기다리는 아빠들 같은데 나만 왜 이렇게 허둥대고 있는 거지?' 나는 한없이 허둥거리기만 하는 내 자신을 원망했지만,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그녀를 담당한 의사가 검사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자 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기 선생님 ..." 나는 손에 잡고 있었던 담배를 얼른 바닥에 던지고 그녀의 주치의 곁으로 다가갔다. "애기는 언제쯤? 윤정이 … 아니 박윤정 환자는 아무 이상 없는 거죠?" 나는 마음이 급해 다급하게 물어 댔지만, 의사는 별로 큰 일은 아니라는 듯 온화한 표정 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의사의 표정 을 살피며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생각보다 산통을 좀 강하게 느끼는 것 같긴 하지만, 그건 아마도 체 내에 아기를 둘러싸고 있는 양수의 양이 적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아직 산 도가 열리지 않았고 통증 간격도 20분 이상 있는 걸로 봐서는 아기가 나오려면 선생님께 서는 좀 더 오래 기달 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허허 ……" 너털거리는 웃음과 함께 의사는 마치 모든 환자에게 있는 통과 의례인양 나를 보고 명쾌 한 답변을 해 주었다. "그럼, 제 부인은 일단 입원을 해야겠지요?" 그녀의 곧 죽을 듯한 비명을 들은 나로서는 당연히 입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출산을 경험해 보는 초보 예비 아빠였던 나는 사소 한 것 조차 의사에게 물어 보게 되었다. "아, 네. 일단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산도가 열릴 시간까지의 여유가 좀 있어서 병원에 계셔야 될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수면제나 기타 진통제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 어서요. 다만, 산모가 통증을 강하게 느끼는 관계로 산부인과의 ICU(중환자실)에서 특별 관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양수의 양이 좀 부족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하니까 말이죠. 보호자 분께서도 좀 쉬시다가 내일 오전에 다시 방문 해 주십시요. 현재로서는 다소 난산 의 조짐이 있으니까 제가 특별히 주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ICU로 옮길 경우 보호자의 간호는 방해만 된다며, 나에게 집에 가서 좀 쉬 고 올 것을 권했다. 아마도, 그녀의 괴성에 놀라 갑작스레 병원으로 뛰어온 나의 모습이 무척 초췌해 보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출산을 위한 준비물과 그녀가 출산 후에 사용 할 물건들을 챙기러 집에 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병원에 남겨 둔 채 집으로 향했다. - < 지옥(地獄) > - - 아침이다. 일어나. 어서 일어나. 늦잠 자는 어린이는 나쁜 어린이. 아내가 사준 앙징 맞은 시계에서 나를 깨우는 시끄러운 벨이 울렸다. 평소 같으면 시계 를 끄고 더 잠이 들었을 테지만, 그녀의 출산이 오늘이라는 생각에 난 한 번에 눈을 번 쩍 뜰 수 있었다. '드디어 오늘 우리의 아이가 세상의 공기를 마시러 나오는 날인가?' 나와 그녀의 아기가 나온다는 생각에 나는 다소 들뜨기도 했지만 긴장된 마음에 아내가 사 두었던 출산 준비에 관한 책을 뒤적거리며 준비할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차차, 캠코더... ’ 나는 아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꼭 필름에 담고 싶었다. 외국에서 아빠들이 아내의 출산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고 난 항상 꼭 나도 저렇게 하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었기 때문이었 다. 비록, 이렇게 일찍 윤정이와 내가 아이를 가질 줄은 몰랐지만 (사실 계획된 것은 아 니었고, 거의 나의 고의적 행위 였다.) 나로서는 빨리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 기 때문에 캠코더는 항상 그날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게 모든 걸 다 챙긴 나는 병원에 도착하여 서둘러 그녀가 있는 ICU라 불리 우는 곳으 로 향했다. "저기, 박윤정 환자가 있는 곳을 좀 알 수 있을까요?" 