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
[출처 : http://monthly.chosun.com]
검정고무신 땀이 차면 질컥거리고, 뛰어가다 보면 훌떡 벗겨지는 검정고무신. 옛날 어린이들은 천으로 만든 운동화를 신어보는 것이 큰 소원이었다. 물론 검정고무신이 편리한 때도 있었다. 때가 묻어도 표가 안 나고, 汚物(오물)이 묻으면 빨래 비누를 묻힌 수세미나 짚으로 닦아내고 나서 물로 헹구면 그만이었다. 물이 새지 않는 고무신은 아이들에겐 좋은 장난감이기도 했다. 냇가에 나가 고기를 잡거나, 흙장난할 때 흙이나 모래를 퍼담아 부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멱을 감을 때는 바가지 대신 물을 퍼서 끼얹는 데 쓸 수도 있었다. 흰색 고무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고무신이 검정색이었던 것은 廢타이어나 튜브 등을 主원료로 한 재생고무를 사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무신에 구멍이 나거나 해지면 고무조각으로 때워서 계속 신고 다녔다. 더 이상 때워서 신을 수 없을 정도로 고무신이 낡으면, 아이들은 고무신을 고물장수에게 가져가 엿이나 강냉이 튀긴 것과 바꿔 먹곤 했다. 지난 날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鄕愁(향수) 때문일까? 아니면 신기에 편리하고 가볍기 때문일까? 요즘도 집 안에서 마당을 거닐 때 신는 신발로 검정고무신을 애용하는 나이 드신 분들을 가끔씩 볼 수 있다.
요강 어릴 때 밤중에 바깥의 뒷간을 가려면 부모님이나 형들을 깨워서 동행을 했다. 말로만 듣던 뒷간 귀신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러한 무서움에서 벗어나고 한겨울 한밤중에 덜덜 떨면서 멀리 가지 않고도 크고 작은 일을 방안에서 볼 수 있던 편리한 도구가 요강이다. 예부터 상류층이건 서민층이건 요강은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활 도구여서 혼수품 준비에 놋요강과 놋대야가 반드시 끼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요강을 만드는 재료도 다양해져서 도기나 자기, 유기 외에 오동나무에 옻칠을 하거나 쇠가죽에 기름을 먹인 것도 있었다. 최근세에 와서 깨지지 않고 세척하기 좋은 스테인리스로 만든 요강이 등장했다. 아직도 한옥이나 시골집에 사는 사람들이 아침마다 요강을 부시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참방짜 수저 명절이나 제사를 앞두고 우리 어머니들은 장농이나 찬장에 깊숙이 넣어 두었던 유기(鍮器)를 꺼내 기와 빻은 가루를 짚에 묻혀 힘껏 닦았다. 이렇게 해서 시퍼런 녹도 제거하고 유기 본래의 황금색 광채를 되살려 냈다. 유기 그릇은 銅(동)과 朱錫(주석)을 10대 3 정도의 비율로 섞어 만든 놋쇠가 원료. 놋쇠를 두들기고 늘리고 다듬어서 그릇 형태를 만드는 「방짜 제작법」과 「퉁짜 유기」라고 해서 鑄物(주물)로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주물 제작법」이 있다. 良大鍮器(양대유기)라고도 하는 방짜 유기를 북한에서는 「양대」, 남한에서는 「방짜」라 부르고 있다. 유기는 견고할 뿐 아니라 모양이 정교하고 광채가 예뻐 대야, 그릇, 수저 등은 혼수감으로 빠지지 않았다. 일제시대 전쟁물자로 강제 공출되면서 수요가 줄어든 유기는 광복 후 한때 유행하는 듯 했으나 6ㆍ25 전쟁 후 집집마다 연탄을 때고 양은과 스테인레스 그릇이 나오면서 거의 사라졌다
납활자 납으로 구워 낸 네모난 납 活字를 골라 組版(조판)한 후 잉크를 묻혀서 종이에 압력을 가해 찍어 내는 활판인쇄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금속활자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 활판인쇄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해 일부러 명함이나 간단한 서류 양식을 납활자로 인쇄해서 쓰고 있는 이들도 있다. 1884년(고종 21) 3월 廣印社(광인사)라는 민간 출판사가 일본으로부터 활판기와 납활자를 도입하여, 農政撮要(농정촬요)와 忠孝經集註合璧(충효경집주합벽) 등 농업이나 생활에 필요한 책을 발간한 것이 우리나라 활판인쇄의 시작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신문제작에서는 납활자가 필수였다. 1990년 초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라는 전산화된 신문제작 공정이 도입되면서 납활자를 고르고 조판을 하고, 다시 지형을 떠서 鉛版(연판)을 만들어 신문을 찍어 내던 활판인쇄 시대가 마감됐다. 인쇄소 밀집지역인 서울 중구 충무로 뒷골목에 가면 아직까지 문을 닫지 않은 활판인쇄소가 두어군데 남아 있다. 변하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지만, 이런 인쇄소가 하나라도 살아남아 활판인쇄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목도장 圖章(도장) 대신 서명이 보편화하면서 개인, 단체, 관직 등의 이름을 새긴 木圖章이 보기 힘들어졌다. 말이나 글로 하는 약속의 최종 완결편이라고 할까. 계약서 등 각종 서류에 圖章을 찍는 것은 「법이 보장하는 약속」이었다. 아직 印鑑(인감)제도가 있어서 圖章은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서명에 떠밀린 木圖章은 후미진 서랍 속에서 나뒹굴고 있다. 木圖章을 새겨 주던 도장집도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다. 도장 파는 기술도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고 있다. 컴퓨터에 입력된 글자 모양에 따라 기계가 정교하게 도장을 파주는 기술이 도입된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아직 보급이 안 된 중소도시에나 가야 木圖章 집을 볼 수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