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끼익끼익[귀염둥이재석]채연은 혼자 킥킥거리기에 여념이 없고귀염녀는 아주 자지러지고 있다.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볼륨녀마저도알듯말듯한 미소를 입가에 슬쩍 흘리며애써 웃음을 참으려는 듯한 표정이다.이렇게 쪽팔릴 수가;혼자 시작한 게임이고또 언제나 혼자서 즐기는 게임이었다는 게치명타로 돌아오고 말았다.하다못해 회원가입을 하고라이더명을 생성하는 순간에누구라도 한 사람만 곁에 있어주었다면내 라이더명을 저 따위로 짓는만행은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후회만 하고 있어봐야 어차피 쪽팔린 건 쪽팔린 거다.뭐라도 변명을 해보자.“아...아니...저...그게 아니라...죄 죄송합니다;”변명을 하랬더니 왜 사과를 하냐 븅신아.“아뇨. 죄송하긴요. 앞으로는 안 그러시면 되죠.”“아...네...그 그럴게요.”앞으로는 안 그러시면 되죠.앞으로는 안 그러시면 되죠.안으로는 안 그러시면 되죠.앞으로는 안 그러시면.........내가 귀염둥이라고 한 게 그렇게 이상하냐?난 쫌 귀여우면 안되냐? 응?아 그것보다도‘그럴게요.’라고 대답하는 나는 도대체 뭐하는 놈일까.마침카운터 쪽에서 “여기요.” 하고 나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살았다.어서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겠다.“아...저...자 잠깐만요. 카운터 좀 보고 올게요.”“네. 얼른 갔다와요.”황급히 자리를 피해 카운터로 돌아간다.마침 계산을 하고 나가는 손님이다.이 손님이 나가고 나면사용한 자리를 치우고 와야 된다.그러는 사이에 이 일은 잊혀지겠지?잊혀지겠지? 잊혀지겠지? 잊혀지겠지?요금은 삼천육백 원이다.때마침 금고 안에 백원짜리가 없다.금고 안쪽에 보관하고 있는오십개짜리 백원짜리 뭉치를 최대한 천천히 뜯어 금고 안에 쏟아붓고최대한 천천히 거스름돈을 계산해 준다.그러고 나서최대한 천천히 손님이 앉았던 자리로 향한다.최대한 천천히 앉은 자리를 치우고최대한 천천히 쓰레기를 버린다.아 젠장.이제 어떡하지?다시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카운터로 돌아와 그녀들이 앉은 쪽의 눈치를 살핀다.채연과 귀염녀가번갈아가며 한번씩 내 쪽을 돌아본다.그럴 때마다 눈이 마주친다.수작 부리지 말고 빨리 오라는무언의 협박이다.하아-짤막하게 한숨을 내뱉고는다시 그녀들이 앉은 자리로 걸어간다.다른 게임을 권해볼까?이 상황을 무마할 수 있는권장할 만한 게임이 없을까?메이플스토리?크레이지아케이드?......젠장;뭘 해도 내 닉네임은 [귀염둥이재석]이다.친구녀석과 함께 즐기던3D 온라인게임이 아니고서야혼자 몰래한 게임들은하나같이 닉네임이 똑같다.그래도 고급게임들에서는[터프가이재석]이 닉네임인데.........이건 더 븅신같잖아 신발;차라리 [귀염둥이재석]을 보여준 것이 다행이다.[터프가이재석]은 아무리 생각해도 찌질하다.‘터프가이재석’으로 설정되어 있는 게임들은그녀들에게 권하기에는 비교적 난이도가 높다.이것만은 걸리지 말아야지.그녀들이 앉은 자리로 돌아가보니이미 세 여자 모두 회원가입을 끝낸 후다.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가입절차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잘 기억이 나지 않긴 하지만마침 내가 그 자리로 돌아갔을 때그녀들은 이미 게임에 접속하여각자 자신의 디지니와 다오에게이름을 지어주고 있는 중이었다.귀염둥이수정귀염둥이채연............제기랄;이 여인네들은 이제 아예노골적으로 나를 놀리기로 작정한 듯 하다.내가 권해준 게임이니만큼앞으로 이 게임을 하면서자신의 닉네임을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우스울까.볼륨녀는 무언가 결정을 짓지 못하고망설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하긴 아무것도 아닌 게임이지만서도자신을 대표할 만한 이름을 생각해 내기는굉장히 어려운 일이다.“귀하의 아이디는 귀하의 얼굴입니다.”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단순히 누군가를 조롱할 목적으로단순하게 이름을 지어버리는 건정말이지 생각없는 짓이다.