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질주(1화-2)

까미유200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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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16. 현실/단희 집 마루

생각에서 빠져 나온 단희는 고개를 들어 달을 본다.


(E)단희  아버지, 죄송해요. 난, 아버지처럼 그 여자,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할 것 같어.

             난, 아버질 닮은 게 아니라, 그 여잘 닮아서 독한가 봐. 그래서 나, 독하게 해보려구.          

             그 여자 때문에,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 다, 돌려 줘야 할 것 같아요.





S#17. 서초동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섭과 숙자.


아줌마   (반가운) 오랜만이에요 사모님.

숙자      (시큰둥) 그러네요.

아줌마   (동섭보며) 식사는 어떻게?

동섭       먹었습니다.


안방으로 들어가는 동섭의 뒷모습을 못마땅하게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리는 숙자.

거실 탁자 위에 놓여진 꽃바구니를 본다.


숙자      (환해지며) 뭐에요 저건?

아줌마   막내 동생분이 보내왔어요 오늘.

숙자      (바구니 안에 꽂힌 카드를 빼며) 이왕이면 얼굴을 보여줄 것이지.


‘Welcome back to korea.' 카드에 적힌 글을 보며 피식 웃는 숙자.


숙자   남편보다 낫네 그래두. (건성으로 카드를 다시 꽂고) 아줌마두 들어가요 그만.

아줌마  네.


 

 

S#18. 안 방

옷을 갈아입는 동섭. 그런 그를 팔짱 끼고 바라보고 있는 숙자.


숙자  나 없는 동안 좋았수? 저 넓은 침대 혼자, 독차지 한 기분이 어땠수?

동섭  별 걸 다 물어. 말 같은 소리만 해.

숙자  우리 집 남자들, 무뚝뚝한 거 변하지 않는 이상, 나두 안 변해요.

동섭  (돌아보며) 아주 들어온 거야?

숙자  질문이 이상하네. 그래서 실망이유?

동섭  쓸데없이 해외 다니면서 돈 쓰지 말고, 그만 집에 눌러 앉아.

숙자  나도 이제 늙어서 더 이상 걸어 다닐 힘도 없어요. 누구처럼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       

        고, 무슨 낙으로 집에만 틀어 박혀 있어. (침대에 걸터앉으며) 나, 당신하고 이혼하       

        려고 들어 왔어.

동섭  (짜증나는) 뭐?

숙자  이혼해요 그만.

동섭  (버럭) 늙어서 노망났어?

숙자  늙고 보니, 내 청춘이 아까워서 그래. 남은 인생까지 너덜너덜 보내고 싶지 않어.

동섭  (기가 막힌) 하, 이혼? 지나가는 개도 안 웃겠네.

숙자  당신, 나 사랑해서 같이 살아요? 이혼 안하려는 이유가 뭐야?

동섭  (한심한) 쯧쯧. 나이 생각 못하고, 사랑 타령해 지금?

숙자  내 나이엔 사랑 같은 감정도 없어? (벌떡 일어나며) 나도 여자야. 오십, 육십 먹은 여자들은

        감정도 없는 줄 알아 당신? 화내고, 투정 부리는 감정 있는 것처럼, 좋아하구,  사랑하는

        감정도 있어. 당신이 왜 싫은 지 알아? 자식도 못 낳는 여자, 삼십 년 동안 한결같이 대한

        그 잘난 위선 때문이야. 남들은 끔찍하게도 부인 생각하는, 자상한 남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은, 한결같이 나를 그저 무시하고 살았어. 사랑해서가 아니라, 체념이었겠지.

        그나마 우리 아버지가 돈이 많다는 것도 한 몫 한 셈이겠지만.

동섭  (자존심 상한) 말 다 했어 지금? 돈? 지금 돈 가지고 유세해? 그 돈 없어도 살아. 이 빌어먹을

         회장, 이거 안 해도 사는데 지장 없어. (버럭)누군 좋아서 해? 잠자코 있어  제발. 집구석

         시끄럽게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으라구.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는 동섭을 노려보던 숙자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S#19. 예식장

북적대는 식장 안에 들어서는 단희. 사람들 틈에 서 있던 경애가 단희를 발견하고 손짓을 한다.

