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알약 20

임마누엘2006.11.26
조회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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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1

  [ 수현아~ 오늘 날씨 너무 좋다. 드라이브나 갈까? ]


  [ 아직도 자는 거야? 음~ 잠꾸러기 아가씨~ 일어나세요 . 아침입니다. ]


  [ 어? 정말 자는 거야? 그럼 조금 더 푹 주무세요. 나중에 전화할게. 사랑해. ]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는 잠자리가 지천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늘을 보면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예쁜 하늘색이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은 어떤 연인이던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 하는 것이 연애를 하는 사람들에 마음이다. 승우도 그랬다. 날씨가 좋은 만큼 수현과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은 충동이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자 조금은 서운한 기색이다. 해가 중천에 뜨는 그 시각까지 수현에게는 간단한 내용의 문자 한 통도, 전화도 없었다. 언제 연락이 올지 기다리다 못 참고 다시 핸드폰을 손에 드는 승우. 이번엔 전화버튼을 누른다. 신호가 떨어지자 갑자기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승우는 느낄 수 있었다. 전화를 받으면 처음에 무슨 말부터 먼저 할 까? 웃을까? 삐진 척을 해볼까? 혼자만의 생각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는 승우는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전화를 받기만을 기다라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신호음만 들린 뿐 듣고 싶은 수현의 목소리는 나오지가 않았다. 갑자기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사무실 의자에 앉아 두 손을  입 쪽으로 모으는 승우. 승우가 뭔가 불안하면 보이는 습관이었다. 초초해진다.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괴롭힌다. 그러다 급히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간다.

 차를 모는 승우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다급하게 험하게 운전하고 있었다. 가만히 사무실 책상에 앉아 왜 연락이 안 되는지 고민과 걱정만 하고 있기보다 눈으로 확인하는 편이 더 속 편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40분정도 소요되는 거리를 20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수현의 집 앞까지 도착해버린 승우는 초인종을 누른다. 한참 뒤에 안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 오..오빠. ”

“ 하..수현아~? 너....전화를 ”

“ 이 시간에 여긴..어떻게 온 거야? ”

“ 수현이 너랑 연락이 너무 안 돼서.. 그래서 왔어.. 너..전화는. 어? 수현아? 너 어디 아파? 얼굴이 왜 그래? ”

“ 어? 어... 잘 모르겠어. 그냥 좀 피곤했나봐. 그래서 푹 잤어. 그냥. ”

“ 정말 그게 다야? 아픈 얼굴인데. 어디 보자. ”

이마에 손을 얹는 승우. 다행이 열은 없었다.

“ 열은 없는데. 정말 괜찮아? 병원 안 가 봐도 되겠어? ”

“ 그럼~ 나이래 뵈도 건강체질인 거.. 몰라요? ”

“ 점심은? 안 먹었지? 먹으러 가자 . 빨리 준비하고 나와. 밖에서 기다릴게. ”

현관문이 닫히고 외출할 준비를 하는 수현.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었다. 적어도 오늘 아침에는. 눈이 떠지질 않았다. 눈을 힘겹게 뜨자마자 찾아오는 건 심한 두통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심한 두통은 계속되고 있었으나 승우 앞에서는 안 그런 척 무던히 노력하고 있었다. 같이 뒤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승우는 억지로 몸을 돌려 회사로 들어간다.

요즘 들어 극심한 두통이 찾아 왔고 또 요즘 들어 더 자주 찾아오고 있었다. 그 동안 신경쓰이는 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래. 그럴 수 있다고. 무심하게 넘겼던 수현이다. 하지만 오늘은 무심하게 넘겨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을 찾는다. 대기실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만은 기다리고 있는데 사방에 아픔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이 처량하게만 보인다. 혼자 생각으로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 최수현씨. 들어오세요. ”

문은 열고 들어가 의사 앞에 앉는다. 아주 친절하게 묻는 의사의 말에 대답을 하고 검사를 받는 수현. 생각보다 많은 검사를 하는 것이 이상하다. 검사를 받는 동안에 귀에서 ‘윙윙’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거의 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검사. 약 한 시간 정도 후에 다시 그 의사로 마주 앉는다. 의사에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차트를 한참을 보더니 보여준다. 그러나 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수현은 어리둥절하다.