병원의 숙연한 분위기는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병원에서 헤집 고 다니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바쁜 마음에도 불구하고 프런트를 지키고 있는 간호사 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아! 박윤정씨라면 1시간 후에 분만 실로 들어갈 예정 이시라 분만 대기실로 지금 옮겨 서 계십니다." 사무적인 말투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살갑게만 느껴졌다. ‘어라, 의사의 말로는 오늘 밤이나 되야 분만 실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한 것 같은데 …' 조금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지난 밤의 영문을 모르는 나로서는 일단 분만 대기실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분만 대기실 앞에는 많은 예비 아빠들이 불안 한 듯 서성거리고 있었다. 거기에선 내가 어제 저녁에 보았던 그녀의 주치의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갑자기 예정되었던 시간보다 빨리 분만 대기실로 옮긴 것에 대한 궁금증이 마음속에 가 득 했던 나는 앞에 보이는 그녀의 주치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다급하게 인사했다. "아, 박윤정씨 보호자 되시죠? 어제 저녁에 오셨던? "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의사를 보고서야 그나마 난 긴장을 조금 풀 수 있었다. "저기, 어제는 오늘 저녁쯤 되어야 분만 실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병원에 도착 해서 좀 당황했습니다만 ......" 나의 질문이 마치 미리 예상 된 것이라는 듯 의사는 차트를 한 번 훑어 보곤 나에게 자상 히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아, 박윤정씨의 산도는 아직 완전히 열리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 게 맞습니다. 다만, 박 윤정씨가 통증이 심해서 어제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도 못한데다가 산도가 열릴 시간까지 기다리면 부족한 양수로 인해 태아에게 압박이 많이 가해지지 않을 까 하는 우려에서 외 과적 수술을 통한 출산 유도를 고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 보호자 분께 전화를 드 리려고 대기실로 내려 왔는데 마침 잘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수술이라는 단어를 듣고 머리 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자 세히 설명을 해 주는 그녀의 주치의의 설명은 나를 안심 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면, 그 뭐냐 ……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건가요? 산모의 건강이나 아기의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거겠죠?" 나는 마음속에 물어 보고 싶은 게 정말 백 가지도 넘게 있었지만 일단 의사를 붙잡은 김 에 제일 궁금 했던 것부터 하나 하나씩 질문해 나가기 시작했다. "예,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제왕절개수술을 시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기 의 건강은 새벽에 찍은 3차원 초음파 검사로는 활동성이나 모든 면에서 양호한 것으로 나 타났습니다만 산모가 지난밤에 통증에 심하게 시달려 체력이 많이 저하된 것이 조금 걱정 입니다. 하지만 뭐 제왕절개는 오히려 산모의 몸에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 중에 하 나도 되기 때문에 보호자 분께서는 그렇게 까지 크게 걱정 하실 필요 없으실 것 같습니 다. 이런 시간이 벌써 …… 그럼, 전이만 회진 돌아야 할 곳이 좀 남아서 ......" 의사는 아직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병실을 향 해 레지던트들로 보이는 의사들을 데리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수술하다가 실패할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아니, 정확한 확률로 말씀 해 주십시오.” “마취 후에 안 환자가 안 깨어 날 수도 있나요?” “환자가 수술을 받을 만큼 건강이나 체력이 충분한지는 체크를 하신 거죠?” . . . . 나의 끓어 오르는 궁금증을 다 해소시켜주지 못한 의사 덕분에, 그녀의 수술동의서를 작 성하는 동안 내 앞에 있던 산부인과 간호사는 나의 엉뚱하고도 공학적 사고에 입각한 곤 란한 질문들에 대해 줄기차게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대충 다 알았다는 생각을 하고 분만 대기실로 자리를 옮기는 나를 보며 결국 간호사는 한 마디 를 던졌다. "병원 와서 산부인과 의사 되어 가시니, 저한테 수업료 내고 가세욧!" 