경애를 보며 웃으며 걸어가다 그녀 뒤쪽에 서 있던 석주와 시선 마주치고, 표정 굳어진다. 그러나

금세 표정 수습하고, 못 본 척 경애 앞에 선다.


경애  (단희 손잡고) 너, 못 오는 줄 알았다. 곧 예식 시작할거야.

단희  어.

 

둘이서 돌아서는데 석주가 앞을 가로 막고 선다. 그런 석주를 못마땅한 듯 쳐다보는 경애.


석주  아버님, 소식은 들었어.

경애  (앙칼지게) 그래서 뭐?

석주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

경애  (기가 막힌) 웃기셔. 누가 기다렸대?

단희  그만해, 경애야. (경애의 팔을 잡고 끄는)

경애  너무 뻔뻔하잖아. (끌려가며)


우혁의 앞에 서는 단희와 경애. 그런 단희를 씁쓸하게 바라보는 석주.


단희  축하해. 떨리지?

우혁  조금 긴장되긴 하네. (석주를 보다) 안 와도 되는데 뭐 하러?

단희  어떻게 안 오니? 장례식 때 니가 고생 많았는데.

우혁  내가 한 게 뭐 있다구.

경애  (우혁의 팔을 툭 치며) 잘 살어.

우혁  그래.


단희와 경애가 안으로 들어가자 석주가 다가온다.


석주  축하한다.

우혁  (한숨) 기분 좋은 날, 너하고 싸우기 싫다. 오늘만 내가 참어.

석주  (쓴웃음) 괜히 왔나?

우혁  애들 입에 너, 안주 돼서 씹히는 거 몰라? 적어도 임마, 단희 아버님 장례식 땐.

         (말  꺼내기 싫은) 아니다, 그만 두자. 얘기 해, 뭐해.

석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놈이지 뭐.

우혁  알면 됐어.


(E)방송  예식이 곧 시작될 예정이오니, 하객 분들께서는 식장 안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서둘러 사람들이 식장 안으로 들어가고, 그 사람들 속에 홀로 서 있는 석주.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것처럼 민망하다. 멀리 단희의 옆모습을 보다가 돌아서 가는 석주를 그제야 돌아보는 단희.



 

S#20. 예식장 앞

끼익, 거칠게 브레이크를 밟은 차가 서면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린다. 차에서 내리는 태민.

서둘러 뛰어 들어 간다.




 

S#21. 예식장 건물 안


계단으로 내려오는 단희와 거칠게 부딪히는 태민.


단희  (휘청거리며) 어멋.


무시한 채 뛰어 올라가는 태민. 난간을 잡고 일어나는 단희는 어깨가 아픈 듯 한 손으로 움켜쥐며

돌아본다. 그때 경애가 내려온다.


경애  왜, 벌써 가?

단희  머리가 아파서.

경애  많이 아퍼?

단희  좀 그러네. 볕 좀 쐬고 있을게.

경애  그래, 가지 말구.

단희  응.


다시 경애가 올라가고, 내려오는 단희.




S#22. 이층 식장.

실내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태민. 신랑, 신부 이름이 적힌 팻말을 보고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태민  젠장.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그대로 돌아서는 태민.


태민  (지나치는 경애를 잡고) 예식, 언제 시작했어요?

경애  (경계하는) 십 오 분 전에요.


경애의 말에 말없이 지나쳐 내려가는 태민을 경애가 힐끔 돌아보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폐백실로

간다.



 

S#23 식장 입구

계단에 서 있는 단희. 그 옆에 와서 서는 태민. 둘이는 나란히 서서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 태민의 휴대폰이 울린다.


