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국시대의 유적 : 조선의 3국시대란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이 병존하던 시대를 지칭한다. 3국의 대략적 범위는 고구려는 북부에, 백제는 남부의 서쪽, 신라는 남부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구려 : 조선 3국 시기의 국가. 예맥 계통으로서 427년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반도의 백제와 신라와 삼국 鼎立의 국면을 형성하였으며 이어 3국 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전개 되었다...... 백제 : 조선 3국시기의 국가. 북쪽 국경은 고구려와 접경하고 동쪽으로 신라와 이웃하고 있었다...... 통일신라 : 조선 역사에 있어 3국 시대 후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668년부터 시작된다...... 발해 : 698~926년 중국 동북 지역에서 말갈족을 주체로 하는 변방민족 정권으로서 왕실의 성은 大씨이며, 초기에 震國이라 불렸고 말갈이라고도 불렸다...... 조선족의 무용 : 조선족의 민간 무용은 고대의 부여, 고구려 및 한반도의 전통문화 토대위에서 형성되었다......
중국의 유명한 “중국대백과사전” (www.cndbk.com.cn)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바야흐로 세계 역사상 일찍이 들어보기 힘든 희한한 장면이 한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고 있다. 바로 고구려 역사 논쟁이다. 일반적으로 중국 정부의 입장을 알기란 매우 어렵다. 고구려 관련 역사 문제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학술적 차원에서 진행되었을 뿐 정부의 공식 견해가 아니다” 외의 공식적인 발언도 전혀 없다. 관변의 각종 인터넷 사이트나 역사 교과서에서도 고구려 관련 항목은 거의 삭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백과사전에서 어떻게 고구려 관련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중국인들의 ‘상식’ 혹은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사회 통념’을 살펴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위 백과사전에서 나타난 바를 살펴보면 동북공정에서 시도하고 있는 고구려 관련 역사의 관점이 아직 중국 사회에서 아직 ‘사회 통념’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필요에 의해 역사가 다시 씌어질 수는 없다
동북공정 과정에서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주요한 근거 중의 하나는 “고구려가 한사군의 영역 내에서 형성되었다”라는 주장인데, 사실 이러한 논리는 견강부회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주장대로 하면 한사군 설치 이전에는 한국 역사였음을 거꾸로 인정해야 하며, 또한 이러한 논리에 따르게 되면 오늘날 베트남 역사도 중국 역사로 편입되어야만 한다. 곧 BC 108년 고조선이 한나라에 멸망당하고 한사군이 설치되었는데 바로 그 3년 전인 BC 111년 한나라는 베트남에 3군을 설치했으며, 당나라 시기에는 한반도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을 때 베트남에도 안남도호부를 설치하여 이후 수백 년 동안 유지되었다. 따라서 ‘특정 시기의 영역 내’라는 개념만 가지고 역사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베트남은 중국의 지방정권이다”라는 논리적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한편 중국 동북공정이 취하고 있는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다”라는 논리는 중국 역대 正史들의 관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디피아의 중국어판(http://zh.wikipedia.org)에 소개되는 “高句麗” 편을 보면, “중국 역대 정사는 모두 고구려를 중원 왕조 주변의 外夷로 소개하였다. 그리고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자칭한 이후 『舊五代史』부터 역대 정사는 고씨 고구려와 왕씨 고려왕조를 혼용하면서 양자를 계승관계라고 인식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고구려의 역사적 귀속문제에 대해서는 중국, 북한, 남한의 현대 학자들이 20세기 후기 이후 대규모 논쟁을 전개하고 있다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건국 이후 고구려를 북한 역사로 간주하였지만, 20세기 90년대 이후 점차 이러한 관점을 바꿔 2002년에 시작된 동북공정 뒤에는 이미 기본적으로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범주에 귀속시켜 고구려가 중국 역사상의 지방정권이며 고구려 민족은 중국 고대의 소수민족이라는 주류 관점을 형성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중국의 유일한 종교는 過去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의 역사를 존중해온 나라로서 지극히 모순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역사란 ‘현재의 필요’에 의해서 개작될 수는 없다.