피식 웃으며 웃음으로 그녀의 농담에 답한 나는 그녀가 있는 분만 대기실로 서둘러 발걸 음을 옮겼다. "윤정아 …… 괜찮아?" 윤정은 나를 보더니 몹시 삐진 얼굴로 째려봤다. "넌 지금 내가 괜찮아 보여? 죽기 일보 직전이다. 정말 애 한번 더 낳으라면 난 차라리 죽고 말겠다." 그래도 이렇게 투정을 부리는 걸 보면 아직은 기운이 남았으려니 하는 생각에 나는 입가 에 웃음을 띠울 수 있었다. "박윤정 환자님!" 낯익은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게 출산 학에 대한 강의를 해야만 했던 그 간호 사였다. "박윤정 환자님 분만 실로 옮겨야 하니까, 제가 주사 좀 놓겠습니다. " 그녀는 나를 보며 아까의 초보 아빠의 호기심 어린 질문들이 생각 나는지 ‘싱긋’ 웃더 니 그녀의 팔에 꽂혀있는 링거 주사기의 고무 부분에 바늘을 찌르고 서서히 약을 밀어 넣 기 시작했다. "박윤정 환자님 이제 통증이 조금 더 심해 질지도 몰라요. 분만 유도 제를 놨거든요. 아 프시더라도 예쁜 아기 생각하셔서 좀 참으세요. 참, 자상한 남편을 두셨네요." 윤정은 지속적인 통증이 오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나에게 농담을 건넸다. "너어~ . 저 간호사랑 무슨 관계야? 솔직히 불어.. 악......" 투덜대듯이 농담을 건네던 그녀는 다시금 통증이 오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 하고 미간 을 찌푸리며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분만 실로 들어 간지 벌써 한 시간 가량이 흘렀다. 초초했던 나는 밖 에 나가서 연신 줄담배를 피워대며 커피를 마셔댔다. 벌써 벌컥 벌컥 들이킨 커피만도 6 잔이 넘었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그녀의 비명 소리에 놀라 분만실 앞을 얼쩡거리다가, 거기서 나오는 간호사에게 핀잔만 신나게 줏어 들었다. "첫 애기세요? 아유 산만하시기도 해라. 입구를 막고 계시면 어떻게 해요? 걱정 마시고 조오기 앉아 계세요. 이제 마취 하셨으니까요 산모가 고통을 느낄 일은 없을 거에요. 그 러니 그렇게 불안해 하면서 서성거리지 마세요 …… " ‘그럼 뭐 누구나 다 애를 낳아보나? 처음 낳아 보는 아빠들도 당연히 있는 거지 ……’ 나는 그녀의 핀잔에 속으로 툴툴거렸지만, 그녀의 말 덕분에 약간의 긴장을 덜 수 있었 다. - 우당탕 …… 퍼버벅 … 푸악… - 꺄아아악 ...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들어간 분만 실 안에서는 점점 사람들의 어수선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분만 실 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분 만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헉 ......"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 어떻게 ... 아니 ... 이건 꿈이야 … 꿈일 거야 …'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분만 실 안의 모습을 나는 현실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악몽 같은 분만 실 안의 풍경을 그냥 멍하니 서 서 지켜보고 있는 것 밖에 없었다. 새로 태어날 나와 그녀의 예쁜 아기를 찍기 위해 가져 갔던 캠코더는 그 악몽과 같은 현장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난 꿈이라는, 아니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 zhuntersz@daum.net , zhuntersz@yahoo.co.kr http://cafe.daum.net/zhunters 공식 연재는 웃대! 웃긴대학 공포란에요~.. ~~ (www.humoruniv.com) ============================================================
(퍼옴) [Particles] #7 지옥의 문
- < 임신(Pregnancy) > -
"자기야 힘들지 않아? 차라리 빨리 자고 내일 해라 ......"
나는 박사과정 논문을 쓴답시고 거실의 불을 전부 켜놓고 복사한 페이퍼[paper, 논문]들
을 뒤척거리고 있는 윤정을 향해 짜증 섞인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내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늦게 까지 책잡고 스트레스 받으면 태아의 건강에 안 좋다고 했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말이 기억이 안나남?"
결국 난 거실로 뛰쳐나가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는 그녀의 팔을 강하게 나꿔 챘다.
