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죽으면 물에 뜨는 것을 알고 있을까 1 오르막길은 가파른 편이었다. 이 길만 오르면 이제 집이다. 의연은 두 손에 빵빵하게 들어찬 쇼핑백을 들고 휘청거리며 길을 오른다. 퇴근하자마자 백화점에 들러 또 잔뜩 사들고 왔다. 일년 내내 길모퉁이에 늙은 호박을 쌓아둔 건강원은 여전히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 옆에는 개업한 약국이 있는데 지나칠 때마다 혼자 서 있는 약사와 멀뚱히 눈을 마주치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의연은 콧물이나 기침은 없이 이마에 열만 조금 있는 감기에 걸리곤 했다. 더위는 이미 한풀 꺾였다. 태풍 ‘메기’가 지나가고 나니 햇살이나 바람이 예전같지 않아졌다. 사람의 마음도 계절이 오가는 것처럼 타올랐다 식었다하는 것이다. 가을은 오기 전에 비를 먼저 뿌린다. 비가 오기 전인 지난주만 해도 썩기 직전의 과일처럼 더위는 정말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지독한 순간. 의연은 자신의 인생에도 언젠가는 이처럼 지독한 순간이 올 거라고 예감했다. ‘벌써 20일이네. 그는 나의 생리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겠군.’ 이런 비수기에 일주일 휴가를 얻다니. 지금이라도 휴가를 얻은 것이 감지덕지다. 그와 조금 늦게 헤어졌더라면 지금쯤 펜션 예약하느라 들떠 있었을 것이다. 의연은 일주일 동안 집에만 있을 생각이었다. 신촌으로 이사 온지 꽤 지났지만 의연은 친한 이웃을 만들지 않았다. 딱히 누군가와 접촉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빌라에 누가 이사를 가고 들어오는 지도 잘 모른다. 의연은 빌라 주인이 바뀌고 한 달이 지나서야 가스 관리요원으로부터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될 정도였다. 저녁인데도 어린애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파는 차가 들어오는 것을 무시하고 길 한가운데로 걷고 있었다. 의연은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는 것도 발뒷꿈치를 밟히는 것도 죄다 귀찮았다. 앞서 한 여자가 걷고 있었다. 꽤 팍팍해 보이는 여자는 책가방을 둘러메고 있었다. 여자의 뒷모습에서 쌕쌕 숨소리가 났다. 짧은 커트 머리에 흰색 면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여자는 볼품없어 보였다. 의연은 그런 여자가 자신의 앞에 걷고 있다는 것이 조금 거슬렸다. 의연은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공기가 술렁거리는 걸 느꼈는지 여자가 의연의 가슴께를 훑어보았다. 여자를 스쳐 지날 때 의연은 여자가 둘러메고 있던 가방의 단추 하나가 풀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줄 나간 스타킹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여자와 의연이 서로 눈을 마주치자 못 본체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여자의 가방은 단추가 떨어져 나가긴 했어도 속에 있는 물건은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대문 앞에는 그새를 못 참고 또 전단지들이 붙어 있다. 스티커엔 광고문구와 연락처가 남겨져 있다. 물론 피자나 자장면집, 초고속 인터넷 뭐 그런 것들이다. 의연은 열쇠를 손잡이 속에 쑤셔 넣었다. ‘대체 그 여잔 왜 내 가슴을 힐끗 본 거야! 재수없게.’ 의연은 숨겨야 할 무언가를 여자에게 들켜버린 것 같이 불쾌했다. 의연이 여자의 풀어진 단추를 본 것처럼. 의연은 마음 한 켠이 열려 있는 것을 여자에게 들켜버린 것만 같아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자의 가방이 단추가 풀러지긴 했어도 아무 것도 떨어지지 않았듯이 마음 한 켠을 잘못 열어둔 것이 의연의 삶을 위태롭게 하지는 않았다. 여자는 머지않아 끌러진 단추를 확인했을 것이다. 의연의 토드백에서 웅웅 소리가 난다. 전화가 오는 모양이었다. 마구 쑤셔놓은 가방 속에는 화장품이나 지갑, 볼펜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작은 덩치의 휴대폰을 찾을 길이 없었다. 이대로 50초가 지나면 전화는 끊어지겠지. 하지만 의연은 결국 휴대폰을 찾지 못했다. 전화는 끊어지고 액정판에는 발신번호만 찍혀 있다. 그였다. 그는 의연이 생리기간이나 배란기일 때는 전화하지 않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벨이 울릴 때 받지 못한 전화처럼 그가 한참 의연에게 열을 올릴 때 의연은 그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사랑이란 상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해도 내가 상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상대의 사랑을 받지 못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맨 처음 열쇠를 침대 쪽으로 툭 집어넣었다. 집안 꼴은 형편없이 엉망이었다. 그가 발길을 끊은 후로 들를 손님도 없었기에 의연은 대충대충 방치해두고 있었다. 의연은 새로 사온 물건들을 하나, 둘 끄집어냈다. 평소처럼 라면이나 야채, 돼지고기가 아닌 팡이제로, 먼지털이, 수세미같은 자잘한 청소 기구들이다.
