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만큼 사랑할때$$-5

네시사십오분2006.11.28
조회159

갑자기 수사5반이 시끄러워졌다. 연희가 들어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피의자를 두고 이만수형사가 진땀을 빼고 있었다.

 

-합의는 내일보도록 하고 우선 댁에 들어 가십시오..

 

근데 그 피의자가 너무 거만햇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이래라저래라 소리치고 있엇다.

 

-무슨 사건이야?

 

뒤늦게 사무실로 들어온 연희가 민석에게 물었다.
민석은 조용히 속삭였다.

 

-폭행사건이야. 병을 들고 사람을 때렸대. 지금 피해자는 병원에 가 있고..

 

연희가 비웃음이 한껏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지저분한 일은 다 우리부서 차지군..

 

방금 전까지 살인사건 때문에 눈꼬틀새없이 바빳던 옆부서사람들의 푸념을 듣고 오던길이었다.

 

-근데 저 사람 뭐가 이렇게 당당해..

 

그를 당당하게 만든건 돈이었다.. 그는 경제계에서는 알아주는 재벌집 아들이엇다. 그집안은 연희도 익히 들어본 기업이었다. 그사람은 여전히 소리지르며 옆의 변호사까지 동원해 오히려 경찰과 피해자를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그옆의 변호사도 이사람의 말이 억지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사람의 주장에 보조를 맞추웟다.

 

-절차를 제대로밟지 않았습니다. 겉보기엔 우리측에 잘못이 있는것처럼 보이더라도 쌍방과실일수도잇는데 무작정 우리쪽 책임으로만 몰고갔어요..이것을 문제삼을 수도 잇습니다.

 

그리고 그가 안보는 사이 이만수에게 연신 양해의 눈짓을 보냈다. 이런 변호사의 눈짓을 보았는지.안보았는지.아니 연희가 보기엔 절대 보지 못한거 같았다.
이만수는 연신 흐르는 땀을 딱아대며 혹시나 자신의 신변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절차에 문제가 있엇는지는 다시한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우선 밤이 늦었으니 집에 들어가서 쉬고 내일 피해자 측이랑 합의를 보시는게 좋을 거 같습니다. 

 

-박비서가 밖에 차 대기하고 있으니까. 어서 댁에 들어가십시오. 뒷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발요 사모님께서 무지 걱정하고 계십니다.

 

-김변호사 확실히 그새끼랑 여기 나 무시한 작자들 다 고소해 알앗어?

 

-걱정마십시요..

 

벌써 다섯번째였다. 서강현의 뒷치닥거리를 위해 밤에 자다 말고 달려나온 것이.. 김변호사는 순간 더 이상 드러워서 이 일을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출받아서 산 큰집을 생각하며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대출금 다 갚을때까지만..참자.
변호사는 뒷일은 자기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이제 그만하고 가라며 그 성난 사람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변호사에게 몇번의 확답을 받고서도 여전히 분이 안푸렸는지 씩씩거리며 그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칠게 손을 움직였다.

 

-그나마 당신이 장애인이니까 이만한 걸로 끝난거로 알아요.

 

-뭐라구요?

 

연희는 뒤의 강현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유유히 커피자판기로 향했다.
밀크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며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강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밑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우려 손을 뻗고 있었다. 하지만 휠체어의 높이 때문에 바닥에 손이 닿지 않았다. 몸을 더 숙이면 간신히 집을 수도 있을 거 같았는데 그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연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앗다.

 

-도와달라고 말하면 내가 저 핸드폰 집어 줄 수도 있는데..

 

연희는 그의 표정을 빠르게 살폈다.

그 남자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번졌다. 이초도 안되어 연희는 그웃음이 비웃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됐어요. 그까짓 핸드폰 또 사면 되니까..

 

-참 역시 재벌 2세라 그런지 돈이 남아 도나부네..
남들은 몇달치 용돈 겨우 털어서 살만한 핸드폰인데..

 

-당신 몇달치 용돈이 고작 저정도 였어요? 경찰들 봉급 정말짜네.
그럼 내가 당신 용돈 아껴줄테니..주워서 그냥 가져요.

 

연희는 여전히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햇다.

 

-좋아요. 물건은 그렇다 쳐요. 생명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내버려둔다고  무슨일이 일어나진 않겠죠.
근데 만약 사람이 당신앞에 쓰러져 있는 상황이어도 지금처럼 손이 안 닿는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칠 건가요? 어떻해든 구해볼 생각도 안하고..