“ 최수현 씨, 이런 말씀 드리기 저희로서도 안타깝습니다... 음.. 사람이 살아가는데 너무도 많은 것이 필요하고 모든 것이 원활하게 돌아갈 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수현씨의 경우... 지금 많이 망가진 상태입니다.  ”

“ 저...저기요. 잠깐만요. 의사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

“ 최수현씨는.. 뇌종양을 앓고 계십니다.  ”

“ 네? 뭐라구요? 뇌... 뇌..뭐라구요? ”

“ 뇌의 종양이 있습니다. ”

“ 하..하..말도 안돼. 지금 절 놀리시는 거죠? 하. 제가 무슨..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그런 병명을... 선생님. 말도 안돼요. 어휴~그래..그래요. 오진하신 거예요. ”

“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처음에는 자신의 병명을 부정하려 합니다. 최수현씨도 그렇구요. 더구나.. 더 안 좋은 상황은.. 이미 너무 많이 전의 됐다는 겁니다. 뇌 전체에 많이 퍼져버렸습니다. ”

“ 하..하...말도 안되... 거짓말이에요. 오진이라구요. 그만 가볼게요. ”

병원 밖으로 뛰쳐나오는 수현. 빠른 시간 내에 이 병원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담당 의사도 싫었고 한 시간 동안 이루어진 검사시간 조차도 아깝게만 느껴졌다.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말이 아닌가. 암이라니. 자신에게 암이라니 그건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말도 안된다. 절대로.




 넓은 장소에 많은 이사진들과 각 팀의 부장. 팀장들이 모인 자리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저번 달에 기획된 프로그램들을 재검토하는 의미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기획팀 부장. 그 자리에 모인 많은 경영진들의 눈빛은 무언가 공감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에도 화살 같은 무서운 질문공세에 기획부장은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자신이 기획한 프로그램이 아니기에 무어라 당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승우와 선우는 회의 내내 같은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수현. 최수현이라는 여자를. 원래 되로 라면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원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여 발표했어야 하거늘 지금 상황은 그럴 수 없었으니 말이다.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인재를 단지 한 회사의 아들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 그 사랑을 막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린 한 회장. 자신의 아버지가 지금 이 순간은 증오스럽기도 하다. 기회만 된다면 다시금 이 회사로 불러오고 싶은 승우와 선우. 그 시간대 그 장소에 있는 두 남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사무실로 가는 승우를 선우가 불러 세운다.

“ 그거 알아? 요즘 형.. 딴 사람 같다는 거. ”

“ 딴 사람?  무슨 의미야? ”

“ 4년 전까지만 해도 형은 참.. 순종적이고 착한 아들이었어. 부모님 말씀이라면 거역 할 줄 모르는.. 그런 형이 변해서 돌아왔을 때 난. 좀 의아했어. 도대체 무엇이 형을 저렇게 변하게 만들었까? 하고 말야. 최수현. 그 여자가 형을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지. 맞아~ 그럴 가치가 있는 여자야. 충분히. 지금 형은 아마도 아버지 앞에선 나쁜 아들이겠지만 한 여자 앞에서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방패막이도 되어주고 사랑하는 남자도 되어주고 아주 멋진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

“ 그래..? 무슨 뜻일까?  ”

“ 한마디로 말해서 형이 부럽다는 거지. 나는 아버지한테 그렇게 반항도 못하지만 그 여자에 사랑도 못 받을 테니까. 어쨌든. 반드시 형의 사랑이 성공하길 바래. 내가 직접 나서서 도와줄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기원하지~ ”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너도 힘들었텐데.  ”

선우의 어깨에 손을 얹는 승우.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자신의 동생인 선우도 한 여자를 그렇게까지 사랑해보긴 아마 처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도 힘들었을텐데 사랑을 이루라고 말해주는 선우의 말에 한편으론 고맙지만 또 한편으로 가슴이 아려온다.




