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he Kollwitz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

돈키호테200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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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e Kollwitz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

‘죽은 아이를 안은 어머니’(1905)는 질병이나 영양실조로,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을 아들을 가슴에 안은 처절한 어머니의 슬픔을 동판화로 뜨고 있다.


탄탄한 다리와 어깨를 한 바위같은 여인은 흙의 농민이 분명하고 깨어질 것 같은 어린애를 안은 어머니는 차라리 동물적 본성으로 울부짖고 있다.

 

 

Kathe Kollwitz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

Kathe Kollwitz-Woman with Dead Child, 1903
Soft ground etching with two types of paper, worked over with charcoal, on heavy wove paper
16 3/4” x 19 1/8” (42.4 x 48.6 cm) Kl. 72/I; Kn. 81/I Private collection

 

 

 

 

 

 

 

 

 

 

 

 

 

 

 

 

 

 

 

 

 

 

 

 

 

 

 

  

Kathe Kollwitz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

 

Kathe Kollwitz-Woman with Dead Child, 1903
Line etching with sandpaper, drypoint and soft ground with two types of paper
on greenish-gray chine colle
16 3/4” x 19 1/8” (42.4 x 48.6 cm) Kl. 72/VIIIa; Kn. 81/VIIIa Private collection

 

 

 

 

독일의 판화가이자 조각가인 콜비츠(1869∼1945)..그녀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의 가난,질병,억울한 죽음들은 사회개혁을 통해 구제해야할 과제였다.그러기에 그것들의 실상을 일깨우고 노출시키는 것을 예술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동프러시아 쾨니히스베르크 출신의 콜비츠 가문은 지배권력보다는 자유주의적 전통을 지켜온 소외계층 편에 서 있었다. 그녀가 21살에 어린 시절의 친구이자 의사인 칼 콜비츠와 결혼하여 빈민지역에서 요양원을 열었던 것도 그 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1893년 콜비츠는 베를린에서 공연되고 있던 하우프트만의 연극 ‘방직공’을 보면서 가슴을 치는 충격을 받았다.


그 무렵 급속도로 진행되는 도시화는 뿌리 없는 노동자를 양산하였고 1896년 베를린 거주 방직공만 8만은 12시간에 가까운 노동시간,나쁜 작업환경에 임금은 낮았으며,늘 해고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었다.
그녀는 ‘직조공 봉기’연작에 그들의 문제들을 담았다.

‘죽은 아이를 안은 어머니’(1905)는 질병이나 영양실조로,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을 아들을 가슴에 안은 처절한 어머니의 슬픔을 동판화로 뜨고 있다.


탄탄한 다리와 어깨를 한 바위같은 여인은 흙의 농민이 분명하고 깨어질 것 같은 어린애를 안은 어머니는 차라리 동물적 본성으로 울부짖고 있다.


연약한 아이와 우람한 체구의 어머니는 대비되며 조각적 효과까지 느끼게 한다. 이 그림을 생각하면 교정에 곱게 핀 붉은 장미마저 피를 토하듯 슬퍼 보인다.

실제 1914년 1차 대전에 참여했던 아들의 전사는 이미 이 그림에서 예견된 불행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들을 잃은 충격과 슬픔은 그녀를 영원한 반전주의자로 내 몰았고 ‘전쟁은 다시 있을 수 없다’는 판화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반전의 메아리를 들려준다.

역사는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늘 시련을 요구하는 것 같다. 1933년 나치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콜비츠는 프로이젠 예술아카데미를 떠나도록 강요당했고 3년 후에도 개인적인 전시회가 일체 금지되었으며 침묵과 격리 속에서 끝내는 1945년 소련군 진주 2주전에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녀의 삶을 본 회퍼의 순교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그녀와 우리의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억울한 사람들의 숫자를 줄여 가는 일이 아닌가 싶다.

<출처-국민일보 2000,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