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과 인사를 하고 자전거를 놓고온 곳으로 달리면서 수십번은 뒤를 돌아 정민의 모습을 훔쳐보던 재하는 정민이 뒤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옆에 나있는 좁은 골목으로 공이 튀듯 튀어 들어갔다. 아직까지도 미친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놓으며 행복한 미 소를 지어보는 재하. 헐떡이는 숨이 안정을 되찾을때쯤 재하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재하의 심장에 정민의 얼굴을 새기기 시작한것은 재하와 정민이 겨우 8살일때 부터였다. 아침이면 웃으며 '안녕!'하고 재하에게 인사를 해오던 정민을 겨우 8살때부터 좋아했던 것이다. 졸업을 한 후, 단 한번도 만날수도, 소식을 전해들을수도 없었지만 이미 새겨진 정민의 얼굴은 언제 나 재하의 심장안에서 함께 했었다. 사랑이라 부르기엔 성급하다 하겠지만 잊지않고 간직했던 재하 의 소중한 첫사랑 서정민. 그런 정민을 오늘 만난 것이다. 재하는 혼자 웃고있는 자신의 지금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알지도 못한채 주머니에 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전화를 걸자 상대방은 신호음이 울림과 동시에 전화를 받았다. "스피드 치킨입니다." "기범아!" "재하냐? 살아있었냐?" "하하! 기범아!" "왜. 이제 좀 한가하냐? 회사일 배운다고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이제 좀 살만한가봐?" "짜식이. 삐졌냐?" "나도 바쁘다. 튀겨달라고 애원하는 닭들이 줄을 섰거든. 왜 전화했냐?" "기범아. 내가 예쁜 여자친구 데리고 가면 치킨 한마리 써비스로 줄꺼냐?" "여자친구?" 재하의 말에 놀라는 기범이였다. 무엇하나 부족할것 없는 재하는 지금껏 괜찮은 여자들을 수 도없이 마다했었기 때문이다. 늘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로 웃으며 넘기곤 했지만 그런 재하 를 보며 기범은 혹시 이놈이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 아닐까 내심 걱정을 해왔었다. 수화기를 통 해 들뜬 목소리로 여자친구라고 말하고있는 재하의 목소리에 기범이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 이었다. "여자 생겼냐?" "기범아! 드디어 만났어. 만났다니까?" "도대체 어떤 여잔데? 쭉쭉빵빵하고 모델 뺨치는 여자도 싫다더니, 뭐하는 여잔데?" "비밀! 기범아! 나 지금... 행복한거 같다?" "새끼야. 궁금하게 하지말고 말해. 또 어디가서 이상한 여자데리고 와서 그러는건 아니지?" "뭐야? 감히 형수님이 되실분한테 이상한 여자라니!" "언제 올껀데?" "아직.. 그 사람은 내 마음을 몰라. 며칠내로 데려갈테니까 그때 애인이니 그런소리는 하지 말고 그냥 봐주기만해라. 알았냐? 당연히 치킨은 써비스다!" "뭐냐. 애인도 아니네. 니 나이가 몇인데 짝사랑이냐?" "아~ 글쎄~ 꼭 내여자 만들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래. 알았다. 형님이 면접봐줄테니 한번 데리고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행복해하는 재하의 모습에 걱정부터 앞서는 기범과는 달리 재하 는 핸드폰이 정민이라도 되는냥 가슴에 꼭 끌어안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있었다. 재즈음악이 흐르는 어두운 술집안에는 늦은 시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여기저기 취한 사람들이 반쯤 정신을 놓은채 웃으며 한손에는 담배를, 한손에는 양주잔을 들고 듣고 있기에도 민망한 야한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술집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고급스러운 룸. 그안에 태형이 있었다. 재즈음악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4명의 여자들에게 크게 웃으며 수표를 뿌리는 태형. "어떤 짓을 하고다녀도 된다고? 좋아. 잘봐.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태형은 하얗게 질린 정민의 마지막 얼굴을 떨치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앞에 놓인 양주를 들이켰다. "박윤미. 훗.. 니가 먼저 지치나 내가 먼저 지치나, 어디 한번 해보자고." 태형은 가까이 있는 여자의 손을 당겨 자신의 몸위에 얹은후 거의 드러나 보이는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정신없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태형의 입속에 여자의 가슴이 들어왔고, 태형의 성기가 여자의 다리사이에서 꾸물거리고 있음에도 태형의 머리속은 정민의 말이 쉬지않고 괴롭혔다. "날... 사랑한거 아니었어?" '사랑해. 씨팔. 미치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정민아..' 태형은 흐르는 눈물을 숨기려는 듯이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문지르며 여자의 팬티를 벗 겼다. "엄마. 나왔어." "박서방은? 같이 안왔어?" "응.." "왜? 아유.. 박서방주려고 박서방이 제일 좋아하는 호박죽 해놨는데.." 정민은 부엌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민의 엄마는 큰 냄비 두개 가득히 호박죽을 해놓으신 것이다. 요즘들어 뜸해진 태형이때문에 오늘은 꼭 데리고 오라고 신 신당부를 했던 엄마였다. 많이 섭섭하셨는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는 엄마의 모습을 보 며 정민은 차마 헤어졌다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정민 역시 태형과의 이별이 아직 현실적 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음으로 엄마에게 애꿎은 핀잔만 줄 뿐이었다. "뭘 이렇게 많이 했어. 