무 물론내 얼굴이 귀염둥이는 아니다.쓸데없는 걸로 따지지는 말자;볼륨녀가 여전히 결정을 하지 못하고이래저래 뜸을 들이고 있자.다른 두 여자의 비난이 빗발치기 시작한다.“언니! 그냥 ‘귀염둥이혜수’로 하라니까!”“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귀염둥이 해 귀염둥이!”“......”강요하지마라 이 여자들아.왜 그렇게 나를 걸고 넘어지려고 하냐.“이거...정말 해도 괜찮을까?”“뭐 어때? 어차피 그냥 게임인데.”“남자도 저런거 쓰는데 뭐.”한동안 이걸로 시달리겠구나;볼륨녀는 ‘귀염둥이’까지 썼다가는 다시 지운다.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귀염둥이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그렇게 이상한가;나보다 두 살이 많았으니당시 나이 스물 여섯.현재 내 나이가 스물 여섯인데지금 닉네임을 지으라고 해도 절대로 저따위; 닉네임은 만들지 않을 것이므로지금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다.“야...나 도저히 이거 못하겠어.”“언니 정말 이러기야? 그럼 우리는 뭐야?”“내 나이가 스물여섯인데...어떻게 이런 짓을...”“나도 스물다섯이야 언니.”“나도 스물넷. 그리고...음...또 한명 더 있네.”귀염녀는 그렇게 말하며내쪽을 슬쩍 쳐다본다.최근 나는 대학에서국어의미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현재 그녀들의 발화에는상당히 많은 전제가 내포되어 있으며문맥과 상황에 따른 관련성을 함축하고 있다.표층적인 발화만으로는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고상황을 고려하여 봤을 때 그녀의 발화는“스물네살 처먹은 남자새끼도 지가 귀염둥이라는데 겨우 두 살 많은 언니가 뭐 어때서.”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여기서 청자는 그러한 의미를 쉽사리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다.......괜히 어려운 소리해서 미안하다;뭐 말하자면 결론은“지가 귀염둥이래 찌질이새끼 ㅋㅋㅋ.”이거다.볼륨녀는 그로부터 몇 번이나 더 고민한 뒤에야겨우 그녀들의 거사에 동조하기로 결심을 굳힌 듯하다.결국 못 이기는 척 하면서 그녀는내 눈치를 한번 보더니[귀염둥이혜수]라는 캐릭터 한 마리를 생성한다.본의 아니게 ‘귀염둥이’길드가 탄생해 버렸다.물론 그 후로 그녀들과 함께카트라이더를 즐긴 적은 없기는 하지만.그렇게 세 마리의 귀염둥이;를 만들고 나니운전면허 취득이라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가운데에 앉아 있는 귀염둥이채연의 캐릭터로손쉽게 면허시험에 통과하며다른 두 여자에게 요령을 설명해 주었다.나의 현란한 운전솜씨에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다 후훗.“내꺼도 해줘요.”“네?”“나 이런거 못해요. 내꺼도 해줘요.”가입하자마자 취득하는 면허는아주 왕기초적인 건데...이것도 못하면 카트는 어떻게 할라고;어쩔 수 없이 그녀 쪽으로 가서또 하나의 면허를 따기 위해 운전대를...아 아니 키보드를; 잡고보니어라?이거 뭔가 자세가 이상하다.쉬프트키 위에 올려 놓은 왼손과방향키 위에 위치한 오른손.그리고 내 몸과 양 손을 이어주는 두 개의 팔.그 양팔 사이로 귀염녀의 머리통이비죽 솟아 있다.연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오묘한 자세.잘못 보면 뒤에서 덮치는 듯한; 자세로나는 그녀에게 밀착해 있다.황급히 팔을 빼고한 발짝 더 움직여 그녀의 옆으로 바짝 선다.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고본능적으로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그녀가 너무 조그만해서어쩌다보니 그런 자세가 나와버린 것.다행히도방금 전의 그 자세에 대해서는세 여자 모두 별 반응이 없다.그다지 신경쓰지 않은듯.그렇게 대리운전으로 그녀의 면허를 받아주고다시 채연의 컴퓨터로 가서게임방법을 설명해 준다.물론 그 사이에 볼륨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면허증을 취득한 상태.