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여기 고민을 올린 적도 있는데요, 결혼한지 8개월 되어가고, 저는 32, 신랑은 36살,
둘이 맞벌이하고 있고, 저는 일 때문에 외국에 살면서 한국에 자주 들어가는 편이죠.
저희도 사실 신혼인데다 얼굴 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항상 애틋해도 모자를 판인데, 싸우는 일의 70프로 정도는 시댁과 연관된 일로 싸웁니다. 그러다 보니 뭐 시댁에서 엄청 당한 것도 없는데 어느새 정이 구만리 밖으로 달아난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결혼하기 전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얘기들...
1. 며느리 딸같다는 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2. 남자들은 결혼한 순간부터 효자가 된다. 것두 자기 부인 시켜서 효도하려고 한다.
이건 완전 결혼생활의 성경이더만요.
나름대로 적잖이 마음의 준비를 했건만 이걸 신혼여행 가서부터 느끼고 나니 씁쓸하대요. 신혼여행지가 너무 멀어서 피곤하네, 가격이 비싸네 사람 지치도록 물고 늘어지고 반대를 하더니 가서 하룻밤 자고 보니 좋았나보죠? "아~ 천국이 따로 없다. 나중에 우리 부모님 모시고 다시 한번 오자." 이러는 겁니다.-_-;; 나도 평생에 한번 데리고(것두 각자 부담이었지만) 올까말까 그 난리를 치고 싸우던 인간이 자기 부모님을 모시고 오잡니다. 신행지에서 까탈스럽게 굴기 싫어서 "그래, 우리 엄마도 같이 모시고 오자. 한 xx만원 정도만 있음 되겠다" 하고 말았어요. 그제서야 그냥 가깝고 싼 데로 가자네요.-_-
그 뒤로 약 한 달 뒤... 여름휴가를 내어서 결혼 후 친정과 시댁에 첫인사를 드리러 갔죠. 친정은 차로 두 시간 거리의 지방도시, 시댁은... 휴.. 시댁 멀어서 좋다지만 것두 왠만큼 멀어야 좋은거죠. 가는 데만 꼬박 하루, 왔다갔다 교통비만 40만원 들더군요. 옛날옛날 유배지로나 쓰이던, 지도에서 찾기도 힘든 조그만 섬이죠. 차라리 제주도라면 비행기나 타고 다녀온다지.ㅠㅠ
어쨌든 친정 엄마가 혼자 되신지 오래 돼서 인사 드리러 간 김에 아빠 산소에도 다녀오고, 하룻밤 자고 담날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서서 시댁으로 향했죠. 가서 인사를 드리자마자 시작된 며느리의 일... 식구들이 여름휴가마다 모인다고 위의 아주버님 두 분 가족이 와계셨는데, 솔직히 저 형님들 없었음 어떻게 했을까 아찔할 정도더라구요.
밥상은 남자 여자 따로 차리구요. 더 정확히 말하면, 남자들 상, 아이들 상 차려서 아이들 먹고 나면 그거 바로 설겆이해서 다시 밥담아 먹는데 식욕 완전 뚝 떨어집니다. 저희 외가도 대가족이어서 한번씩 모이면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상은 꼭 같이 차렸거든요. 여자들 앉을 수 있을 때까지 남자들이 일도 도와주고... 언젠가 신랑한테 집안 종교가 뭐냐고 물으니 유교라고 대답했던 기억을 밥알과 함께 꽉꽉 씹어가며...
그렇게 대충 종년처럼(그 기분 생각하니 감정이 격해져서...) 밥먹고 설겆이하고 있는 등 뒤로 시어머니 마구마구 재촉하십니다. 고추장을 담궈야 하는데 장을 봐야 하니 빨리 하고 나오라는 거죠. 다리도 아프고 형님들도 피곤하시니까 잠깐 쉬면서 얘기도 하고 싶어서 "형님, 식곤증 오는데 커피 한잔 하실래요?" 하고 꼬셔서 물 끓이고 있으니까 빨리 안나온다고 정말 난리난리가 나십니다.