먹을 사람 태형이밖에 없는데.. 이런거 할시간 있으면 병원이나 잘다녀." "얘는... 박서방이 호박죽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일 안만나니?" "안만나." "싸웠어? 이것아. 괜히 성질대로 덤벼들지말고 박서방한테 잘해."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괜시리 화가나서 엄마에게 큰소리를 쳐버린 정민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몇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아빠 꿈을 꾸는지 밤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엄마때문에 항상 열어두는 방문을 닫았다는 것은 혼자있고 싶다는 엄마와 정민, 둘만의 암호같은 것이었 다. 방안으로 들어온 정민은 핸드백을 대충 방에 내던지고 겉옷을 벗은후 쪼그리고 앉 아 다리 사이에 고개를 숨겼다. 정민의 엄마는 두사람의 암호를 무시하고 여전히 거실에서 정민을 꾸중하셨다. "박서방만한 사람 없어. 이것아. 니가 잘해야 되는거야. 알았니? 여자가 사근사근한 맛 이 있어야지, 너처럼 꼿꼿하기만 하면... 있던 정도 떨어지는거야." "얘. 넌 일요일인데 남들 다하는 데이트도 안하고 집에만 쳐박혀있니?" "그렇게 아들을 밖으로 내몰고 싶으세요? 알았어요. 알았어. 조금만 기다리시라니까 요?" "어머, 얘좀봐? 전에는 엄마랑 평생 살껀데요~ 그러더니 말이 바꼈네? 뭐니? 엄마에 대한 사랑이 식은거니? 아니면 애인이라도 생긴거니?" "글쎄요. 어머니의 판단에 밑길께요." "여보. 재하녀석 애인생겼나봐요." "녀석아. 애인이 생겼으면 제일 먼저 우리 앞에 데려와야지! 어디다 숨겨논거야?" "제 걱정마시고 두분이나 오붓하게 데이트하세요^-^" 넉살좋게 부모님의 공격을 막아낸 재하는 '허허. 고녀석.'이라는 말만 하시며 웃고 계 시는 아버지와 부끄러워 하시는 어머니에게 찡긋 윙크를 해보이고는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 들어선 재하는 책장의 맨 아래에 꽂혀있는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꺼내어 이제 는 감각만으로도 찾을수 있는 6학년 7반 아이들의 얼굴이 담긴 페이지를 펼쳤다. 그중 재하의 시선을 차지하는 사진은 단연 정민의 얼굴이었다. 긴장한듯해 보이는 정민의 얼굴에 재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앨범을 들고 책상으로 간 재하는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어 정민의 사진을 조심조심 오 려내고는 앨범을 아무곳에나 끼워 넣었다. 정민의 사진이 없는 앨범은 재하에게 더이 상 의미가 없었다. "내가 널 얼마나 보고싶어 했는지, 혹시 니 소식 들을수 있을까 동창찾아준다는 싸이 트에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드나들었는지... 니가 알까? 모르지? 이 멍청이." 재하는 정민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툭 팅기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비록 사진일지 라도 정민을 때린게 미안해진 재하는 옆에 있는 티슈 한장을 뽑아 사진을 정성스레 닦은후 지갑에 끼워넣었다. 정민의 얼굴이 있던 앨범대신 이제는 재하의 지갑이 재하 의 보물 1호가 된것이다. 혼자 있는 서재였건만 누가 지갑을 뺏어가기라도 할까 싶어 얼른 주머니에 넣고 지갑의 존재감을 느끼며 컴퓨터를 켰다. 재하는 인터넷창을 열어 검색란에 '민들레'를 적어넣고 엔터를 눌렀다. 오후가 훌쩍 지나버린 시간이었지만 태형은 아침까지 룸에서 여자들과 즐기며 술을 마신 탓에 잠에 취해있었다. 숙취때문인지 잦은 신음을 뱉어가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고있는 태형이를 깨운것은 지치지않고 울려대는 핸드폰 벨소리였다. 손끝하나 움직이기 귀찮은 태형은 몇번이고 핸드폰 벨소리를 무시했지만, 태형이 받 지않는다면 전화를 건 상대도 포기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에 끄응 소리를 내며 침 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앉자마자 찾아오는 두통에 태형은 머리를 두드리며 전화를 받 았다. "네." "아직 자니?" "누구야." "신부 목소리도 몰라보는 신랑. 매력없어." "자는거 알면서 왜 자꾸 전화질이야." "오늘 우리집에서 저녁먹기로 한거 잊지않았지?" "그래." "우리 부모님 앞에서도 나한테 그럴꺼니?" "내가 뭘 어쨌는데." "안그러는게 좋을껄?" "..." "우리 사이 안좋다고 소문나면 아빠 감시 더 심해질꺼야. 결혼해서까지 아빠 감시 받고싶지 않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결론만 애기해." "다정한척해. 뭐 약간의 스킨쉽도 괜찮겠다." "스킨쉽? 니 얼굴 보는것도 고문인데 만지라고? 하하." "나도 마찬가지야. 결혼해서 각자 생활 즐기고 싶으면 지금 힘든편이 낫지 않아?" "제길. 알았어." 태형은 짹짹거리는 윤미 목소리에 짜증과 함께 심한 갈증이 밀려와 전화를 끊어버 리고는 흐트러진 머리를 만지며 주방으로 향했다. "정민아. 이거 가지고가." "이게 뭔데?" 태형이 이별을 말한 그날 밤부터 어제인 일요일 내내, 그리고 새벽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있던 정민은 결국 늦잠을 자버렸다. 정민은 이틀이라는 시간동안 주인을 기다리는 버려진 강아지처럼 불안에 떨며 태형의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던 자신 의 모습을 떨쳐버리려 애쓰며 출근준비를 서둘렀다. 행여 지각이라도 할까싶어 분주한 정민을 붙잡고 정민의 엄마는 보온병 두개가 담 긴 쇼핑백을 쥐어 주셨다. "호박죽이야. 점심시간에 맞혀서 박서방한테 갖다줘." "엄마. 나 바빠." "그럼 퇴근하고 만나서줘. 호박 좋은걸로만 골라서 만든거야. 그러게 어제 박서 방 불렀으면 좋잖아. 기지배 누굴 닮아서 지 고집대로만 하려는지..쯔쯔" 계속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있을 시간도 없었고, 듣고싶지도 않은 정민은 할수없이 손에 들린 쇼핑백과 함께 손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태형이와 떨어지는 은행나무잎을 주워 서로에게 뿌려주는 유치한 장난을 했던게 엊그제인것만 같은데 벌써 날씨는 제법 쌀쌀해져 있었다. 