동북공정, 방어적 성격 강해
어느 나라든 영토 문제에 있어서 치열하지 않는 국가는 없다. 특히 중국은 육지 국경선을 마주 하고 있는 나라가 16개국으로서 지구상에서 육지 접경국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 만큼 영토 문제에 있어 ‘특별히’ 예민한 나라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과도 압록강과 두만강에 소재한 10개의 섬을 둘러싼 영토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 90년대 발표된 중국의 외교 관계 자료들에서 “통일 이후 한국은 반드시 간도 문제를 비롯한 영토 문제를 제기할 것이므로 중국은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90년대에 들어서 대대적으로 단군릉, 동명왕릉, 왕건릉을 복원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을 자극하는 한 요인이 되었고, 1992년 한국과의 수교 이후 중국 연변 지역이나 백두산을 여행하는 많은 한국인들의 간도 수복 주장도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일부 한국 여행객들이 “만주는 한국 땅”이라고 적힌 플랑카드를 들고 행진하거나 백두산 천지에 유사한 내용의 대자보를 설치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자 1995년 5월 리펑 총리가 이홍구 총리에게 한국인들의 언행을 자제시켜 줄 것을 공식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6년에 동북공정이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어느 나라든 극단적 민족주의 논리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다”라는 논리 역시 중국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의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를 중국 정부가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역설적으로 분석하자면, 중국 정부는 이러한 ‘극단주의 논리’를 활용하여 한국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견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현재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의도는 어느 정도 관철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중국위협론’의 이미지를 벗으려는 중국
2004년 중국은 러시아와 오랜 기간 영토분쟁을 빚어왔던 아무르 강의 섬 등 3개의 섬에 대해서 섬 전체가 중국 영토라는 기존의 주장에서 물러나 모두 절반씩 나누기로 합의하였다. 중국은 최근 인도나 타지크스탄 등의 접경국가와의 영토 분쟁에 있어서 대부분 자신들의 ‘일보 양보’로 타결 짓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은 국제적으로 ‘중국 위협론’을 불식시키고 평화적 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최근 들어 부쩍 강조하고 있는 “以隣爲善, 以隣爲伴”라는 말에서도 인근국과 최대한 우호적이고 동반자로서 노력하겠다는 자세가 엿보이고 있다. 동북아에서 현재 중국이 가장 희망하는 국제질서 구도는 한국이 反日 전선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구도이며, 나아가서 중국과 연합하여 미국에 맞서는 구도이다. 이와 반대로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어 중국을 포위하는 구도는 가장 원하지 않는 그림이 된다. 현재와 같이 고구려 역사에 대한 왜곡을 계속 진행한다면(최소한 방치한다면) 중국 측이 가장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한국을 밀어붙이는 셈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확한 방법으로 올바른 대응을
상기한 바와 같이 현 국제정세에서 한중 간의 ‘역사전쟁’은 기본적으로 중국에 매우 불리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듯 유리한 싸움을 유리하게 전개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명분과 역사적 근거 그리고 국제정세의 모든 측면에서 확실한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정정당당히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정확한 학술적 대응과 더불어 중국 정부에게 고구려 관련 역사에 대한 왜곡은 한국에 있어서 반중 감정을 극대화시키고 국제적으로도 ‘중국 위협론’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뿐임을 분명히 충고하고 설득해야 한다. 반면 한국으로서도 학술적인 연구의 권리는 중국 측 학자에게도 있으며, 그러한 학문적인 권리와 자유 그리고 의무를 중국 정부라도 모두 봉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게 최소한 길림성 정부를 비롯한 지방 정부가 고구려 및 관련 역사 문제에 개입하고 간여하지 못하도록 조치할 것을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 대응 방법에 있어서도 현재와 같이 외교부가 앞장서서 주도하는 모습은 방법론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외교부는 어느 나라든 가장 온건한 노선을 채택할 수밖에 없고 조정과 타협을 그 주요 기능으로 역할 하는 부문이다. 지금 한국 정부의 대응이 저자세로 일관되어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데, 현재와 같이 외교부가 대응을 주도하는 한 이러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외교부란 원래부터 생래적으로 온건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는 부처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 왜곡이라면 마땅히 교육부가 나서는 것이 타당하고 외교부는 일이 확산될 때 2차적으로 혹은 최종적으로 조정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응책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백과사전 사이트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어이없는 역사 왜곡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2006년 4월에 오픈한 百度百科 사이트(baike.baidu.com)에서 百濟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고대 한반도 서남부 국가로서 백제, 가야, 신라는 고대 한민족의 3국이다”라는 참으로 기가 막힌 역사 왜곡을 발견했다. 지금 올바르게 대응해 끊어내지 못하면 계속 확대되고 마침내 왜곡이 기정사실화될 수밖에 없다.
