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다들 감기조심하시고 특히 수능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 여러분 떨어지는 낙엽도 몸을 날려 피하시길.... =========================== 두통이 살살 오는 게 몸살인가 =========================== 정말 많은 말을 준비했었다. 로맨틱한 재회에 있어 타의 모범이 될만한 회심의 멘트들을 수도 없이 쓰고 지우면서 그 중 엑기스 중의 엑기스만 모아 200자 원고지 5장 분량의 장대한 대서사시를 외워왔다. 하지만 그 원고들을 실수 없이 떠올리기엔 오랜만에 본 그녀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기억 - 하.... 하이? 결국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게 고작이었다. 민아 - ...... 가당찮은 내 인사에 할 말을 잃어버린 듯한 그녀를 보며, 문득 석양을 향해 한없이 달려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난.... 대체 왜 이 모양 이 꼴인 걸까. 우리 사이엔 한참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날씨만 구질구질했다면 원 없이 울고 싶을 만큼 서러운 기분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본론으로 가자. 기억 - 큼, 크흠, 그러니까... 어제 안군선배한테.... 전화를 받았어. 민아 - 응. 기억 - .... 사실이야? 민아 - 응. 헤어졌어. 혹시라도 내가 이상한 소식을 듣고 온 걸까 걱정이 되었는지, 그녀는 확실하게 못을 박아 말했다. 기억- 저기..... 나도...... 민아 - 응, 이야기 들었어. 기억 - ... 한나가 이미 말했어? 저기... 그럼 말이지... 이... 이거..... 왜 한나와 헤어져 그녀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려던 난 단숨에 다음 말을 차단당해 버렸고, 곧장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기억 - 어라, 이, 이게 어디 갔지? 잠깐만 기다려 봐, 내가 그걸... 하지만 도통 어느 주머니로 숨었는지 찾을 수 없는 비장의 무기. 그녀는 묵묵히 내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고, 내 마음은 다급해져만 갔다. 내가.... 이걸 대체.... 아! 가방에 넣어놨었구나! 그제야 비장의 무기가 손상될까봐 가방에 챙겨놨던 사실을 기억해낸 난 서둘러 가방 앞 칸을 뒤적였고, 곧 숨겨뒀던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 수 있었다. 기억 - ...... 이거...... 기억 나? 그건 그녀가 내 생일 선물로 줬던 소원카드였다. 카드를 받고 몇날며칠 동안 어디다 쓸까만 궁리하면서 조몰락거린 탓에 가장자리가 다 쪼글쪼글하게 울어버렸지만... 그 내용만큼은 아직 선명했다. =예쁜 공주에게 너무 너무 힘든 일이 아니라면 당신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드립니다.= 민아 - 으..... 응. 기억 - 이거.... 유효기간 같은 거 없었으니까... 아직 유효한 거지? 민아 - ..... 응. 기억 - 그럼...... 지금 쓸게. 나한테...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줘. 카드의 유효성을 확인하느라 현저히 떨어져 버린 임펙트.... 마치 =플래시가 스트레이트보다 높은 거지?= 라고 확인한 뒤에 공개한 카드패만큼이나 시시한 등장이었지만, 그 카드 한 장이 나에겐 마지막 보루이자, 기사회생의 탈출구였다. 민아 - ..........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나도 내가 그녀에게 쏟았던 독설들을 한 마디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순간의 충격은 예상했다고 해서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억 - 아..... 그랬구나..... 역시... 응.... 미안. 뱃속에 있던 내장들이 왈칵 쏟아져버린 것처럼 몸속으로 시린 바람들이 통했다. 차마 걸음을 뗄 수 없을 만큼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금 이 기분을 푸는 방법은 목 놓아 우는 것 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기억 - 가....크흠... 가..... 갈, 갈게.... 목을 꽈악 죄어오는 울음의 올가미를 애써 풀며 난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정신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바로 무릎이 꺾여버릴 것만 같았다. 민아 - 아....! 그때, 그녀가 내 소매를 붙잡아 세웠다. 난 간신히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속으로 삭이며 그녀를 돌아보았고, 그런 나를 올려다보던 민아는 입술만 달짝 거리며 뭔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민아 - 냐... .....야.....난....니까... 난 허리를 숙여 그녀의 입에 귀를 가까이 했고, 그제야 울음에 묻힌 그녀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민아 - 카드 같은 거 쓰지 않아도 돼. 