날씨를 짐작하지 못하고 얇게 입고나온 정민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추려졌다. 손에 들린 쇼핑백은 출근길에서부터 애물단지였다. 손이 시려움에도 버릴수도 없어 들고가야 하는 호박죽이 담긴 쇼핑백. 정민은 정민이 속해있는 기획실 식구들과 나 눠먹어야겠다 생각하며 지하철역으로 빠르게 걸었다. "첫출근 축하해." "별로." "아빠한테 인사드리러 가야지?" "너도 가게?" "같이 가야 좋아하시지." "어제로 충분해." "그래 그럼. 나도 귀찮았으니까." 태형은 아버지와 함깨 수호그룹에서 유정그룹으로 회사를 옴겼고 바로 오늘이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어제 윤미의 가족들과의 저녁식사는 최악이었다. 우습지도 않은 박회장의 농담에 웃어주며, 윤미에게 반찬까지 올려주는 자신이 저 질스러운 꽁트를 하고있는 배우같았다. 하지만 이것이 꽁트면 또 어떠라햐. 태형은 그저 시키는데로, 하라는데로 따를수 밖에 없는 인형일 뿐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회장실로 향하는 태형의 뒷모습은 사형을 앞둔 사형수의 뒷모습 을 연상시켰다. "안녕하세요." "정민씨 왔어?" "선배님. 주말 잘보내셨어요?" "애딸린 아줌마가 주말이라고 뭐 특별할게 있나. 정민씨. 책상위에 서류 복사좀 해줄래? 30장씩! 부탁해." "네." 정민은 출근하자마자 옆자리의 김선배 부탁으로 서류철을 들고 복사실로 향했다. 출근시간인 9시가 조금 지난시간이었으므로 복사실은 한산했다. 복사기에 서류를 끼워넣고 창밖을 보며 서있는 정민. 커피라도 한잔 빼올껄..하는 후회가 생긴다. 밖에는 이미 지나버린 출근시간 때문에 허겁지겁 달려오는 지각생들이 보였다. 그리고 잎이 거의 다 떨어진 나무 한그루.. 봄부터 제몸에서 함께했던 잎사귀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저 나무의 심정이 7년이라는 긴 시간을 한마디의 말로 지워야하는 정민의 마음과 똑같을까.. 재하는 출근을 하고 책상에 앉자마자 자신의 머리를 때리고 있었다, "아이구. 이 바보. 부서도 안물어봤네. 민재하! 왜 사냐. 왜 살어!"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치며 고민하던 재하는 결국 전화기를 들었다. "저기요. 복사 더 하실거예요?" "네? 아니요." 얼마쯤 지났을까. 경리과에 있는 여자가 와서 정민이 복사가 끝난 서류들을 치 워주길 재촉했다. 다급히 서류를 챙겨들고 사무실로 돌아온 정민은 김선배와 부 장님이 서로의 대화에 빠져있는 모습에 슬그머니 선배자리에 서류를 올려놓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재밌는 구경 생기는거지." "유정은 자동차쪽 약하지 않나?" "약하지. 그래서 우리랑 손잡으려고 지금 난리잖아." "수호가 보고만 있을까요? 괜히 우리쪽까지 피해입게 되는건 아닌가?" "유정이 규모면에서는 확실히 크니까 어쩌면 우리쪽에 더 이익일수도 있지. 위에서 알아서들 하시겠지, 뭐." 정민은 두사람의 대화에 수호그룹이 신제품 출시 관련 프로젝트를 발표한후 바 로 신제품 출시 발표회 날짜를 잡은 유정그룹을 기억해냈다. 수호그룹... 태형이 다니는 회사였다. 태형의 아버지가 부사장임에도 태형은 아 버지의 힘이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수호그룹의 과장자리까지 올랐다. 20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빠른 승진이었다. '그게 이제 나와 무슨 상관이야. 일이나 하자. 서정민.' 선배와 부장님의 대화는 부장님 자리에서 울리는 전화로 인해 중지되었고 부장 님은 자리로 가셔서 전화를 받았다. "김영만 부장입니다. 네. 예.. 저희 부서 수습사원 맞습니다. 네? 아.. 무슨일로... 아.. 예. 지금요? 네. 알겠습니다. 서정민씨." "네?" 전화를 끊으신 부장님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정민을 불렀다. "혹시 낙하산인가?" "예? 아닌거 아시면서.." "낙하산같은데?" "에이.. 부장님도 참.. 저 욕심 많아요. 낙하산이면 바로 윗자리 달라고 하지, 수습으로 있겠어요?" 부장님의 농담섞인 말에 정민도 웃으며 농담으로 답했다. 하지만 개운치 않은 농담이었다. "하하. 그렇지. 혹시 민이사님하고 아는 사이야?" "이사님이요? 아니요. 얼굴도 본적없는데.." "근데 무슨 일이지? 지금 이사실로 올라가봐요." "이사실이요? 왜요?" "낸들 아나. 호출이니까 가봐요." "아...네..." "정민씨, 일저질렀어?" "아니요.." 정민은 부장님과 김선배의 시선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정민이 속해있는 기획실은 5층이었고 이사실은 14층에 있었다. 정민은 엘레베 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내내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 없었다. 아무리 JY의 이사라고 할지라도 얼굴도 모르는 분이 왜 정민을 찾는것인지 정민은 알수가 없었다. 또한 이사실에 불려갈만큼의 잘못을 한 기억도 없었다. 검정색으로 말끔하게 양복을 입으신 분들. 한손에 서류철을 들고 자신의 옆을 지나치면서 빈손으로 불안한 시선을 흘리는 정민을 이상한듯 여기는 그분들의 시선으로 인해 더욱 의기소침해진 정민은 이사실 앞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하며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무슨 일이시죠?" "저기.... 기획실 수습사원 서정민인데 이사님이 부르신다고 해서..."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비서는 친절하게 웃으며 옆에 있는 쇼파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권했고 정민은 쇼파에 앉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 자금은 어디로 간겁니까!" "이사님.. 그건 미처 기입하지 못한 세세한 부분에서 빠져나간 금액 같습니다." "미처 기입하지 못한 세세한 부분이라고 하셨습니까? 박부장. 