동북공정 관련 기사
아직 중국 사회의 ‘사회통념’ 단계에 이르지 못한 동북공정
조선 3국시대의 유적 : 조선의 3국시대란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이 병존하던 시대를 지칭한다. 3국의 대략적 범위는 고구려는 북부에, 백제는 남부의 서쪽, 신라는 남부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구려 : 조선 3국 시기의 국가. 예맥 계통으로서 427년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반도의 백제와 신라와 삼국 鼎立의 국면을 형성하였으며 이어 3국 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전개 되었다......
백제 : 조선 3국시기의 국가. 북쪽 국경은 고구려와 접경하고 동쪽으로 신라와 이웃하고 있었다......
통일신라 : 조선 역사에 있어 3국 시대 후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668년부터 시작된다......
발해 : 698~926년 중국 동북 지역에서 말갈족을 주체로 하는 변방민족 정권으로서 왕실의 성은 大씨이며, 초기에 震國이라 불렸고 말갈이라고도 불렸다......
조선족의 무용 : 조선족의 민간 무용은 고대의 부여, 고구려 및 한반도의 전통문화 토대위에서 형성되었다......
중국의 유명한 “중국대백과사전” (www.cndbk.com.cn)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바야흐로 세계 역사상 일찍이 들어보기 힘든 희한한 장면이 한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고 있다. 바로 고구려 역사 논쟁이다.
일반적으로 중국 정부의 입장을 알기란 매우 어렵다. 고구려 관련 역사 문제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학술적 차원에서 진행되었을 뿐 정부의 공식 견해가 아니다” 외의 공식적인 발언도 전혀 없다. 관변의 각종 인터넷 사이트나 역사 교과서에서도 고구려 관련 항목은 거의 삭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백과사전에서 어떻게 고구려 관련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중국인들의 ‘상식’ 혹은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사회 통념’을 살펴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위 백과사전에서 나타난 바를 살펴보면 동북공정에서 시도하고 있는 고구려 관련 역사의 관점이 아직 중국 사회에서 아직 ‘사회 통념’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필요에 의해 역사가 다시 씌어질 수는 없다
동북공정 과정에서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주요한 근거 중의 하나는 “고구려가 한사군의 영역 내에서 형성되었다”라는 주장인데, 사실 이러한 논리는 견강부회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주장대로 하면 한사군 설치 이전에는 한국 역사였음을 거꾸로 인정해야 하며, 또한 이러한 논리에 따르게 되면 오늘날 베트남 역사도 중국 역사로 편입되어야만 한다. 곧 BC 108년 고조선이 한나라에 멸망당하고 한사군이 설치되었는데 바로 그 3년 전인 BC 111년 한나라는 베트남에 3군을 설치했으며, 당나라 시기에는 한반도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을 때 베트남에도 안남도호부를 설치하여 이후 수백 년 동안 유지되었다. 따라서 ‘특정 시기의 영역 내’라는 개념만 가지고 역사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베트남은 중국의 지방정권이다”라는 논리적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한편 중국 동북공정이 취하고 있는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다”라는 논리는 중국 역대 正史들의 관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디피아의 중국어판(http://zh.wikipedia.org)에 소개되는 “高句麗” 편을 보면, “중국 역대 정사는 모두 고구려를 중원 왕조 주변의 外夷로 소개하였다. 그리고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자칭한 이후 『舊五代史』부터 역대 정사는 고씨 고구려와 왕씨 고려왕조를 혼용하면서 양자를 계승관계라고 인식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고구려의 역사적 귀속문제에 대해서는 중국, 북한, 남한의 현대 학자들이 20세기 후기 이후 대규모 논쟁을 전개하고 있다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건국 이후 고구려를 북한 역사로 간주하였지만, 20세기 90년대 이후 점차 이러한 관점을 바꿔 2002년에 시작된 동북공정 뒤에는 이미 기본적으로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범주에 귀속시켜 고구려가 중국 역사상의 지방정권이며 고구려 민족은 중국 고대의 소수민족이라는 주류 관점을 형성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중국의 유일한 종교는 過去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의 역사를 존중해온 나라로서 지극히 모순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역사란 ‘현재의 필요’에 의해서 개작될 수는 없다.