나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하늘에서 들려온 구원의 목소리였다. 모든 것을 잃고 혼자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던 박사를 품어준 천사의 날개처럼, 그녀의 한 마디는 나락으로 떨어진 나에게 한 줄기 광명이 되어주었다. 민아 - 나 흑.... 어떡해.... 기껏...흑.... 열심히 꾸몄는데...흑흑.... 다 번지겠..... 기억 - ........ 공주님..... 민아 - 기억아.....!! 으아앙.... 그녀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려는지 덩달아 흘러나오는 바보 같은 눈물을 감추려 난 그녀의 어깨를 와락 끌어안았다. 피카츄 - 즈르르를..... 크응! 킁! 그런 나를 떼어놓으려는 듯, 피카츄는 내 바짓단을 물고 사방으로 고개를 흔들어댔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그녀와 다시 만난 마당에 발목이 뜯어진다 한들 어떻겠는가? 기억 - .....돌아왔어. 민아 - 으응....으응.... 잘 왔어.... 잘왔어, 기억아. 한참 후에야 어렵게 울음을 멈춘 그녀는 불현듯 뭔가 떠올랐는지 내 옷깃을 붙잡고 말했다. 민아 - 기억아, 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기억 - .....응?? 그녀가 나를 이끈 곳은 그녀의 집 지하실입구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가려 있어 쉽게 찾기도 힘들 것 같은 입구는 몹시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문손잡이에 먼지가 앉아있었다. 민아 - 여기 열쇠가 없는데... 열 수 있을까? 기억 - 음.., 열수는 있겠지만.... 사람을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민아 - 지금 들어가고 싶어. 잠시 후. 난 그녀로부터 드라이버며 공구 몇 가지를 받아 문을 따기 시작했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그녀가 왜 이곳에 들어가려고 하는 건지는 몰라도 그녀가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자체만으로 이유는 충분했다. =딸캉= 곧 경쾌한 소리를 내며 풀리는 잠금장치. 문틈에 다소의 상처를 내긴 했지만 어쨌건 목적했던 바는 이룬 셈이다. 민아 - ........ 뒤에 서있던 민아는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된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 끼이이이익..... = 하고 노곤한 기지개를 켜며 길을 열어주는 문. 그 속으로 보이는 건 길게 이어진 계단과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민아 - 기억아. 기억 - 응? 민아 -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 좀 봐줄래? 기억 - ... 같이 안 들어가고? 민아 - 난 조금 있다가 들어갈게. 기억이가 먼저 봐줬으면 좋겠어. 묵은 공기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지하실 입구는 마치 던전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렇게 말하는 덴 그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난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계단이 꺾이는 부분에 있는 좁은 채광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지하실이 있는 곳까지 내려간 난 핸드폰 액정에서 나오는 빛을 이용해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딸깍= 계단 옆 벽에서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켠 순간,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무게와 진한 감흥을 전해주었다. 기억 - ........ 벽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양의 장서들, 바닥과 벽 곳곳에 붙어있는 도면들과 그 위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메모지, 낡은 책상과 스탠드, 커다란 컴퓨터..... 이곳에 있던 사람이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이곳에 그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사랑, 열정, 고민과 기쁨.... 난 바닥에 놓인 책과 도면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며 방 중앙에 있는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다가설수록 견디기 힘들 정도의 중후한 울림을 가슴 속에 전해오는 책상과 의자는 마치 지금도 이 방의 주인이 그곳에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가까이 다가간 책상엔 몇 권의 책과 종이, 그리고 펜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크레파스로 삐뚤빼뚤 뭔가를 써놓은 도화지 한 장. 난 조심스레 책을 들어올리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 기억 - .....이건?