3

 [ 오늘 데이트 할까? ]

승우에게 온 문자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는 수현. 점점 초점이 흐려진다. 곧이어 수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 최수현씨는 뇌종양 말기입니다. 생사를 주관하여 말하기는 어렵지만 3개월을 넘기기 힘들것 같습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계속 받으면서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을 완화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루 빨리 입원 소속을 밟으십시오. ’


담당의사의 말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한다. 믿고 싶지 않아 다른 병원에서도 검사를 받아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더 이상 부정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부모님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는 마음 같아선 따라 죽고만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았고 살아갈 희망도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힘들고 아팠지만 또 다시 그 사랑을 지켜보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병명이라니. 이 사실을 승우에게 말해야 하는 걸까. 아님 비밀로 해야 하는 걸까. 경미에게라도 말해야 하는 걸까. 너무도 여러 감정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그 때 수현이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고는 힘겹게 받는다.

“ 여보세요. ”

“ 문자 못 받았니? ”

“ 아.. 지금 봤어. 그래 데이트 하자 오빠. ”



승우와 수현이 데이트 코스로 찾은 곳은 영화관. 나란히 손을 잡고 다른 연인들처럼 팝콘과 콜라를 손에 들고 입장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잡은 손을 놓지 않는 두 사람. 자신이 뇌종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야 너무도 행복한 순간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아프기만 하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또 다시 찾아오는 심한 두통. 이를 악물고 견뎌내는 수현. 영화가 끝나고 두 사람은 밖으로 걸어 나온다.

“ 이제 어디 갈까? 밥 먹으러 가야지. 배 고프지? ”

“ 오빠. 우리 한강 가자. ”

“ 한강? 거기 가고 싶어? ”

“ 응. 갑자기 강이 보고 싶네. 헤헤. ”

나란히 손을 잡고 산책 하다 보이는 벤치에 앉는 두 사람. 한 동안 서로 간에 침묵이 흐른다.

“ 오빠..”

“ 응? ”

“ 오늘 영화 어땠어? 슬펐어? ”

“ 응. 슬프더라. 주인공이 병으로 죽잖아. 눈물 참느라 혼났어. 아주~ ”

“ 오빠. 만약에..만약에 말야.. 그 주인공이 나라면 어떨 것 같아? ”

자신에 품에 기대어 있던 수현을 잠시 떼어 내더니 볼을 살짝 꼬집는 승우.

“ 수현이 너..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마. 알았어? 그런 일은 절대 없어. 암~ 히히 ”

“ 그러니까 만약이라고 했잖아. ”

“ 만약이라.. 만약에..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나도 같이 따라 죽을지도 모르지.  ”

“ 뭐? ”

“ 뭘 그렇게 놀라. 만약이라니까. 하하. 그러니까 수현이 넌 어디 아프지마~ 알았지? ”

“ 어...? 어.. 그래야지. ”

“ 날씨 쌀쌀해진다. 이제 들어가자. ”





4

 따스한 가을 햇살이 수현의 방 창가를 비춘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수현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주시하고 있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 또 다시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뜬다. 그러기를 수십 번을 반복한다. 하루속히 어두운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도 밝아서 눈 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환한 자신의 방안이 싫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벌써 여러 번이나 문자 오는 소리와 전화 오늘 소리가 방안에 가득했지만 수현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마치 이 세상에 자신만 존재 하는 것 같은 참을 수 없는 외로움, 차가움, 두려움이 몰려온다.



 어느 때 보다도 얼굴 표정이 밝은 승우는 몰고 가던 차를 세워 꽃집으로 향한다. 장미꽃다발을 한손에 들고 다시 운전한다. 오늘 이사 회의에서 수현이 기획한 프로그램이 확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하루속히 전하고 싶은 마음에 속력을 내는 승우. 수현의 문 앞에 도착한 승우는 현관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가다듬고 목소리도 가다듬고 초인종을 누른다.