저는 직장에서나 일상에서나 고도로 긴장하고 사는 터라 휴가 때만큼은 느긋하게 푹 쉬어주는 타입인데, 황금같은 휴가에 시댁에서 "며느리 중 제일 이쁘다던" 막내며느리는 어디 가고 삼복더위에 이틀 내내 등짝이 쪼개지도록 일만 해대니 정말 힘들었어요. 일도 고되었지만 너무도 평범한 대한민국 시어머니로 변한 어머니의 무신경한 발언들로 가슴에 상처도 많이 입었거든요. 우리 어머니 나이들고도 어진 분이다. 잘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첫인사 갔다가 완전 제대로 배신감이었죠 뭐.^^;;
문제는 어머니야 연로하시고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니 그렇다 치고, 그럴 때일수록 남편이 좀 활력이 되어줘야 하는거 아닙니까? 이틀 하고 반나절을 이를 갈면서 견딘 후 드디어 서울집으로 다들 출발하려고 하는데, 결국 제가 초반부터 발칙하고 얌체같은 막내 며느리로 살게 된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 사건의 설명 전에... 잠시 고추장으로 돌아가서요. 말씀드렸다시피 그 섬이 워낙 조그매서 집옆에 수퍼도 없거든요. 몇십분 걸어내려가야 해요. 그래서 물엿이랑 소주랑 뭐랑 장보는거 신랑이랑 차로 모셔다 드리고, 어떻게 그냥 태워다만 드리나요? 저희가 다 계산했죠. 재료값만 저희 일년치 고추장 사먹을거 몇 배는 나가는데... 새댁 첫살림하는데 속쓰리죠. 아, 오해하실까봐... 저희들 가져가라고 고추장 담그신 거였거든요. 저희 다 필요없다고 극구 말리는데도 굳이 일을 만들어서 돈들이고 고생하시네요. 저희도 고생시키고. 그래놓고 힘들다고 온갖 짜증 다 부리십니다. 그럴 시간에 그냥 가족들끼리 앉아서 수박이라도 먹음 얼마나 좋아요? 그 고추장 아직 손도 안댔는데 사실 먹고 싶지도 않고... 다른 맛있는거 먹고 싶은데......
그 판국에 신랑이 그러네요. 부모님 용돈 좀 드리고 가자고. 처가 갔을 땐 암소리 없더니 왜 여기 와선 용돈 타령이냐고 쏘아붙였습니다. 제가 생각을 안했던건 아니지만, 그렇게 자기 부모 용돈 얘기만 하는 신랑이 얄미워서 니 부모만 부모냐 했던 거죠. 게다가 섬에 와보니 죽어라 일만 시키지, 돈은 여기저기 너무 많이 들어가지(교통비 40만원, 첫인사때 꼭 한우 사가라고 하셔서 식구는 좀 많나요 한우랑 과일 사니 15만원 + 뜻하지 않은 고추장 재료비 외 기타등등 약 20만원) 솔직히 용돈 따로 드리기 너무 무리다 싶더군요. 전세대출받은 것도 갚아야 했고.
