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투데이.. 16

송수민200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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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야." 채현이 현주의 팔을 앞뒤로 흔들며 미안해했다.
"치.. 이번엔 아무리 그래도 안 넘어 갈 거야." 현주의 표정이 장난스레 단호했다.
"이 사람한테, 그럴 수밖에 없던 사정이 있었어. 내가 찬찬히 다 말해줄테니깐, 화 그만 풀어라..너마저 이러면 난 어쩌란 말이냐... 교수님한테 혼쭐난 거 생각하면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게 믿기가 어려울 정돈데."
가슴을 손으로 치며 한탄해하는 채현이만의 독특한 표정과 엄살을 바라보는 현주는 정말 이제 다, 해결되었구나 하는 안심이 되었다.
"어휴~ 이럴 땐 정말, 형제 없는 너랑 민혁오빠가 제일 부럽다니까는!"
채현은 현주의 얼굴을 가까이 보며 말했다.
"우리 오빠 말썽 때문에, 내가 속 탔던 일들이 어디 한 두 번이었어야 말이지." 
현주는 채현이의 이어지는 넋두리를 들으며 팔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 말에 고개도 끄덕여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왜냐면, 채현이가 이러는 건 오빠를 너무 사랑하고 그래서 이제 걱정했던 일이 다 풀렸기 때문에 부리는 여유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채현이에게 그런 소리를 듣게 되길 바라고 바랬던 사람이 바로 현주 자신이었기 때문에 더욱 채현의 그 넋두리가 듣기 좋았다.

 

 

민혁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의외의 표정으로 민을 보았다.
갑작스레 책상 위로 덮어지는 구강생리학 책의 제목이 민혁의 눈으로 확연하게 들어와서였다.
민혁은 팔꿈치로 민의 팔을 치며,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냈다.
아무런 응대 없이 민혁을 보던 민은 의자를 스르륵 뒤로 밀더니, 몸을 아주 힘들게 일으키면서 밖으로 나갔다.
민혁은 잠시 동안 그런 민을 주시하다가, 곧 따라 나갔다.

"왜 그래..?"
민혁이 민에게 담배 한 개피를 건네며 물었다.
바람에 라이터의 불이 심하게 떨리자, 민혁은 민의 입가로 가까이 손을 모으며 불을 붙여주었다.
"왜 그러긴.." 민은 담배연기에 끝말을 담으며 길게 뱉었다.
"힘들게 하는 일이라도 있는 거냐..?" 민혁은 아래로 넓게 보이는 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 있다가 나랑 소주나 한잔할래?"
"소주?"
민이 말을 돌리며 술 이야기를 하자, 민혁이 다시 되 물었다.
"오랜만에 민혁이 니가, 오늘 내 술친구 좀 대주라."
"술친구라.. 좋다!"
약간은 어두운 듯한 얼굴의 그늘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것 같은 민을 보며 민혁은 왠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주문한 음식들로 가득한 쟁반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며 빈곳을 찾던 현주와 채현은 3층으로 올라와서야 창으로 밖을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옆으로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정말 너무 오랜만이다, 그치?"
긴 빨대를 물며 음료수를 먼저 마시는 채현이 포장된 햄버거를 손으로 풀며 말했다.
"그러게." 현주는 계속 싱글벙글 표정이 밝았다.
"너, 뭐.. 좋은 일 있니?" 햄버거를 한 입 베어먹던 채현이 현주를 보며 물었다.
"좋은 일.. 있지."
현주가 아주 당연하단 듯이 채현을 보며 말하자, 채현은 궁금해하며 오물거리던 음식을 재빨리 삼키고 현주의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연락 없었던 건 괘씸하지만, 그래도 별 일 없이 나타나 준 거. 좋은 일이잖어."
"피- 난 또.. 나 없는 사이에 멋진 남자라도 만났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더니만.." 채현은 기대에 못 미치는 현주의 대답에 실망하며 햄버거를 힘껏 베어 물었다.
"채현....아."
채현을 보며 빙그레 웃던 현주가 망설이듯 하다가 채현을 불렀다.
"음.. 무현오빠는 그럼... 집에 있는 거야?"
빤히 얼굴을 쳐다보는 채현을 보고 현주는 최대한으로 아무렇지 않게 물으려고 애썼다.
"우리 오빠? 응."
채현을 고개를 끄덕여보며 대답했다.
채현의 그런 간단한 대답은 현주로 하여금 그 다음 물음을 입안에 가두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현주는 이제 마음을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너무나도 다행스러워 안도감의 표정을 지었다.

