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가슴에 칼을 품어라....

열심히살자200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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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이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qhqo드림에 오시는 모든 분들 유종의 미를 거두시길 바라며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제가 그 어느 장소를 가나 안 가나 젋으신 분들에게 열심히 노력해서
젋을 때 돈벌어라,잘 살아야 한다,부자가 되어라...등등
귀 따가운 그런 소리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한 번 적어볼까 합니다.
또한 가슴에 칼을 품어야 하는 이유를 사회 선배로서 적어봅니다.
모든 분들이 이런 경우는 아니겠지만 저처럼 이런 일을 당하기전에
미리 스스로를 다독거려 챙기고 관리하고 노력하시라는 뜻에서...
아주 아주 젋은 날...저의 실화임을 우선 알려드립니다.




철 모를 시절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주위에선 세상에 친형제지간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늘 나와 그 친구는
모든 일을 같이 했으며 늘 붙어다니고 일거수 일투족을 셀 정도로 지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을 주로 나와 우리집에서 살다시피 한 가족의 일원인양
하루라도 우리집에서 그 친구의 얼굴을 못 본적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 당시 그 친구의 집안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저는 좀 살았었죠.
어쩌다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가면 방 한 칸의 공간에서 온 식구가 살아가는....
전체 5식구 모두가 방 하나에서 자고 먹고 생활하는 말 그대로 단칸방의 현실.
형제간은 있었지만 다들 아직 어리다보니 수입이래야 친구의 아버님이
어렵게 조금 버는 거 하고 친구의 어머니가 노점상 비슷하게 버는 게 전부였던....

하지만 우리 둘은 아직 어린 나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엔 전혀 거리낌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중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를 마쳤고 대학까지......
재수시절 학원을 땡땡이 치면서 같이 놀러 다녔던 추억들.
재수생이면서 대학생인 것처럼 가짜 배찌 하나 구해서 차고 다녔던.ㅋㅋ
미팅 때마다 서로 이쁜 여자친구를 선택하려고 아둥바둥했던 기억들...
웬종일 우리집에서 나뒹굴면서 같이 음악듣고 기타치고 웃고 떠들고...
김치를 썰어서 계란을 풀고 볶음밥을 만들어서 맛나게 먹던 기억들....
뒷담 너머로 목욕탕이 있어서 옥상에서 반쯤 열려진 여탕의 내부를 훔쳐보느라
떨어질 뻔한 웃지 못할 기억에서부터 젋은 날 파마머리가 유행이라 그 유행대로
둘이 파마머리를 하고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에 머리결이 라면형태가 되었던 기억들..
LP판의 음악을 들으며 마치 DJ인양 마이크로 목소리를 깔며 해보던 놀이들..
종로에서 유흥비를 다 쓰고 멀고 먼 동네 집까지 걸어갔던 수십킬로의 행군..
연탄불을 쓰는 시대였기에 일주일만 지나면 보일러 앞에 하얗게 쌓이는
다 타버린 연탄재를 같이 대문밖에 갖다버리며 얼굴에 잿가루를 묻히고
히히덕 거리며 연탄재를 서로 던지고 놀다 우리 어머니에게 혼났던 추억들...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의 기억의 단편들이 지금도 머리속엔 남아 있는데..

그렇게 그 친구와 나와는 한 가족보다도 더한 밀착동행의 인생이었습니다.
주변 다른 친구들 조차도 시기와 질투를 받을 정도로 붙어 살았던 거죠.
수많은 나날을 같이 지내왔지만 변한 건 우리의 체격이 좀더 커지고 나이가
좀더 먹고 목소리가 더 굵어졌다는 것외에는 변한 건 없었습니다.
그 친구의 집안은 여전히 어려웠고 우리 집은 그런대로 여전히 좀 살았고.....
웬만한 가정이었으면 어느 정도 시간이란 게 흐르면 더 윤택해지는 면도 있던데
그 친구의 집안은 그런 것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같은 이미지만을 고수했었죠.
때로는 자기의 가난이 너무 싫어 야밤에 우리집에 와서 살며시 울던 기억들속에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 친구의 집안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재수시절 미팅을 하거나 모임을 하거나 여행을 갈 때도 그 친구는 늘 가난이라는
굴레 때문에 회비며, 하고 다니는 모양새며, 그 누가봐도 많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백수의 트레이드 마크인양 줄무늬 츄리닝은 친구들 사이에 전설이 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고 주위 친구들중에서도 단연 선두를 지킬 정도로 어려웠었죠.