"아우씨, 여보! ... 난 공부하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 받는 다니까? 난 무한한 지적
호기심의 동물이라는 거 몰라? 심심하면 비디오나 보던지..."
‘어이구, 그 놈의 비디오…'
결혼하고 나서 줄 창 나에게 틀어 주던 그 "식물 탐험"인지 "곤충 탐험"인지 모를 비디오
는 결국 테이프가 늘어나서 그녀가 학교에서 새로 구해오기를 3번이나 반복한 끝에 결국
비디오 씨디로 만들더니만 이젠 새로 구입한 DVD플레이어로 틀어대곤 했다.
"이제 우리 아기 나오려면 2주도 안 남았잖아? 제발 좀 제때 자고 균형잡인 생활을 좀 하
자.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당신이 너무 많은걸 공부해서 아기는 태어나면 요물이겠
다."
웃으면서 이야기 했지만, 나로서는 정말 심각한 기분이 들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도 휴학
을 하지 않은 그녀는 입덧을 해 가면서도 손에 페이퍼를 들고 화장실에 가는 독한 모습
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 날짜 잘못 맞춰대니까 ... 자꾸 괜찮다고 우긴 당신 때문이잖아? 아이참, 성
가셔 죽겠네 ......"
내가 자꾸 재촉을 하자 그녀는 더 이상 공부에 집중이 안 되는지 결국 거실에 수북이 쌓
은 페이퍼와 자료들을 정리하더니 차가운 생수 한 컵을 들고 안방으로 투덜거리며 들어
왔다.
사실, 주위 결혼한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윤정이는 굉장히 무난하게 임신 기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별다른 음식 투정도 없이, 입덧 때문에 초반에 고생을 좀 많이 했지만
몸이 힘들어 보이진 않았다. 다소 마른 체격의 그녀였기 때문에 배가 불러오면 무척 힘들
어 할거라고 예상한 나의 생각은 멋지게 빗나가 버렸다.
"자기야, 빨리자. 오늘도 나 잠들면 또 거실 나가서 공부 한다고 뻘 짓 하면 안 된다. 정
말 또 그러면 나 이제 남편으로서 화낼 꺼다."
나는 태아의 건강을 위해 그녀의 불타는 학구열을 좀 막아 보고자 살살 달래도 보고 협
박도 해 보았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자기 맘대로 못해 짜증이 난 그녀는 토라졌는지 고개를 휙 돌리더니 이내 조용 해졌다.
'정말 저러다가 산부인과에서 애 낳으면서 페이퍼 보고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윤정의 모든 면을 되도록 내가 이해해 준다는 마음이었지만, 임신을 한 그녀가 애기에 대
한 배려 없이 자기의 학업만을 위해서 자꾸만 무리를 하거나 고집을 피울 때면 그것만큼
은 너무나 얄밉게 느껴졌다.
그녀는 애기를 생각해서 충분한 영양섭취를 해야 한다는 나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 산모들은 거의 평소의 2배 가까이를 먹어댄다던데 … ) 여전히 평소의 식습관 대로 소
식의 균형을 깨지 않았고 다른 출산 예정인 산모들보다 배도 별로 불러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안심을 한 건 의사가 산모의 뱃속에 있는 태아의 발육이 생각 보다 순조롭고 정상아
의 체중범위에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였다.
그렇지만 역시 모든 것이 완벽 할 수 없듯이, 뱃속의 아기를 둘러싸고 있는 양수의 양이
다른 산모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아 외출을 삼가 하고, 되도록 산모를 무리시키지 말
라는 의사의 말이 나를 좀 불안하게 만들었다. 의사도 그런 산모의 출산 케이스에 대해서
는 굉장한 의문을 제기하고 초기에 염려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아기의 발육과 그녀가 별
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다지 크게 고민할 문제는 아니라고 결론 내렸
다. 하지만 의사의 말에 항상 조심스러웠던 나는 매일 밤 이렇게 그녀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 아악 .. 아 아악 ... 너무 아파 … 여보 … 윤수씨 …
조용하던 그녀가 갑자기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왜 그래? 윤정아? 정신차려 여보야 ... "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흰 눈동자만을 드러낸 채 무섭게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당황
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단 급한 대로 주치의 선생에게 전화를 하고, 차에 윤정
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저기 ... 저기 ... "
막상 병원에 도착했지만, 더 막막할 뿐이었다. 낯선 사람들만이 있는 공간이었고, 아기
의 출산이 처음 이었던 나는 그만큼 더 허둥대고 있었다.
