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모자의 천사#3

창작 東200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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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 아침. 언제나 그렇듯 석훈이 회사 주변을 운동 삼아 뛰고 있었다. 숨이 차오르자 천천히 걸었다. 자꾸 머릿속에 어제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잊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회사 정문 경비실에서 정대리가 문을 열고 나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보였다. 석훈이 천천히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정이 탄 통근버스가 회사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 여정을 불렀다.

 “여정. 여정. 여정.  안녕.”

어제 소개팅을 주선한 회사 언니였다.

 “언니. 안녕. 고생했네.”

여정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잠깐 얘기 좀 하자. 어제는 어떻게 된 일이니? 그 사람 누군지는 알고 그런 거니?”

정색을 하며 말했다.

 “누군지는 관심 없고 다음부터 나 소개팅 같은 거 안 할 테니.......”

여정이 쏘아붙이며 말을 했다.

 “얘는 복을 송두리째 걷어차네. 정인호씨가 이노시스 정과장님 친동생이야. 너두 알잖아.”

 “됐어. 나 들어갈래. 잘 가.”

여정이 생산현장 옆에 있는 탈의실로 향했다.






 석훈이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무실 청소를 하던 자재과 연희씨가 석훈을 보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석훈이 가볍게 목례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PC를 켜자 하나 둘씩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김 대리님 주간 업무회의 한답니다. 회의실로 오세요.”

자재과 직원이 석훈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알았어요.”

석훈이 업무 노트를 들고 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얼마 전에 새로 자재 구매과 팀장으로 온 서승우 팀장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석훈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곤 자리에 앉았다.

 “김 대리 거기에 앉지 말고 여기 옆으로 앉아.”

서승우 팀장이 손가락으로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석훈이 자리를 옮겨 앉았다.






 여정이 생산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생산현장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게시판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조여시. 좋겠네.”

여정의 바로 옆자리에서 장비를 다루던 영희가 여정의 별명을 부르며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왜? 또 시비니?”

여정이 장비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게시판에 가봐.”

영희가 손가락으로 게시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게시판으로 걸어갔다.

 ‘인사이동'

 '생산과 조여정 직원'

 '금일부로 구매과로 발령합니다.’

 분명히 여정의 이름이었다. 여정이 눈을 부비고 다시 보았지만 여정의 인사발령이었다. 얼마 전부터 생산과 직원 중에 관리과로 인사이동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여정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모든 생산과 직원들이 관리과로 가기위해 안간힘을 써고 있었지만 여정은 개의치 않았다. 분명 생산직보다는 관리직이 회사생활이 편해지는 건 분명했지만 여정보다 능력이 뛰어난 직원이 많다고 늘 생각했기에 인사발령에 적지 않게 당황하며 게시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조여정씨 축하해요.”

생산 부장이 여정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여정이 몸을 돌려 부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바로 구매과로 가봐.”

 “네.”

 여정이 서운한 듯 생산현장을 휙 둘러보고는 구매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석훈이 다른 직원보다 길어진 회의를 마치고 자재실로 향했다. 신임 자재 구매 팀장이 석훈의 기를 누르기 위해서인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대었다. 일일이 설명을 해 주었지만 결국엔 보고서 작성으로 마무리 되었다. 온몸에 기운이 없었다.

 자재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업무를 보던 연희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 보세요. 최성호씨는?”

석훈이 빈자리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안쪽에 있습니다.”

연희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훈이 자재실 안쪽으로 걸어가자 다투는 목소리가 들렸다.

 “주임이면 주임답게 행동해. 입사한지 얼마 되었다고 맘대로야.”

성호가 씩씩대며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말했다.

 “사원이 어디 주임한테 막말이야. 예의를 갖추라 말이야.”

박주임이었다.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데. 더러워서 내가 회사를 관두던지 해야지.”

성호가 자재 박스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석훈이 둘 사이에 끼어들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를 말했다.

 “아무 일 아닙니다.”

박주임이 화가 잔뜩 난 석훈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최성호씨 나 잠깐 봐요. 그리고 박주임은 할 일 하세요.”

석훈이 몸을 돌려 자재실 밖으로 나왔다. 그 뒤를 최성호씨가 뒤따랐다.




 “담배 하나 줘봐.”

석훈이 뒤따라 나온 성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에? 담배 안 피우시잖아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석훈에게 건네주었다.

 “성호 네 맘 다 안다. 하지만 여긴 회사야. 상하 체계가 분명한 회사잖아.”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합니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자꾸만 재촉하잖아요. 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아직 재물조사까지 시간도 많은데. 뭘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알았다. 그건 내가 해결 할 테니. 들어가서 일봐.”