20대에 얼마나 돌아다닐 곳이 많으며 얼마나 놀고 싶을 때 이겠습니까?
하루에도 수십번씩 하고싶은 거,먹고싶은 거,이루 말할 수 없을 황금같은
20대의 피끓는 청춘시절이었는데 가난이라는 테두리는 그 친구의 모든
활동 발목을 잡아매는 지겹고도 지겹고 뗄래야 뗄 수도 없는 현실이었죠.
방이 남아도는 우리집에서 놀다가 자기의 집으로 갈려면 단칸방에서의
온 가족들의 그 오밀조밀한 몸놀림과 집에서 할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저 TV 하나 가지고 온 가족이 저녁시간을 메꾸어 나가야만 하는 현실이
무엇보다도 싫었던 그 친구는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한달에 거의 보름정도는
우리집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던 그런 이중생활을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외출나오는 차비부터 집에 들어 갈 때 까지의 경비, 그 모든 것이
그의 부모님도 아닌 바로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모대행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20대 초반 그 젋은 날들의 수많은 자금(?)을 거의 내가 다 대주고 지내왔습니다.
어디가서 뭘 먹어도 내가 내야 했으며 어디 여행을 가도 내가 내야 했었죠.
자기 여친하고 데이트를 하는데 입을 게 없다고 해서 옷도 사주었으며
운동화,데이트 비용, 제반 관련되는 비용은 전부 나의 몫이었습니다.
워낙 없다보니 그 당시에는 같이 지낼려면 어쩔 수가 없었고 또한 나역시도
아직 어리다보니 아까운 줄 모르고 오직 우정만을 생각하며 아낌없이 대 주었습니다.
어린 나이다보니 돈의 아까움보다는 친구의 우정이 최우선이었던 때죠.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당시의 주관은 우정과 의리이었으니까요..
물론 저도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제가 벌어서 쓴 건 아니었습니다.
집안이 좀 살다보니 늘 용돈이 넉넉해서 아무래도 씀씀이가 있었던 거죠.
온 가족이 돌아가며 조금씩 주는 용돈이 쌓이다보니 큰돈이 되더군요.
나는 그 친구의 물주였고 부모였고 지갑이었으며 은행이었습니다.

학생이라는 신분을 다 마치고 이제 사회인으로 서로 길을 걷게 됩니다.
서로 가는 방향은 달랐지만, 하는 일은 달랐지만,마음은 여전히 친구인 채로...
이 때부터는 어느 정도 서로 조금씩 떨어져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도 작은 회사이었지만 월급이란 것을 타고 또 여친도 생겼을 때이니까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20대 후반부터 각자 직장과 사업과 결혼을 하면서 서로간에
더 바빠지다보니 만남이 뜸해지고 각자 살기 바쁘다보니 연락도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총각으로 살다가 결혼해서 가정이란 게 생기면 자주 만나기 힘들지 않습니까?
신혼초기 일 때는 그나마 만날 수 있어도 애를 하나,둘 낳다보면 더 힘들어지는 거죠.
또 서울근교,지방등으로 이사를 가서 못 보는 친구도 생기고 떨어져 사니 또 그렇고....
그 시간들이 몇년 흐르다보니 그 떨어져 살던 과정의 삶을 서로간에 잊고 지낸 거죠.
그렇게 그럭저럭 직장다니며 살고있겠지 하면서 나는 나대로 지냈었고
그 친구도 그 나름대로 그런 생각들로 살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거의 초등1학년 때 사귀면서 20대 초중반 까지의 그 친구의
삶에 있어서 나는 아마도 늘 조건없이 투자만 하는 자선사업가 였을 겁니다.

그렇게 또 몇년이 흐르고 다른 한 친구로 부터 그 가난에 몸살을 앓던 친구가
사업에 성공하여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심 잘됐구나 하고 생각했죠.
사무실도 크고 직원도 수십명이 된다는 정말 제대로 성공을 했던 겁니다.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여러 친구들 소식에 얘기는 잘 듣고 있었습니다.
어떤 S대기업과의 계약을 하면서 갑자기 사업이 발전을 하게 됐다는....
그나마 초반에는 고전을 했으나 사업이 본 괘도로 올라서니 그 다음부터는
고속도로의 포르쉐 차의 질주처럼 불과 1~3년 사이에 상당한 재산가가 돼었다는..
이런 저런 그 친구에 대한 정보가 여기 저기에서 흘러 들어오더군요.
그 반면에 그 당시 저는 아버님의 무리한 사업실패로 갑자기 잘나가던 집안이
하루아침에 망해버리고 그저 몸 하나 뻗을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가족들 그 누구도 예상을 못 했던 일이었죠.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 여기 저기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받아야 할 수억원에 달하는 어음은 이젠 코도 못 풀 휴지로 변해져 있었고
현금이란 현금은 죄다 사업에 투자해서 개인 재산이라곤 아무 것도 없게 된..
이렇게 나와 그 친구의 상관관계는 여지껏 살아온 삶의 정반대 방향을 가게 됩니다.