사실 제가 친정은 결혼 전에 많이 도와 드렸고 결혼하고 나면 이제 좀 나와 내 가정을 위해 써야겠다 생각해서 친정 갈 땐 과일하고 산소 갈 때 준비물 정도밖에 안사갔거든요. 그래도 시댁은 왠지... 처음 인사가는데 용돈을 드려야 할거 같아서(저도 친정은 이해해 주겠지~ 한거죠 뭐.-_-) 현금을 좀 가져가긴 했는데, 그걸 고추장 만들거리 산다고 홀랑 다 썼으니 어떻게 하나요? (그 섬 농협은 카드도 안된답니다.) 만원짜리 몇 장 있긴 한데 그걸 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러저러해서 지금은 돈도 없으니 서울 가서 부쳐드리든지... 생각해 보자 했어요. 솔직히 부쳐드릴 마음 사라지고 있었죠. 저희같은 중산층 신혼부부가 첫인사길에 100만원이나 쓴다는건 미친 짓이라고 보거든요. 두 달 뒤면 또 추석이었고. 게다가 우리 엄마는? 하니까 그제서야 같은 금액으로 부쳐드리라는데, 살림하는 주부가 사실 그렇게 안되잖아요...ㅠㅠ
이제 다시 마지막날 제가 발칙한 며느리가 된 사건으로 돌아가서... 다들 떠날 준비를 마치고 거실에 나와서 인사를 드리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외국서 일하러 다니고 힘들어도 우리 막내 밥은 꼭 해먹이라고... 이틀 내내 지겹도록 하신 그 말씀 또 하시네요. 냉장고에 반찬을 해놓아도 안찾아 먹는 인간을 제가 어떻게 합니까? 짜증났지만 그냥 네, 대답하고 "대신 어머니, 오빠도 말 좀 잘 들으라고 한말씀 해주세요." 라고 투정 부렸죠. 어머니 순간 좀 당황하시더니 "그래, 너도 안사람 말 잘 듣고 바깥에 일하러 다니는데 기분 안상하도록 해라." 하시네요.
이 때 신랑이 그러는 겁니다. "와~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좋은 말씀도 해주셨는데 이쁜 막내며느리가 용돈 좀 안드리나?" 허걱~!!!! 아주버님, 형님들, 조카들까지 다 있는 그 자리에서요!!! 정말 입을 때려버리고 싶었습니다. 전 아직까지도 궁금한데요... 그게 정말 그 인간이 센스가 없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이렇게 많은 시댁식구들 앞에서 말을 하면 지가 설마 안준다고 할까 싶어서 그랬던 건지......
하여튼 순간 저도 머리가 삐쭉 서면서 침이 꼴딱 넘어가더군요. 이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와서 드린다고 하기도 마치 신랑 말 듣고서야 억지로 드리는 것처럼 보여 그렇고, 사실 드리려고 해도 돈도 없고... 신랑이 너무 야속하다가 나중엔 정말 열이 부글부글 끓더군요. 내가 그리 알아듣도록 얘길 했는데 또 이러다니... 그래서 그냥 저도 그냥 사고를 쳐버렸습니다.
"와~~ 어쩜 사람이 이러냐? 처가댁 갔을 땐 10원 한장 안쓰고 용돈 얘기는 요만큼도 안하고, 아침도 안먹고 얼른 내려오자고 새벽에 데리고 와놓고는 자기 집 오니까 내가 알아서 한대도 용돈 드리라고 난리네. 진짜 속보인다~ 나 낳아서 혼자 힘들게 길러준 엄마는 부모도 아니야? 나이를 서른 넷이나 먹어서 그런 기본도 안되어 있는거야? 장가가서 어른이 되었으면 어른답게 좀 해. 언제까지 막내 노릇이야~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내가 이런 것까지 가르쳐야겠어?"
암만 봐도 자기 식구들 등에 업고 은근히 압력을 가하는 것 같길래 이런 방법은 안통한다는걸 보여주려고, 좀 떨렸지만 다 들리라고 크게 얘기해 버렸죠. 시아버님께서 신랑에게 "너는 왜 그랬냐?" 한마디 하시는 걸로 종결됐습니다.
사실 누구보다도 저희 어머니가 서운하고 놀라셨겠죠. 금이야 옥이야 하는 막둥이한테 당신 있는 곳에서 뭐라고 해버렸으니 말이죠. 하지만 제 생각은 그랬어요. 시댁이 얽혀서 생긴 갈등 부부끼리만 감추고 끙끙거려봤자 시댁 사람들은 백날 가야 모른다 이거죠. 그래서 그냥 그 뒤로도 시댁 관련된 돈 때문에 문제가 된다, 시댁 사람들 입방아 때문에 부부싸움이 된다, 이러면 그냥 표면화시켜 버리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자기들 때문에 우리 부부가 갈등하고 괴로워한다는건 알아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그렇게 하고 나니 많이 편해진 것도 사실이구요.