박부장 눈에는 이 금액이 장난으로 보입니까?" "회식비나 접대비같은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사님." "그래요? 미처 기입하지 못한 비용이 있다면 가서 다시 기입해서 제출하세요." 이사실 안에서는 젊은 목소리의 남자가 큰소리로 호통을 치는 소리가 새어나왔 다. 정민은 이사라는 사람의 젊은 목소리에 놀라며 무서운 사람같다는 생각에 더욱 불안한듯 불편하게 쇼파에 앉아 있었다. 곧이어 안에 있던 박부장이라는 분이 잔뜩 인상을 구긴채 이사실을 나왔고, 비 서는 이사실 안으로 들어가 커피잔을 들고 나오며 정민에게 말했다. "서정민씨. 들어가 보세요." "네.." 정민은 문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정민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비서의 눈길때문 에 재빨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섰다. 이사라는 사람은 뒤를 돌아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정민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사는 정민이 서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정민을 등진채 서있는 이사의 뒷모 습은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젊어보였다. "저... 기획실의 수습사원 서정민입니다." "..." "저...." 정민의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는 이사. 문득 정민의 눈에 들어온 이사의 책상앞에 놓인 이사의 이름 '민재하'. '재하? 민재하? 재하랑 이름이 똑같네. 신기하네. 근데 저사람은 왜 사람을 불러놓 고 아무 말도 안하는거야. 불안하게.' "서정민씨." 이사의 이름이 재하라는 사실에 대한 반가움과 아무말이 없는 이사때문에 불안해 하던 정민은 갑작스러운 이사의 말에 깜짝놀라 평소 정민의 목소리톤보다 한톤 높 아진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씩씩하군. 아침 든든하게 먹었나봐요?" "네? 아...네..." "서정민씨. 있다가 나랑 점심 같이 할래요?" "네?" "왜요. 약속있어요?" "아니요.." "그렇겠지. 29살이나 된 노처녀가 무슨 약속이 있겠어?" "네?" 이사의 말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한 정민. 불쾌해진 정민은 이사에게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려는 찰나 계속해서 창밖을 응시하던 민재하 이사는 정민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안녕?" 민재하 이사의 얼굴을 마주한 정민은 순간 상황파악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런 정민 의 표정을 보며 재하는 재미있다는 듯이 큭큭 웃음을 터트리며 정민에게 다가갔다. "재하야!" "놀랬어?" "니가 왜... 아니, 어떻게 된거야?" "여기 앞에 내 이름도 써있고, 그저께 내 목소리도 들었으면서 벌써 잊었어? 섭섭한데?" "니가... 여기 이사였어?" "응." "그땐.. 그런말 안했잖아." "내가 여기 이사면 뭐 달라지는거 있어?"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기분 상했어?" 정민을 놀래키려고 일부러 꾸민 일이었는데 정민의 표정은 쉽사리 풀어지지 가 않았다. 재하는 긴장이 베이있는 목소리로 정민에게 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에 놀라긴했지만 기분이 상할 정도는 아니었던 정민은 긴장한듯한 재 하의 얼굴에 웃음을 참으며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 이제 낙하산이라고 소문나게 생겼어. 안그래도 이사님이 부르신다고 낙하 산 아니냐고 놀림받고 왔는데." "하하. 그랬어? 까짓거 낙하산이라고 해버려." "뭐? 너 복수하는 거지?" "무슨 복수?" "너 서정민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며?" "그래서?" "그래서? 음.. 나 낙하산 만들어서 괴롭히려는 복수!" "하하! 서정민하고 점심먹기 힘드네. 복수의 칼이나 갈고있는 나쁜놈으로 매도 시키려고 하고.. 서럽다, 서러워." "치.." 재하는 정민의 뾰루퉁 삐져있는 표정이 너무 예뻐서 당장 품안에 넣고 싶은걸 겨우 참고 있었다. 정민은 재하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으로 다가가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재하의 욕심대로 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거야. 금새 정민이도 내 마음 눈치채줄거야. 그렇지? 정민아? 금방 내 마음 알아봐줄꺼지? 나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거지?' 안녕하세요. Cute_zLol입니다. 역시나 계획에 어긋나게... ㅎㅎ 오전에 민들레연가 2편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우-_- 지금 아주 우울합니다. 스타가될꺼야 뒷부분 대폭 수정작업을 밤새-_-했는데요.. 메모판에 32편까지 끄적여 놓은거 수정정리작업다 끝내고 이제 편수 나누고~ 28편올리고 ~ 자야지~ 했는데요... 망할 컴터가-_- 다운이 되서 싹다 날려먹었습니다....아허-_ㅠ 지금 너무 참담한 관계로-_-; 스타는 오후쯤 정리해서 올릴꼐요.. 정말 기운이 싹 빠지네요ㅠㅠ 전에도 이런적 몇번 있었는데.. 여튼 나중에 뵈요-_- 기운이 쑥빠져서..ㅠㅠ 날씨가 많이 추워요~ 따뜻하게 챙겨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ㅠ0ㅠ
『민들레연가 - 두번째이야기』
정민과 인사를 하고 자전거를 놓고온 곳으로 달리면서 수십번은 뒤를 돌아 정민의 모습을 훔쳐보던
재하는 정민이 뒤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옆에 나있는 좁은 골목으로 공이 튀듯
튀어 들어갔다. 아직까지도 미친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놓으며 행복한 미
소를 지어보는 재하.
