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제가 퍼운글입니다. 지금 게시판이랑 글 성격이 좀 안 맞지만 읽으시면 용기가 날것같아서 올립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입니다. 여러사이트에서 젋을 때 돈벌어라,잘 살아야 한다,등등 그런 소리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한 번 적어볼까 합니다. 가슴에 칼을 품어야 하는 이유를 사회 선배로서 적어봅니다. 모든 분들이 이런 경우는 아니겠지만 저처럼 이런 일을 당하기전에 미리 스스로를 다독거려 챙기고 관리하고 노력하시라는 뜻에서... 아주 아주 젊은 날...실화임을 우선 알려드립니다.
철모를 시절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친형제지간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늘 나와 그 친구는 모든 일을 같이 했으며 늘 붙어다니고 일거수 일투족을 알 정도로 지냈습니다. 그 당시 그 친구의 집안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저는 좀 살았었죠.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엔 전혀 무신경으로 우리 둘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중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를 마쳤고 대학까지...... 수많은 나날을 같이 지내왔지만 변한 건 우리의 체격이 좀 더 커지고 나이가 좀 더 먹었다는 것외에는 변한 건 없었습니다. 그 친구의 집안은 여전히 어려웠고 우리 집은 그런대로 여전히 좀 살았고..... 재수시절 미팅을 하거나 모임을 하거나 여행을 갈 때도 그 친구는 늘 가난이라는 굴래 때문에 회비며 하고 다니는 모양새며 그 누가봐도 많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20대 초반 그 젋은 날들의 수많은 자금(?)을 거의 내가 다 대주고 지내왔습니다. 어디가서 뭘 먹어도 내가 내야 했으며 어디 여행을 가도 내가 내야 했었죠. 자기 여친하고 데이트를 하는데 입을 게 없다고 해서 옷도 사주었으며 운동화,데이트 비용, 제반 관련되는 비용은 전부 나의 몫이었습니다. 워낙 없다보니 그 당시에는 같이 지낼려면 어쩔 수가 없었고 또한 나역시도 아직 어리다보니 아까운 줄 모르고 오직 우정만을 생각하며 아낌없이 대 주었습니다. 물론 저도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제가 벌어서 쓴 건 아닙니다. 집안이 좀 살다보니 늘 용돈이 넉넉해서 아무래도 씀씀이가 있었던거죠.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20대 후반부터 각자 직장과 사업과 결혼을 하면서 서로간에 바빠지다보니 만남이 뜸해지고 각자 살기 바쁘다보니 연락도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몇년 흐르다보니 그 떨어져 살던 과정의 삶을 서로간에 잊고 산거죠. 그렇게 그럭저럭 직장다니며 살고있겠지 하면서 나는 나대로 지냈었고 그 친구도 그 나름대로 그런 생각들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일 겁니다.
그렇게 또 몇년이 흐르고 다른 한 친구로 부터 그 가난에 몸살을 앓던 친구가 사업에 성공하여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심 잘됐구나하고 생각했죠. 그 반면에 그 당시 저는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갑자기 잘나가던 집안이 하루아침에 망해버리고 그저 몸 하나 뻗을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조금 덜 살다가 갑자기 잘 살게 되면 그건 적응하기 쉬워도 좀 살다가 덜 사는 생활을 하려니 정말 참기힘든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집안에 벅적이며 들락거리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뚝 끊기고 어디 도움을 좀 청할려고 해도 대부분 이런 저런 핑계로 피하기 바쁜 삶의 차가운 단면을 그제서야 뼈져리게 느끼게 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그 친구하고의 연락이 통하게 되었던 거죠. 서울 강남 모 빌딩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는 오랬만에 만남이라 술 한 잔도 할 거 같아서 차도 그냥 두고 대중교통을 타고 만나러 나갔습니다.
겨울이었습니다. 빌딩 앞에서 기다리는데 차가운 겨울바람이 마치 나의 현실처럼 차갑게 나의 볼과 바지사이로 파고드는 떨림에 그래도 어릴 때 친구를 오랬만에 만난다는 기대 하나로 기다리고 있을즈음, 웬 젋은 남자분 한 사람이 제게 다가오더군요."저기~XXX씨시죠?" "네..그런데요, 누구시죠?" "아! 저기 우리 사장님이 차로 오시랍니다" 그 사람은 기사였던 것이었다.