동북공정, 방어적 성격 강해
어느 나라든 영토 문제에 있어서 치열하지 않는 국가는 없다. 특히 중국은 육지 국경선을 마주 하고 있는 나라가 16개국으로서 지구상에서 육지 접경국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 만큼 영토 문제에 있어 ‘특별히’ 예민한 나라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과도 압록강과 두만강에 소재한 10개의 섬을 둘러싼 영토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 90년대 발표된 중국의 외교 관계 자료들에서 “통일 이후 한국은 반드시 간도 문제를 비롯한 영토 문제를 제기할 것이므로 중국은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90년대에 들어서 대대적으로 단군릉, 동명왕릉, 왕건릉을 복원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을 자극하는 한 요인이 되었고, 1992년 한국과의 수교 이후 중국 연변 지역이나 백두산을 여행하는 많은 한국인들의 간도 수복 주장도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일부 한국 여행객들이 “만주는 한국 땅”이라고 적힌 플랑카드를 들고 행진하거나 백두산 천지에 유사한 내용의 대자보를 설치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자 1995년 5월 리펑 총리가 이홍구 총리에게 한국인들의 언행을 자제시켜 줄 것을 공식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6년에 동북공정이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어느 나라든 극단적 민족주의 논리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다”라는 논리 역시 중국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의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를 중국 정부가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역설적으로 분석하자면, 중국 정부는 이러한 ‘극단주의 논리’를 활용하여 한국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견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현재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의도는 어느 정도 관철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중국위협론’의 이미지를 벗으려는 중국
2004년 중국은 러시아와 오랜 기간 영토분쟁을 빚어왔던 아무르 강의 섬 등 3개의 섬에 대해서 섬 전체가 중국 영토라는 기존의 주장에서 물러나 모두 절반씩 나누기로 합의하였다. 중국은 최근 인도나 타지크스탄 등의 접경국가와의 영토 분쟁에 있어서 대부분 자신들의 ‘일보 양보’로 타결 짓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은 국제적으로 ‘중국 위협론’을 불식시키고 평화적 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최근 들어 부쩍 강조하고 있는 “以隣爲善, 以隣爲伴”라는 말에서도 인근국과 최대한 우호적이고 동반자로서 노력하겠다는 자세가 엿보이고 있다.
동북아에서 현재 중국이 가장 희망하는 국제질서 구도는 한국이 反日 전선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구도이며, 나아가서 중국과 연합하여 미국에 맞서는 구도이다. 이와 반대로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어 중국을 포위하는 구도는 가장 원하지 않는 그림이 된다. 현재와 같이 고구려 역사에 대한 왜곡을 계속 진행한다면(최소한 방치한다면) 중국 측이 가장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한국을 밀어붙이는 셈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확한 방법으로 올바른 대응을
상기한 바와 같이 현 국제정세에서 한중 간의 ‘역사전쟁’은 기본적으로 중국에 매우 불리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듯 유리한 싸움을 유리하게 전개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명분과 역사적 근거 그리고 국제정세의 모든 측면에서 확실한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정정당당히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정확한 학술적 대응과 더불어 중국 정부에게 고구려 관련 역사에 대한 왜곡은 한국에 있어서 반중 감정을 극대화시키고 국제적으로도 ‘중국 위협론’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뿐임을 분명히 충고하고 설득해야 한다. 반면 한국으로서도 학술적인 연구의 권리는 중국 측 학자에게도 있으며, 그러한 학문적인 권리와 자유 그리고 의무를 중국 정부라도 모두 봉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게 최소한 길림성 정부를 비롯한 지방 정부가 고구려 및 관련 역사 문제에 개입하고 간여하지 못하도록 조치할 것을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
대응 방법에 있어서도 현재와 같이 외교부가 앞장서서 주도하는 모습은 방법론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외교부는 어느 나라든 가장 온건한 노선을 채택할 수밖에 없고 조정과 타협을 그 주요 기능으로 역할 하는 부문이다. 지금 한국 정부의 대응이 저자세로 일관되어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데, 현재와 같이 외교부가 대응을 주도하는 한 이러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외교부란 원래부터 생래적으로 온건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는 부처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 왜곡이라면 마땅히 교육부가 나서는 것이 타당하고 외교부는 일이 확산될 때 2차적으로 혹은 최종적으로 조정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응책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백과사전 사이트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어이없는 역사 왜곡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2006년 4월에 오픈한 百度百科 사이트(baike.baidu.com)에서 百濟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고대 한반도 서남부 국가로서 백제, 가야, 신라는 고대 한민족의 3국이다”라는 참으로 기가 막힌 역사 왜곡을 발견했다.
지금 올바르게 대응해 끊어내지 못하면 계속 확대되고 마침내 왜곡이 기정사실화될 수밖에 없다.
출처 - 소준섭(국회도서관 중국자료관, 국제관계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