어쨌건 서울 올라오는 길에 다시 물어봤죠. 마누라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에 대놓고도 절을 한다는데 벌써부터 내가 맘에 안드나? 했더니, 자기가 생각이 짧았다고, 그냥 와서 부모님 연로하신걸 보니까 자기가 총각 때는 용돈 한번도 못드리고 효도 못한게 죄송해서 그런다네요. 내 참... 부모님 보면 짠한 마음은 저만 그렇답니까? 솔직히 아빠랑 사별하신 후 저희 남매 다 가르치고 시댁에서 그 흔한 쌍가락지 하나도 못받고 시집가는 딸 위해 예단비 넣어드리고 이바지 음식 해가고... 사위라곤 와봐야 하룻밤 딸랑 자고 가버리는 친정엄마가 백배는 더 짠합디다.
그리고 총각 때 나보다 돈도 더 많이 벌면서 왜 용돈도 안드리고 효도 안했냐고, 이제까지 안해놓고 결혼했다고 갑자기 나 쥐어짜서 효도하고 싶냐고 뭐라 했습니다. 당신 34년간 가르칠거 다 안가르쳐서 장가보내서 대신 내가 가르쳐야 하는 것도 피곤한데, 당신은 또 지난 세월 제 멋대로 안한 효도를 나더러 대신 하라고 그러느냐고. 그리고 친정 방문에 들었던 5만원 미처 못되는 영수증과 시댁 방문에 들었던 70만원 가까이 되는 영수증 묶음을 내놓으며 "이번 용돈건은 당신 괘씸죄로 기각이다. 양심에 따라 항소해라." 하고 떼어먹었습니다.-_-;;
사실 저희 신랑이 처가에 전화도 잘 하고, 심성이 나쁜 사람이 아닌데요, 전화 잘하는 것만 빼고는 자기 본가만 먼저 생각하는 것이 무의식 중에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정말 한국남자라 어쩔 수 없는 건지, 그 뒤로도 다양한 사건들로 많이 싸우고, 현재는 잠시 냉각기를 가지면서...... 마지막 정신차리기 담금질 중입니다.
저도 맏이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한테 예절교육 엄하게 받고, 전통, 미덕... 이런거 왠만하면 안벗어나고 잘 살았는데요... 저라고 시댁어른들께 사근사근하게 애교도 부리고, 용돈도 듬뿍 드리고 안그러고 싶었겠습니까마는... 솔직히 제 남편이 저러고 자기집만 챙기고 나서는걸 몇 번 보고 나니, 그냥 첫사건 때 용감하고 발칙한 며느리 되고 만게 잘했다 싶고, 외국에 10년 가까이 살아서 그런가 너무 비합리적이고 형식적으로 허례를 차리는 일들엔 꼭 바른 소리를 하게 되네요. 시부모님도 그런 면에서는 저를 포기하신거 같구요.
그나마 저희는 둘 다 월급쟁이라 남편이 저 몰래 몇백씩 부쳐드릴 돈도 없고, 제가 한국보다 외국에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 시댁식구와 부딪힐 일이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요... 나중에 완전히 귀국하게 되면 또 어떤 일들로 마음을 끓일지, 그 때 남편이 제대로 행동을 할지가 걱정입니다. 한국 남자들, 제발 좀 결혼하고 나면 독립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부모로부터의 독립+내 가정 먼저=부모에 대한 불효> 라고 보는 것 같아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사실 어지간한 여자만 되어도 남편이 좀만 잘해주면 남자들이 나서서 챙기는 거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부모님 잘 모실 텐데 말이죠.