내 친구 차를 운전하는 운전기사....불과 7미터 앞에 국산 검정 대형 리무진 승용차 한 대가 우람하게 겨울바람 사이로 머플러의 뽀얀 배기음을 뽑고 있었다. 내가 빌딩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7미터 앞에 차를 주차하고 기사를 시켜 나를 불러오도록 한 것이라는 판단이 머리속에 들면서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어릴 때의 그 가난에 몸부림치던 친구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아...그런거였다.친구라며 직접와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라도 하면서 "오랬만이다 친구야~"할 것이라는 내 예감은 저기 인도옆에 하수구로 쑤셔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사와 같이 차로 걸어가며 내 머리속은 왜 그렇게 화끈거리고 어색했는지...
차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긴 리무진의 뒷자석에 다리를 꼬은채 앉아 있는 친구의 모습은 반갑다는 표정보다는 그저 아는 놈 하나 또 만나보는구나 하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어서와라~"하고는 옆자리에 앉으라는 제스추어까지 해주었다.
기사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어디로 가자는 얘기를 안 해도 벌써 알아차리고 운전중이었다. 차안은 나의 어색함과 친구의 거만함에 한동안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리무진이 왜그리 길어보이던지...안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가 꽤나 넓은 리무진의 공간 때문에 더욱 어색함을 더하고 있을즈음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뒷자석에 설치된 모니터를 만지작거리며 TV를 보고 있었다.
"그래, 그동안 잘 지냈니? 좋아보인다? 몇년만이지?" 나는 뻔한 질문들만 날리고 있었고 친구 또한 뻔한 질문만 대답하고 있었다."글쎄..오랬만인 거 같다,그간 너의 집안 얘기는 다른 곳에서 들었단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쩌다가....." 그말이 다였다. 그 소리가 나에겐 이젠 입장이 바꼈다,이젠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고 번역되어 들렸다.
그 이후..어느 Bar에서 술을 마셨는지는 생각하기도 싫고 생각도 안 납니다. 그는 거기서 사장님이었고 나는 회식에 따라온 신참내기 신입사원이었으니까....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양주 4병중 그 대부분을 내가 마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왜 그랬는지,반가운 친구랑 술을 마시는데 왜 폭음을 했는지, 왜 룸의 아가씨들이 전부 친구에게 아부들을 떠는지,왜 조용히 나는 술만 마시고 있었는지,이미 친구는 예전 철부지 때의 나의 손아귀에서 놀던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망해서 없다는 이유 하나로 그 친구에게 과거의 모든 기억들을 접고 새로이 출발하는 관점에서 올려다봐야 한다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던 거죠. 이건 아닌데....이건 친구가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건 나만의 바램이었습니다.
더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자신이 더 비참해지는 것 같아서 늦어서 이만 먼저 일어나겠다는 말을 전하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먼저 갈래? 많이 취했네? 술발이 예전같이 않다 너?" 라고 말을 하는 친구와 가면서 차비나 해라라며 집어주는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이 보이더군요.
악수를 하면서 저는 가슴에 칼을 품었습니다.
[잘 살아야 한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꼭 다시 다음에 만나야 한다.....] 머릿속에 이런 소리가 메아리를 치더군요.
그 이후로 저는 뛰었습니다. 뒤도 안 보고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그 어색함과 다시는 상종하기 싫어서 뛰고 또 뛰었습니다. 잘살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뛰었습니다. 막말로 눈썹 휘날리게 뛰었습니다. 결과는 역시 돌아오더군요. 자리를 잡았습니다.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이제 예전의 평온함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었죠. 지금 이 상태에서 예전의 일들을 떠올려보니 잘했다고 아주 열심히 잘했다고 내가 내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보배드림 여러분, 개인적인 일이었지만 비단 개인으로만 끝나는 일은 아닙니다. 사회가,현실이 이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없었던 나를 탓하고 방심했던 나를 탓하고 무조건 과거만 생각했던 나를 탓해야죠.
열심히 살아서 저처럼 이런 못난 상황과 현실을 만나지 마시라는 글이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 좋은 하루 되십시요.