게임을 시작하기까지는그다지 어렵지 않게 그녀들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문제는 게임의 요령.게임에 등장하는 하나하나의 아이템과각종 장애물과 각각의 맵의 특성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진해 버렸다.그러는 사이에나는 나가는 손님들로 인해두 번인가를 더 카운터에 다녀왔다.기본맵을 몇 바퀴 도는 사이에그녀들은 게임에 상당히 익숙해졌다.특히나 채연은 굉장한 순발력을 보여주며순식간에 카트계의 지존이 되었다.겨우 여섯 게임을 하는 동안 채연은1등을 네 번, 2등을 두 번이나 기록하였다.귀염녀는 여섯 판 모두 꼴찌.물론방 잠궈놓고 셋이서만 게임을 하긴 했지만.그렇게 그녀들이 차차 게임에 적응하며자신들만의 힘으로 게임운영을 할 수 있을 즈음이었다.별안간볼륨녀의 키보드 옆에 놓인 핸드폰이드르륵-하고 울리더니메세지를 확인한 그녀가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난다.“...갔다올게.”“......”게임에 접속한 채로짤막하게 한마디를 내뱉고는일어나서 문을 향해 걸어나간다.어디를 가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최소한 한 시간 정도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순식간에 분위기가 냉랭해진다.남은 두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조용히 운전을 하고 있다.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그냥 옆에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한 게임이 끝나자채연이 몸을 돌려 볼륨녀의 접속을 끊는다.“...이제...우리끼리 할게요. 고마워요.”“아...네.”나는 그제서야 그녀들로부터 벗어나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온다.지금의 그녀들에게는말을 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새대가리인 나도 충분히 알 수가 있다.무엇인가대충 감은 잡히긴 하지만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어쨌거나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그렇게 카운터로 돌아와서도한번씩 힐끔힐끔 그녀들 쪽을 본다.오늘 처음 배운 게임이 꽤나 재미있는 모양인지그녀들은 계속해서 운전을 한다.그러나 여전히 서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시간은 어느덧 새벽을 향해 흘러간다.볼륨녀는 어느새 돌아와 자리에 앉아 있다.사장은 오늘도 오지 않을 모양인가.사장이 올거라던 경림의 말은내가 농땡이 피울까봐;구라를 깐 것이 확실하다.서서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갑자기 스피커에서 “또로롱.”맑은 소리가 울린다.쪽지인가?[끼익끼익 어떻게 해요?]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야.좌석번호는아니나다를까 귀염녀가 앉은 자리.그렇게 쪽지를 보내놓고도카운터 쪽을 힐끔힐끔 돌아보고 있다.당췌 이해할 수가 없는 소리라그녀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귀염녀는 뭔가 뾰로통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저...무슨 소리예요?”“끼익끼익 어떻게 해요?”“그...그게 무슨...”“저거요. 언니가 하는거 저거.”그녀의 손가락을 따라채연의 모니터를 쳐다보니90도의 직각을 어설픈 드리프트로꺾어 나가고 있다.“저거요. 끼익-하면서 도는거. 저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아무래도 혼자 힘으로 터득한 채연이그녀에게는 가르쳐주지 않은 모양.풉;그렇다고는 해도끼익끼익이라니.귀여운 것도 정도껏이지.1
안마 시술소 그녀들 14탄
14. 끼익끼익
[귀염둥이재석]
채연은 혼자 킥킥거리기에 여념이 없고
귀염녀는 아주 자지러지고 있다.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볼륨녀마저도
알듯말듯한 미소를 입가에 슬쩍 흘리며
애써 웃음을 참으려는 듯한 표정이다.