헐떡이는 숨이 안정을 되찾을때쯤 재하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재하의 심장에 정민의 얼굴을 새기기 시작한것은 재하와 정민이 겨우 8살일때 부터였다.
아침이면 웃으며 '안녕!'하고 재하에게 인사를 해오던 정민을 겨우 8살때부터 좋아했던 것이다.
졸업을 한 후, 단 한번도 만날수도, 소식을 전해들을수도 없었지만 이미 새겨진 정민의 얼굴은 언제
나 재하의 심장안에서 함께 했었다. 사랑이라 부르기엔 성급하다 하겠지만 잊지않고 간직했던 재하
의 소중한 첫사랑 서정민. 그런 정민을 오늘 만난 것이다.
재하는 혼자 웃고있는 자신의 지금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알지도 못한채 주머니에
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전화를 걸자 상대방은 신호음이 울림과 동시에 전화를 받았다.
"스피드 치킨입니다."
"기범아!"
"재하냐? 살아있었냐?"
"하하! 기범아!"
"왜. 이제 좀 한가하냐? 회사일 배운다고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이제 좀 살만한가봐?"
"짜식이. 삐졌냐?"
"나도 바쁘다. 튀겨달라고 애원하는 닭들이 줄을 섰거든. 왜 전화했냐?"
"기범아. 내가 예쁜 여자친구 데리고 가면 치킨 한마리 써비스로 줄꺼냐?"
"여자친구?"
재하의 말에 놀라는 기범이였다. 무엇하나 부족할것 없는 재하는 지금껏 괜찮은 여자들을 수
도없이 마다했었기 때문이다. 늘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로 웃으며 넘기곤 했지만 그런 재하
를 보며 기범은 혹시 이놈이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 아닐까 내심 걱정을 해왔었다. 수화기를 통
해 들뜬 목소리로 여자친구라고 말하고있는 재하의 목소리에 기범이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
이었다.
"여자 생겼냐?"
"기범아! 드디어 만났어. 만났다니까?"
"도대체 어떤 여잔데? 쭉쭉빵빵하고 모델 뺨치는 여자도 싫다더니, 뭐하는 여잔데?"
"비밀! 기범아! 나 지금... 행복한거 같다?"
"새끼야. 궁금하게 하지말고 말해. 또 어디가서 이상한 여자데리고 와서 그러는건 아니지?"
"뭐야? 감히 형수님이 되실분한테 이상한 여자라니!"
"언제 올껀데?"
"아직.. 그 사람은 내 마음을 몰라. 며칠내로 데려갈테니까 그때 애인이니 그런소리는 하지
말고 그냥 봐주기만해라. 알았냐? 당연히 치킨은 써비스다!"
"뭐냐. 애인도 아니네. 니 나이가 몇인데 짝사랑이냐?"
"아~ 글쎄~ 꼭 내여자 만들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래. 알았다. 형님이 면접봐줄테니 한번 데리고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행복해하는 재하의 모습에 걱정부터 앞서는 기범과는 달리 재하
는 핸드폰이 정민이라도 되는냥 가슴에 꼭 끌어안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있었다.
재즈음악이 흐르는 어두운 술집안에는 늦은 시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여기저기
취한 사람들이 반쯤 정신을 놓은채 웃으며 한손에는 담배를, 한손에는 양주잔을 들고 듣고
있기에도 민망한 야한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술집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고급스러운 룸. 그안에 태형이 있었다. 재즈음악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4명의 여자들에게 크게 웃으며 수표를 뿌리는 태형.
"어떤 짓을 하고다녀도 된다고? 좋아. 잘봐.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태형은 하얗게 질린 정민의 마지막 얼굴을 떨치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앞에 놓인 양주를
들이켰다.
"박윤미. 훗.. 니가 먼저 지치나 내가 먼저 지치나, 어디 한번 해보자고."
태형은 가까이 있는 여자의 손을 당겨 자신의 몸위에 얹은후 거의 드러나 보이는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정신없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태형의 입속에 여자의 가슴이 들어왔고, 태형의 성기가 여자의 다리사이에서 꾸물거리고
있음에도 태형의 머리속은 정민의 말이 쉬지않고 괴롭혔다.
"날... 사랑한거 아니었어?"
'사랑해. 씨팔. 미치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정민아..'
태형은 흐르는 눈물을 숨기려는 듯이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문지르며 여자의 팬티를 벗
겼다.
"엄마. 나왔어."
"박서방은? 같이 안왔어?"
"응.."
"왜? 아유.. 박서방주려고 박서방이 제일 좋아하는 호박죽 해놨는데.."
정민은 부엌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민의 엄마는 큰 냄비 두개 가득히
호박죽을 해놓으신 것이다. 요즘들어 뜸해진 태형이때문에 오늘은 꼭 데리고 오라고 신
신당부를 했던 엄마였다. 많이 섭섭하셨는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는 엄마의 모습을 보
며 정민은 차마 헤어졌다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정민 역시 태형과의 이별이 아직 현실적
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음으로 엄마에게 애꿎은 핀잔만 줄 뿐이었다.
"뭘 이렇게 많이 했어. 먹을 사람 태형이밖에 없는데.. 이런거 할시간 있으면 병원이나
잘다녀."
"얘는... 박서방이 호박죽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일 안만나니?"
"안만나."
"싸웠어? 이것아. 괜히 성질대로 덤벼들지말고 박서방한테 잘해."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괜시리 화가나서 엄마에게 큰소리를 쳐버린 정민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몇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아빠 꿈을 꾸는지 밤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엄마때문에 항상
열어두는 방문을 닫았다는 것은 혼자있고 싶다는 엄마와 정민, 둘만의 암호같은 것이었
다. 방안으로 들어온 정민은 핸드백을 대충 방에 내던지고 겉옷을 벗은후 쪼그리고 앉
아 다리 사이에 고개를 숨겼다.