 

-무슨말이야..사람이랑 물건이랑 같아요?
내가 왜 당신이랑 이런 논쟁을 해야하지?

 

-당신 마인드 문제에요. 조금 허리를 구부리면 될 것을 그게 싫어서 금방 포기해버리고 말잖아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당신이 사람은 안 그렇겠어요? 다리때문에 구할 수 없다고 쉽게 포기해버리겠죠. 잘하면 구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그리고 자신이 장애인이라 어쩔수 없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말겟죠

 

억지스런 연희의 말을 묵묵히 듣더니 강현이 연희를 똑바로 응시했다. 사실 연희는 강현이 그냥 자기의 말을 무시하고 가버릴 줄 알았는데..의외의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알고싶어요? 내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도 그냥 지나치는지 아닌지?

 

연희는 장난기 가득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좋아요 재현을 한번 해봅시다.
당신이 내 앞에 쓰러져 봐요. 그럼 내가 행동을 취할테니..

연희는 곧바로 그의 앞에 누워버렸다. 잠깐이지만 그의 눈에 당황하는 빛이 스쳤다. 정말로 연희가 이런 바닥에 누워버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듯 했다. 하지만 곧 예전의 그 눈빛을 되찾더니 천천히 휠체어를 움직였다. 그가 서서히 연희에게 다가오는가 싶더니 이내 그녀를 쌩하니 지나쳐버렷다.

 

‘사람도 지나치는군...

 

연희가 이렇게 결론을 내리려는데 갑자기 그가 방향을 돌려 아까 그 핸드폰 있는 자리까지 휠체어를 끌었다. 연희는 여전히 누워있는채로 그가 하는 행동을 묵묵히 지켜봤다. 그는 지지대로 휠체어를 고정하고 이번엔 한쪽으로 허리를 최대한 내려 아까 그냥 지나쳤던 그 핸드폰을 낑낑대며 주우려고 노력했다. 몇번의 시도끝에 결국 그 핸드폰을 줍는데 성공했다. 연희가 황당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앗다.
그가 여전히 바닥에 누운채 일어날줄 모르는 연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차라리 핸드폰을 줍겠어요. 당신보단 이 핸드폰이 더 가치 있는 선택이니까....

-뭐라구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어디 사람을 물건에 비해?.

 

벌떡 일어나 그를 향해 소리쳣다.. 그리고 분이 풀리지 않는지  점점 멀어져가는 그의 뒤에대고 소리쳤다.

 

-세상에 태어나서 당신같이 못된 장애인은 처음봐.!

 

갑자기 그의 휠체어가 멈췄다.
그리고 연희를 향해 아까의 비웃음을 흘리며 나직히 말했다.

 

-장애인은 무조건 다 착한 줄 알았나부지?

 

연희이 약간 뜨금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연희에게 그런 편견이 있엇던 건 사실이었다. 항상 피해를 당하는 쪽은 마음이 여리고 착한 그들이라고..

 

-하지만 이해해 나도 그런 종류의 편견을 갖고 있었으니까.
나도 못생긴 여자는 무조건 착할것이라는 생각이 있엇거든.
태어나서 처음봐! 당신같이 못생기고! 못된! 정.상.인 여자는!

 

사무실안으로 들어오면서 연희의 귀에 만수와 그사람의 변호사가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형사님이 이해해주세요.
좋은집안에 머리좋고 얼굴잘생기고, 운동도 얼마나 잘했었는데요..
뭐하나 빠지는거 없는 사람이었는데 한순간에 다리가 저렇게 되버렸으니
얼마나 세상이 원망스럽겟어요.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만수도 이해한다는듯이 그의말을 거들었다.

 

-그럼 사람에게 뭣도 모르고 병신이라고 함부로 말을 찌껄였으니..
음..그래도 우선 피해자하고 합의를 보는게 급선무건 아시죠?

 

-알죠. 합의야 뭐 돈이 넘쳐나는 집안이니 그 병원에 있는 사람은 땡 잡은 거죠뭐.
그돈이면 오히려 병원에 있는 사람이 제발로 찾아와서 사과까지하게 만들수도 잇을껄요.

 

-변호사님도 참 힘드시겟어요. 한두번이 아니죠? 이런경우.

 

-그렇죠….씁쓸해요. 다치기 전엔 회사 일 아니면 나랑 만날 일도 없던 사람이었는데..

