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날씨가 많이 추운데 오늘 하루도 잘 보내셨는지요. 매일 축복과 사랑이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저희 아버지 기일입니다. 지금 막 제 동생과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는데 올해는 어쩐지 특별히 옛 생각에 눈시울까지 젖어지네요. 저와 제 동생의 지난 날들을 여러분과 함께 회상해보고자 합니다. 글이 길어지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제 동생과 저는 2살차이의 형제로, 충북제천의 한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가 알코올 중독이시던 아버지는 도박으로 그나마 있던 재산을 모두 날리신 다음 몇날 며칠을 술로 지새우시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그런 일이 있은지 몇 개월 후, 어머니께서는 당시 7살, 5살이던 저와 제 동생을 두고 편지 한통만을 남기신 채 집을 나가셨습니다.
일가 친척이라곤 없던 저희 형제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 덩그라니 남겨져 참........ 지금 생각해도 어린 나이에 고생 많이 했네요. 다행스럽게도 옆집 아주머니께서 마음이 너그러우셔서 한겨울이면 연탄도 가져다 주시고, 김치도 가져다 주셔서 그렇게나마 저희 두 목숨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어린 두 형제 살기엔 이 땅은 너무나 춥고 싸늘해서 우리는 항상 배고프고 외로울 수 밖에 없었지요..
동네 어르신들이 어쩌다가 동생에게 100원씩, 200원씩 과자사먹으라 주시면 제 동생은 항상 껌을 사먹곤 했습니다. 왜 그러냐 묻자... "그래야 오래먹잖아^^" 라며 해맑게 웃던 동생의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동생의 8번째 생일이었던가.... 그때의 일입니다..... 1년에 하루 있는 동생의 생일에 생선토막이라도 구워주고 싶어 저는 500원을 들고 시장에 가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겨우 고등어 반토막을 얻었습니다. 그리고선 너무도 뿌듯한 마음에 집에 돌아오니 동생이 무언갈 먹고있는 겁니다. 형아 왜이리 늦게왔냐며.. 배고파서 먼저 밥을 먹고 있었다고.... 그러는 동생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밥공기와 치약 튜브였습니다..... 반찬이라곤 썩어가는 간장과 곰팡이 낀 된장이 전부였던 우리 형제는 남들처럼 군것질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늘 모래알 같은 밥과 짠 장만을 먹었는데 그런 우리에게 치약은 너무도 꿀맛같아서 양치할때마다 거품은 뱉지않고 삼키곤했죠.. 그래도 전 동생보단 나이가 있기에 먹는 음식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어린 동생은 치약에 밥을 비벼먹으며 행복해 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손에 쥔 생선봉지를 떨어뜨리고 동생과 부둥켜 안고 얼마나 울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큰 우리 형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유배달, 신문배달 안해본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도 열심히하고 근검 절약해서 고등학교 시절 정도에는 지하 단칸방이었지만 방풍도 잘 되고 보일러도 있는 월셋방으로 이사하고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학교생활은 참 착실히 잘 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공고를 나왔지만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하여 동생 뒷바라지를 하며 회사에서 나오는 야간대학 등록금 지원으로 전문대를 졸업하여 승진도 하고 내년쯤에는 결혼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동생은 워낙 어릴때부터 머리가 총명하여 수능공부를 시켰더니 지방이긴 하지만 의대에 붙어 장학금을 받으며 의사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내년 2월에는 동생이 본과 6년을 마치고 졸업합니다. 아마 저희 두 형제의 성장기의 완성이 눈앞에 드리워지니 오늘 아버지 산소에 갔을때도 더욱 애잔하고 아버지가 그리웠나봅니다.
오늘은 또 오랜만에 어머니.....에 대해서도 떠올려 보았습니다 어릴때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베갯닛을 적신 날들이 하루이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도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어 보니 젊으셨던 울 어머니 (18세에 결혼하셨음) 어린 나이에 남편도 없이 시골에서 홀로 두 아들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이 드셨을지 이해도 되고 또 어머니가 지금은 저희 곁에 안계시지만 어딘가에서 분명히 응원해주고 계시는 탓에 저희 두 형제가 이렇게 번듯하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도 드네요..^^
저희 형제 그동안 어려운 일도 많고 힘들었지만 대한민국 정부 및 여러 이웃 여러분들 덕분에 이렇게 잘 컸습니다 여러분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오늘은 정말 마음이 따스하고 행복하네요..^^
두서없는 글 이렇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도 언제나 행복하시고 늘 좋은일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치약에 밥을 비벼먹던 우리형제.. 이렇게 잘 컸습니다
여러분
날씨가 많이 추운데 오늘 하루도 잘 보내셨는지요.