사람이라는 게 조금 못 살다가 갑자기 잘 살게 되면 그건 적응하기 쉬워도
좀 살다가 못 사는 생활을 하려니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살던 가락이 있다라는 말, 정말 있더군요. 저도 저려니와 온 가족들이
그런 생활을 해보질 않아서인지 처음엔 마냥 예전처럼 생활하더군요.
어느 순간에서부터 이게 아니구나,우리가 예전의 그 생활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알기까지에는 그나마도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집안에 불나게 들락거리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뚝 끊기고
친척들은 친척들대로 각기 살기 바쁜 나머지 어떠한 도움은 커녕 다들
죽는 소리만 해대고 그나마 좀 도와준다는 것이 한 달,두 달 생활비 정도..
어디 도움을 좀 청할려고 해도 대부분 이런 저런 핑계로 피하기 바쁜
삶의 차가운 단면을 그제서야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그 친구하고의 연락이 통하게 되었던 거죠.
얼마나 반갑던지 전화통화로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많이 변했더군요.
나의 얘기는 다른 동창 친구에게서 들었다는 말과 함께....
그 친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기위해서가 아니라 오랬만에 식구같았던
어릴 적 친구의 성공된 지금의 모습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나의 머릿속엔 늘 츄리닝의 모습만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친구가 이젠 성공을 했다는 것도 잘 안 믿겨지고 대견하다는 생각과
도대체 그 친구의 오랬만에 보는 다른 삷의 모습이 더욱 궁금했었습니다.
아무리 상상을 할려고 해도 그런 모습 자체를 어릴 때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던지라 제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쳐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더군요.
서울 강남 모 빌딩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는 오랬만에 만남이라
술 한 잔도 할 거 같아서 차도 그냥 두고 대중교통을 타고 만나러 나갔습니다.
가면서도 머릿속에는 어릴 때의 추억들도 함께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혼자 피식 웃음도 나오던 시절의 기억들이었지만 몇년만의 만남이라
조금 떨리는 마음은 벌써 친구의 사무실 근처에 가 있는 듯 했습니다.

겨울이었습니다. 오랬만에 찾아온 추위라 그 매서움은 정말 10분을 거리에 서있기
힘들정도로 차갑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발을 동동구르며 빌딩 앞에서 기다리는데
차가운 겨울바람이 마치 나의 현실처럼 차갑게 나의 볼과 바지사이로 파고들었지만
그래도 어릴 때 친구를 오랬만에 만난다는 기대치 하나로 기다리고 있을즈음,
웬 젋은 남자분 한 사람이 제게 다가오더군요."저기~ 이XX씨죠?" "네..그런데요, 누구시죠?"
"아! 저기 우리 사장님이 차로 오시랍니다" 그 사람은 기사였던 것이었다.
기사가 가르키는 곳을 바라보니 썬팅을 안 한 뒷자석엔 누군가가 어렴풋이
기대고 앉아 내쪽을 바라보는 듯 했습니다. 친구였겠지요. 내 친구....
내가 그렇게 궁금해 하고 그렇게 가난에 몸살을 앓다 못해 치를 떨었던 그 친구.

내 친구 차를 운전하는 운전기사와 나와 그 차의 거리는 불과 7~8미터 앞...
그 7~8미터 앞 국산 검정 대형 리무진속에 내 어릴 때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가 버젓이 타고 있는 우람한 승용차 한 대가 겨울바람 사이로 머플러의
뽀얀 배기음을 보란듯이 뽑아놓고 있었습니다.
내가 빌딩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7~8미터 앞에 차를 주차하고 기사를 시켜 나를
불러오도록 한 것이라는 판단이 머리속에 들면서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어릴 때의 그 가난에 몸부림치던 친구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고 있더군요.
그 묘한 기분은 뭐랄까? 기쁜건지 슬픈건지? 알다가도 모를 몽롱한 기분...
늘 츄리닝과 부시시하던 모습과 늘 비어있던 그의 지갑과 주머니속 내용물들.....