태민  (폴더 열고) 어. (사이) 늦었어. 이미 끝났더라구, 젠장. (사이) 내가 공항까지 가야 되냐?

         (버럭) 그냥 살라구 해. (사이) 판 끝났는데, 나 혼자 고 불러?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태민의 목소리에 고개 돌리는 단희. 태민과 순간 시선 마주치

지만, 계단을 내려가는 태민을 스치듯 보는 단희. 사라지는 태민의 차를 생각 없이 물끄러미 바라

보는데, 경애가 와서 살짝 친다.


경애  가자.

단희  벌써?

경애  먼저 간다구 했어. 머리는?

단희  그냥 그래.

경애  밥 먹으러 가자. (장난스레) 우혁이한테 점심 값, 삥 쳤어.

단희  (웃고)


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



 

S#24. 방배동 집 전경

(E)진   (앙칼지게) 내 거, 건드리지 말라 그랬지?



S#25. 집 안/이층 거실

완이  방문 앞에 서 있고, 진이 골이 잔뜩 나서 완이를 노려보고 서 있다.

 

완   (너무한다 싶은) 책 좀 본 걸 가지고 왜 그래?

진   내 책이지, 오빠 책이야? 왜 내 방에 함부로 들어오냐구 글쎄.

완   내가 남이냐? 들어갈 수도 있지, 그게 뭐 그리 큰 죄를 진 거라구 닦달을 해?

진   (신경질 나는) 싫다구 글쎄. 내가 싫다는데, 왜 그러냐구.


진이의 소동에 놀라 영희가 올라온다.


영희  뭐야, 무슨 일이야?

완    내가 책 좀 봤다구 저러잖아요.

진    (씩씩대며) 내 방에 들어갔잖아.

영희  (진이 눈치 보며) 싫어하는 거 알면서, 왜 그랬어?

완    우리, 가족 아니에요? 이건, 남보다도 더 하잖아.

영희  (타이르며) 가족이래두 지킬 건 지키자는 거지.

완    (화난) 드러워서 정말. 나, 고 3 때 저러지 않았어요. 완전 상전이 따로 없다니까.


화가 나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완이. 그런 완을 노려보다 신경질적으로 제 방으로 들어가는

진이를 뒤따라 들어가는 영희.


진     (책상 앞에 앉고)

영희  (어깨에 손 얹고) 좋게 말하면 됐잖아. 그렇게 화 낼 필요까지 있었어?

진     (앞만 쳐다보는) 나, 공부할 거야.

영희   (머리 쓰다듬고) 우리 딸, 얼굴 이쁜 것만큼 말도 이쁘게 했음 좋겠다 엄만. 앞으로        

         내가 주의 시킬게. 그러니까, 그만 화 풀어. 응?


대꾸하지 않고 책을 펴는 진이. 그런 진이를 보며 나가는 영희. 완의 문 앞에 서서 한숨을 길게 내

쉬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침대위에 벌러덩 누워 있는 완이.


영희   니가 이해해라. 쟤, 요즘 많이 예민해서 그래.

완    (벌떡 일어나며) 저만 수험생이야? 유별나게 굴잖아. 온 식구들이 저 눈치 보느라  쩔쩔매는데,

        저는 성질대로 다 하고 있잖아요. 엄마가 쟤, 간만 자꾸 키우고 있는 거         라구요.

영희   알어. 올해만 참자. 응?

완      (맘에 안 드는)

영희   (어깨 툭 치며) 엄마두 피곤하긴 마찬가지야. 아들이 이해해주라. 어?


나가는 영희를 보다 신경질이 나는 완이. 다시 벌러덩 누워 버린다.




S#26. 일층 안방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는 영희. 한숨을 길게 내쉬며 생각에 빠진다.


(E)단희  내가 지금 엄마 노릇해달라구 전화한 거예요? 난, 엄마 필요 없어. 이십년이 넘도록 엄마

             없이 잘 살았어요. 아버지 (사이) 아버지 때문에 전화한거에요. 아버지가  지금 많이

             위독해요.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영희.