‘띵동’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다시 누른다. 그래도 역시 아무런 반응은 없었다. 일부러 수현을 깜짝 놀래주고 싶은 마음에 연락도 하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온 것인데 집에 없다는 것을 알고 내심 아쉬워한다. 하는 수 없이 차안에서 수현이 오기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지금 당장 전화해서 어디냐고 묻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오늘 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현을 놀래주고 즐겁게 해주고 싶었으니 말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수현은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점점 날은 어두워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수현에 집은 불꺼진 상태 그대로였고 오늘따라 수현의 방 창문에 어두움이 쓸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수현의 집 앞에서 기다린 지 9시간..

핸드폰을 꺼내 전화하는 승우. 그러나 폰은 꺼져있다. 실망한 기색에 승우는 장미꽃을 현관문 앞에 내려놓고 집으로 향한다.



 “ 본부장님. 오늘 오후에는 이번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미팅이 세미나실에서 있습니다. 여기 보여드린 자료를 검토해 보시라는 이사진들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본부장님께서 저번에 말씀하신 뮤지컬 티켓을 예매했습니다. 내일 오후 7시 대학로 대극장입니다. 티켓 확인해 드릴까요? ”

듣고 있는 건지 안 듣고 있는 건지 대답이 없자 다시 크게 질문한다.

“ 본부장님.! ”

“ 아.! 미안합니다. 뭐라구요? ”

“ 내일 오후 7시에 예매한 뮤지컬 티켓 확인해 드릴까요? ”

“ 뮤지컬이라.. 음...  내일이군요. 그건 내일 확인하도록 하죠. ”

“ 네. 본부장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

“ 그래 보여요? 그냥 조금 피곤해서요. 오늘은 먼저 퇴근할게요. 그럼. ”

가방과 옷가지를 챙겨 사무실을 나오는 승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오늘이 벌써 3일째다. 수현과 연락이 되지 않은지. 요즘 들어 수현과 연락 두절되는 상황이 잦아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연락이 안된 적은 없었는데 집에 찾아가서 밤늦게까지 기다려 봐도 만날 수가 없었다.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경미에게 전화 거는 승우. 몇 번의 신호음과 함께 이내 전화를 받는 경미.

“ 여보세요? ”

“ 경미씨. 저 한승웁니다. ”

“ 아~ 승우씨. 반가워요. 승우씨한테 연락도 다 오네요. 하하. ”

“ 그 동안 잘 지냈죠?  안부라도 전했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

“ 아니구~ 농담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 수현이나 많이 예뻐해주세요. 근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어요? ”

“ 오늘로 3일째 수현이 하고 연락두절이에요. 전화해도 안 받고 집에 찾아가서 기다려도 만날 수가 없네요. 혹시 경미씨는 뭔가 아는가 해서요. ”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연락이 안 된다니. 요즘 수현이하고 연락을 못하고 지냈어요. 제 나름대로도 바쁜 일도 많았고 연애 하느라 바쁜가보다 했는데.. 핸드폰을 잃어 버린게 아닐까요? ”

“ 단순히 그런 거라면 다행입니다만. 이상하게 불안해서요. ”

“ 괜찮을 거에요. 곧 연락 올 테니까 기다려보세요. ”

경미와 전화통화가 끝난 후 그 마음은 더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어디가 아픈 것일까. 경미 말대로 핸드폰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요즘 들어 승우는 위험한 운전기사가 되 버렸다.  퇴근 후 수현에 집까지 20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도착하여 늦게까지 기다리다보니. 차안에서 초초하게 기다리던 승우는 거울에 비치는 수현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차에서 내린다. 100미터 안 밖으로 보이는 승우를 발견하고는  더 놀란 건  수현이었다. 평소보다 화장이 진해져버린 수현을 보고 낯설어 하는 승우. 화장을 한 듯 안 한 듯 했던 얼굴이었는데 불과 3일 만에 수현의 얼굴은 변해 있었다. 그렇다고 본 얼굴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승우에게는 낯설기만 했다.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수현도 마찬가지였다. 병명을 알고부터 더 심하게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이미 살도 많이 빠진 대다가 얼굴색이 많이 나빠진 상태였다. 그 누가 봐도 수현의 모습은 아픈 환자였도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더 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이 남자 앞에서는 더더욱.