아...그런거였다. 친구라며 직접와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라도 하면서
"오랬만이다 친구야~" 할 것이라는 내 예감은 저기 도로 옆 하수구로 쑤셔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사와 같이 차로 걸어가며 내 머리속은 왜 그렇게 화끈거리고
어색했는지...
만약에 내가 저 친구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바로 친구의 코앞에 차를 주차하고 직접 내려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어이~ 나의 물주님!!이게 얼마만인가요? 하하하"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건 정말이지 나만의 여유스런 바램일 뿐,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불과 7~8미터의 거리가 그날 따라 700~800미터로 느껴진 이유는 무었이었을까?
왜 멀찍이 주차를 하고 거기다가 기사까지 등장시켜 좀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일까
걸어가는 7~8미터의 시간속에 나의 머리속은 많은 질문과 오답과 해답이 교차하고 있었다.

차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긴 리무진의 뒷자석에 다리를 꼬은채 앉아 있는 친구의 모습은
반갑다는 표정보다는 그저 아는 놈 하나 또 만나보는구나 하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어서와라~" 하고는 옆자리에 앉으라는 제스추어까지 해주었다.
아...어째 기대하고 나왔던 그 모든 상황들이 나의 예상과는 전혀 반대로 흘러가면서
그 어떤 것에 비교하기도 힘든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을 친구 몰래 나혼자만 느끼고 있는
절대적인 거리감이 차안 가득히 배어나오고 있었다.
시트에 등을 기대기도 어정쩡하고 숙이기도 심히 불안정한 자세로 나는 앉아 있었다.
반면에 친구는 꼬은 다리를 반대로 바꾸며 나와의 경계를 약간더 개방시켜주는 미덕까지...

기사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어디로 가자는 얘기를 안 해도 벌써 알아차리고 운전중이었다.
차안은 나의 어색함과 친구의 거만함에 한동안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차가 출발한지 5분..10분이 되도록 그 어떤 대화를 먼저 해야만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차안을 둘러보며 그저 좋다는 표정만 해야 할 뿐...
그날따라 리무진이 왜그리 길어보이던지...안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가 꽤나 넓은
리무진의 공간 때문에 더욱 어색함을 더하고 있을즈음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뒷자석에 설치된 모니터를 만지작거리며 TV를 보고 있었다.
이런 저런 조절기를 만지작거리는 친구의 손가락과 손목에는 예전같으면 죽어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고급반지와 시계가 "나 멋져?"하며 반짝이고 있었고
잘나오지도 않는 TV 모니터를 죽어라 보고 있는 친구의 얼굴을 슬쩍슬쩍 곁눈질로
바라보며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가를 골똘히 신경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 그동안 잘 지냈니? 좋아보인다? 몇년만이지?" 나는 뻔한 질문들만 날리고 있었고
친구 또한 뻔한 질문에 대답만 하고 있었다."글쎄..오랬만인 거 같다,그간 너의 집안 얘기는
다른 곳에서 들었단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쩌다가....." 그말이 다였다.
그 소리가 나에겐 이젠 입장이 바꼈다,이젠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고 번역되어 들려왔다.
별로 관심도 없을 뿐더러 별로 자세히 알고싶지도 않다는 그런 표정으로.....
뭐 세상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는 듯한, 세상에 자주 있는 일이란 것처럼...
별거 아니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냥 담담히 인정을 하라는 듯한...

그 이후..어느 Bar에서 술을 마셨는지는 생각하기도 싫고 생각도 안 납니다.
그는 거기서 사장님이었고 나는 회식에 따라온 신참내기 신입사원이었으니까....
클럽의 젋은 써빙 아가씨들은 사장님 사장님을 연발하며 양팔에 메달려 아양을 떨고
양주란 이런 게 좋다, 나쁘다, 양주의 역사에 대해 친구는 열변을 토하고 있었고
오랬만에 만난 친구와 양주의 역사에 대해서 신중하게 경청하기는 처음이었다.
그 옛날 우리집 거실 한켠에 있던 2개의 진열장을 가득매우던 100여병의
고급양주들을 보고,듣고,익힌 기본기에다가 요즘 나온 새로운 신제품 양주까지의
역사를 이제는 나에게 역으로 설명해주는 친구의 열띤 열변을 들으며 나는 취해갔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양주 4병중 그 대부분을 내가 마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왜 그랬는지,반가운 친구랑 술을 마시는데 왜 폭음을 했는지,
왜 룸의 아가씨들이 전부 친구에게 아부들을 떠는지,왜 아가씨들은 내가 하는 말은 중간에
다 자르고 사장님인 친구의 말들만 경청하려는지, 왜 조용히 나는 술만 마시고
있었는지,이미 친구는 예전 철부지 때의 나의 자금에서 놀던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타임머쉰이 있다면 나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때 그 소리를 들은
그 친구는 자기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친구의 모습.