물고기는 죽으면 물에 뜨는 것을 알고 있을까 1
물고기는 죽으면 물에 뜨는 것을 알고 있을까
1
오르막길은 가파른 편이었다.
이 길만 오르면 이제 집이다.
의연은 두 손에 빵빵하게 들어찬 쇼핑백을 들고 휘청거리며 길을 오른다.
퇴근하자마자 백화점에 들러 또 잔뜩 사들고 왔다.
일년 내내 길모퉁이에 늙은 호박을 쌓아둔 건강원은 여전히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 옆에는 개업한 약국이 있는데 지나칠 때마다 혼자 서 있는 약사와 멀뚱히 눈을 마주치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의연은 콧물이나 기침은 없이 이마에 열만 조금 있는 감기에 걸리곤 했다.
더위는 이미 한풀 꺾였다.
태풍 ‘메기’가 지나가고 나니 햇살이나 바람이 예전같지 않아졌다.
사람의 마음도 계절이 오가는 것처럼 타올랐다 식었다하는 것이다.
가을은 오기 전에 비를 먼저 뿌린다.
비가 오기 전인 지난주만 해도 썩기 직전의 과일처럼 더위는 정말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지독한 순간.
의연은 자신의 인생에도 언젠가는 이처럼 지독한 순간이 올 거라고 예감했다.
‘벌써 20일이네. 그는 나의 생리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겠군.’
이런 비수기에 일주일 휴가를 얻다니.
지금이라도 휴가를 얻은 것이 감지덕지다.
그와 조금 늦게 헤어졌더라면 지금쯤 펜션 예약하느라 들떠 있었을 것이다.
의연은 일주일 동안 집에만 있을 생각이었다.
신촌으로 이사 온지 꽤 지났지만 의연은 친한 이웃을 만들지 않았다.
딱히 누군가와 접촉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빌라에 누가 이사를 가고 들어오는 지도 잘 모른다.
의연은 빌라 주인이 바뀌고 한 달이 지나서야 가스 관리요원으로부터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될 정도였다.
저녁인데도 어린애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파는 차가 들어오는 것을 무시하고 길 한가운데로 걷고 있었다.
의연은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는 것도 발뒷꿈치를 밟히는 것도 죄다 귀찮았다.
앞서 한 여자가 걷고 있었다.
꽤 팍팍해 보이는 여자는 책가방을 둘러메고 있었다.
여자의 뒷모습에서 쌕쌕 숨소리가 났다.
짧은 커트 머리에 흰색 면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여자는 볼품없어 보였다.
의연은 그런 여자가 자신의 앞에 걷고 있다는 것이 조금 거슬렸다.
의연은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공기가 술렁거리는 걸 느꼈는지 여자가 의연의 가슴께를 훑어보았다.
여자를 스쳐 지날 때 의연은 여자가 둘러메고 있던 가방의 단추 하나가 풀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줄 나간 스타킹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여자와 의연이 서로 눈을 마주치자 못 본체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여자의 가방은 단추가 떨어져 나가긴 했어도 속에 있는 물건은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대문 앞에는 그새를 못 참고 또 전단지들이 붙어 있다.
스티커엔 광고문구와 연락처가 남겨져 있다.
물론 피자나 자장면집, 초고속 인터넷 뭐 그런 것들이다. 의연은 열쇠를 손잡이 속에 쑤셔 넣었다.
‘대체 그 여잔 왜 내 가슴을 힐끗 본 거야! 재수없게.’
의연은 숨겨야 할 무언가를 여자에게 들켜버린 것 같이 불쾌했다.
의연이 여자의 풀어진 단추를 본 것처럼.
의연은 마음 한 켠이 열려 있는 것을 여자에게 들켜버린 것만 같아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자의 가방이 단추가 풀러지긴 했어도 아무 것도 떨어지지 않았듯이 마음 한 켠을 잘못 열어둔 것이 의연의 삶을 위태롭게 하지는 않았다.
여자는 머지않아 끌러진 단추를 확인했을 것이다.
의연의 토드백에서 웅웅 소리가 난다.
전화가 오는 모양이었다.
마구 쑤셔놓은 가방 속에는 화장품이나 지갑, 볼펜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작은 덩치의 휴대폰을 찾을 길이 없었다.
이대로 50초가 지나면 전화는 끊어지겠지.
하지만 의연은 결국 휴대폰을 찾지 못했다.
전화는 끊어지고 액정판에는 발신번호만 찍혀 있다.
그였다.
그는 의연이 생리기간이나 배란기일 때는 전화하지 않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벨이 울릴 때 받지 못한 전화처럼 그가 한참 의연에게 열을 올릴 때 의연은 그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사랑이란 상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해도 내가 상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상대의 사랑을 받지 못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맨 처음 열쇠를 침대 쪽으로 툭 집어넣었다.
집안 꼴은 형편없이 엉망이었다.
그가 발길을 끊은 후로 들를 손님도 없었기에 의연은 대충대충 방치해두고 있었다.
의연은 새로 사온 물건들을 하나, 둘 끄집어냈다.
평소처럼 라면이나 야채, 돼지고기가 아닌 팡이제로, 먼지털이, 수세미같은 자잘한 청소 기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