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에서 동북쪽으로 22km떨어진 대구 동구 도학동 35번지 팔공산 남쪽 기슭에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화상이 세운 절로, 그때 이름은 유가사였으나, 흥덕왕 7년(832년)에 심지왕사가 다시 세울 때 겨울철인데도 경내에 오동나무가 활짝 피었다고 해서 동화사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한다.
절 입구는 수목이 우거져 있고 사철 맑은물이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지금의 대웅전은 1727년에 중건한 것이며 염불암을 비롯 6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대웅전 앞 누각에 "영남치영아문"이라는 현판이 있어 사명대사가 임진왜란때 승군을 지휘한 본부가 동화사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동화사 경내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높이 33m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을 세워 온 국민의 통일 염원을 모으고 있으며, 대구 경북지역을 관리하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9교구 본사이다.
주요문화재로는
- 마애불좌상 보물 제243호
- 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상 보물 제244호
- 비로암3층석탑 보물 제247호
- 금당암3층석탑 보물 제248호
- 당간지주 보물 제254호
- 지방문화재 : 대웅전, 극락전, 부도군
- 지방민속문화재 : 수마제전, 사명당대장진영 등이 있다.
2.파계사
파계사는 대구 동구 중대동 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1927년에 쓰여진 파계사 사적기에는 804년에 심지왕사가 파계사를 처음 세웠고 1605년
계관법사가 중건했으며 1,695년에 현응조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이 곳은 동화사와 더불어 대구 지방의 유명한 풍치지구이며, 조계종 제9교구의 본산인
동화사의 말사로서 불상, 석등, 석불, 영조대왕의 어의가 보관되어 있다.
영산회상도는 구도나 형식에서 특색을 갖추고 있고 필법과 채색 또한 품격을 지닌 뛰
어난 작품으로 18세기초를 대표하는 불화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주요문화재로는
원통전(지방문화재 제7호),
원통전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
영산회상도(후불탱화 보물 제1214호)
민속문화재(시지정): 설선당, 산령각, 적묵당, 진동루, 기영각 등이 있다.
3.불로동 고분군
불로동 고분군은 금호강유역에 접하고 있으며, 불로동에서 팔공산으로 가는 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와 만나는 지점의 동쪽 구릉에 분포하고 있다.
총 211기의 대소고분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 곳은 1938년과 1963년 두차례에 걸쳐 몇기만 표본 발굴 조사한 결과 내부구조는 냇돌 또는 깬돌로 사방 벽을 쌓고 큼직한 판석으로 뚜껑을 덮은 장방형의 수혈식 석곽으로 금동제의 장신구와 철제무기, 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이들 출토유물로 보아서는 대구지역의 타 고분들 특히 비산동, 내당동 등의 고분군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고분의 입지가 구릉이라는 점과 내부가 할석으로 축조되었고, 석곽이 좁고 긴 점 등이 이들과 유사하여 같은 계통임을 짐작케 한다. 전체 고분군의 축조시기는 대략 5∼6세기에 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불로동 고분군은 대구 일대에 현존하는 고분들 중 외형적인 형태를 가장 잘 갖추고 있고 좁은 지역에 많은 고분들이 밀집해 있는 점 등에서 고대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고, 대구분지내에서 비슷한 권력집단이 내당동, 비산동, 불로동 등 곳곳에 할거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자료로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적 제262호(1978.6.23.지정)이다.
4.도동서원
서원건축의 백미를 맞볼수 있는 도동서원은 대구경상도 지역에 있는 서원중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다. 도동서원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앞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뒤에는 아담한 산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라 주위 광경 또한 수려할 뿐만 아니라 서원앞에 수령 400년이 된 은행나무가 전설처럼 자리잡고 있어 서원이 가진 유구한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도동서원은 병산, 도산, 옥산, 소수 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서원중이 하나며 조선 중기 서원의 모범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도동이라는 의미는 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도동서원의 건물 자체가 성리학적인 세계관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대구시에서 지정한 문화유산 해설사가 상주해서 관광객을 위한 해설을 직접해주고 있는데 만약 이런 진중한 설명을 들어보지 않는다면 그저 어디에서는 볼수 있는 낯익은 한옥 한채를 보고 집에 가는 밋밋한 관광이 될것이다. 특별히 문화유산 해설사가 이곳에 상주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다.