빠른 걸음으로 수현에게 다가가는 승우. 다가오는 승우를 보는 수현은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문다. 그리고 연습한다. 최대한 냉정한 눈빛을. 그리고 다짐한다. 최대한 나쁜 여자가 되겠다고.

“ 수현이..너.. 하.. 어디 다녀오니? ”

“ 오빠가 여긴 웬일이야? ”

“ 웬일이긴. 너..너 만나러왔지. 전화. 전화는 왜 이렇게 안돼? ”

“ 아~ 그거? 나 폰 바꿨는데. 그래서 쓰던 건 버려버렸어. ”

“ 바꿨어? 그럼 나한테 연락했어야지~ 난 모르고 있었잖아. 너랑 연락 안 되서 얼마나 걱정했다고. ”

“ 내가 그걸 일일이 오빠한테 보고 해야 돼? 난 그럴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안 한 건데. 여기에 온 용건이 뭐야? ”

“ 용건? 너랑 연락이 안돼서 걱정돼서 왔어. 어디 아픈데 있는건 아니지? ”

“ 아픈데 없어. 이제 얼굴 봤으니까 됐네. 잘가. 난 좀 피곤해서. ”

자신을 보자마자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수현의 행동까지 너무도 낯설어 딴 사람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수현이 답지 않았다. 오늘 뭔가 이상했다. 그렇게 들어가 버리겠다는 수현은 부른다.

“ 수..수현아. ”

“ 왜? 더 할말 남았어? ”

“ 아니. 잘자라구. ”

너무도 냉냉한 말투와 억양 때문이었을까. 정작 수현을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들이라든지. 꼭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생각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게 서 있다가 차를 타고 떠나는 승우. 그런 승우를 불이 꺼진 창문으로 끝까지 지켜보며 어깨를 들썩이는 수현. 수현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 오빠... 오빠..... ’




5

 서류를 검토 중인 한 회장.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무언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항이 눈에 띄인 것일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과장과 윤 비서. 모든 결제가 끝나고 과장이 회장실을 나가자 잡혔던 미간이 주름이 사라진다.

“ 윤 비서. 요즘 승우는 어쩌고 있나. ”

“ 맡고 계신 임무는 잘 수행하고 계십니다. 프로그램 진행 준비도 잘 되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컨디션이 안 좋으신지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신답니다. ”

“ 음.. 그 놈은 고생을 해봐야 이 애비 맘을 알지.. 쯔쯧.. ”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약물투여가 시작 된지 2주째. 약기운 때문에 입맛이 떨어져 끼니를 챙겨먹는 것이 힘들어지고 오래 걸으면 머리가 울려서 울렁거림 증까지 겹쳐 2주 만에 7키로가 빠져버린 수현. 요즘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통증과 싸워야 하니 말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도 모르게 병마와 싸워나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통증 때문에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나 고생한 터에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요즘은 꿈을 많이 꾼다. 알 수 없는 내용의 꿈들을. 그리고 깨어나 보면 아무도 없는 자신의 방안. 무섭고 외롭다 . 몸서리치도록 두렵다. 혼자라는 것이. 그러나 견뎌야 한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 ‘탕탕탕’ 무엇이 깨지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 같기도 하다. 겨우 눈을 떠서 확인 해 보니 누가 자신의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 이봐요. 아가씨. 2층집 아가씨 . 안에 있어요? 있으면 문 좀 열어봐요.”

온 몸에 모레 집을 10개정도 달고 있는 것처럼 온 몸이 무겁고 나른하다. 현관문을 여는 수현. 주인집 아주머니였다.