이제는 내가 망해서 없다는 이유 하나로 그 친구에게 과거의 모든 기억들을 접고
새로이 출발하는 관점에서 올려다봐야 한다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던 거죠.
양주의 역사에 대해 정말 궁금해서 이런 시간을 만들고 나온 게 아닌데 하는 생각과
사장님의 팔뚝에 매달려 오만 아양을 다 떠는 모습을 보려고 나온 게 아닌데 하는 생각과
진정 저 친구는 나를 친구로 보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 나온건지,퇴근 후 시간이 남아서
나온건지 나름대로 술잔만 기울이며 그 명제에 대해 혼자서 되내이고 있었습니다.
친구인 나의 집안에 대해 단 한 마디라도 궁금해서 물어봐주고 대답해 주길 바랬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가는 나의 집안 얘기는 그저 공기중에 떠도는 먼지였습니다.
아니 대리석 바닥을 딛고 있는 나의 허름한 신발에 묻은 흙보다도 못한 관심사였습니다.

이건 아닌데....이건 친구가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었습니다.

더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자신이 더 비참해지는 것 같아서
늦어서 이만 먼저 일어나겠다는 말을 전하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먼저 갈래? 많이 취했네? 술발이 예전같이 않다 너?" 라고 말을 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나의 불편한 안면에 울리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예전엔 어땠는데? 늘 영양이 부족해 나보다 먼저 술에 뻗어버린 너의 등을
늘 두들겨주며 괜찮니?라고 말해주었던 내가 오늘은 너보다 더 먼저 취했기
때문에 예전의 술발이라는건가? 아니면 요즘은 소주만 마시다가 고급 양주를
마시니까 속이 부담가서 괜찮냐는 걱정 어린 말투인지, 그도 아니면 더럽고 치사하지?
이런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라는 것을 다시한번 각인시켜 주는 마무리 멘트인지....

가면서 차비나 해라하며 집어주는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이 보이더군요.
그것도 아가씨들 다 있는 자리에서 버젓이 지갑을 벌려 여러장을 세린 다음
그중에서 단 한 장만을 골라 손가락 두개사이에 꼽은 상태로 건내주는 돈...
10만원 짜리 자기앞 수표...... 속마음은 찢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그냥 받았습니다.
"잘 마시고 간다...담에 언제 내가 한 잔 살께.." 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래, 정 어려우면 연락해라~ "라는 친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 또 양주에 대해 궁금해지면 연락할께. 흐흐....." 하고 나왔습니다.
이게 농담인지,비웃음인지,유머라고 하고 나온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유머라고 했다손치자면 볼을 타고 흐르는 서러움은 무슨 의미였는지...
돌아나오는 나의 등뒤로 들려오는 친구와 아가씨들의 히히덕 거리는 웃음소리들...
주머니속에 쥐어져 있는 10만원짜리 수표의 감촉과 클럽을 나서니 불어오는
싸늘한 겨울바람이 또다시 나의 녹았던 몸을 다시한번 휘갈기고 있었습니다.


악수를 하면서 저는 가슴에 칼을 품었습니다.

[잘 살아야 한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꼭 다시 다음에 만나야 한다.....]

머릿속에 이런 소리가 메아리를 치더군요.

[잘 살아야 한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꼭 다시 다음에 만나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꼭 다시 다음에 만나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꼭 다시 다음에 만나야 한다....

그 이후로 저는 뛰었습니다. 뒤도 안 보고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그 어색함과 다시는 상종하기 싫어서 뛰고 또 뛰었습니다.
잘살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뛰었습니다. 막말로 눈썹 휘날리게 뛰었습니다.
결과는 역시 돌아오더군요. 자리를 잡았습니다.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이제 예전의 평온함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었죠.
허무러진 시간들을 다시 본래대로 채우는대는 정말 몇배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예전의 일들을 떠올려보니 잘했다고 아주 열심히 잘했다고
내가 내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qhqo드림 여러분, 개인적인 일이었지만 비단 개인으로만 끝나는 일은 아닙니다.
사회가,현실이 이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없었던 나를 탓하고 방심했던 나를 탓하고 무조건 과거만 생각했던 나를 탓해야죠.
남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게 자기 잘못이고 자기의 탓으로 돌려야 합니다.
친구 말대로 인생 뭐 이런 저런 그런 게 어디 한 두가지냐하는 식으로....

열심히 살아서 저처럼 이런 못난 상황과 현실을 만나지 마시라는 글이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 좋은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