그래도 나의 연락을 받고 급히 도착한 담당 주치의가 아내를 데리고 검사실로 들어간 난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혼이 빠진듯한 얼굴로 한 켠에 마련된 보호자 대기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정신을 수습 할 수 있었다.
'내가 초보아빠라 그런가. 다들 출산 기다리는 아빠들 같은데 나만 왜 이렇게 허둥대고
있는 거지?'
나는 한없이 허둥거리기만 하는 내 자신을 원망했지만,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그녀를 담당한 의사가 검사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자
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기 선생님 ..."
나는 손에 잡고 있었던 담배를 얼른 바닥에 던지고 그녀의 주치의 곁으로 다가갔다.
"애기는 언제쯤? 윤정이 … 아니 박윤정 환자는 아무 이상 없는 거죠?"
나는 마음이 급해 다급하게 물어 댔지만, 의사는 별로 큰 일은 아니라는 듯 온화한 표정
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의사의 표정
을 살피며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생각보다 산통을 좀 강하게 느끼는 것 같긴 하지만, 그건 아마도 체
내에 아기를 둘러싸고 있는 양수의 양이 적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아직 산
도가 열리지 않았고 통증 간격도 20분 이상 있는 걸로 봐서는 아기가 나오려면 선생님께
서는 좀 더 오래 기달 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허허 ……"
너털거리는 웃음과 함께 의사는 마치 모든 환자에게 있는 통과 의례인양 나를 보고 명쾌
한 답변을 해 주었다.
"그럼, 제 부인은 일단 입원을 해야겠지요?"
그녀의 곧 죽을 듯한 비명을 들은 나로서는 당연히 입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출산을 경험해 보는 초보 예비 아빠였던 나는 사소 한 것 조차 의사에게 물어
보게 되었다.
"아, 네. 일단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산도가 열릴 시간까지의 여유가 좀 있어서 병원에
계셔야 될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수면제나 기타 진통제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
어서요. 다만, 산모가 통증을 강하게 느끼는 관계로 산부인과의 ICU(중환자실)에서 특별
관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양수의 양이 좀 부족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하니까 말이죠.
보호자 분께서도 좀 쉬시다가 내일 오전에 다시 방문 해 주십시요. 현재로서는 다소 난산
의 조짐이 있으니까 제가 특별히 주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ICU로 옮길 경우 보호자의 간호는 방해만 된다며, 나에게 집에 가서 좀 쉬
고 올 것을 권했다. 아마도, 그녀의 괴성에 놀라 갑작스레 병원으로 뛰어온 나의 모습이
무척 초췌해 보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출산을 위한 준비물과 그녀가 출산 후에 사용 할
물건들을 챙기러 집에 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병원에 남겨 둔 채 집으로 향했다.
- < 지옥(地獄) > -
- 아침이다. 일어나. 어서 일어나. 늦잠 자는 어린이는 나쁜 어린이.
아내가 사준 앙징 맞은 시계에서 나를 깨우는 시끄러운 벨이 울렸다. 평소 같으면 시계
를 끄고 더 잠이 들었을 테지만, 그녀의 출산이 오늘이라는 생각에 난 한 번에 눈을 번
쩍 뜰 수 있었다.
'드디어 오늘 우리의 아이가 세상의 공기를 마시러 나오는 날인가?'