“ 아이구. 아가씨 집에 있었네~ 난 또. 아무리 불러도 안 나오길래. 집에 없나 했어요. 어머. 근데 아가씨. 어디 아파요? 얼굴이 왜 이렇대? ”

“ 아.. 감기 몸살이 좀 있어서요. 무슨 일이세요 ? ”

“ 아. 다름이 아니고 이번 달 전기세가 아직 미납 이더라구. 하루 빨리 납부 좀 해줘. ”

“ 아.. 죄송해요. 제가 바로 납부할게요. 안녕히 가세요. ”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한다.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변기에 앉는다. 또 다시 초점이 사라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뜨거운 온기 때문에 화장실 안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거울에 서리가 낀다. 천천히 일어나 거울을 보는 수현. 손으로 거울에 낀 서리를 닦아낸다. 핏기하나 없는 수현이 얼굴이 거울에 비취어졌다가 또 다시 서리가 껴 모습이 이내 사라지고 만다. 또 다시 손으로 서리를 닦아낸다. 자신의 눈. 코. 입을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만져본다. 갑자기 참고 있던 설움이 복받쳐 오는지 눈물이 나고 소리 내서 울기 시작한다.

“ 하..하...하...흑..흑.... 흑....엄마....아빠... ”



 화장실에서 나온 수현은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한다. 칙칙하고 어두운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최대한 화사하게 진하게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3일 만에 수현을 보고 돌아와서는 그 뒤로 또 4일이 흘렀다. 다시 연락하려고 했는데. 폰을 바꿨다는 수현의 말이 생각나 다시 전화를 내려놓곤 했다.  그러고 보니 새로 산 수현의 핸드폰 번호도 모르고 있는 셈이었다. 순간 어의가 없고 화가 나기도 하다가 알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아직 함께 걸어가야 할 길도 멀고도 먼데. 아직 우리가 견뎌야 할 일들이 많은데. 뭔가가 어긋나고 있다는 예감이 들 때마다 고개를 심하게 젓는다. 회사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좀 전부터 찾아오는 편두통 때문에 머리를 잡고 고개를 숙인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발신번호를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였다.

“ 여보세요. 한승우입니다. ”

“ 오빠. ”

“ 수현이니? 수현이구나. ”

“ 응. 오늘 시간 있어. ? ”

“ 그럼. 당연히 있지. 없어도 수현이가 물어보니까 만들게 . 하하. ”

“ 그럼 오늘 우리 만나자. ”

“ 그래. 오랜만에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자. 퇴근하고 데리러 갈게. 이따가 보자. ”

전화를 끊고 심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만 오랜  간을 소비한다. 이내 다시 전화를 걸어 호텔 레스토랑에 식사 예약을 해버리는 승우. 오랜만에 데이트라는 것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



  퇴근시간이라 차가 막혔을 테지만 원래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서 인지 그다지 막히지 않았다. 오늘 승우의 운전은 좀처럼 편안해 보인다. 수현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리라. 약속시간 한 시간 전에 수현의 집에 도착한 승우는 수현이 나오기만은 기다린다. 한 시간쯤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오늘은 하고 싶었던 말도 하고 꼭 사랑스럽게 안아줄 것이라면서 마음속으로 약속도 했던 승우. 그리고 수현이 집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차문을 열어 밖으로 나와 수현을 맞이하는 승우.

“ 나왔니? 타시지요. 아가씨~ ”

승우에 에스코트를 받으며 차에 오르는 수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좀처럼 웃지 않는다. 아니 웃을 수가 없었다.

“ 자아~ 어디로 모실까요? 사실은. 오늘 제가 예약을 해 두었는데 그쪽으로 가되 되겠습니까? 하하하. ”

“ 아니. 난 여기도 괜찮은데. ”

“ 어? 여기? 여기라니? 설마. 차 안? ”

“ 응. 나쁘지 않은데. ”

“ 아.. 하하. 드라이브 하고 싶구나 . 그건 이따가 하자. 우선 맛있는 거부터 먹으러 갈까? ”

“ 아니. 그러지 마. 여기가 좋겠어. 여기가. ”

순간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승우는. 갑작스런 수현의 태도. 그리고 잠시 흐는 정적. 그 정적은 퍽이나 두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조성해주고 있었다.

“ 수현아. 나 오늘 너한테 연락 와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지? 보고 싶었어. ”

그런 승우의 말을 들으면서 살짝 흔들리는 수현의 눈동자. 승우가 눈치 챌 수 없게 이를 질끈 깨문다.