이거 무슨 made in Korea 고질병인가요?
저도 여기 고민을 올린 적도 있는데요, 결혼한지 8개월 되어가고, 저는 32, 신랑은 36살,
둘이 맞벌이하고 있고, 저는 일 때문에 외국에 살면서 한국에 자주 들어가는 편이죠.
저희도 사실 신혼인데다 얼굴 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항상 애틋해도 모자를 판인데, 싸우는 일의 70프로 정도는 시댁과 연관된 일로 싸웁니다. 그러다 보니 뭐 시댁에서 엄청 당한 것도 없는데 어느새 정이 구만리 밖으로 달아난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결혼하기 전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얘기들...
1. 며느리 딸같다는 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2. 남자들은 결혼한 순간부터 효자가 된다. 것두 자기 부인 시켜서 효도하려고 한다.
이건 완전 결혼생활의 성경이더만요.
나름대로 적잖이 마음의 준비를 했건만 이걸 신혼여행 가서부터 느끼고 나니 씁쓸하대요. 신혼여행지가 너무 멀어서 피곤하네, 가격이 비싸네 사람 지치도록 물고 늘어지고 반대를 하더니 가서 하룻밤 자고 보니 좋았나보죠? "아~ 천국이 따로 없다. 나중에 우리 부모님 모시고 다시 한번 오자." 이러는 겁니다.-_-;; 나도 평생에 한번 데리고(것두 각자 부담이었지만) 올까말까 그 난리를 치고 싸우던 인간이 자기 부모님을 모시고 오잡니다. 신행지에서 까탈스럽게 굴기 싫어서 "그래, 우리 엄마도 같이 모시고 오자. 한 xx만원 정도만 있음 되겠다" 하고 말았어요. 그제서야 그냥 가깝고 싼 데로 가자네요.-_-
그 뒤로 약 한 달 뒤... 여름휴가를 내어서 결혼 후 친정과 시댁에 첫인사를 드리러 갔죠. 친정은 차로 두 시간 거리의 지방도시, 시댁은... 휴.. 시댁 멀어서 좋다지만 것두 왠만큼 멀어야 좋은거죠. 가는 데만 꼬박 하루, 왔다갔다 교통비만 40만원 들더군요. 옛날옛날 유배지로나 쓰이던, 지도에서 찾기도 힘든 조그만 섬이죠. 차라리 제주도라면 비행기나 타고 다녀온다지.ㅠㅠ
어쨌든 친정 엄마가 혼자 되신지 오래 돼서 인사 드리러 간 김에 아빠 산소에도 다녀오고, 하룻밤 자고 담날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서서 시댁으로 향했죠. 가서 인사를 드리자마자 시작된 며느리의 일... 식구들이 여름휴가마다 모인다고 위의 아주버님 두 분 가족이 와계셨는데, 솔직히 저 형님들 없었음 어떻게 했을까 아찔할 정도더라구요.
밥상은 남자 여자 따로 차리구요. 더 정확히 말하면, 남자들 상, 아이들 상 차려서 아이들 먹고 나면 그거 바로 설겆이해서 다시 밥담아 먹는데 식욕 완전 뚝 떨어집니다. 저희 외가도 대가족이어서 한번씩 모이면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상은 꼭 같이 차렸거든요. 여자들 앉을 수 있을 때까지 남자들이 일도 도와주고... 언젠가 신랑한테 집안 종교가 뭐냐고 물으니 유교라고 대답했던 기억을 밥알과 함께 꽉꽉 씹어가며...
그렇게 대충 종년처럼(그 기분 생각하니 감정이 격해져서...) 밥먹고 설겆이하고 있는 등 뒤로 시어머니 마구마구 재촉하십니다. 고추장을 담궈야 하는데 장을 봐야 하니 빨리 하고 나오라는 거죠. 다리도 아프고 형님들도 피곤하시니까 잠깐 쉬면서 얘기도 하고 싶어서 "형님, 식곤증 오는데 커피 한잔 하실래요?" 하고 꼬셔서 물 끓이고 있으니까 빨리 안나온다고 정말 난리난리가 나십니다.