이렇게 쪽팔릴 수가;
혼자 시작한 게임이고
또 언제나 혼자서 즐기는 게임이었다는 게
치명타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다못해 회원가입을 하고
라이더명을 생성하는 순간에
누구라도 한 사람만 곁에 있어주었다면
내 라이더명을 저 따위로 짓는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후회만 하고 있어봐야
어차피 쪽팔린 건 쪽팔린 거다.
뭐라도 변명을 해보자.
“아...아니...저...그게 아니라...죄 죄송합니다;”
변명을 하랬더니 왜 사과를 하냐 븅신아.
“아뇨. 죄송하긴요. 앞으로는 안 그러시면 되죠.”
“아...네...그 그럴게요.”
앞으로는 안 그러시면 되죠.
앞으로는 안 그러시면 되죠.
안으로는 안 그러시면 되죠.
앞으로는 안 그러시면...
......
내가 귀염둥이라고 한 게 그렇게 이상하냐?
난 쫌 귀여우면 안되냐? 응?
아 그것보다도
‘그럴게요.’라고 대답하는 나는
도대체 뭐하는 놈일까.
마침
카운터 쪽에서 “여기요.” 하고
나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살았다.
어서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겠다.
“아...저...자 잠깐만요. 카운터 좀 보고 올게요.”
“네. 얼른 갔다와요.”
황급히 자리를 피해 카운터로 돌아간다.
마침 계산을 하고 나가는 손님이다.
이 손님이 나가고 나면
사용한 자리를 치우고 와야 된다.
그러는 사이에 이 일은 잊혀지겠지?
잊혀지겠지? 잊혀지겠지? 잊혀지겠지?
요금은 삼천육백 원이다.
때마침 금고 안에 백원짜리가 없다.
금고 안쪽에 보관하고 있는
오십개짜리 백원짜리 뭉치를
최대한 천천히 뜯어 금고 안에 쏟아붓고
최대한 천천히 거스름돈을 계산해 준다.
그러고 나서
최대한 천천히 손님이 앉았던 자리로 향한다.
최대한 천천히 앉은 자리를 치우고
최대한 천천히 쓰레기를 버린다.
아 젠장.
이제 어떡하지?
다시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카운터로 돌아와 그녀들이 앉은 쪽의 눈치를 살핀다.
채연과 귀염녀가
번갈아가며 한번씩 내 쪽을 돌아본다.
그럴 때마다 눈이 마주친다.
수작 부리지 말고 빨리 오라는
무언의 협박이다.
하아-
짤막하게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그녀들이 앉은 자리로 걸어간다.
다른 게임을 권해볼까?
이 상황을 무마할 수 있는
권장할 만한 게임이 없을까?
메이플스토리?
크레이지아케이드?
......
젠장;
뭘 해도 내 닉네임은 [귀염둥이재석]이다.
친구녀석과 함께 즐기던
3D 온라인게임이 아니고서야
혼자 몰래한 게임들은
하나같이 닉네임이 똑같다.
그래도 고급게임들에서는
[터프가이재석]이 닉네임인데...
......
이건 더 븅신같잖아 신발;
차라리 [귀염둥이재석]을 보여준 것이 다행이다.
[터프가이재석]은 아무리 생각해도 찌질하다.
‘터프가이재석’으로 설정되어 있는 게임들은
그녀들에게 권하기에는 비교적 난이도가 높다.
이것만은 걸리지 말아야지.
그녀들이 앉은 자리로 돌아가보니
이미 세 여자 모두 회원가입을 끝낸 후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가입절차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긴 하지만
마침 내가 그 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녀들은 이미 게임에 접속하여
각자 자신의 디지니와 다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있는 중이었다.