백수 백조 여러분 이글읽고꼭 희망을 가지세요
이글은 제가 퍼운글입니다.
지금 게시판이랑 글 성격이 좀 안 맞지만 읽으시면 용기가 날것같아서 올립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입니다.
여러사이트에서 젋을 때 돈벌어라,잘 살아야 한다,등등
그런 소리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한 번 적어볼까 합니다.
가슴에 칼을 품어야 하는 이유를 사회 선배로서 적어봅니다.
모든 분들이 이런 경우는 아니겠지만 저처럼 이런 일을 당하기전에
미리 스스로를 다독거려 챙기고 관리하고 노력하시라는 뜻에서...
아주 아주 젊은 날...실화임을 우선 알려드립니다.
철모를 시절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친형제지간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늘 나와 그 친구는
모든 일을 같이 했으며 늘 붙어다니고 일거수 일투족을 알 정도로 지냈습니다.
그 당시 그 친구의 집안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저는 좀 살았었죠.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엔 전혀 무신경으로 우리 둘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중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를 마쳤고 대학까지......
수많은 나날을 같이 지내왔지만 변한 건 우리의 체격이 좀 더 커지고 나이가
좀 더 먹었다는 것외에는 변한 건 없었습니다.
그 친구의 집안은 여전히 어려웠고 우리 집은 그런대로 여전히 좀 살았고.....
재수시절 미팅을 하거나 모임을 하거나 여행을 갈 때도 그 친구는 늘 가난이라는
굴래 때문에 회비며 하고 다니는 모양새며 그 누가봐도 많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20대 초반 그 젋은 날들의 수많은 자금(?)을 거의 내가 다 대주고 지내왔습니다.
어디가서 뭘 먹어도 내가 내야 했으며 어디 여행을 가도 내가 내야 했었죠.
자기 여친하고 데이트를 하는데 입을 게 없다고 해서 옷도 사주었으며
운동화,데이트 비용, 제반 관련되는 비용은 전부 나의 몫이었습니다.
워낙 없다보니 그 당시에는 같이 지낼려면 어쩔 수가 없었고 또한 나역시도
아직 어리다보니 아까운 줄 모르고 오직 우정만을 생각하며 아낌없이 대 주었습니다.
물론 저도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제가 벌어서 쓴 건 아닙니다.
집안이 좀 살다보니 늘 용돈이 넉넉해서 아무래도 씀씀이가 있었던거죠.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20대 후반부터 각자 직장과 사업과 결혼을 하면서 서로간에
바빠지다보니 만남이 뜸해지고 각자 살기 바쁘다보니 연락도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몇년 흐르다보니 그 떨어져 살던 과정의 삶을 서로간에 잊고 산거죠.
그렇게 그럭저럭 직장다니며 살고있겠지 하면서 나는 나대로 지냈었고
그 친구도 그 나름대로 그런 생각들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일 겁니다.
그렇게 또 몇년이 흐르고 다른 한 친구로 부터 그 가난에 몸살을 앓던 친구가
사업에 성공하여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심 잘됐구나하고 생각했죠.
그 반면에 그 당시 저는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갑자기 잘나가던 집안이
하루아침에 망해버리고 그저 몸 하나 뻗을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조금 덜 살다가 갑자기 잘 살게 되면 그건 적응하기 쉬워도
좀 살다가 덜 사는 생활을 하려니 정말 참기힘든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집안에 벅적이며 들락거리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뚝 끊기고
어디 도움을 좀 청할려고 해도 대부분 이런 저런 핑계로 피하기 바쁜
삶의 차가운 단면을 그제서야 뼈져리게 느끼게 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그 친구하고의 연락이 통하게 되었던 거죠.
서울 강남 모 빌딩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는 오랬만에 만남이라
술 한 잔도 할 거 같아서 차도 그냥 두고 대중교통을 타고 만나러 나갔습니다.
겨울이었습니다. 빌딩 앞에서 기다리는데 차가운 겨울바람이 마치 나의
현실처럼 차갑게 나의 볼과 바지사이로 파고드는 떨림에 그래도 어릴 때 친구를
오랬만에 만난다는 기대 하나로 기다리고 있을즈음, 웬 젋은 남자분 한 사람이
제게 다가오더군요."저기~XXX씨시죠?" "네..그런데요, 누구시죠?"