S#27. 패밀리 레스토랑

단희와 경애 앞에는 막 음식을 비운 접시가 놓여 있다.


경애   (입을 닦으며) 내일 오후에 시간 되지?

단희   (물을 마시다) ?

경애   대산그룹 비서실.

단희   자리 났어?

경애   당연하지, 내가 누구니? 근데, 사장실은 아니구 이사.

단희   할 수 없지. (고마운) 애썼어. 여러 가지로 고마워.

경애   내일 오후에 비서실로 찾아가면 될 거야. (명함 꺼내 주며) 거기로 연락하면 돼.

단희   (받고 보는) 어.

경애   (살피는) 내가 걱정할만한 이유는 아니지?

단희   (망설이다) 아직은 그래.

경애   무슨 일인데? 궁금해 죽겠네.


단희의 표정이 비장해진다.




S#28. 웨딩 샵

이층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숙자와 숙희.


숙희   (놀란) 이혼?

숙자   (태연) 뭘, 그렇게 놀라니?

숙희   미쳤어? 그 나이에 무슨 이혼이야?

숙자   더 늙기 전에 하려구.

숙희   형부가 그러재?

숙자   그 이야 원래 나, 무시하는 사람이잖어.

숙희   (한심) 언닌, 좀 그래.

숙자   무슨 의미야?

숙희   형부한테만 유독 피해망상이잖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언니 혼자 그래.

숙자   (발끈) 정신병자란 말이야?

숙희   그런 뜻이 아니잖우. 재혼할 거 아님, 그냥 살어. 이혼한다 소리, 십 년 전부터 했어.

숙자   그냥 하는 말 아냐.

숙희   그때도 그랬어. 삼십년을 넘게 살았음, 이젠 적응할 만도 하지 않어?

숙자   삼십년? 웃기지 마. 삼십년 동안 우리, 별거 생활만 십 년이야.

숙희   그건 일방적인 언니의 별거였구. 그게, 어떻게 별거니? 언니 혼자서 여행 다닌 거지.


숙희의 말에 뭐라 대꾸하려는데, 문을 열고 태민이 들어온다.


태민   (숙자 보고) 이게 누구신가?

숙자   (일어나 팔을 벌리고) 잘 생긴 이 분은 또 누구야?

태민   (와락 안으며) 이 숙자 여사. 오랜만이오.

숙자   (등을 토닥이며) 그대가 보고 싶어, 한 걸음에 달려 왔지. (손으로 태민의 얼굴을 만지고,

          보며) 너, 말랐다. 굶고 다니니?

태민   (장난스레) 이여사와 생이별을 하고 사니, 내가 마를 수밖에.

숙자   (흘기며, 엉덩이를 한 대 친다) 그런 녀석이, 코빼기도 안 보여? 꽃바구니만 달랑?

태민   (웃으며) 사정이 좀 있었어.


둘이 함께 나란히 자리에 앉는다.


숙희   (고개를 흔들며) 못 말리는 남매야.

숙자   그 사정이란 얘기 좀, 들어보자.

태민   (대수롭지 않게) 몇 년을 공 들여 놨더니, 딴 놈이 그새 채 가버렸어.

숙자   (놀란) 어?

숙희   왜, 저번에 말했잖우. 채경인가, 채영인가 하는 애 말야.

숙자   그 년이 널 차 버렸어?

숙희   언니, 그 년이 뭐야?

태민   (어깨를 들어 보이며) 나, 싫다는데 어떡해?

숙자   니가 왜 싫대니?

태민   내가 싫은 게 아니라, 우리 집이 싫대.

숙자   그건 그래. 그래두, 싹수는 있는 애네.

숙희   (둘의 대화를 보며 한숨)

숙자   요즘 애들은 집안 보구, 덤빈다 그러던데. 돈이 좀 있긴 하지만, 콩가루 집안이지.

숙희   언니.

