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들 역사를 너무 모른다.

돈키호테200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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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전의 효부들 좀 보십시오. 심지어는 남편이 죽더라도 절대 시집을 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전엔 남편이 부인을 여럿 두었어도 조강치처는 군소리조차 없었습니다. 

 

*고구려 왕건의 통일을 이룬  281명의 부인중 황후는 3명이지만 말타고 전투에 참가 지휘관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왕건의 2번째 황후 강원도 출신의 3번째 황후

 

*고구려와 백제를 세운 소노부는 재혼이었다.

 

*신라시대 선덕여왕은 남편이 세명이 었다.

 

합법적으로 여자가 세명의 남자를 거느릴 수 있는 삼서제도가 화랑세기인지 뭔지 기록,,

 

*조선초기 정승을 아들로 둔 어머니는 세번 결혼했다.

 

*조선시대 호주는 집안에서 세금을 내는 사람이었고 일제시대 왜곡 되었다.

근거: 지방 세금 내는 명부를 적은 책들이 많이 남아 있음

 

*족보: 원래 족보는 여자의 외가까지 기록되어 있고,.

오래된 족보 중에 자식 옆에 외,등  낳아온 즉 여자가 데리고 온 자녀이다.

 

그래도 문중에서 인정하고 묻지않았다. 오랜된 족보 가지신분들 찾아보실길...

 

유교가 들어오면서 조선후기에 여자를 억압했지만. 실은 태조 이방원이 정치의 안정권을 다지기 위해 억압한 것이다.

 

아버지인 이성계에게는 부인이 두 분 계셨지만 한씨성의 왕후와 강씨 성의 왕후 중에 강씨성의 왕후를 유독 사랑하여 왕권을 슬하에서 난 세명의 아들에게 넘겨 줄려 했다. (두번의 왕자의 난)

 

이에 차후 이런 일이 생길까봐 서자와  두번째 부인을 격하시켰고, 자기 부인 민씨왕후도 외가를 배척한 것이다.

 

고려시대 향가를 왜 다 불태워겠는가. 쌍화점이라든지 거기보면 고려 여자가 화란(외국인)과 수작 거는 장면이 있다, 그만큼 한국 여자들은 자기 주장도 확실했는데.

 

하지만 조선 시대 중기까지 유교가 뿌리 박히지 않았을 때까지

 

여자는 고려시대 큰 거상(객주)을 하면 무역을 담당할 정도이고 기왕후까지...

왜 여자를 가둬두려하는지..

 

2.그렇게 해도 잘 살았습니다. 가족간에도 얼마든지 화평했고요. 이런 좋은 한국의 좋은 여인상을 왜곡시키지 마십시오. '시부모님과 남편은 절대 하늘이다' 라는 좋은 한국전통을 왜곡시켜 혼란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예전의 효부들좀 생각해 보세요. 부인을 여러명 둔 남편하고도 잘 살았습니다. 여자가 집안에서 말이 많으면 집안 망하는 법입니다. 이런말도 있잖아요.

 

 남편을 하늘 모시듯 시부모님을 천황모시듯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고귀한 전통인 것입니다. 

 

저도 미혼인 여자지만 그런 집안을 선호합니다. 저희 집안도 그렇구여. 

 

*모르는 소리마라 옛 여인내들이 얼마나 자기 발언도 강하고 또 지킬것은 확실하게 지켰다.신사임당 유언중에 남편에게 "당신은 아이들이 있으니 나 죽거든 절대 재혼하지 말아요"

 

*옛 여인들은 절대 복종이라는 것이 없었다. 유교가 강압적으로 만든 것이지 남자도 같이 평등하게 했었고 데릴 사위 제도나, 조선초기 ~중기 법전에 남편이 죽거나 이혼등으로 재산 분쟁이 생길 경우 반을 뚝 떼어서 여자에게 주었다.

 

*노인분들은 관가에서 담당 모두 함께 모시도록 하여 그 집안이 책임지는게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도록 하였다.두레,품앗이가 왜 생겨났는지..

 

*고려시대인가 한 왕이 나라에 여자가 많아 일부다처제를 주장하자, 전국에 있는 여자들이 남자를 밖에서 재웠다, 물론 왕도 신하도 ,,, 그래서 일부다처제 법안이 통과 되지 않은 사건이 있으니 찾아봐라,,

 

역사 왜곡하지 말아라.. 우리나라는 옛날 부터 사회가 똘똘 뭉쳐 도와주고 인권이 있고,그것이 조선후기 유교에 의해 일제시대 망가져어 그러치 ,,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