저는 직장에서나 일상에서나 고도로 긴장하고 사는 터라 휴가 때만큼은 느긋하게 푹 쉬어주는 타입인데, 황금같은 휴가에 시댁에서 "며느리 중 제일 이쁘다던" 막내며느리는 어디 가고 삼복더위에 이틀 내내 등짝이 쪼개지도록 일만 해대니 정말 힘들었어요. 일도 고되었지만 너무도 평범한 대한민국 시어머니로 변한 어머니의 무신경한 발언들로 가슴에 상처도 많이 입었거든요. 우리 어머니 나이들고도 어진 분이다. 잘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첫인사 갔다가 완전 제대로 배신감이었죠 뭐.^^;;
문제는 어머니야 연로하시고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니 그렇다 치고, 그럴 때일수록 남편이 좀 활력이 되어줘야 하는거 아닙니까? 이틀 하고 반나절을 이를 갈면서 견딘 후 드디어 서울집으로 다들 출발하려고 하는데, 결국 제가 초반부터 발칙하고 얌체같은 막내 며느리로 살게 된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 사건의 설명 전에... 잠시 고추장으로 돌아가서요. 말씀드렸다시피 그 섬이 워낙 조그매서 집옆에 수퍼도 없거든요. 몇십분 걸어내려가야 해요. 그래서 물엿이랑 소주랑 뭐랑 장보는거 신랑이랑 차로 모셔다 드리고, 어떻게 그냥 태워다만 드리나요? 저희가 다 계산했죠. 재료값만 저희 일년치 고추장 사먹을거 몇 배는 나가는데... 새댁 첫살림하는데 속쓰리죠. 아, 오해하실까봐... 저희들 가져가라고 고추장 담그신 거였거든요. 저희 다 필요없다고 극구 말리는데도 굳이 일을 만들어서 돈들이고 고생하시네요. 저희도 고생시키고. 그래놓고 힘들다고 온갖 짜증 다 부리십니다. 그럴 시간에 그냥 가족들끼리 앉아서 수박이라도 먹음 얼마나 좋아요? 그 고추장 아직 손도 안댔는데 사실 먹고 싶지도 않고... 다른 맛있는거 먹고 싶은데......
그 판국에 신랑이 그러네요. 부모님 용돈 좀 드리고 가자고. 처가 갔을 땐 암소리 없더니 왜 여기 와선 용돈 타령이냐고 쏘아붙였습니다. 제가 생각을 안했던건 아니지만, 그렇게 자기 부모 용돈 얘기만 하는 신랑이 얄미워서 니 부모만 부모냐 했던 거죠. 게다가 섬에 와보니 죽어라 일만 시키지, 돈은 여기저기 너무 많이 들어가지(교통비 40만원, 첫인사때 꼭 한우 사가라고 하셔서 식구는 좀 많나요 한우랑 과일 사니 15만원 + 뜻하지 않은 고추장 재료비 외 기타등등 약 20만원) 솔직히 용돈 따로 드리기 너무 무리다 싶더군요. 전세대출받은 것도 갚아야 했고.