숙자   내가 틀린 말 했니? 그 잘난 아버지가 마누라를 둘씩이나 둬서, 태민이가 이러고 살잖어.

         아버지가 뿌린 씨 때문에, 자식들이 안 풀리 거야.

태민   (그저 웃는)

숙희   언니는 대체 언제나 철 들라우?

숙자   (숙희의 말에 입을 삐죽이는)

숙희   (나무라는) 너, 오늘은 집에 들어 가. 오빠, 그 성질머리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야.

숙자   챙겨주는 척 하면서, 은근히 왕따 시키는 건 집안 내력인가?

숙희   (그런 숙자 흘겨보다 태민에게) 그쯤이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어. 여기서  더

          나가면 그건 방황이 아니라, 방탕이야. 이제 그만 해. (대답 없자) 응?

태민   (일어나며) 알았수다.

숙희   약속했다?

태민   숙자씨, 우리 함께 들어갈까?

숙자   그래, 그러자. 이왕이면 쇼핑 좀 하구 들어가자.

태민   모시겠나이다. (팔을 내밀면)

숙자   (팔짱을 끼고, 숙희에게) 수고해.


그런 두 사람 보면서 흐뭇하게 웃는 숙희.




S#29. 단희 집/방안

전화기가 놓여 있는 탁자 앞에 멀거니 앉아 있다. 한참을 생각에 빠지다 수화기를 든다.


단희      (덤덤하게) 김 영희씨, 부탁합니다.

(E)영희  여보세요.

단희      (망설이다) 저, 단희에요.

(E)영희  (말없는)

단희       오늘 좀 만나요.

(E)영희   (망설이다) 어디서 볼까?


선뜻 보자고 하는 영희의 말에 조금 놀란 단희. 그러다 굳어진 표정.




S#30. 카페 안

가늘게 사선으로 비가 내린다. 창가에 앉아 있는 단희의 표정은 착잡하다. 카페 문을 열고 영희가

들어온다. 나이에 비해 그녀는 너무나도 곱다. 단희를 발견하고 약간 긴장한 듯 한 표정. 다가와

앞에 앉으며 단희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서로 말없이 마주보고 앉아 있다. 그때 종업원이 다가온다.


영희   (보며) 나중에 주문할게요.


종업원이 가고 나자 영희의 시선은 다시 단희에게 간다. 말없이 잔을 들고 커피를 마시는 단희.


영희   (못 박듯) 이번이 마지막이야.

단희   (피식)

영희   (기분 상하지만 무시하는) 금방 일어나야 해.

단희   그러시겠죠. 나하고 앉아 있는 단 일초도 끔찍할 테니까. (비웃는) 자기가 가진 걸  

          잃게 될까봐, 겁이 나긴 하나봐. 긴장 좀 풀지 그래요?

영희   (모멸감) 너, 말버릇이 그게 뭐야?

단희   그러게, 피는 못 속이나 봐. 싫겠지만, 당신 닮아서 그래요.

영희   (상대하기 싫은) 이럴려구 보자 했어?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단희 앞에 밀어 놓고)

          아버지도 없이 혼자 된 건, 어쩔 수 없는 니 운명이야.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내 운명인 것처럼.

단희   (봉투 보며) 이게 뭐예요?

영희   고생하면서 살았으니, 앞으론 고생 하지 않아도 돼. 적은 액수는 아니야.

단희   (어이없는 웃음, 그리고 차갑게) 얼마나 되는데? 한, 십억쯤 되나?

영희   (노려보며) 그걸루 빚 청산은 된다고 생각해. 다신, 나 찾지 마. (일어난다)

단희   (영희의 팔을 잡고, 봉투 내미는) 이딴 거 필요 없어. 나한테 돈 가지고, 유세 떨지 마.

         (일어나고) 아까, 운명을 말했지? (노려보며) 그 운명, 내가 바꿀 거야. 똑바로  봐 둬.

          그 운명이 어떻게 바뀌는지.


팽팽하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단희는 독기를 품은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