귀
염
둥
이
수
정
귀
염
둥
이
채
연
......
......
제기랄;
이 여인네들은 이제 아예
노골적으로 나를 놀리기로 작정한 듯 하다.
내가 권해준 게임이니만큼
앞으로 이 게임을 하면서
자신의 닉네임을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우스울까.
볼륨녀는 무언가 결정을 짓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하긴 아무것도 아닌 게임이지만서도
자신을 대표할 만한 이름을 생각해 내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귀하의 아이디는 귀하의 얼굴입니다.”
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단순히 누군가를 조롱할 목적으로
단순하게 이름을 지어버리는 건
정말이지 생각없는 짓이다.
무 물론
내 얼굴이 귀염둥이는 아니다.
쓸데없는 걸로 따지지는 말자;
볼륨녀가 여전히 결정을 하지 못하고
이래저래 뜸을 들이고 있자.
다른 두 여자의 비난이 빗발치기 시작한다.
“언니! 그냥 ‘귀염둥이혜수’로 하라니까!”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귀염둥이 해 귀염둥이!”
“......”
강요하지마라 이 여자들아.
왜 그렇게 나를 걸고 넘어지려고 하냐.
“이거...정말 해도 괜찮을까?”
“뭐 어때? 어차피 그냥 게임인데.”
“남자도 저런거 쓰는데 뭐.”
한동안 이걸로 시달리겠구나;
볼륨녀는 ‘귀염둥이’까지 썼다가는 다시 지운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귀염둥이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이상한가;
나보다 두 살이 많았으니
당시 나이 스물 여섯.
현재 내 나이가 스물 여섯인데
지금 닉네임을 지으라고 해도
절대로 저따위; 닉네임은 만들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다.
“야...나 도저히 이거 못하겠어.”
“언니 정말 이러기야? 그럼 우리는 뭐야?”
“내 나이가 스물여섯인데...어떻게 이런 짓을...”
“나도 스물다섯이야 언니.”
“나도 스물넷. 그리고...음...또 한명 더 있네.”
귀염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쪽을 슬쩍 쳐다본다.
최근 나는 대학에서
국어의미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현재 그녀들의 발화에는
상당히 많은 전제가 내포되어 있으며
문맥과 상황에 따른 관련성을 함축하고 있다.
표층적인 발화만으로는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고
상황을 고려하여 봤을 때 그녀의 발화는
“스물네살 처먹은 남자새끼도 지가 귀염둥이라는데 겨우 두 살 많은 언니가 뭐 어때서.”
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여기서 청자는 그러한 의미를
쉽사리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다.
......
괜히 어려운 소리해서 미안하다;
뭐 말하자면 결론은
“지가 귀염둥이래 찌질이새끼 ㅋㅋㅋ.”
이거다.
볼륨녀는 그로부터 몇 번이나 더 고민한 뒤에야
겨우 그녀들의 거사에 동조하기로
결심을 굳힌 듯하다.
결국 못 이기는 척 하면서 그녀는
내 눈치를 한번 보더니
[귀염둥이혜수]라는 캐릭터 한 마리를 생성한다.
본의 아니게 ‘귀염둥이’길드가 탄생해 버렸다.
물론 그 후로 그녀들과 함께
카트라이더를 즐긴 적은 없기는 하지만.
그렇게 세 마리의 귀염둥이;를 만들고 나니
운전면허 취득이라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가운데에 앉아 있는 귀염둥이채연의 캐릭터로
손쉽게 면허시험에 통과하며
다른 두 여자에게 요령을 설명해 주었다.
나의 현란한 운전솜씨에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다 후훗.
“내꺼도 해줘요.”
“네?”
“나 이런거 못해요. 내꺼도 해줘요.”
가입하자마자 취득하는 면허는
아주 왕기초적인 건데...
이것도 못하면 카트는 어떻게 할라고;
어쩔 수 없이 그녀 쪽으로 가서
또 하나의 면허를 따기 위해 운전대를...
아 아니 키보드를; 잡고보니
어라?
이거 뭔가 자세가 이상하다.
