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그 남자 그 여자 <1>

이원영2006.10.30
조회1,481

[그 여자]

 

삼촌이 동남아시아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한 달정도 바람이나 쐬고 오겠단다.


결혼을 약속했던 애인과 헤어진 충격이 너무나 컸나 보다...


덕분에 삼촌이 운영하던 만화가게를 한달간 대신 맡아야 했다.


휴학하고 노느니 아르바이트 하는 셈치고 있으라 하지만


백수들이 들끓는 늑대 소굴로 가는 느낌이 영 찝찌름하다.


내 미모에 맛이 간 남정네들이 날 덮치기라도 하면...

 


윽!!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다!!

 

 

 

 


 

[그 남자]

 

제대하고 복학해 보니 학교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다.


동기들은 전부 어디로 사라졌는지 통 보이지를 않고


개떼처럼 밥 사달라고 몰려 다니는 후배놈들만 있다.


왜 쌈박한 후배년은 눈에 안 띄는지 몰라-_-?

 

수강 신청하는데 못 보던 과목이 하나 생겼다.

 

 

 '문화속의 페미니즘' 이라!

 

 

몇 년 사이에 여권신장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늘었나 보군...


아무래도 저 수업은 반드시 들어줘야 할 거 같다.


기필코! 반드시!  난 여성의 인권에 관심이 많거든!! 하하하!!

 

 

 

 

 

 


 

[그 여자]

 

만화가게 생활이 생각한 것보다는 괜찮다.


아침 저녁으로 청소 한 번 해주면 별로 신경 쓸 것이 없다.


손님들 대부분이 단골 백수들이라 그런지 알아서 척척이다.


가끔은 나한테 조언까지 해 준다-_-

 


유일하게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있다면


처음 본 사람들이 날 가끔 남자로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상당히 예쁘게 생겼네. 여자 같다는 말 자주 들을 거 같아요

 하하!"

 


"어... 저... 여자인데여..."

 


"하하! 맞받아 치는 솜씨도 제법이네요! 재치 점수 백만 스무 점

드립니다 하하!!"

 


"진짜 여자인데여..."

 


"하하!!... 하하... 하... ... ... ... ... -_-;;... ... ..."

 


손님들 중 태반이 내가 여자란 걸 모르는 분위기다.


머리 하기 귀찮아서 귀밑까지 짧게 자른 게 원인인가 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 같이 귀엽고 깜찍한 여자를 보고 남자로 오해할 수


있냐 말이다!

 

 

 

 

 

 

 


 

[그 남자]


 '문화속의 페미니즘'...


이 과목을 들은 게 내 인생 최대 실수 중 하나가 될 듯 하다-_-


도대체가 말이야! 수강생 50명 중 45명이 남자일수가 있냔 말


이다!

 


"남학생들이 여성 인권 신장에 관심이 있다니! 바람직한 현상

 이에여! 호호호!!"

 


'B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올법한 40대 노처녀 여교수님이 우릴


환영한다. 전부 속았다는 얼굴 표정이다. 그러나 어쩌랴!


수강 변경 기간도 지났으니...

 


"문화속에서 여성의 성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만화를 통해 알

아 보도록 하겠어요. 호호호! 다들, 다음주까지 성인만화책을

보고 레포트를 제출하기 바래요 호호호!"

 


말끝마다 '호호호!'를 외치는 여교수님...


그대는 싱싱한 총각들로 가득한 수업시간이 행복할지 모르지만


우린 홀아비 냄새에 숨이 다 막힌다구!!

 

 

 

 

 

 


 

[그 여자]

실내에서 담배를 피지 못하게 했더니 전부 화장실에 몰려가서


담배를 핀다.


청소하러 한 번씩 들어가면 너구리 잡으려고 불 피어 놓은


거 같아 숨이 막힌다.


방금도 고등학생 애들이 담배를 폈는지 연기가 가득하다.


빨랑 청소를 하고 나가야겠다.

 


청소를 하다말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봤다.


가만 보니... 진짜 미소년처럼 생겼네...


마치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남장여인같은 얼굴이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립스틱을 꺼냈다.


화장하는 거 귀찮아서 질색이지만 립스틱이라도 바르면


적어도 남자라는 소리는 안 하겠지...

 


막 립스틱으로 입술을 그리려는데

 


"덜컥!"

 


누군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화들짝 놀라 립스틱을 얼른 감추었다.


슬쩍 보니 덩치 좋은 남자가 날 의심쩍은 눈으로 쳐다본다.


어머... 그가 잔뜩 인상을 쓰고 날 쳐다본다.


웬 여자가 남자 화장실에서 이상한 짓 하냐고 혼낼 거 같아서


얼른 밖으로 나왔다.

 

치! 나 아무짓도 안 했다 머!


그냥 립스틱 좀 그리려고 그랬던 거란 말이다!

 

 

 

 

 

 

 

[그 남자]


간만에 단골 만화가게에 갔다.


군대 가기 전 휴학 했을 때는 거의 살다시피 했었는데...


제대하고 처음 왔는데도 분위기는 그대로다.


근데 주인형이 안 보인다.


잠시 화장실 갔나...?

 


주인형이 있나 화장실을 들여다 보았다.