사실 제가 친정은 결혼 전에 많이 도와 드렸고 결혼하고 나면 이제 좀 나와 내 가정을 위해 써야겠다 생각해서 친정 갈 땐 과일하고 산소 갈 때 준비물 정도밖에 안사갔거든요. 그래도 시댁은 왠지... 처음 인사가는데 용돈을 드려야 할거 같아서(저도 친정은 이해해 주겠지~ 한거죠 뭐.-_-) 현금을 좀 가져가긴 했는데, 그걸 고추장 만들거리 산다고 홀랑 다 썼으니 어떻게 하나요? (그 섬 농협은 카드도 안된답니다.) 만원짜리 몇 장 있긴 한데 그걸 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러저러해서 지금은 돈도 없으니 서울 가서 부쳐드리든지... 생각해 보자 했어요. 솔직히 부쳐드릴 마음 사라지고 있었죠. 저희같은 중산층 신혼부부가 첫인사길에 100만원이나 쓴다는건 미친 짓이라고 보거든요. 두 달 뒤면 또 추석이었고. 게다가 우리 엄마는? 하니까 그제서야 같은 금액으로 부쳐드리라는데, 살림하는 주부가 사실 그렇게 안되잖아요...ㅠㅠ
이제 다시 마지막날 제가 발칙한 며느리가 된 사건으로 돌아가서... 다들 떠날 준비를 마치고 거실에 나와서 인사를 드리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외국서 일하러 다니고 힘들어도 우리 막내 밥은 꼭 해먹이라고... 이틀 내내 지겹도록 하신 그 말씀 또 하시네요. 냉장고에 반찬을 해놓아도 안찾아 먹는 인간을 제가 어떻게 합니까? 짜증났지만 그냥 네, 대답하고 "대신 어머니, 오빠도 말 좀 잘 들으라고 한말씀 해주세요." 라고 투정 부렸죠. 어머니 순간 좀 당황하시더니 "그래, 너도 안사람 말 잘 듣고 바깥에 일하러 다니는데 기분 안상하도록 해라." 하시네요.
이 때 신랑이 그러는 겁니다. "와~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좋은 말씀도 해주셨는데 이쁜 막내며느리가 용돈 좀 안드리나?" 허걱~!!!! 아주버님, 형님들, 조카들까지 다 있는 그 자리에서요!!! 정말 입을 때려버리고 싶었습니다. 전 아직까지도 궁금한데요... 그게 정말 그 인간이 센스가 없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이렇게 많은 시댁식구들 앞에서 말을 하면 지가 설마 안준다고 할까 싶어서 그랬던 건지......
하여튼 순간 저도 머리가 삐쭉 서면서 침이 꼴딱 넘어가더군요. 이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와서 드린다고 하기도 마치 신랑 말 듣고서야 억지로 드리는 것처럼 보여 그렇고, 사실 드리려고 해도 돈도 없고... 신랑이 너무 야속하다가 나중엔 정말 열이 부글부글 끓더군요. 내가 그리 알아듣도록 얘길 했는데 또 이러다니... 그래서 그냥 저도 그냥 사고를 쳐버렸습니다.
"와~~ 어쩜 사람이 이러냐? 처가댁 갔을 땐 10원 한장 안쓰고 용돈 얘기는 요만큼도 안하고, 아침도 안먹고 얼른 내려오자고 새벽에 데리고 와놓고는 자기 집 오니까 내가 알아서 한대도 용돈 드리라고 난리네. 진짜 속보인다~ 나 낳아서 혼자 힘들게 길러준 엄마는 부모도 아니야? 나이를 서른 넷이나 먹어서 그런 기본도 안되어 있는거야? 장가가서 어른이 되었으면 어른답게 좀 해. 언제까지 막내 노릇이야~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내가 이런 것까지 가르쳐야겠어?"
암만 봐도 자기 식구들 등에 업고 은근히 압력을 가하는 것 같길래 이런 방법은 안통한다는걸 보여주려고, 좀 떨렸지만 다 들리라고 크게 얘기해 버렸죠. 시아버님께서 신랑에게 "너는 왜 그랬냐?" 한마디 하시는 걸로 종결됐습니다.
사실 누구보다도 저희 어머니가 서운하고 놀라셨겠죠. 금이야 옥이야 하는 막둥이한테 당신 있는 곳에서 뭐라고 해버렸으니 말이죠. 하지만 제 생각은 그랬어요. 시댁이 얽혀서 생긴 갈등 부부끼리만 감추고 끙끙거려봤자 시댁 사람들은 백날 가야 모른다 이거죠. 그래서 그냥 그 뒤로도 시댁 관련된 돈 때문에 문제가 된다, 시댁 사람들 입방아 때문에 부부싸움이 된다, 이러면 그냥 표면화시켜 버리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자기들 때문에 우리 부부가 갈등하고 괴로워한다는건 알아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그렇게 하고 나니 많이 편해진 것도 사실이구요.
