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란 울타리...
지난봄 사촌 남동생이 내 남동생이 하는 일을 돕기위해 미국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예쁜 아가씨 있으면 소개를 시켜달라고 했다는데 마침 그
교회를 다니는 부잣집 아주머니께서 사촌 동생을 사윗감으로 낙점...
그리고 곧 약혼식을 하고 신접살림을 하게 되었는데 약혼식에는 마침 동생네 머물고
계시던 우리부모님께서 사촌동생의 큰아버지 큰어머니의 자격으로 참석하셨다는데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된 아가씨쪽 친척들이..
근본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는데 아가씨 부모님은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며 약혼식만 하고 몇개월을 함께 살다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9월 30일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 결혼식에는 오래전 이민생활로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산 신부쪽 손님은
일가친척이 많이 참석했지만 신랑이 되는 사촌동생은 한국에서 부모님과 자신의 형,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고모님과 고종사촌 그리고 우리 여동생 남동생 가족으로...
갓난애기인 우리조카까지 합해 12명이 참석했다는데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장소에서
양가의 가까운 친인척끼리 인사를 나누는데 신랑의 아버지인 우리 작은 아버지께서는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요즘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곳을 다니셨던 멋쟁이에...
IMF때 대학을 졸업하고도 바로 삼성맨이 될 정도로 명문 출신 친형의 영어실력은
한국에서 동생결혼 때문에 미국으로 갔단 얘길 믿지않을 정도로 뛰어났으며 대학 4년을
다니며 알바로 번 돈으로 세계일주를 하며 견문을 넓혀...
잠시 얘기를 해 보고도 똑똑한 청년이란 평을 들었다고... 고모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서 살아가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날 나이스짱이 되었다며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들을 일일이 당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인사를 잊지 않더라는...
고모랑 함께 참석한 고종 사촌과 내 여동생가족, 남동생가족을 보더니 근본도 모르는
총각에게 시집 보냈다고 흉보던 신부측 친척들이 더 이상 할말을 잃었다는 후문이..
친정어머니께서는 시골촌놈(?)들이 부잣집 친인척을 말문을 닫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증조할머니 살아생전 덕을 많이 쌓은 덕분이라는데 내가 태어나 최초로 기억하는 것은
내가 어릴때 우리집에서 초상이 났었는데 우리집 앞 개울가에는 거지들이 삼삼오오
정말 많이 참석했는데 나중에 나는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 시골엔 밥을 굶는 사람이 많았다며 증조할머니께서는 우리집을 찾는 거지에게
쌀이며 보리며 한바가지씩 퍼주는 모습이 당시 시집온지 얼마되 않는 어머니께서
보시기에 참 인상적이었다고 그 할머니 덕분에 자손인 우리들이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곤하는데 때론 사람이 살아가는데 부모님이나 형제는 물론 집안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큰언덕이 되어주는지 내 사촌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한 몇명되지 않는
우리가족들이 근본도 모르는 신랑이란 누명(?)을 벗겨줄 수 있어 다행..
집안이란 울타리...
집안이란 울타리... 지난봄 사촌 남동생이 내 남동생이 하는 일을 돕기위해 미국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예쁜 아가씨 있으면 소개를 시켜달라고 했다는데 마침 그 교회를 다니는 부잣집 아주머니께서 사촌 동생을 사윗감으로 낙점... 그리고 곧 약혼식을 하고 신접살림을 하게 되었는데 약혼식에는 마침 동생네 머물고 계시던 우리부모님께서 사촌동생의 큰아버지 큰어머니의 자격으로 참석하셨다는데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된 아가씨쪽 친척들이.. 근본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는데 아가씨 부모님은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며 약혼식만 하고 몇개월을 함께 살다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9월 30일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 결혼식에는 오래전 이민생활로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산 신부쪽 손님은 일가친척이 많이 참석했지만 신랑이 되는 사촌동생은 한국에서 부모님과 자신의 형,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고모님과 고종사촌 그리고 우리 여동생 남동생 가족으로... 갓난애기인 우리조카까지 합해 12명이 참석했다는데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장소에서 양가의 가까운 친인척끼리 인사를 나누는데 신랑의 아버지인 우리 작은 아버지께서는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요즘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곳을 다니셨던 멋쟁이에... IMF때 대학을 졸업하고도 바로 삼성맨이 될 정도로 명문 출신 친형의 영어실력은 한국에서 동생결혼 때문에 미국으로 갔단 얘길 믿지않을 정도로 뛰어났으며 대학 4년을 다니며 알바로 번 돈으로 세계일주를 하며 견문을 넓혀... 잠시 얘기를 해 보고도 똑똑한 청년이란 평을 들었다고... 고모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서 살아가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날 나이스짱이 되었다며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들을 일일이 당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인사를 잊지 않더라는... 고모랑 함께 참석한 고종 사촌과 내 여동생가족, 남동생가족을 보더니 근본도 모르는 총각에게 시집 보냈다고 흉보던 신부측 친척들이 더 이상 할말을 잃었다는 후문이.. 친정어머니께서는 시골촌놈(?)들이 부잣집 친인척을 말문을 닫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증조할머니 살아생전 덕을 많이 쌓은 덕분이라는데 내가 태어나 최초로 기억하는 것은 내가 어릴때 우리집에서 초상이 났었는데 우리집 앞 개울가에는 거지들이 삼삼오오 정말 많이 참석했는데 나중에 나는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 시골엔 밥을 굶는 사람이 많았다며 증조할머니께서는 우리집을 찾는 거지에게 쌀이며 보리며 한바가지씩 퍼주는 모습이 당시 시집온지 얼마되 않는 어머니께서 보시기에 참 인상적이었다고 그 할머니 덕분에 자손인 우리들이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곤하는데 때론 사람이 살아가는데 부모님이나 형제는 물론 집안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큰언덕이 되어주는지 내 사촌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한 몇명되지 않는 우리가족들이 근본도 모르는 신랑이란 누명(?)을 벗겨줄 수 있어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