"아! 저기 우리 사장님이 차로 오시랍니다" 그 사람은 기사였던 것이었다.
내 친구 차를 운전하는 운전기사....불과 7미터 앞에 국산 검정 대형 리무진
승용차 한 대가 우람하게 겨울바람 사이로 머플러의 뽀얀 배기음을 뽑고 있었다.
내가 빌딩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7미터 앞에 차를 주차하고 기사를 시켜 나를
불러오도록 한 것이라는 판단이 머리속에 들면서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어릴 때의 그 가난에 몸부림치던 친구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아...그런거였다.친구라며 직접와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라도 하면서
"오랬만이다 친구야~"할 것이라는 내 예감은 저기 인도옆에 하수구로 쑤셔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사와 같이 차로 걸어가며 내 머리속은 왜 그렇게 화끈거리고 어색했는지...
차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긴 리무진의 뒷자석에 다리를 꼬은채 앉아 있는 친구의 모습은
반갑다는 표정보다는 그저 아는 놈 하나 또 만나보는구나 하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어서와라~"하고는 옆자리에 앉으라는 제스추어까지 해주었다.
기사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어디로 가자는 얘기를 안 해도 벌써 알아차리고 운전중이었다.
차안은 나의 어색함과 친구의 거만함에 한동안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리무진이 왜그리 길어보이던지...안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가 꽤나 넓은
리무진의 공간 때문에 더욱 어색함을 더하고 있을즈음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뒷자석에 설치된 모니터를 만지작거리며 TV를 보고 있었다.
"그래, 그동안 잘 지냈니? 좋아보인다? 몇년만이지?" 나는 뻔한 질문들만 날리고 있었고
친구 또한 뻔한 질문만 대답하고 있었다."글쎄..오랬만인 거 같다,그간 너의 집안 얘기는
다른 곳에서 들었단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쩌다가....." 그말이 다였다.
그 소리가 나에겐 이젠 입장이 바꼈다,이젠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고 번역되어 들렸다.
그 이후..어느 Bar에서 술을 마셨는지는 생각하기도 싫고 생각도 안 납니다.
그는 거기서 사장님이었고 나는 회식에 따라온 신참내기 신입사원이었으니까....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양주 4병중 그 대부분을 내가 마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왜 그랬는지,반가운 친구랑 술을 마시는데 왜 폭음을 했는지,
왜 룸의 아가씨들이 전부 친구에게 아부들을 떠는지,왜 조용히 나는 술만 마시고
있었는지,이미 친구는 예전 철부지 때의 나의 손아귀에서 놀던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망해서 없다는 이유 하나로 그 친구에게 과거의 모든 기억들을 접고
새로이 출발하는 관점에서 올려다봐야 한다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던 거죠.
이건 아닌데....이건 친구가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건 나만의 바램이었습니다.
더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자신이 더 비참해지는 것 같아서
늦어서 이만 먼저 일어나겠다는 말을 전하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먼저 갈래? 많이 취했네? 술발이 예전같이 않다 너?" 라고 말을 하는 친구와
가면서 차비나 해라라며 집어주는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이 보이더군요.
악수를 하면서 저는 가슴에 칼을 품었습니다.
[잘 살아야 한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꼭 다시 다음에 만나야 한다.....]
머릿속에 이런 소리가 메아리를 치더군요.
그 이후로 저는 뛰었습니다. 뒤도 안 보고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그 어색함과 다시는 상종하기 싫어서 뛰고 또 뛰었습니다.
잘살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뛰었습니다. 막말로 눈썹 휘날리게 뛰었습니다.
결과는 역시 돌아오더군요. 자리를 잡았습니다.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이제 예전의 평온함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었죠.
지금 이 상태에서 예전의 일들을 떠올려보니 잘했다고 아주 열심히 잘했다고
내가 내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보배드림 여러분, 개인적인 일이었지만 비단 개인으로만 끝나는 일은 아닙니다.
사회가,현실이 이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없었던 나를 탓하고 방심했던 나를 탓하고 무조건 과거만 생각했던 나를 탓해야죠.
열심히 살아서 저처럼 이런 못난 상황과 현실을 만나지 마시라는 글이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 좋은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