나와 그녀의 아기가 나온다는 생각에 나는 다소 들뜨기도 했지만 긴장된 마음에 아내가
사 두었던 출산 준비에 관한 책을 뒤적거리며 준비할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차차, 캠코더... ’
나는 아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꼭 필름에 담고 싶었다. 외국에서 아빠들이 아내의 출산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고 난 항상 꼭 나도 저렇게 하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었기 때문이었
다. 비록, 이렇게 일찍 윤정이와 내가 아이를 가질 줄은 몰랐지만 (사실 계획된 것은 아
니었고, 거의 나의 고의적 행위 였다.) 나로서는 빨리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
기 때문에 캠코더는 항상 그날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게 모든 걸 다 챙긴 나는 병원에 도착하여 서둘러 그녀가 있는 ICU라 불리 우는 곳으
로 향했다.
"저기, 박윤정 환자가 있는 곳을 좀 알 수 있을까요?"
병원의 숙연한 분위기는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병원에서 헤집
고 다니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바쁜 마음에도 불구하고 프런트를 지키고 있는 간호사
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아! 박윤정씨라면 1시간 후에 분만 실로 들어갈 예정 이시라 분만 대기실로 지금 옮겨
서 계십니다."
사무적인 말투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살갑게만 느껴졌다.
‘어라, 의사의 말로는 오늘 밤이나 되야 분만 실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한 것 같은데
…'
조금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지난 밤의 영문을 모르는 나로서는 일단 분만 대기실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분만 대기실 앞에는 많은 예비 아빠들이 불안 한 듯 서성거리고 있었다. 거기에선 내가
어제 저녁에 보았던 그녀의 주치의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갑자기 예정되었던 시간보다 빨리 분만 대기실로 옮긴 것에 대한 궁금증이 마음속에 가
득 했던 나는 앞에 보이는 그녀의 주치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다급하게 인사했다.
"아, 박윤정씨 보호자 되시죠? 어제 저녁에 오셨던? "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의사를 보고서야 그나마 난 긴장을 조금 풀 수 있었다.
"저기, 어제는 오늘 저녁쯤 되어야 분만 실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병원에 도착
해서 좀 당황했습니다만 ......"
나의 질문이 마치 미리 예상 된 것이라는 듯 의사는 차트를 한 번 훑어 보곤 나에게 자상
히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아, 박윤정씨의 산도는 아직 완전히 열리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 게 맞습니다. 다만, 박
윤정씨가 통증이 심해서 어제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도 못한데다가 산도가 열릴 시간까지
기다리면 부족한 양수로 인해 태아에게 압박이 많이 가해지지 않을 까 하는 우려에서 외
과적 수술을 통한 출산 유도를 고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 보호자 분께 전화를 드
리려고 대기실로 내려 왔는데 마침 잘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수술이라는 단어를 듣고 머리 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자
세히 설명을 해 주는 그녀의 주치의의 설명은 나를 안심 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면, 그 뭐냐 ……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건가요? 산모의 건강이나 아기의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거겠죠?"
나는 마음속에 물어 보고 싶은 게 정말 백 가지도 넘게 있었지만 일단 의사를 붙잡은 김
에 제일 궁금 했던 것부터 하나 하나씩 질문해 나가기 시작했다.
"예,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제왕절개수술을 시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기
의 건강은 새벽에 찍은 3차원 초음파 검사로는 활동성이나 모든 면에서 양호한 것으로 나
타났습니다만 산모가 지난밤에 통증에 심하게 시달려 체력이 많이 저하된 것이 조금 걱정
입니다. 하지만 뭐 제왕절개는 오히려 산모의 몸에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 중에 하
나도 되기 때문에 보호자 분께서는 그렇게 까지 크게 걱정 하실 필요 없으실 것 같습니
다. 이런 시간이 벌써 …… 그럼, 전이만 회진 돌아야 할 곳이 좀 남아서 ......"
의사는 아직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병실을 향
해 레지던트들로 보이는 의사들을 데리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수술하다가 실패할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아니, 정확한 확률로 말씀 해 주십시오.”
“마취 후에 안 환자가 안 깨어 날 수도 있나요?”
“환자가 수술을 받을 만큼 건강이나 체력이 충분한지는 체크를 하신 거죠?”
