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나라에 가다 2

하니200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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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나라에 가다 2 


                                        *


  빌라는 한마디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빌라의 이름은 이리저리 지워져나가 알아볼 수도 없었다.

  빌라는 어느새 이름보다 번지수로 불리고 있었다.

  나 역시 빌라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십 오년 전 유명 연예인이 처음 지은 것을 시작으로 집은 끊임없이 팔려나갔다.

  무일푼 상인이 순전히 빚으로만 사들이기도 했고 만기일이 되면 날짜를 미루지 않고 전세금을 돌려주던 인자한 정년퇴직 부부가 매입하기도 했다.

  드난살이 로 세입자들은 자주 바뀌었지만 주인은 페인트칠조차 새로 하지 않았다.

  현관 앞에는 전세와 월세를 구한다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어쨌든 이 집에 산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노릇이다.

  정말 절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초대할 수 없는 집.

  아무리 청소해도 깨끗해지지 않는 집.

  부동산 업자조차 고개를 내젓는 이 집은 이 동네에서 가장 퇴물이 되고 말았다.

  이 집이 나에게만은 조금 특별한 연유가 있다면 내가 몇 년 전에도 이 집에 산 적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 들어와 살 때만 해도 이렇게 낡지는 않았다.

  내가 가진 전세금액 내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넓은 집이었다.

  내가 이 집에 관해 특별하게 생각한 것에 이 빌라에만 사는 개미를 보고 나서다.

  개미는 독한 살충제를 아무리 뿌려도 박멸되지 않았다.

  불린 쌀이나 먹다 남은 요구르트에 개미가 낀 것을 보고 나는 마구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그 저주는 돈을 많이 벌어서 이런 허름한 빌라에서 나가야한다는 의지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나는 한 마리의 개미를 만났고 그 개미의 입에는 바퀴벌레 알을 파먹고 나온 흔적이 있었다.

  동시에 나는 그것을 보고 어떤 교감을 느꼈고 이곳에서 신물 나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새 룸메이트는 다음 주쯤에나 온다고 했다.

  목소리는 가늘고 어딘가 아성이 배어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름도, 얼굴도 몰랐지만 평생 함께 살고 있다.

  나도 그녀와 평생 함께 살 수 있을까.

  그녀는 아는 사람의 먼 친척인데 그녀는 어떤 이유인지 이름을 숨기려 했다.

  그녀는 다음 주 월요일 초록색 니트를 입고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생각할수록 기다려지는 사람이었다.   

  달력 한 장이 무심히 뜯겨 나갔다.

  나는 초겨울이 왔음을 지각했다.

  매스컴에서는 내일이면 서울에 첫눈이 내릴 거라고 떠들었다.

  이런 예보는 거꾸로 읽은 추리소설처럼 기대가 반감된다.

  아귀가 반쯤 비틀어지게 열린 우편함 속에는 서신들이 경쟁적으로 꽂혀 있었다.

  우편함이 가득 찬 것을 몇 번 보았지만 나는 심드렁하게 지나 쳤었다.

  카드는 풀칠이 단단히 되어 있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봉투를 마구 찢어발겨서야 겨우 열렸다.

  내용물은 고등어의 잘 익은 흰 살처럼 탐스럽게 드러났다.

  청첩장이었다.

  김건모의 ‘청첩장’이라는 가요가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태준도 그 노래를 참 좋아했었다.

  으리으리한 카드의 모양새에 괜히 속이 뒤틀려 카드들을 모두 반송시켜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봉투는 손 가는 대로 마구 뜯겨졌다.

  ―‘부디 옛날 애인이 보낸 것만은 아니었으면.’

  나는 우편 더미에서 도시가스 요금, 티브이 수신료 고시서만 헤집어 냈다.

  이사를 세 번이나 다니다 보니 이젠 자동 이체할 마음조차 사라졌다.

  이사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휴대폰 번호를 바꿀 때마다 나는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정할 것이다. 그렇게 해도 끊어지지 않는 인연이 있다면.

 

 ―‘미쳤지. 또 이 망할 집구석으로 돌아오다니.’

 

  나는 연습장에 연필을 세우고 동그라미를 크게 그렸다.

  동그라미는 가장 동그라미다워야 한다.

  어릴 적엔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 분신사바 놀이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 처음으로 가장 동그란 동그라미를 그려본 적이 있다.

  이것은 직장에 들어가자 발설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하는 해소법중의 하나였다.

  동그랗게 잘 나가나 싶다가도 선은 엉뚱하게 빗겨나갔다.

  전혀 동그라미 같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처음과 끝은 이어 넣는다.

  이건 동그라미를 빙자한 단일폐곡선이다.

  나는 동그라미 세 개에다 눈, 코, 입을 그리기 시작했다.

  숙희언니와 민지가 시집을 가버리다니.

  나쁠 것도 없었다.

  그녀들은 혼기를 이미 놓친 나이다.

  동그라미는 이어져 면사포로 번져갔다.

  만화에서 악역이나 할 얼굴들이 그려졌다.

  성깔 있는 윤숙희는 이내 소박맞을 것이다.

  윤숙희의 붉은 입술이 생각났지만 아무 것도 그릴 수 없었다.

  윤숙희가 언젠가 내게 말했다.

 

‘누굴 만나든 가슴에 묻어야 할 사람은 있어.’

 

  몸속에서 새떼가 날아오르는 소리가 났다.

  무엇보다도 태준이, 태준이 결혼을 하다니.

  태준의 동그라미는 처음과 끝이 스리슬쩍 빗겨나갔다.

 

  새로 산 구두는 더 이상 나의 발을 상처 내지 않았다.

  마침내 구두가 항복한 것이다.