이곳은 한휜당 김굉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 건립된 곳이라 더욱 유명할 수 밖에 없다. 한휜당 김굉필은 1454년(단종 2년) 서울 정릉에서 태어나 아내의 고향인 현풍현에 이주하여 살게 되었는데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을 배우면서 소학에 심취해 소학동자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후 성균관에 입학하고 감찰, 형조좌랑을 지냈으나 무오사화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갑자사화때 극형에 처해졌다. 후에 선조 10년에 와서 성균관 유생들에 의해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조선 5현으로 문묘에 종사되신 분이다.
도동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훼손되지 않고 남아서 거의보존이 잘되어 있다. 이 서원 건축자체가 성리학의 세계관에 따라 만들어진 터라 모두 의미있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해 볼만한 곳은 담장과 강당, 수월루다. 은행나무를 구경한후 제일먼저 수월루를 지나게 되는데 수월루는 일종의 누각으로 공부하던 선비들이 잠깐 휴식을 취할수 있는 곳이다. 이 누각에 올라서 내려다 보면 낙동강과 평야가 한눈에 들어와 그 광경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수월루를 지나 강당으로 들어서면 이 강당에 걸려있는 현판도 물론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계단사이에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자람쥐 모양의 길함을 나타내는 동물상과 서화가 조각되어 있어 아주 의미깊다.
이 서원의 담장은 특히 아름다워 전국에서 최초로 토담이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었다. 돌과 흙과 기와를 골고루 이용해 만든 축조기법이나 수막새의 장식무늬등은 빼어나다. 또하나 이곳의 창문을 눈여겨 봐야 한다. 대부분은 방문처럼 여닫이로 되어 있지만 이 여닫이 위에 미닫이로 창문이 덧되어 있다. 이런 양식은 우리가 그동안 잘 볼수 없었던 양식이라 매우 인상깊었다.
대구의 문화재!!
1.동화사
대구 도심에서 동북쪽으로 22km떨어진 대구 동구 도학동 35번지 팔공산 남쪽 기슭에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화상이 세운 절로, 그때 이름은 유가사였으나, 흥덕왕 7년(832년)에 심지왕사가 다시 세울 때 겨울철인데도 경내에 오동나무가 활짝 피었다고 해서 동화사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한다.
절 입구는 수목이 우거져 있고 사철 맑은물이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지금의 대웅전은 1727년에 중건한 것이며 염불암을 비롯 6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대웅전 앞 누각에 "영남치영아문"이라는 현판이 있어 사명대사가 임진왜란때 승군을 지휘한 본부가 동화사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동화사 경내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높이 33m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을 세워 온 국민의 통일 염원을 모으고 있으며, 대구 경북지역을 관리하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9교구 본사이다.
주요문화재로는
- 마애불좌상 보물 제243호
- 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상 보물 제244호
- 비로암3층석탑 보물 제247호
- 금당암3층석탑 보물 제248호
- 당간지주 보물 제254호
- 지방문화재 : 대웅전, 극락전, 부도군
- 지방민속문화재 : 수마제전, 사명당대장진영 등이 있다.
2.파계사
파계사는 대구 동구 중대동 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1927년에 쓰여진 파계사 사적기에는 804년에 심지왕사가 파계사를 처음 세웠고 1605년
계관법사가 중건했으며 1,695년에 현응조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이 곳은 동화사와 더불어 대구 지방의 유명한 풍치지구이며, 조계종 제9교구의 본산인
동화사의 말사로서 불상, 석등, 석불, 영조대왕의 어의가 보관되어 있다.
영산회상도는 구도나 형식에서 특색을 갖추고 있고 필법과 채색 또한 품격을 지닌 뛰
어난 작품으로 18세기초를 대표하는 불화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주요문화재로는
원통전(지방문화재 제7호),
원통전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
영산회상도(후불탱화 보물 제1214호)
민속문화재(시지정): 설선당, 산령각, 적묵당, 진동루, 기영각 등이 있다.
3.불로동 고분군
불로동 고분군은 금호강유역에 접하고 있으며, 불로동에서 팔공산으로 가는 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와 만나는 지점의 동쪽 구릉에 분포하고 있다.