 

 

"간만에 우리 집에 가서 저녁 먹고 가라."
함께 내린 버스 정류장을 뒤로하며 걷던 채현의 갑작스런 말에, 현주는 놀랄 뿐이었다.
"왜에..?"
대답 없이 놀란 눈을 하고 있는 현주를 보며, 채현이 오히려 이상하게 쳐다봤다.
"아니.. 갑자기 그래서.."
"갑자기는 무슨.. 너하고 나 사이에 격 두고 집에 다니고 그랬어? 기집애.."
채현이 살짝 눈을 흘겼다.
"그럼, 가는 거다?"
"응."

집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현주는 온 몸이 바짝 긴장되는 것 같았다.
집에 있을 무현오빠를 보게 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등.. 현주를 긴장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야!"
얼굴 가까이로 부르는 채현의 소리에 잠시 딴 생각으로 멍했던 현주가 놀랐다.
"안 들어오고 뭐하느냐구.. 애가, 오늘 따라 왜 이러셔?"
현관 입구에서 꼼짝못하고 서 있는 현주를 놀리듯 하며 먼저 얼른 거실 쪽으로 들어갔다.
"아줌마, 오빠는 뭐 좀 먹었어요?"
주방 쪽에서 들리는 채현의 목소리에 현주는 거실로 막 올라오다가 잠시 또 멈칫했다.
"현주야! 우리, 오빠 좀 보고 들어가자."
2층으로 올라와 정면으로 보이는 무현의 방을 모른 척하며 채현의 방문으로 걸어가는 현주를 채현이 불러 세웠다.
"어.."
현주의 대답은 어느새 무현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 채현에겐 들리지 않았다.
"똑!"
반쯤 열려진 방문을 열며 현주가 문으로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얼른 와. 오빠, 현주 왔어!"
채현이 현주를 손으로 빠르게 부르며 가까이 오게 했다.
"현주니?"
"안녕하세요, 오빠." 현주는 무현이 누워 있는 침대로 걸어가며 멋 적은 인사를 했다.
"이야! 현주, 정말 오랜만이네."
"오빠, 그냥 누워있어. 왜  일어나.!"
침대에서 일어서려는 무현을 잡으며 채현이 말려 보았다.
"임마! 내가 무슨 중병 환자야? 앉을 수 있으니깐, 너무 이러지마라. 현주 보기 창피스럽네." 무현이 채현을 향해 말했다.
"어휴- 그래도 창피한 건 아나보네."채현이 살짝 놀리는 표정으로 무현을 보다가 현주를 가까이 올 수 있게 다시 한번 손짓을 했다.
"오빠.. 어디 몸 불편한 거 에요?"
"어, 그냥 좀." 무현이 손으로 가슴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그냥, 좀은.. 현주야! 우리 오빠, 말이지."
"습 - 채현아!" 무현이 채현에게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막았다.
"어? 오빠 정말 창피스럽나 보다?" 채현의 웃음소리가 방에 가득해 졌다.
현주는 마냥 좋았다.
지금 앞에 보이는 무현을 걱정했던, 지난 몇 일의 시간이 모두 말끔하게 머리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너.. 지금 한 말,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은.. 말이 말이지. 흣."