  새것을 길들이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회사 간부들이 신입을 트레이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는 가장 빨리 적응하는 사원을 주목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 게으름이 증폭되는 것이 실감됐다.

  나는 오래된 카키색 구두를 벗었다.

  아버지가 사준 새 흑색 구두를 신기 위해서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구두를 신으면 걸음이 멈춰지고 내가 가고 싶은 곳보다는 가야하는 곳으로 향하게 했다.

  구두는 나의 자아(EGO)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흙탕물은 밟지 않았고 집에 돌아와선 굽을 걸레질 했다.

  구두는 내 발에 의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방바닥은 뜨끈했다.

  벗어진 옷가지는 방바닥에 함부로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알몸으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귤을 까먹는 중이다.

  알몸이라 해봐야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정도는 아니고 브래지어와 팬티정도는 착용한 상태이다.

  나한테는 가당치도 않은 망사로 된 속옷.

  내 모습은 관능적인 것 같기도 하고 목욕탕에서 고스톱을 치는 아줌마 중 한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내가 입은 속옷은 검고 야하다.

 

 귤 냄새가 상큼하다.

  발목에 붙여둔 대일밴드는 때가 잔뜩 타 있었다.

  대일밴드를 뜯어내자 발목의 상처가 아닌 혓바닥에서 따끔함이 느껴졌다.

  귤의 둥근 매무새가 무너져감에 따라 회고하고 싶지 않은 실수들이 떠올랐다.

  짝사랑하던 선배 앞에서 다른 동료에게 따귀를 후려 맞았던 일, 미니스커트를 입은 두 여자를 곁눈질하며 이죽거리다 마을버스 계단에서 넘어졌던 일, 주차 중 잠시 한눈을 팔아 모퉁이를 들이받은 일. 나는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조차 직장 동료들에게 한 번도 꺼내보지 못했다.

  어쩌다 한번 꺼낸 말이 사내에 일파만파로 번져 나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별 생각 없이 미비한 교통사고 이야기를 꺼냈다가 이튿날 내 차가 ‘뭉개졌다’는 말로 내 귀에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의도하지 않는 부메랑과 사람들의 입은 내게 보이지 않는 공포였다.

  나는 이제 소문에 주석을 다는 일을 포기했다. 

  태준은 내 새 구두같은 여자와 결혼했다.

  아름답고 탐나지만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

  얼마나 신고 걸어 다녀야 구두는 발을 아껴줄 마음이 생겨날까.

  나는 내게 가당찮은 구두를 길들이려고 했고 태준도 그랬다.

  나는 태준에게 충고하고 싶었다.

  신발이라면 그저 구두처럼 생긴 운동화가 제일 좋다.

  어떤 옷에도 잘 어울릴만한 신발.

  너무 구두다운 구두나 너무 운동화다운 운동화는 사절이다.

  나는 구두같은 운동화가 좋고 운동화같은 구두가 좋다.

  결혼이 불가능한 남녀가 사랑같은 우정을 나누듯이.

  발바닥에 충격을 주지 않으며 발가락 어디에 몸의 중심을 줘도 끄떡도 하지 않을 신발.

  나는 새 구두가 더 이상 자신의 발을 뜯어먹게 하지 않기 위해 발목에다 대일밴드를 붙였다.

  으레 사람들은 이렇게 발의 상처를 줄여나간다.

  그때까지도 태준은 아내와 헤어지지 않았다.

  신귤이 나올 때면 사람들은 결혼을 많이 한다. 

  나는 귤이 좋다.

  귤은 사과처럼 직설적으로 멍을 드러내지 않는다.

  귤을 먹다 싫증이 나면 귤을 벽 쪽으로 가볍게 던진다.

  귤이 커틀콕처럼 맞은 편 벽을 들이받고 다시 내 쪽으로 굴러 들어왔다.

  귤을 볼링공처럼 굴려 보기도 했다.

  귤은 핀이 없는 벽으로 고꾸라졌다. 

  귤을 만지는 동안에는 나는 어린애가 된다.

  귤을 이렇게 굴리고 던질 때는 귤의 과육이 상하지 않을 선에서만 해야 한다.

  과일에 단맛을 내는 곳은 액포.

  가을사과가 맛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당히 오래된 것.

  나는 내 몸에서 가장 액포다운 부위에 요란한 악세사리를 달곤 했다.

  나름대로 경력을 쌓은 사회인이 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야한 속옷을 입고 그 위에 허름한 겉옷을 걸친다.

  나의 티스트링팬티와 망사 브래지어를 벗기던 그의 손길이 떨렸다.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은 남녀의 심드렁한 나체.

  허공에서 목소리가 유리조각처럼 부서졌다.

 

  ―구두가 아주 편하게 느껴질 그때 가장 조심해야 해.

 

  집에 둔 귤은 무르지도 않고 여전히 동그랗게 주홍으로 빛나고 있었다.

  곧 있으면 바빠질 텐데 이런 한가한 시간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직장은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승진에 대한 희망은 없다.

  몸이 떨렸다.

  연말정산 시즌에는 이제껏 모아두었던 전기요금, 도시가스 등의 고지서 영수증을 내다버렸다.

  아무도 내게 돈을 내지 않았다고 따지러 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공허했다. 까

  놓은 귤껍질들이 널려 있었다.

  꽃잎 같은 그것들을 살며시 입안에 넣기 시작했다.

  귤 알맹이들은 그대로 방바닥에 굴려버렸다.

  건조한 겨울의 온돌방 안에서 저 말랑말랑하고 먹음직한 알맹이들이 밥풀처럼 수분을 빼앗기고 굳어져 있을 거다.

  스트레스호르몬은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