매일 축복과 사랑이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저희 아버지 기일입니다.
지금 막 제 동생과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는데
올해는 어쩐지 특별히 옛 생각에 눈시울까지 젖어지네요.
저와 제 동생의 지난 날들을 여러분과 함께 회상해보고자 합니다.
글이 길어지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제 동생과 저는 2살차이의 형제로, 충북제천의 한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가 알코올 중독이시던 아버지는 도박으로 그나마 있던 재산을 모두 날리신 다음
몇날 며칠을 술로 지새우시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그런 일이 있은지 몇 개월 후, 어머니께서는 당시 7살, 5살이던 저와 제 동생을 두고
편지 한통만을 남기신 채 집을 나가셨습니다.
일가 친척이라곤 없던 저희 형제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 덩그라니 남겨져
참........ 지금 생각해도 어린 나이에 고생 많이 했네요.
다행스럽게도 옆집 아주머니께서 마음이 너그러우셔서
한겨울이면 연탄도 가져다 주시고, 김치도 가져다 주셔서
그렇게나마 저희 두 목숨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어린 두 형제 살기엔 이 땅은 너무나 춥고 싸늘해서
우리는 항상 배고프고 외로울 수 밖에 없었지요..
동네 어르신들이 어쩌다가 동생에게 100원씩, 200원씩 과자사먹으라 주시면
제 동생은 항상 껌을 사먹곤 했습니다.
왜 그러냐 묻자... "그래야 오래먹잖아^^" 라며 해맑게 웃던 동생의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동생의 8번째 생일이었던가.... 그때의 일입니다.....
1년에 하루 있는 동생의 생일에 생선토막이라도 구워주고 싶어
저는 500원을 들고 시장에 가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겨우 고등어 반토막을 얻었습니다.
그리고선 너무도 뿌듯한 마음에 집에 돌아오니 동생이 무언갈 먹고있는 겁니다.
형아 왜이리 늦게왔냐며.. 배고파서 먼저 밥을 먹고 있었다고....
그러는 동생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밥공기와 치약 튜브였습니다.....
반찬이라곤 썩어가는 간장과 곰팡이 낀 된장이 전부였던 우리 형제는
남들처럼 군것질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늘 모래알 같은 밥과 짠 장만을 먹었는데
그런 우리에게 치약은 너무도 꿀맛같아서 양치할때마다 거품은 뱉지않고 삼키곤했죠..
그래도 전 동생보단 나이가 있기에 먹는 음식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어린 동생은 치약에 밥을 비벼먹으며 행복해 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손에 쥔 생선봉지를 떨어뜨리고
동생과 부둥켜 안고 얼마나 울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큰 우리 형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유배달, 신문배달 안해본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도 열심히하고 근검 절약해서
고등학교 시절 정도에는 지하 단칸방이었지만 방풍도 잘 되고 보일러도 있는 월셋방으로 이사하고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학교생활은 참 착실히 잘 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공고를 나왔지만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하여 동생 뒷바라지를 하며
회사에서 나오는 야간대학 등록금 지원으로 전문대를 졸업하여 승진도 하고
내년쯤에는 결혼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동생은 워낙 어릴때부터 머리가 총명하여 수능공부를 시켰더니
지방이긴 하지만 의대에 붙어 장학금을 받으며 의사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내년 2월에는 동생이 본과 6년을 마치고 졸업합니다.
아마 저희 두 형제의 성장기의 완성이 눈앞에 드리워지니
오늘 아버지 산소에 갔을때도 더욱 애잔하고 아버지가 그리웠나봅니다.
오늘은 또 오랜만에 어머니.....에 대해서도 떠올려 보았습니다
어릴때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베갯닛을 적신 날들이 하루이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도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어 보니
젊으셨던 울 어머니 (18세에 결혼하셨음) 어린 나이에 남편도 없이
시골에서 홀로 두 아들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이 드셨을지 이해도 되고
또 어머니가 지금은 저희 곁에 안계시지만 어딘가에서 분명히 응원해주고 계시는 탓에
저희 두 형제가 이렇게 번듯하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도 드네요..^^
저희 형제 그동안 어려운 일도 많고 힘들었지만
대한민국 정부 및 여러 이웃 여러분들 덕분에 이렇게 잘 컸습니다
여러분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오늘은 정말 마음이 따스하고 행복하네요..^^
두서없는 글 이렇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도 언제나 행복하시고 늘 좋은일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