정민의 엄마는 두사람의 암호를 무시하고 여전히 거실에서 정민을 꾸중하셨다.
"박서방만한 사람 없어. 이것아. 니가 잘해야 되는거야. 알았니? 여자가 사근사근한 맛
이 있어야지, 너처럼 꼿꼿하기만 하면... 있던 정도 떨어지는거야."
"얘. 넌 일요일인데 남들 다하는 데이트도 안하고 집에만 쳐박혀있니?"
"그렇게 아들을 밖으로 내몰고 싶으세요? 알았어요. 알았어. 조금만 기다리시라니까
요?"
"어머, 얘좀봐? 전에는 엄마랑 평생 살껀데요~ 그러더니 말이 바꼈네?
뭐니? 엄마에 대한 사랑이 식은거니? 아니면 애인이라도 생긴거니?"
"글쎄요. 어머니의 판단에 밑길께요."
"여보. 재하녀석 애인생겼나봐요."
"녀석아. 애인이 생겼으면 제일 먼저 우리 앞에 데려와야지! 어디다 숨겨논거야?"
"제 걱정마시고 두분이나 오붓하게 데이트하세요^-^"
넉살좋게 부모님의 공격을 막아낸 재하는 '허허. 고녀석.'이라는 말만 하시며 웃고 계
시는 아버지와 부끄러워 하시는 어머니에게 찡긋 윙크를 해보이고는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 들어선 재하는 책장의 맨 아래에 꽂혀있는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꺼내어 이제
는 감각만으로도 찾을수 있는 6학년 7반 아이들의 얼굴이 담긴 페이지를 펼쳤다.
그중 재하의 시선을 차지하는 사진은 단연 정민의 얼굴이었다. 긴장한듯해 보이는
정민의 얼굴에 재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앨범을 들고 책상으로 간 재하는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어 정민의 사진을 조심조심 오
려내고는 앨범을 아무곳에나 끼워 넣었다. 정민의 사진이 없는 앨범은 재하에게 더이
상 의미가 없었다.
"내가 널 얼마나 보고싶어 했는지, 혹시 니 소식 들을수 있을까 동창찾아준다는 싸이
트에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드나들었는지... 니가 알까? 모르지? 이 멍청이."
재하는 정민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툭 팅기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비록 사진일지
라도 정민을 때린게 미안해진 재하는 옆에 있는 티슈 한장을 뽑아 사진을 정성스레
닦은후 지갑에 끼워넣었다. 정민의 얼굴이 있던 앨범대신 이제는 재하의 지갑이 재하
의 보물 1호가 된것이다. 혼자 있는 서재였건만 누가 지갑을 뺏어가기라도 할까 싶어
얼른 주머니에 넣고 지갑의 존재감을 느끼며 컴퓨터를 켰다.
재하는 인터넷창을 열어 검색란에 '민들레'를 적어넣고 엔터를 눌렀다.
오후가 훌쩍 지나버린 시간이었지만 태형은 아침까지 룸에서 여자들과 즐기며 술을
마신 탓에 잠에 취해있었다. 숙취때문인지 잦은 신음을 뱉어가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고있는 태형이를 깨운것은 지치지않고 울려대는 핸드폰 벨소리였다.
손끝하나 움직이기 귀찮은 태형은 몇번이고 핸드폰 벨소리를 무시했지만, 태형이 받
지않는다면 전화를 건 상대도 포기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에 끄응 소리를 내며 침
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앉자마자 찾아오는 두통에 태형은 머리를 두드리며 전화를 받
았다.
"네."
"아직 자니?"
"누구야."
"신부 목소리도 몰라보는 신랑. 매력없어."
"자는거 알면서 왜 자꾸 전화질이야."
"오늘 우리집에서 저녁먹기로 한거 잊지않았지?"
"그래."
"우리 부모님 앞에서도 나한테 그럴꺼니?"
"내가 뭘 어쨌는데."
"안그러는게 좋을껄?"
"..."
"우리 사이 안좋다고 소문나면 아빠 감시 더 심해질꺼야. 결혼해서까지 아빠 감시
받고싶지 않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결론만 애기해."
"다정한척해. 뭐 약간의 스킨쉽도 괜찮겠다."
"스킨쉽? 니 얼굴 보는것도 고문인데 만지라고? 하하."
"나도 마찬가지야. 결혼해서 각자 생활 즐기고 싶으면 지금 힘든편이 낫지 않아?"
"제길. 알았어."
태형은 짹짹거리는 윤미 목소리에 짜증과 함께 심한 갈증이 밀려와 전화를 끊어버
리고는 흐트러진 머리를 만지며 주방으로 향했다.
"정민아. 이거 가지고가."
"이게 뭔데?"
태형이 이별을 말한 그날 밤부터 어제인 일요일 내내, 그리고 새벽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있던 정민은 결국 늦잠을 자버렸다. 정민은 이틀이라는 시간동안 주인을
기다리는 버려진 강아지처럼 불안에 떨며 태형의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던 자신
의 모습을 떨쳐버리려 애쓰며 출근준비를 서둘렀다.
행여 지각이라도 할까싶어 분주한 정민을 붙잡고 정민의 엄마는 보온병 두개가 담
긴 쇼핑백을 쥐어 주셨다.
"호박죽이야. 점심시간에 맞혀서 박서방한테 갖다줘."
"엄마. 나 바빠."