쉬프트키 위에 올려 놓은 왼손과
방향키 위에 위치한 오른손.
그리고 내 몸과 양 손을 이어주는 두 개의 팔.
그 양팔 사이로 귀염녀의 머리통이
비죽 솟아 있다.
연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오묘한 자세.
잘못 보면 뒤에서 덮치는 듯한; 자세로
나는 그녀에게 밀착해 있다.
황급히 팔을 빼고
한 발짝 더 움직여 그녀의 옆으로 바짝 선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고
본능적으로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녀가 너무 조그만해서
어쩌다보니 그런 자세가 나와버린 것.
다행히도
방금 전의 그 자세에 대해서는
세 여자 모두 별 반응이 없다.
그다지 신경쓰지 않은듯.
그렇게 대리운전으로 그녀의 면허를 받아주고
다시 채연의 컴퓨터로 가서
게임방법을 설명해 준다.
물론 그 사이에 볼륨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면허증을 취득한 상태.
게임을 시작하기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그녀들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게임의 요령.
게임에 등장하는 하나하나의 아이템과
각종 장애물과 각각의 맵의 특성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진해 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나가는 손님들로 인해
두 번인가를 더 카운터에 다녀왔다.
기본맵을 몇 바퀴 도는 사이에
그녀들은 게임에 상당히 익숙해졌다.
특히나 채연은 굉장한 순발력을 보여주며
순식간에 카트계의 지존이 되었다.
겨우 여섯 게임을 하는 동안 채연은
1등을 네 번, 2등을 두 번이나 기록하였다.
귀염녀는 여섯 판 모두 꼴찌.
물론
방 잠궈놓고 셋이서만 게임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그녀들이 차차 게임에 적응하며
자신들만의 힘으로 게임운영을 할 수 있을 즈음이었다.
별안간
볼륨녀의 키보드 옆에 놓인 핸드폰이
드르륵-
하고 울리더니
메세지를 확인한 그녀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갔다올게.”
“......”
게임에 접속한 채로
짤막하게 한마디를 내뱉고는
일어나서 문을 향해 걸어나간다.
어디를 가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한 시간 정도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랭해진다.
남은 두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운전을 하고 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옆에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한 게임이 끝나자
채연이 몸을 돌려 볼륨녀의 접속을 끊는다.
“...이제...우리끼리 할게요. 고마워요.”
“아...네.”
나는 그제서야 그녀들로부터 벗어나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온다.
지금의 그녀들에게는
말을 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새대가리인 나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무엇인가
대충 감은 잡히긴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카운터로 돌아와서도
한번씩 힐끔힐끔 그녀들 쪽을 본다.
오늘 처음 배운 게임이
꽤나 재미있는 모양인지
그녀들은 계속해서 운전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은 어느덧 새벽을 향해 흘러간다.
볼륨녀는 어느새 돌아와 자리에 앉아 있다.
사장은 오늘도 오지 않을 모양인가.
사장이 올거라던 경림의 말은
내가 농땡이 피울까봐;
구라를 깐 것이 확실하다.
서서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스피커에서
“또로롱.”
맑은 소리가 울린다.
쪽지인가?
[끼익끼익 어떻게 해요?]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야.
좌석번호는
아니나다를까 귀염녀가 앉은 자리.
그렇게 쪽지를 보내놓고도
카운터 쪽을 힐끔힐끔 돌아보고 있다.
당췌 이해할 수가 없는 소리라
그녀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귀염녀는 뭔가 뾰로통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저...무슨 소리예요?”
“끼익끼익 어떻게 해요?”
“그...그게 무슨...”
“저거요. 언니가 하는거 저거.”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채연의 모니터를 쳐다보니
90도의 직각을 어설픈 드리프트로
꺾어 나가고 있다.
“저거요. 끼익-하면서 도는거. 저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아무래도 혼자 힘으로 터득한 채연이
그녀에게는 가르쳐주지 않은 모양.
풉;
그렇다고는 해도
끼익끼익이라니.
귀여운 것도 정도껏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