어쨌건 서울 올라오는 길에 다시 물어봤죠. 마누라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에 대놓고도 절을 한다는데 벌써부터 내가 맘에 안드나? 했더니, 자기가 생각이 짧았다고, 그냥 와서 부모님 연로하신걸 보니까 자기가 총각 때는 용돈 한번도 못드리고 효도 못한게 죄송해서 그런다네요. 내 참... 부모님 보면 짠한 마음은 저만 그렇답니까? 솔직히 아빠랑 사별하신 후 저희 남매 다 가르치고 시댁에서 그 흔한 쌍가락지 하나도 못받고 시집가는 딸 위해 예단비 넣어드리고 이바지 음식 해가고... 사위라곤 와봐야 하룻밤 딸랑 자고 가버리는 친정엄마가 백배는 더 짠합디다.
그리고 총각 때 나보다 돈도 더 많이 벌면서 왜 용돈도 안드리고 효도 안했냐고, 이제까지 안해놓고 결혼했다고 갑자기 나 쥐어짜서 효도하고 싶냐고 뭐라 했습니다. 당신 34년간 가르칠거 다 안가르쳐서 장가보내서 대신 내가 가르쳐야 하는 것도 피곤한데, 당신은 또 지난 세월 제 멋대로 안한 효도를 나더러 대신 하라고 그러느냐고. 그리고 친정 방문에 들었던 5만원 미처 못되는 영수증과 시댁 방문에 들었던 70만원 가까이 되는 영수증 묶음을 내놓으며 "이번 용돈건은 당신 괘씸죄로 기각이다. 양심에 따라 항소해라." 하고 떼어먹었습니다.-_-;;
사실 저희 신랑이 처가에 전화도 잘 하고, 심성이 나쁜 사람이 아닌데요, 전화 잘하는 것만 빼고는 자기 본가만 먼저 생각하는 것이 무의식 중에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정말 한국남자라 어쩔 수 없는 건지, 그 뒤로도 다양한 사건들로 많이 싸우고, 현재는 잠시 냉각기를 가지면서...... 마지막 정신차리기 담금질 중입니다.
저도 맏이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한테 예절교육 엄하게 받고, 전통, 미덕... 이런거 왠만하면 안벗어나고 잘 살았는데요... 저라고 시댁어른들께 사근사근하게 애교도 부리고, 용돈도 듬뿍 드리고 안그러고 싶었겠습니까마는... 솔직히 제 남편이 저러고 자기집만 챙기고 나서는걸 몇 번 보고 나니, 그냥 첫사건 때 용감하고 발칙한 며느리 되고 만게 잘했다 싶고, 외국에 10년 가까이 살아서 그런가 너무 비합리적이고 형식적으로 허례를 차리는 일들엔 꼭 바른 소리를 하게 되네요. 시부모님도 그런 면에서는 저를 포기하신거 같구요.
그나마 저희는 둘 다 월급쟁이라 남편이 저 몰래 몇백씩 부쳐드릴 돈도 없고, 제가 한국보다 외국에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 시댁식구와 부딪힐 일이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요... 나중에 완전히 귀국하게 되면 또 어떤 일들로 마음을 끓일지, 그 때 남편이 제대로 행동을 할지가 걱정입니다. 한국 남자들, 제발 좀 결혼하고 나면 독립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부모로부터의 독립+내 가정 먼저=부모에 대한 불효> 라고 보는 것 같아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사실 어지간한 여자만 되어도 남편이 좀만 잘해주면 남자들이 나서서 챙기는 거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부모님 잘 모실 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