"그럼 퇴근하고 만나서줘. 호박 좋은걸로만 골라서 만든거야. 그러게 어제 박서
방 불렀으면 좋잖아. 기지배 누굴 닮아서 지 고집대로만 하려는지..쯔쯔"
계속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있을 시간도 없었고, 듣고싶지도 않은 정민은 할수없이
손에 들린 쇼핑백과 함께 손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태형이와 떨어지는 은행나무잎을 주워 서로에게 뿌려주는 유치한 장난을 했던게
엊그제인것만 같은데 벌써 날씨는 제법 쌀쌀해져 있었다. 날씨를 짐작하지 못하고
얇게 입고나온 정민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추려졌다.
손에 들린 쇼핑백은 출근길에서부터 애물단지였다. 손이 시려움에도 버릴수도 없어
들고가야 하는 호박죽이 담긴 쇼핑백. 정민은 정민이 속해있는 기획실 식구들과 나
눠먹어야겠다 생각하며 지하철역으로 빠르게 걸었다.
"첫출근 축하해."
"별로."
"아빠한테 인사드리러 가야지?"
"너도 가게?"
"같이 가야 좋아하시지."
"어제로 충분해."
"그래 그럼. 나도 귀찮았으니까."
태형은 아버지와 함깨 수호그룹에서 유정그룹으로 회사를 옴겼고 바로 오늘이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어제 윤미의 가족들과의 저녁식사는 최악이었다.
우습지도 않은 박회장의 농담에 웃어주며, 윤미에게 반찬까지 올려주는 자신이 저
질스러운 꽁트를 하고있는 배우같았다. 하지만 이것이 꽁트면 또 어떠라햐.
태형은 그저 시키는데로, 하라는데로 따를수 밖에 없는 인형일 뿐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회장실로 향하는 태형의 뒷모습은 사형을 앞둔 사형수의 뒷모습
을 연상시켰다.
"안녕하세요."
"정민씨 왔어?"
"선배님. 주말 잘보내셨어요?"
"애딸린 아줌마가 주말이라고 뭐 특별할게 있나. 정민씨. 책상위에 서류 복사좀
해줄래? 30장씩! 부탁해."
"네."
정민은 출근하자마자 옆자리의 김선배 부탁으로 서류철을 들고 복사실로 향했다.
출근시간인 9시가 조금 지난시간이었으므로 복사실은 한산했다. 복사기에 서류를
끼워넣고 창밖을 보며 서있는 정민. 커피라도 한잔 빼올껄..하는 후회가 생긴다.
밖에는 이미 지나버린 출근시간 때문에 허겁지겁 달려오는 지각생들이 보였다.
그리고 잎이 거의 다 떨어진 나무 한그루..
봄부터 제몸에서 함께했던 잎사귀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저 나무의
심정이 7년이라는 긴 시간을 한마디의 말로 지워야하는 정민의 마음과 똑같을까..
재하는 출근을 하고 책상에 앉자마자 자신의 머리를 때리고 있었다,
"아이구. 이 바보. 부서도 안물어봤네. 민재하! 왜 사냐. 왜 살어!"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치며 고민하던 재하는 결국 전화기를 들었다.
"저기요. 복사 더 하실거예요?"
"네? 아니요."
얼마쯤 지났을까. 경리과에 있는 여자가 와서 정민이 복사가 끝난 서류들을 치
워주길 재촉했다. 다급히 서류를 챙겨들고 사무실로 돌아온 정민은 김선배와 부
장님이 서로의 대화에 빠져있는 모습에 슬그머니 선배자리에 서류를 올려놓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재밌는 구경 생기는거지."
"유정은 자동차쪽 약하지 않나?"
"약하지. 그래서 우리랑 손잡으려고 지금 난리잖아."
"수호가 보고만 있을까요? 괜히 우리쪽까지 피해입게 되는건 아닌가?"
"유정이 규모면에서는 확실히 크니까 어쩌면 우리쪽에 더 이익일수도 있지.
위에서 알아서들 하시겠지, 뭐."
정민은 두사람의 대화에 수호그룹이 신제품 출시 관련 프로젝트를 발표한후 바
로 신제품 출시 발표회 날짜를 잡은 유정그룹을 기억해냈다.
수호그룹... 태형이 다니는 회사였다. 태형의 아버지가 부사장임에도 태형은 아
버지의 힘이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수호그룹의 과장자리까지 올랐다.
20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빠른 승진이었다.
'그게 이제 나와 무슨 상관이야. 일이나 하자. 서정민.'
선배와 부장님의 대화는 부장님 자리에서 울리는 전화로 인해 중지되었고 부장
님은 자리로 가셔서 전화를 받았다.
"김영만 부장입니다. 네. 예.. 저희 부서 수습사원 맞습니다. 네? 아.. 무슨일로...
아.. 예. 지금요? 네. 알겠습니다. 서정민씨."
"네?"
전화를 끊으신 부장님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정민을 불렀다.
"혹시 낙하산인가?"
"예? 아닌거 아시면서.."
"낙하산같은데?"
"에이.. 부장님도 참.. 저 욕심 많아요. 낙하산이면 바로 윗자리 달라고 하지,
수습으로 있겠어요?"
부장님의 농담섞인 말에 정민도 웃으며 농담으로 답했다. 하지만 개운치 않은
농담이었다.
"하하. 그렇지. 혹시 민이사님하고 아는 사이야?"
"이사님이요? 아니요. 얼굴도 본적없는데.."
"근데 무슨 일이지? 지금 이사실로 올라가봐요."
"이사실이요? 왜요?"
"낸들 아나. 호출이니까 가봐요."
"아...네..."
"정민씨, 일저질렀어?"
"아니요.."
정민은 부장님과 김선배의 시선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정민이 속해있는 기획실은 5층이었고 이사실은 14층에 있었다. 정민은 엘레베
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내내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 없었다.
아무리 JY의 이사라고 할지라도 얼굴도 모르는 분이 왜 정민을 찾는것인지
정민은 알수가 없었다. 또한 이사실에 불려갈만큼의 잘못을 한 기억도 없었다.