쓰러져 내릴 것 같은 머리를 떨구며, 민이 잔에 담긴 소주를 한번에 들이켰다.
"내가 너랑 지금. 말장난하고 있는 거야?  정민! 똑바로 다시 말해."
민혁의 얼굴이 무척이나 단호하게 굳었다.
"화 내지 마라.. 장. 민. 혁.. 그렇게 말하니깐, 무섭다, 친구야."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좌우로 움직이는 몸으로 앉아 있는 민을 민혁은 이해 할 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찌개가 너무 맛있네여, 아줌마."
아줌마가 테이블위로 물 컵을 가져다 놓자, 무현이 수저로 뜨겁게 찌개 국물을 떠먹으며 활기차게 말했다.
"그래? 맛있게 먹어주니, 좋네, 응? 좋아."
잠시 무현의 옆에서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아주머니가 신이 난 듯 말했다.
"오늘 끊인 찌개가 다른 때와 얼마나 다르게 맛있는지, 어디 먹어봐야지, 어 - 디." 채현이 수저 가득 찌개를 떠서 먹었다.
"뭐..? 다른 맛도 없네. 오빠도 하여간.. 현주야, 너도 먹어봐."
무현을 향해 말하면서 채현은 현주의 팔을 치며 말했다.
"임마, 너가 이해 못하는 그런 게 있는 거야."
"치. 그런 게 어딨어, 안 그러니, 현주야?"
현주는 채현을 보며 그냥 웃을 뿐이었다.
"현주는 어때.. 재밌니, 학교 다니는 거?"
무현은 말없이 조용히 밥 먹고 있는 현주를 향해 묻자, 현주는 그냥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현주 6월에 서울 콩쿨에 나가. 그래서 요즘, 꽤 바쁘신 몸이 됐지. 이렇게 우리 집까지 왕림하셔서 같이 밥 먹는 것도 대회까진 마지막이 아닐까.. 싶어."
채현은 괜히 접시의 반찬들을 이리저리 젓가락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현주는 멈칫하며 채현의 얼굴을 옆으로 보았고, 그런 현주와 채현을 번갈아 보던 무현이 현주를 다시 한번 불렀다.
"현주, 오빠가 사주기로 한 선물 생각해 봤니?"
"예..?" 현주가 채현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무현의 말에 놀래했다.
"오빠가 입학 선물 사준다고 생각해 두라고 했었잖아. 생각 안 해 본 거야?"
"아, 왜.. 오빠가 우리한테 톡톡히 입학 선물 사준다고 했었잖아, 기억 안나?
 드디어 오빠가 사주려나 보다, 얘." 조금전의 기분과는 다르게 채현이 현주에게 말했다.
"오빠! 그런 거----지...? 우리 입학 선물 사준다는 말인 거지?" 채현은 흥분되어 수저를 입에 문체 말했다.
"그래, 그러니깐. 서둘러서 생각해 두고들 있어. 채현이랑, 현주."
무현은 이제 분위기가 다시 편안해 진 것 같아지자,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좋다. 그치.. 채현아?"
채현이 얼른 현주를 향해 웃더니, 마찬가지로 무현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나서 입에 물었던 수저를 빼며 밥을 떴다.
현주는 대회 이야기가 나오면 약하게 나마 변하는 채현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채현을 쳐다봤다.

 

 

"어느 정도로 마셨길래, 형이 이렇게 까지 된 거야?"
준이 차 뒷좌석으로 민을 눕히고 나서 문을 닫으며 민혁에게 물었다.
민혁은 준의 말에 대답하지는 않고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하늘을 향해 심호흡을 했다.
"타라." 준은 민혁에게 별 다른 말이 나오지 않자, 운전석 문을 열며 말했다.
민혁은 잠시 후에 문을 열었다.
"가, 난 택시 타고 가는 편이 낫겠어."
문이 닫히고, 민혁이 앞으로 걸어가자, 준은 잠시 부를까 망설이다가 그만두곤 차를 약간 뒤로 뺀 다음, 민혁과 반대 방향으로 차를 돌려 나갔다.

-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그래.-
- 과 톱 하는 놈이 모르면 누가 알어? -
- 1등? 그런..게 아니야, 민혁아... 남들이 하길래, 그냥 따라 간 것뿐이라니깐.     이젠 따라서 하는 것도 부쳐..그래서 그래. -
민혁의 걸음이 멈춰졌다.
민이가 지쳤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민혁은 솔직히 남들 따라 했을 뿐이라고, 그뿐이라고 말하는 순간은.. 자신마저도 마치 지금까지 알아온 친구로써 민을 보는 게 아니었다는 기분이 들었었다.
저절로 나오는 한숨 속에 민혁은 민을 걱정하는 마음을 담게 되자, 들이쉬는 숨이 깊어졌다.

 

 

"들어가, 됐어."
"정말, 안 데려다 줘도 되겠어?"
"별로 늦은 시간도 아니고, 이제 해도 길어져서 그런지 깜깜하지도 않잖아."
"고집은."
현주는 마지막 계단에서 두 발을 동시에 디뎠다. 그리고 돌아서서 채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골목 빠져나갈 때까진 뛰어가, 알았지?"
뒤에서 소리치는 채현의 목소리에 현주는 뒤돌아서 웃어 보였다.
조금 후에 대문 닫히는 소리가 골목으로 크게 울리자, 현주는 걸음을 멈췄고 몸을 돌렸다.

어둠속에서의 채현의 집을 보고 있자니, 현주는 무현오빠를 생각하면 드는 막연함에서 오는 막막함..

그리고 대회 때마다 문득문득 느끼게 하는 채현의 말투에서 오는 서운함의 기분들이 마음으로 깊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생각을 접고, 다시 골목을 내려가는 현주의 걸음 속도가 점점 느려져갔다.

 

 

"아저씨, 여기서 내려주실 수 있죠?"
민혁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앉았다가, 무심하게 본 시선이 창 옆으로 지나가는 현주를 발견하게되자, 재빨리 차를 세우게 했다.
민혁은 골목을 막 빠져나가려는 현주보다 한참 위로 세워진 차에서 내리자마자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