 

"덜컥!"

 

화장실 문을 여니 누가 너구리를 잡는 듯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담배 연기 사이로 고등학교 남자애가 무언가를 숨긴다!


아무래도 담배를 숨기는 듯 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그러는지...


나 고등학교 때는 공사중인 건물 같은 곳에 몰래 숨어서 폈지


이렇게 사람 많은 화장실에는 꿈도 못 꾸었다!

 


순진하게 생긴 걸 보니 따끔하게 말하면 다음부터 안 필 것도


같아 한마디 하려고 했더니만 잽싸게 도망나가 버린다...


하여튼 요즘 애새끼들은 싸가지가 보자기라니깐!

 

 

 

 

 

 


 

[그 여자]


아직도 콩탁콩탁 가슴이 뛴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떨리지!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 사람이 화장실에서 나온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더니, 내 앞에서 주춤거리다가 발


걸음을 돌린다...

 

휴우... 다행이다...

 

책을 정리하는 척 하면서 슬쩍 그 사람을 봤다.


흠... 키는 180정도 되어 보이고...


체격은 상당히 좋은걸... 오호 저 팔뚝 봐라. 허벅지도 괜찮고...


내가 무슨 생각하는 거냐... 정신차리라구! 아무리 굶주렸대두


저 정도 남자는 쎄고 쎘다구! 이 시간에 만화가게나 들락거리


는 남자 뻔할 뻔자라구! 신경 끄자!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내 맘대로 되는가...


솔직히 난 그 사람 안 쳐다 보는데 그사람이 날 자꾸 쳐다본다.


책장에서 만화책을 뺐다 넣었다 하면서 내 얼굴을 슬쩍슬쩍 쳐


다본다.

 


에구... 꼴에 보는 눈은 있어서...


그래... 내가 생각해도 난 좀 예쁘고 귀엽지 호호!!


그래도... 내가 처음 보는 남자품에 얼싸 안겨 푸른 불빛 아래


춤추는 댄서의 순정일 줄 아냐!


흥! 쳐다봐도 소용 없네요 아저씨!


근데... 왜 이렇게 가슴이 진정이 안 된다냐...

 

 

 

 

 

[그 남자]


애새끼 귓방망이를 한대 갈겨 주려고 나왔는데...


저놈시키가 카운터에 앉아 있네...


주인형이 아르바이트생을 쓴 건가...


아무리 아르바이트라도 그렇지 말야. 지가 여기를 관리해야 하는


데 화장실에 짱 박혀 담배나 피고 있단 말이야! 으아! 이 치밀어


오르는 싸나이 정의감이여!!

 


귓방망이는 놔두더라도 한 마디 해야겠다 싶어 카운터로 갔다.


근데 녀석은 지 잘못을 아는 듯 깊이 반성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 나도 고등학교 때 담배 피고 그랬었지...


이번 한 번만 봐 주자...


저 나이때는 오히려 반항심이 심해서 더 거부할지도 몰라...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만화책이나 고르려 책장 앞에 섰다.

 


[오빠 날 죽여요!]  

 

[물레방앗간에서의 떡방아!]

 


제목만 봐도 '불끈불끈'한 것이 마구 치밀어 올랐다.


이중에서 한 두개만 봐도 훌륭한 레포트가 작성되지 않을까...


룰루랄라 몇 권을 꺼내서 카운터로 들고 가려는 순간...

 

 

'앗!'

 


카운터에 앉아 있던 녀석과 눈이 마주쳐 버리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책들을 다시 책장에 꽂았다...


빌어먹을... 저 어린놈에게 이걸 빌리겠다 말할 순 없자나...

 

 

 


상황 상상


"자! 이것을 빌리겠다!"

 

"허억! 오빠 날 죽여요! 를 빌리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임마! 왜 안 돼냐! 난 임마 군대도 갔다왔단 말이다!"

 

"형님이 빌리시겠다면 저도 나중에 이 만화책을 보겠습니다!"

 

"아니! 이 자쉭이! 미성년자가 이런 책을 보겠단 말이냐!! 한 대

 맞아라! 퍼억!"

 

"으헉! 왜 때리십니까! 왜 절 때리시느냔 말입니다!!"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었자나! 하낫 둘 s(-_-)z"

 

 

흠... 도저히 저런 상황이 나온다는 건...


라스베가스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법...

 

십분이 넘도록 성인만화 코너에서 망설이며 서 있어야 했다.


저걸 빌리지 못하면 레포트를 쓰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저걸 빌리자니 저놈 눈치가 보이고...


근데 왜 저 자식은 날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는 거야!


마치 저 자식의 눈빛은 '형님은 제 나이 때 저보다 더 날라리셨


군요 하하!'라고 말하는 거 같잖아!

 

결국 난 녀석의 눈치를 살피다가 '만화로 읽는 삼국지'를 빌려


야 했다.


젠장! 만화로 보는 삼국지라니!...

 

 

 

 

 

 

[다음편 예고]

 

서로에 대해 엉뚱한 생각을 하는 두 남녀가 헬스클럽에서 만났


는데...

 

 

과연 어떻게 일이 진행이 될까...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

 

 

작가의 미니 홈피 : http://www.cyworld.com/harang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