.
.
.
.
나의 끓어 오르는 궁금증을 다 해소시켜주지 못한 의사 덕분에, 그녀의 수술동의서를 작
성하는 동안 내 앞에 있던 산부인과 간호사는 나의 엉뚱하고도 공학적 사고에 입각한 곤
란한 질문들에 대해 줄기차게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대충
다 알았다는 생각을 하고 분만 대기실로 자리를 옮기는 나를 보며 결국 간호사는 한 마디
를 던졌다.
"병원 와서 산부인과 의사 되어 가시니, 저한테 수업료 내고 가세욧!"
피식 웃으며 웃음으로 그녀의 농담에 답한 나는 그녀가 있는 분만 대기실로 서둘러 발걸
음을 옮겼다.
"윤정아 …… 괜찮아?"
윤정은 나를 보더니 몹시 삐진 얼굴로 째려봤다.
"넌 지금 내가 괜찮아 보여? 죽기 일보 직전이다. 정말 애 한번 더 낳으라면 난 차라리
죽고 말겠다."
그래도 이렇게 투정을 부리는 걸 보면 아직은 기운이 남았으려니 하는 생각에 나는 입가
에 웃음을 띠울 수 있었다.
"박윤정 환자님!"
낯익은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게 출산 학에 대한 강의를 해야만 했던 그 간호
사였다.
"박윤정 환자님 분만 실로 옮겨야 하니까, 제가 주사 좀 놓겠습니다. "
그녀는 나를 보며 아까의 초보 아빠의 호기심 어린 질문들이 생각 나는지 ‘싱긋’ 웃더
니 그녀의 팔에 꽂혀있는 링거 주사기의 고무 부분에 바늘을 찌르고 서서히 약을 밀어 넣
기 시작했다.
"박윤정 환자님 이제 통증이 조금 더 심해 질지도 몰라요. 분만 유도 제를 놨거든요. 아
프시더라도 예쁜 아기 생각하셔서 좀 참으세요. 참, 자상한 남편을 두셨네요."
윤정은 지속적인 통증이 오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나에게 농담을 건넸다.
"너어~ . 저 간호사랑 무슨 관계야? 솔직히 불어.. 악......"
투덜대듯이 농담을 건네던 그녀는 다시금 통증이 오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 하고 미간
을 찌푸리며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분만 실로 들어 간지 벌써 한 시간 가량이 흘렀다. 초초했던 나는 밖
에 나가서 연신 줄담배를 피워대며 커피를 마셔댔다. 벌써 벌컥 벌컥 들이킨 커피만도 6
잔이 넘었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그녀의 비명 소리에 놀라 분만실 앞을 얼쩡거리다가, 거기서 나오는
간호사에게 핀잔만 신나게 줏어 들었다.
"첫 애기세요? 아유 산만하시기도 해라. 입구를 막고 계시면 어떻게 해요? 걱정 마시고
조오기 앉아 계세요. 이제 마취 하셨으니까요 산모가 고통을 느낄 일은 없을 거에요. 그
러니 그렇게 불안해 하면서 서성거리지 마세요 …… "
‘그럼 뭐 누구나 다 애를 낳아보나? 처음 낳아 보는 아빠들도 당연히 있는 거지 ……’
나는 그녀의 핀잔에 속으로 툴툴거렸지만, 그녀의 말 덕분에 약간의 긴장을 덜 수 있었
다.
- 우당탕 …… 퍼버벅 … 푸악…
- 꺄아아악 ...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들어간 분만
실 안에서는 점점 사람들의 어수선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분만 실 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분
만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헉 ......"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 어떻게 ... 아니 ... 이건 꿈이야 … 꿈일 거야 …'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분만 실 안의 모습을 나는 현실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악몽 같은 분만 실 안의 풍경을 그냥 멍하니 서
서 지켜보고 있는 것 밖에 없었다. 새로 태어날 나와 그녀의 예쁜 아기를 찍기 위해 가져
갔던 캠코더는 그 악몽과 같은 현장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난 꿈이라는, 아니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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