검정색으로 말끔하게 양복을 입으신 분들. 한손에 서류철을 들고 자신의 옆을
지나치면서 빈손으로 불안한 시선을 흘리는 정민을 이상한듯 여기는 그분들의
시선으로 인해 더욱 의기소침해진 정민은 이사실 앞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하며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무슨 일이시죠?"
"저기.... 기획실 수습사원 서정민인데 이사님이 부르신다고 해서..."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비서는 친절하게 웃으며 옆에 있는 쇼파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권했고 정민은
쇼파에 앉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 자금은 어디로 간겁니까!"
"이사님.. 그건 미처 기입하지 못한 세세한 부분에서 빠져나간 금액 같습니다."
"미처 기입하지 못한 세세한 부분이라고 하셨습니까? 박부장. 박부장 눈에는
이 금액이 장난으로 보입니까?"
"회식비나 접대비같은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사님."
"그래요? 미처 기입하지 못한 비용이 있다면 가서 다시 기입해서 제출하세요."
이사실 안에서는 젊은 목소리의 남자가 큰소리로 호통을 치는 소리가 새어나왔
다. 정민은 이사라는 사람의 젊은 목소리에 놀라며 무서운 사람같다는 생각에
더욱 불안한듯 불편하게 쇼파에 앉아 있었다.
곧이어 안에 있던 박부장이라는 분이 잔뜩 인상을 구긴채 이사실을 나왔고, 비
서는 이사실 안으로 들어가 커피잔을 들고 나오며 정민에게 말했다.
"서정민씨. 들어가 보세요."
"네.."
정민은 문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정민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비서의 눈길때문
에 재빨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섰다. 이사라는 사람은 뒤를 돌아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정민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사는
정민이 서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정민을 등진채 서있는 이사의 뒷모
습은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젊어보였다.
"저... 기획실의 수습사원 서정민입니다."
"..."
"저...."
정민의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는 이사. 문득 정민의 눈에 들어온 이사의 책상앞에
놓인 이사의 이름 '민재하'.
'재하? 민재하? 재하랑 이름이 똑같네. 신기하네. 근데 저사람은 왜 사람을 불러놓
고 아무 말도 안하는거야. 불안하게.'
"서정민씨."
이사의 이름이 재하라는 사실에 대한 반가움과 아무말이 없는 이사때문에 불안해
하던 정민은 갑작스러운 이사의 말에 깜짝놀라 평소 정민의 목소리톤보다 한톤 높
아진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씩씩하군. 아침 든든하게 먹었나봐요?"
"네? 아...네..."
"서정민씨. 있다가 나랑 점심 같이 할래요?"
"네?"
"왜요. 약속있어요?"
"아니요.."
"그렇겠지. 29살이나 된 노처녀가 무슨 약속이 있겠어?"
"네?"
이사의 말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한 정민. 불쾌해진 정민은 이사에게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려는 찰나 계속해서 창밖을 응시하던 민재하
이사는 정민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안녕?"
민재하 이사의 얼굴을 마주한 정민은 순간 상황파악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런 정민
의 표정을 보며 재하는 재미있다는 듯이 큭큭 웃음을 터트리며 정민에게 다가갔다.
"재하야!"
"놀랬어?"
"니가 왜... 아니, 어떻게 된거야?"
"여기 앞에 내 이름도 써있고, 그저께 내 목소리도 들었으면서 벌써 잊었어?
섭섭한데?"
"니가... 여기 이사였어?"
"응."
"그땐.. 그런말 안했잖아."
"내가 여기 이사면 뭐 달라지는거 있어?"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기분 상했어?"
정민을 놀래키려고 일부러 꾸민 일이었는데 정민의 표정은 쉽사리 풀어지지
가 않았다. 재하는 긴장이 베이있는 목소리로 정민에게 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에 놀라긴했지만 기분이 상할 정도는 아니었던 정민은 긴장한듯한 재
하의 얼굴에 웃음을 참으며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 이제 낙하산이라고 소문나게 생겼어. 안그래도 이사님이 부르신다고 낙하
산 아니냐고 놀림받고 왔는데."
"하하. 그랬어? 까짓거 낙하산이라고 해버려."
"뭐? 너 복수하는 거지?"
"무슨 복수?"
"너 서정민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며?"
"그래서?"
"그래서? 음.. 나 낙하산 만들어서 괴롭히려는 복수!"
"하하! 서정민하고 점심먹기 힘드네. 복수의 칼이나 갈고있는 나쁜놈으로 매도
시키려고 하고.. 서럽다, 서러워."
"치.."
재하는 정민의 뾰루퉁 삐져있는 표정이 너무 예뻐서 당장 품안에 넣고 싶은걸
겨우 참고 있었다. 정민은 재하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으로 다가가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재하의 욕심대로 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거야. 금새 정민이도 내 마음 눈치채줄거야. 그렇지? 정민아?
금방 내 마음 알아봐줄꺼지? 나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거지?'
안녕하세요. Cute_zLol입니다. 역시나 계획에 어긋나게... ㅎㅎ
오전에 민들레연가 2편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우-_- 지금 아주 우울합니다. 스타가될꺼야 뒷부분 대폭 수정작업을 밤새-_-했는데요..
메모판에 32편까지 끄적여 놓은거 수정정리작업다 끝내고 이제 편수 나누고~ 28편올리고
~ 자야지~ 했는데요... 망할 컴터가-_- 다운이 되서 싹다 날려먹었습니다....아허-_ㅠ
지금 너무 참담한 관계로-_-; 스타는 오후쯤 정리해서 올릴꼐요..
정말 기운이 싹 빠지네요ㅠㅠ 전에도 이런적 몇번 있었는데..
여튼 나중에 뵈요-_- 기운이 쑥빠져서..ㅠㅠ 날씨가 많이 추워요~ 따뜻하게 챙겨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ㅠ0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