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여행 중, 방글라데시 한 깡촌에서의 일이다. 하루는 민박하던 집 젊은 며느리의 오른쪽 손목뼈 근처가 샛노랗게 곪아 있는 것을 보았다. 밭일을 하다 쟁기에 긁
혔는데 그 상처가 덧나서 그렇단다. 일주일을 아팠다며 손을 영영 못쓰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이건 고름을 짜내고 마이신을 발라주면 간단히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시, 비상약품인 먹는 마이신의 캡술을 깨서 고름을 짜낸 상처 위에 발라주었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상 처가 아물었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라니. 평소에 약을 쓰지 않아 ‘약발’이 받은 거였지만 하여간 몹시 기뻤다.
그날 저녁, 동네 노인 한 분이 찾아와 이가 몹시 아프니 봐 달라고 했다. 나는 의사가 아니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떠밀려 입안을 들여다보니 어금니 8개가 완전히 썩어 문드러졌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나 치과의사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진통제 한 알을 건네 주는 것 뿐. 한 시간 후, 그 할아버지가 대바구니에 망고를 가득 채워 가지고 왔다. 몇 달만에 치통에서 벗어나 날아갈 것 같다면서. 솔직히 내 기분이 더 좋았다.
이렇게 오지 여행을 하다보면 내게는 별것이 아닌 마이신 한 알. 진통제 한 알이, 다른 사람에게는 참으 로 요긴히 쓰이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기분! 번번이 아주 짭짤했다.
이런 기분을 요즘은 해외 아동 결연을 통해서 그대로 느끼고 있다. 나는 에티오피아에 딸이 있다. 8살이고 이름은 제네부다.
작년 출장길에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 가족 4명이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3시간도 넘게 진흙길을 걸어왔 다고 한다. 30대 부부는 나를 보자마자 덥썩 껴안고는 두 뺨을 맞대는 인사를 했는데, 그날 아침, 나는 그 부부의 눈물로 세수를 하고 말았다. 사연인즉, 남편은 일용노동자인데 사고로 허리를 몹시 다쳤고, 부인 역시 해 산을 하느라 입주 가정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어 하루 한끼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태어난 아이까지 영양실조와 설사로 시름시름 앓았단다. 아무리 애를 써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비관해 다 같이 죽을 결심을 하던 차에 나와 연결이 되었단다. 그리고 첫 번째 후원금 2만원으로 갓난아이를 병원에 데 려가 살릴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그 후 내 후원금 덕분으로 제네부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부인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했던 가정부 일 을 그만두고 재봉틀을 배운다고 했다.
참 신기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겨우 피자 한판 값인 2만원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한 생명을 살리고, 흩어졌던 가족을 모으고 지독한 가난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종잣돈이 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세상에 이렇게 남는 장사가 또 어디 있을까? 되로 주고 트럭 채로 받는 일, 선한 마음을 담은 작은 정성 은 이렇게 힘이 세다.
피자 한 판 값의 힘
오지 여행 중, 방글라데시 한 깡촌에서의 일이다.
하루는 민박하던 집 젊은 며느리의 오른쪽 손목뼈 근처가 샛노랗게 곪아 있는 것을 보았다. 밭일을 하다 쟁기에 긁
혔는데 그 상처가 덧나서 그렇단다. 일주일을 아팠다며 손을 영영 못쓰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이런 기분을 요즘은 해외 아동 결연을 통해서 그대로 느끼고 있다.
이건 고름을 짜내고 마이신을 발라주면 간단히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시, 비상약품인 먹는 마이신의 캡술을 깨서 고름을 짜낸 상처 위에 발라주었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상 처가 아물었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라니. 평소에 약을 쓰지 않아 ‘약발’이 받은 거였지만 하여간 몹시 기뻤다.
그날 저녁, 동네 노인 한 분이 찾아와 이가 몹시 아프니 봐 달라고 했다. 나는 의사가 아니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떠밀려 입안을 들여다보니 어금니 8개가 완전히 썩어 문드러졌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나 치과의사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진통제 한 알을 건네 주는 것 뿐. 한 시간 후, 그 할아버지가 대바구니에 망고를 가득 채워 가지고 왔다. 몇 달만에 치통에서 벗어나 날아갈 것 같다면서. 솔직히 내 기분이 더 좋았다.
이렇게 오지 여행을 하다보면 내게는 별것이 아닌 마이신 한 알. 진통제 한 알이, 다른 사람에게는 참으 로 요긴히 쓰이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기분! 번번이 아주 짭짤했다.
나는 에티오피아에 딸이 있다. 8살이고 이름은 제네부다.
작년 출장길에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 가족 4명이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3시간도 넘게 진흙길을 걸어왔 다고 한다. 30대 부부는 나를 보자마자 덥썩 껴안고는 두 뺨을 맞대는 인사를 했는데, 그날 아침, 나는 그 부부의 눈물로 세수를 하고 말았다. 사연인즉, 남편은 일용노동자인데 사고로 허리를 몹시 다쳤고, 부인 역시 해 산을 하느라 입주 가정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어 하루 한끼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태어난 아이까지 영양실조와 설사로 시름시름 앓았단다. 아무리 애를 써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비관해 다 같이 죽을 결심을 하던 차에 나와 연결이 되었단다. 그리고 첫 번째 후원금 2만원으로 갓난아이를 병원에 데 려가 살릴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그 후 내 후원금 덕분으로 제네부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부인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했던 가정부 일 을 그만두고 재봉틀을 배운다고 했다.
참 신기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겨우 피자 한판 값인 2만원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한 생명을 살리고, 흩어졌던 가족을 모으고 지독한 가난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종잣돈이 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세상에 이렇게 남는 장사가 또 어디 있을까? 되로 주고 트럭 채로 받는 일, 선한 마음을 담은 작은 정성 은 이렇게 힘이 세다.
글│한비야│긴급구호팀장│biya_han@worldvisio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