 

#

 연희는 그가 수영하는 모습을 흐믓한 모습으로 보고 있엇다.
아침에 만수가 강현이 놓고간 시계를 어떻게 돌려줘야 하냐며 고심하고 있을대 연희는 이기회가 딴사람한테(사실 그사무실에 연희밖에 없었는데..) 뺏길새라  잽싸게 시계를 낚아챘다.

 

-제가 갔다줄께요..

 

-어? 그 사람 성격 알잖아..경찰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마 노발대발 할걸? 그냥 택배로 보내지..

 

-에이 뭐하러 그래요..택배비 들게..마침 제가 그 근처 가는길이니까 갖다주고 올께요.

-그..그래..그럼.

 

만수는 연희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안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희는 사실 그 회사 비서실에 주고 올수도 잇었지만 경찰이란 신분을 이용해
꼭 그사람을 만날 일이 있다며 강현이 지금 휘트니스센타에 있다는것을 알아냈다.


그가 수영을 마치고 샤워실로 들어가는것을 본 연희는 그가 나올 입구에서 끈기있게 강현을 기다렸다. 드디어 젖은 머리의 그가 나오는것을 볼 수 잇엇다.
연희를 보자 그의 표정이 놀람과 동시에 이상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게 어떤미소인지는 가늠키 어려웠지만 확실한건 어제 보여줫던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때 내 행동이 무례했다면 사과할께요. 나어제 곰곰히 생각했어요. 당신의 말의 의미를..

 

-무슨 말? 태어나서 당신같이 못된 정상인 여자는 처음본다는 말?

 

연희가 훗 하고 웃었다.

 

-못생겼다는 말을 왜 빼요? 그거 말고요. 당신한테 쓰러져 있는 나보단 핸드폰이 더 가치있는 선택이라고 했던 말..
당신말이 맞았어요. 그때 그 상황에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에요. 무리하게 쓰러져 있는 날 깨우는 것보단 핸드폰을 주워 도움을 요청하는게 더 현명한 방법이겠죠. 당신은 물건과 사람중 물건을 선택한 매정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맞게 사람을 구할 방법을 강구한 따뜻하고 똑똑한 사람이에요. 고마워요 구해줘서.

 

-그냥 놀이한거 갖고 너무 과대 의미를 갔다 붙이는 거 아닌가?

 

-당신이 구한 건 내 몸뿐만이 아니에요. 편견이라는 늪에 빠질뻔한 내 낡아빠진 사고방식을 구했죠.
우리 사귈래요? 당신과 만나고 싶어오

 

-하하. 이유가 뭐지? 호기심 때문에? 아니면 당신의 알량한 인정?
한번도 나같은남자, 아니 장애인은 사귀어 본적이 없었겠지. 그래서 궁금하겟지 저사람이랑 있을땐 어떤...... 

 

성질 급한 연희가 그의 말을 가로막앗다.

 

-당신 여자 처음 사귀어봐요? 아님 여자 만날때마다 일일히 그렇게 깊은 거까지 생각하냐구요..
그냥..난 단지 여자로서 남자인 당신에게 호감을 느겼어요

 

-장애인인 남자가 아니고?
호감이 아니라 연민이 아니고?

 

-아~정말 내가 꼭 이런말까지 해야해요?

솔직히 그때 바닥에 누워서 당신을 바라봤을때 문득 당신이 섹시하단 생각이 들엇단 말이에요. 가슴이 두근거릴만큼.,, 당신 모습이 다시 보고 싶어 혼났어요..
나 앞으로의 일 같은 거 생각 안해요. 며칠 있으면 당신이 싫증날 수도 잇겠죠. 하지만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요. 앞으로의 일은 그때가서 생각할래요. 확실한건 지금 이순간 내가 당신과 만나고 싶다는 거에요.
당신생각은 어때요?

 

-넘 무책임한 생각이군, 앞뒤생각해보지도 않고 순간의 감정에만 충실하자?

 

-그래서 싫은가요?

 

-훗..
흥미로와...당신, 또 당신의 사고방식..

 

연희가 팔장을끼며 잔뜩 유혹하는 눈빛으로 그에게 한걸음 더 다가섯다.

 

-그래서요?

 

연희는 이미 그의 대답을 눈치채고 있었다. 강현 또한 연희가 자신의 다음 대답을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좋아요..사귀어봅시다.~

 

처음으로 연희와 강현의 얼굴에 같은 의미의 웃음이 동시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