석훈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자재실로 걸어갔다.






 여정이 구매과 사무실로 들어섰다. 사무실 안에 다섯 명의 직원이 있었다. 그중에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남자직원이 여정을 쳐다보았다.

 “조여정씨?”

 “네. 안녕하세요. 조여정입니다.”

 “여기 앉아요.”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과장님. 조여정씨 왔습니다.”

 남자 직원이 자리에 앉은 채로 말했다.

 “그래. 알았어.”

 과장이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여정이 자리에 앉았지만 할 일이 없었다. 다른 직원들은 바쁜지 전화통화를 하고 팩스를 보내고 정신이 없었다. 마치 여정의 존재가 없는 듯 보였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한참을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분위기 파악만 해.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업무 가르쳐 줄 테니까.”

과장이 사무실을 나가면서 흘리듯 말했다.

 “네.”

여정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대답하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심심하면 커피 한잔씩 돌리지.”

옆자리에 앉은 남자직원이 말했다.

 “네에? 네.”

여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석훈이 박주임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아무리 주임 경력으로 들어왔지만 이건 너무 막무가내잖아요. 저도 실무경력 많습니다.”

박주임이 불만을 늘어놓았다.

 “박주임. 난 여기 8년차예요. 회사 창립하면서부터 줄곧 여기에서 일을 했죠. 그땐 한사람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혼자서 구매하랴 자재 관리하랴 외주 생산하랴 정신이 없어서요. 그런데 요즘은 차라리 다 내보내고 혼자서 일하는 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좋을 텐데 모두들 욕심이 너무 많아요. 모든 직원들이 다 내 마음 같았으면 좋을 텐데.”

 석훈이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래 계셨네요. 그런데 왜? 진급을 못하셨어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었다.

 “방법은 한가지입니다. 박주임 능력을 보여주면 됩니다. 이번 재물조사 혼자서 해보세요. 내 능력이 이 정도니까 알아서 따라와라. 그럼 만사형통입니다. 그럼.”

석훈이 씁쓸한 미소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석훈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반가운 손님이 와 있었다.

 “어딜 그리 돌아다니나? 한참을 기다렸네. 핸드폰은 장식이냐? 자리에 두고 다니고.”

사회생활하면서 알게 된 서영문 팀장이 석훈을 보며 나무랬다.

 “자재실에 갔다 왔지. 언제 왔어요?”

석훈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항상 바쁘지.”

 “그런 형님은 조용한가 보네.”

 “너 볼 시간은 항상 있다.”

 “나갑시다. 차라도 한잔해야지.”

 “아니. 차는 마셨다. 새로 오신 팀장님이랑.”

 “그럼. 볼일 다 봤네. 잘 가요.”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그리고 저녁에 시간 비워라. 구사모 모임 오늘 있다.”

 “안 갈래. 저녁에 바빠. 회비만 낼게.”

석훈이 책상 서랍에서 지갑을 꺼내었다.

 “안 돼. 정마담이 너 꼭 데려오래. 오늘 신입 회원도 온다네.”

 “정마담이?”

석훈이 놀라며 말했다.

 “정마담이 너 보고 싶다는데  가야지. 신입 회원이 모임에 들어올 때 모든 회원 필히 참석. 모르냐?”

 “알았어. 몇 시까지 어디로 가면 되는데.”

석훈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저녁에 데리러 올 테니까. 정문에서 기다려. 뚜벅 이가 어떻게 갈려고.”

영문이 석훈을 놀렸다.






 여정이 지루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새 사무실에 걸린 시계가 퇴근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자꾸만 하품이 나는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여정이 노크소리에 대답을 하며 문을 바라보았다.

 낯선 여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긴 생머리에 화사하고 무릎까지 오는 투피스를 입은 여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세련돼  보였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청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정과장님.”

과장이 자리에서 놀란 듯 벌떡 일어섰다.

 “퇴근시간이죠? 아. 저분인가요?”

여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네. 여정씨 인사해요. 이노시스에 정미희 과장님.”

 “안녕하세요. 조여정입니다.”

 여정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정미희예요.”

 손을 내밀었다.

 “과장님. 그럼 여정씨 먼저 퇴근시킬게요.”

정과장이 일방적인 통보를 하며 여정을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여정씨.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세요. 저기 흰색차 보이죠? 20분 뒤에 거기서 봐요.”

정과장이 손가락으로 차를 가리켰다.

 “네에? 어디 가나요?”

여정이 의아한 눈빛으로 정과장을 쳐다보았다.

 “네. 좋은데.”

 정과장이 미소를 지으며 윙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