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49화> 재회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다들 감기조심하시고
특히 수능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 여러분
떨어지는 낙엽도 몸을 날려 피하시길....
=========================== 두통이 살살 오는 게 몸살인가 ===========================
정말 많은 말을 준비했었다.
로맨틱한 재회에 있어 타의 모범이 될만한
회심의 멘트들을 수도 없이 쓰고 지우면서
그 중 엑기스 중의 엑기스만 모아
200자 원고지 5장 분량의
장대한 대서사시를 외워왔다.
하지만 그 원고들을 실수 없이 떠올리기엔
오랜만에 본 그녀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기억 - 하.... 하이?
결국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게 고작이었다.
민아 - ......
가당찮은 내 인사에
할 말을 잃어버린 듯한 그녀를 보며,
문득 석양을 향해 한없이 달려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난.... 대체 왜 이 모양 이 꼴인 걸까.
우리 사이엔 한참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날씨만 구질구질했다면
원 없이 울고 싶을 만큼 서러운 기분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본론으로 가자.
기억
- 큼, 크흠, 그러니까...
어제 안군선배한테.... 전화를 받았어.
민아 - 응.
기억 - .... 사실이야?
민아 - 응. 헤어졌어.
혹시라도 내가 이상한 소식을 듣고 온 걸까 걱정이 되었는지,
그녀는 확실하게 못을 박아 말했다.
기억- 저기..... 나도......
민아 - 응, 이야기 들었어.
기억
- ... 한나가 이미 말했어?
저기... 그럼 말이지... 이... 이거.....
왜 한나와 헤어져 그녀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려던 난
단숨에 다음 말을 차단당해 버렸고,
곧장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기억
- 어라, 이, 이게 어디 갔지?
잠깐만 기다려 봐, 내가 그걸...
하지만 도통 어느 주머니로 숨었는지
찾을 수 없는 비장의 무기.
그녀는 묵묵히 내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고,
내 마음은 다급해져만 갔다.
내가.... 이걸 대체.... 아! 가방에 넣어놨었구나!
그제야 비장의 무기가 손상될까봐
가방에 챙겨놨던 사실을 기억해낸 난
서둘러 가방 앞 칸을 뒤적였고,
곧 숨겨뒀던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 수 있었다.
기억 - ...... 이거...... 기억 나?
그건 그녀가 내 생일 선물로 줬던 소원카드였다.
카드를 받고 몇날며칠 동안
어디다 쓸까만 궁리하면서 조몰락거린 탓에
가장자리가 다 쪼글쪼글하게 울어버렸지만...
그 내용만큼은 아직 선명했다.
=예쁜 공주에게 너무 너무 힘든 일이 아니라면
당신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드립니다.=
민아 - 으..... 응.
기억
- 이거.... 유효기간 같은 거 없었으니까...
아직 유효한 거지?
민아 - ..... 응.
기억 - 그럼...... 지금 쓸게. 나한테...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줘.
카드의 유효성을 확인하느라
현저히 떨어져 버린 임펙트.... 마치
=플래시가 스트레이트보다 높은 거지?=
라고 확인한 뒤에 공개한 카드패만큼이나 시시한 등장이었지만,
그 카드 한 장이 나에겐 마지막 보루이자,
기사회생의 탈출구였다.
민아 - ..........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나도 내가 그녀에게 쏟았던 독설들을
한 마디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순간의 충격은 예상했다고 해서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억 - 아..... 그랬구나..... 역시... 응.... 미안.
뱃속에 있던 내장들이 왈칵 쏟아져버린 것처럼
몸속으로 시린 바람들이 통했다.
차마 걸음을 뗄 수 없을 만큼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금 이 기분을 푸는 방법은
목 놓아 우는 것 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기억 - 가....크흠... 가..... 갈, 갈게....
목을 꽈악 죄어오는 울음의 올가미를 애써 풀며
난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정신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바로 무릎이 꺾여버릴 것만 같았다.
민아 - 아....!
그때, 그녀가 내 소매를 붙잡아 세웠다.