“ 오빠.  ”

“ 응?  ”

“ 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

“ 어? 뭐라구? ”

“ 여기까지만 하자구. 연애. ”

또 다시 흐는 정적. 냉냉한 표정을 애써 지으려는 수현. 당황스러운 표정의 승우.

“ 그게.. 그게 무슨 말이야 수현아? ”

“ 오빠. 공부 많이 하지 않았나? 그럼 머리도 좋을 텐데. 왜 그래?  정말 못 알아듣는 거야. 아님.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거야? ”

“ 수현아..... ”

“ 이젠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 부르지 마. ”

지금 자신 옆에 앉아 있는 이 여자가 과연 최수현이라는 여자가 맞을까.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승우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꿈을 꾸는 있는 건가. 그래 꿈일 거야. 그래. 꿈이야.

“ 수현아. 그런 말은 쉽게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장난은 치는 거 아니야. ”

“ 하.. 하... 오빠. 오빠 눈엔 지금 내가 장난치는 거 같아? 내가 왜? 왜 그렇게 시간낭비를 하겠어? 그럴 가치가 있을까? 세상 모든 사랑이 그렇듯...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내 사랑도 내 맘도 나도.. 변했어. 왜 변했을까..? 그래.. 이런 표현이 좀 어울리겠네. 그래... 난 좀 지쳤어. 오빠를 사랑했던 건 사실이지만 4년 전에 날 떠난 오빠 때문에도 난 충분히 힘들어야만 했고 물론 지금도 JD그룹에 회장 아들이라는 그 잘난 호칭 때문에.. 그 잘난 남자와 연애한다는 건 자체도 날 너무 지치게 만들었어.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만 해? 왜? 잘 생각해보면 말야. 해결책이 하나 있더라구. 한승우라는 남자를 내가 놓아 버리면 아주 말끔하게 해결되는 일이더라구.  ”

“ 최수현... 너.. 그만해. 이건 장난이 지나치잖아. ”

“ 아직도 모르겠어? 난 지금 장난치는 게 아니야! 한승우한테 이별통보를 하는거라구! ”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 할 수 없었다. 갑자기 헤어지자니. 그게 말이 되는가. 일주일 전만 해도 두 사람은 너무도 행복한 연인의 모습을 그려내는 길거리에 연인에 불과했다. 물론 많은 아픔과 시련이 있었으나 그건 사랑으로 이겨내고 극복하는 중이고 반드시 극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 다신.. 나 찾아 오지마. 찾아 온데도 만나지 않을 거야. 잘가. ”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 순간 수현을 팔목을 잡는 승우. 또 다시 흔들리는 수현의 눈빛. 다시 냉정하게 마음먹고 강하게 뿌리치는 수현. 차에서 내리고 집으로 향하는 수현을 뒤늦게 따라와 뒤에서 수현을 안아 버린다. 심하게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키지는 않을까 긴장하는 수현.

“ 이대로는 못가. 말도 안돼. 내가 뭐 잘못했니? 뭐 땜에 화가 나기라도 한 거야? ”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질끈 깨문다.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리고 서서히 승우의 손이 풀린다. 그리고 몸을 돌려 승우를 보는 수현.

“ 오늘까지 만이야. 이런 행동. 내일부터는 용납 못해. 다신 마주치지 말자.  ”

너무도 냉정하고 차갑게 변해버린 수현을 보면서 목소리를 들으면서 온 몸이 굳어 버린 승우. 더 이상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만 같았다. 집으로 들어가는 수현의 뒷모습을 멍하게 지켜본다. 한참 동안을 움직이지 않고 넋 사람의 모습을 하고는 서 있는다. 집으로 돌아온 수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죽여 운다.


“ 오빠.. 미안해.. 흑흑..하..하..앙.앙.. 못되게 굴어서..오빠한테 아픈 말 해서.. 미안해...내가 미안해..하.하. 내가 죽는 걸 봐야 하는 것보다는....아마도..아마도... 이게..더 나을거야....나...절대 용서하지 마. 그냥.. 한 없이 미워해....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