총 211기의 대소고분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 곳은 1938년과 1963년 두차례에 걸쳐 몇기만 표본 발굴 조사한 결과 내부구조는 냇돌 또는 깬돌로 사방 벽을 쌓고 큼직한 판석으로 뚜껑을 덮은 장방형의 수혈식 석곽으로 금동제의 장신구와 철제무기, 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이들 출토유물로 보아서는 대구지역의 타 고분들 특히 비산동, 내당동 등의 고분군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고분의 입지가 구릉이라는 점과 내부가 할석으로 축조되었고, 석곽이 좁고 긴 점 등이 이들과 유사하여 같은 계통임을 짐작케 한다. 전체 고분군의 축조시기는 대략 5∼6세기에 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불로동 고분군은 대구 일대에 현존하는 고분들 중 외형적인 형태를 가장 잘 갖추고 있고 좁은 지역에 많은 고분들이 밀집해 있는 점 등에서 고대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고, 대구분지내에서 비슷한 권력집단이 내당동, 비산동, 불로동 등 곳곳에 할거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자료로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적 제262호(1978.6.23.지정)이다.
4.도동서원
서원건축의 백미를 맞볼수 있는 도동서원은 대구경상도 지역에 있는 서원중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다. 도동서원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앞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뒤에는 아담한 산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라 주위 광경 또한 수려할 뿐만 아니라 서원앞에 수령 400년이 된 은행나무가 전설처럼 자리잡고 있어 서원이 가진 유구한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도동서원은 병산, 도산, 옥산, 소수 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서원중이 하나며 조선 중기 서원의 모범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도동이라는 의미는 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도동서원의 건물 자체가 성리학적인 세계관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대구시에서 지정한 문화유산 해설사가 상주해서 관광객을 위한 해설을 직접해주고 있는데 만약 이런 진중한 설명을 들어보지 않는다면 그저 어디에서는 볼수 있는 낯익은 한옥 한채를 보고 집에 가는 밋밋한 관광이 될것이다. 특별히 문화유산 해설사가 이곳에 상주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다.
이곳은 한휜당 김굉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 건립된 곳이라 더욱 유명할 수 밖에 없다. 한휜당 김굉필은 1454년(단종 2년) 서울 정릉에서 태어나 아내의 고향인 현풍현에 이주하여 살게 되었는데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을 배우면서 소학에 심취해 소학동자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후 성균관에 입학하고 감찰, 형조좌랑을 지냈으나 무오사화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갑자사화때 극형에 처해졌다. 후에 선조 10년에 와서 성균관 유생들에 의해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조선 5현으로 문묘에 종사되신 분이다.
도동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훼손되지 않고 남아서 거의보존이 잘되어 있다. 이 서원 건축자체가 성리학의 세계관에 따라 만들어진 터라 모두 의미있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해 볼만한 곳은 담장과 강당, 수월루다. 은행나무를 구경한후 제일먼저 수월루를 지나게 되는데 수월루는 일종의 누각으로 공부하던 선비들이 잠깐 휴식을 취할수 있는 곳이다. 이 누각에 올라서 내려다 보면 낙동강과 평야가 한눈에 들어와 그 광경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수월루를 지나 강당으로 들어서면 이 강당에 걸려있는 현판도 물론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계단사이에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자람쥐 모양의 길함을 나타내는 동물상과 서화가 조각되어 있어 아주 의미깊다.
이 서원의 담장은 특히 아름다워 전국에서 최초로 토담이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었다. 돌과 흙과 기와를 골고루 이용해 만든 축조기법이나 수막새의 장식무늬등은 빼어나다. 또하나 이곳의 창문을 눈여겨 봐야 한다. 대부분은 방문처럼 여닫이로 되어 있지만 이 여닫이 위에 미닫이로 창문이 덧되어 있다. 이런 양식은 우리가 그동안 잘 볼수 없었던 양식이라 매우 인상깊었다.
도동서원앞에 관광센터에 문화유산해설사의 해설을 요청하면 서원관광의 즐거움을 맛볼수 있다.
(출처 : '대구의 유명한 문화재나 볼거리좀 가르쳐주세요.' - 네이버 지식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