난 간신히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속으로 삭이며
그녀를 돌아보았고,
그런 나를 올려다보던 민아는
입술만 달짝 거리며 뭔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민아 - 냐... .....야.....난....니까...
난 허리를 숙여 그녀의 입에 귀를 가까이 했고,
그제야 울음에 묻힌 그녀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민아
- 카드 같은 거 쓰지 않아도 돼.
나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하늘에서 들려온 구원의 목소리였다.
모든 것을 잃고 혼자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던
박사를 품어준 천사의 날개처럼,
그녀의 한 마디는 나락으로 떨어진 나에게
한 줄기 광명이 되어주었다.
민아
- 나 흑.... 어떡해.... 기껏...흑....
열심히 꾸몄는데...흑흑.... 다 번지겠.....
기억 - ........ 공주님.....
민아 - 기억아.....!! 으아앙....
그녀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려는지
덩달아 흘러나오는 바보 같은 눈물을 감추려 난
그녀의 어깨를 와락 끌어안았다.
피카츄 - 즈르르를..... 크응! 킁!
그런 나를 떼어놓으려는 듯,
피카츄는 내 바짓단을 물고 사방으로 고개를 흔들어댔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그녀와 다시 만난 마당에
발목이 뜯어진다 한들 어떻겠는가?
기억 - .....돌아왔어.
민아 - 으응....으응.... 잘 왔어.... 잘왔어, 기억아.
한참 후에야 어렵게 울음을 멈춘 그녀는
불현듯 뭔가 떠올랐는지 내 옷깃을 붙잡고 말했다.
민아 - 기억아, 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기억 - .....응??
그녀가 나를 이끈 곳은 그녀의 집 지하실입구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가려 있어
쉽게 찾기도 힘들 것 같은 입구는
몹시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문손잡이에 먼지가 앉아있었다.
민아 - 여기 열쇠가 없는데... 열 수 있을까?
기억
- 음.., 열수는 있겠지만....
사람을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민아 - 지금 들어가고 싶어.
잠시 후.
난 그녀로부터 드라이버며 공구 몇 가지를 받아
문을 따기 시작했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그녀가 왜 이곳에 들어가려고 하는 건지는 몰라도
그녀가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자체만으로 이유는 충분했다.
=딸캉=
곧 경쾌한 소리를 내며 풀리는 잠금장치.
문틈에 다소의 상처를 내긴 했지만
어쨌건 목적했던 바는 이룬 셈이다.
민아 - ........
뒤에 서있던 민아는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된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 끼이이이익..... =
하고 노곤한 기지개를 켜며 길을 열어주는 문.
그 속으로 보이는 건
길게 이어진 계단과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민아 - 기억아.
기억 - 응?
민아 -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 좀 봐줄래?
기억 - ... 같이 안 들어가고?
민아
- 난 조금 있다가 들어갈게.
기억이가 먼저 봐줬으면 좋겠어.
묵은 공기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지하실 입구는
마치 던전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렇게 말하는 덴 그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난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계단이 꺾이는 부분에 있는
좁은 채광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지하실이 있는 곳까지 내려간 난
핸드폰 액정에서 나오는 빛을 이용해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딸깍=
계단 옆 벽에서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켠 순간,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무게와
진한 감흥을 전해주었다.
기억 - ........
벽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양의 장서들,
바닥과 벽 곳곳에 붙어있는 도면들과
그 위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메모지,
낡은 책상과 스탠드, 커다란 컴퓨터.....
이곳에 있던 사람이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이곳에 그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사랑, 열정, 고민과 기쁨....
난 바닥에 놓인 책과 도면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며
방 중앙에 있는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다가설수록 견디기 힘들 정도의 중후한 울림을
가슴 속에 전해오는 책상과 의자는
마치 지금도 이 방의 주인이 그곳에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가까이 다가간 책상엔 몇 권의 책과 종이,
그리고 펜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크레파스로 삐뚤빼뚤 뭔가를 써놓은 도화지 한 장.
난 조심스레 책을 들어올리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
기억 -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