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뉴스를 보니 PC통신 하이텔이 드디어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하이텔 유머작가였던 내 마음도 무척이나 싱숭생숭하다 지금은 DC인사이드 대표인 김유식도 하이텔에서 같은 유머작가였고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 역시 PC통신 시절 같이 연재되던 소설이었는데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은 그 때를 추억하며 PC통신 시절 벙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 아마도 97년 초였지 싶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 살았던 나는 같은 방 친구가 컴 관련 전공을 하는 덕분에 돈 한푼 내지 않고 학교 전화선 끌어다가 24시간 내내 통신을 하였더랬다. 전화비가 무서워서 통신을 못 하던 그 시절 우리는 하루 종일 통신에 접속해 놓고 날밤을 새기가 일쑤였다. 특히 녀석의 컴은 당시 최고의 사양을 갖추었기에 우리는 거의 예술적인 컴의 세계로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내 친구의 관심사는 온니 채팅이었다. 정말 하루 24시간 내내 채팅방에 방 개설해 놓고 말 그대로 ‘죽 치고’ 살았다 시도 때도 없이 벙개를 하여서 새벽에 기숙사 나가느라고 경비 아저씨한테 멀쩡한 엄마 응급실에 많이 입원시키고 그랬었다-_- (경비 아저씨는 녀석 엄마가 불치병 환자인 줄 알았단다) 오늘 나는 내 친구가 겪은 벙개 중 두 가지 이야기를 여러분께 할까 한다. <에피소드 1> 그 친구가 그녀를 만난 건 새벽 1시였다. 새벽 1시라는 시각은 퀸카가 채팅방에서 활동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원래 퀸카들은 남자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적당하게 하고 너무 늦지 않은 시각에 잠자러 간단다) 뜻밖에도 그는 퀸카를 만났다고 몹시 흥분하였다. 그녀는 전북대학교 피아노과에 재학중인 1학년 여학생이었다. 168의 키에 죽이는 몸매, 그리고 길고 긴 생머리가 매력적인 여인이란다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보고 그렇다고 한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조심스럽고 차분했으며 어조도 얌전하며 그 안에 애교도 물씬 넘치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은 직감적으로 그녀가 퀸카였음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둘은 첫 만남에서 거의 10시간-_-이나 되는 시간을 쉬지 않고 채팅하며 서로를 느꼈*-_-*다고 했다. 다음날 그녀의 전화번호를 입수한 그는 채팅 대신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이 꽤나 부자였던지 당시 학생들이 갖고 다니던 삐삐나 시티폰 대신에 무려 핸드폰을 들고 다녔었고 녀석은 그녀의 핸드폰으로 무쟈게 전화를 걸어댔다. 얼마나 오래 전화를 걸었냐면, 내가 잠자기 전에 녀석이 그녀의 핸드폰으로 전화통화를 하는 것을 봤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그때까지도 통화를 하고 있을 정도였다-_-; 내가 미친 거 아니냐고 물어보니 녀석은 '사랑에 빠져서 그래'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씨부렁거렸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여자를 전화통화만으로 사랑할 수도 있는 건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 둘은 비상식적으로 전화통화로 밀어를 나누면서 아주 오래 된 연인처럼 그렇게 발전되어 갔다 "자기~~ 오늘 많이 기다렸지? 내가 오늘 수업이 늦게 끝나서 그랬어. 너무 미안해" "나도 널 사랑해. 정말 죽고 싶을 만큼 너가 그리워. 우리 그냥 이대로 결혼해 버리고 말까?" 위 말은 그놈과 그뇬이 전화통화를 한 지 일주일 지난 다음부터 자주 듣게 되는 대화였다. 어떻게 단 한번도 보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내 질문에 녀석은 'Power Of Love'만 외치고 있었다. 기막힌 놈... 그렇게 전화통화로 한 달을 보내던 그 놈과 그녀가 서울에서 만나던 날... 전날 밤부터 그렇게 설쳐대며 준비하던 그 놈은... 만나기 바로 전까지도 계속 핸드폰으로 밀어를 주고 받던 그놈은... 그녀를 만나고 들어온 그날 저녁 내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올 때 전화국에 들렸는데 이번 달 전화요금이 80만 원이란다 ㅠ.ㅠ" 녀석은 그녀와 만나자마자 그동안의 꿈에서 바로 깨어났다고 한다-_- 이런 말도 안 되는 여자애랑(뭐가 말도 안 되는지는 그냥 미루어 짐작하자. 그녀의 외모인지 성품인지-_-) 왜 미친짓을 했는지 자신을 때려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고 했고, 그동안 나왔을 전화비가 너무 걱정이 돼서 그녀를 대충 돌려보내고 바로 전화국으로 달려 갔단다. IMF 한 가운데 있던 그 시절의 80만 원이 돈 한 푼도 못 버는 대학생에게 얼마나 큰 돈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녀석은 그거 메꾸기 위해서 자신이 그렇게도 아끼던 컴퓨터를 내게 넘겨야 했다-_-v 항상 녀석의 컴을 빌려 쓰던 나는 도리어 녀석에게 내 컴을 빌려 주는 처지로 변하게 되었다. 역시 인생은 반전의 연속인가 보다. <2> 컴을 팔아먹었으면서도 녀석의 채팅은 멈추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미친듯이 채팅에 빠져 들어갔다. 이제껏 쏟아 부었던 것을 건지기 위한 보상심리 때문에 그러는거 같은데 그게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녀와의 사건 이후 녀석은 즉석 벙개에 큰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전화로 며칠 동안 의견 조율하고 감성지수 맞춰봤자 일단 만나보면 모든 게 소용 없어진다는 진리를 깨달았다나-_-... 처음엔 서울 지역의 여자들과 벙개를 하던 그 녀석은 가끔 경기도 인근까지 벙개팅을 하기 위해 내려가는 모험을 감수하더니 급기야는 내게 폭탄 선언을 했다. "나 지금 부산 좀 내려갔다 올게" 그 녀석이 내게 그 말을 꺼낸 건 밤 10시가 넘는 시각이었다. "부산엔 왜 가냐? 너 혹시.. 벙개하러 거기 가냐?" 녀석은 놀라는 내 표정을 바라보며 감동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심은하 닮았대" 심은하...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심은하... 그녀가 나오면 이 친구는 거의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심은하 광팬이었다 특히 자신 같이 '오랑우탄'처럼 생긴 외모는 2세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심은하급을 만나줘야 자식에게 '몹쓸 짓'을 안 하는 거라면서 그는 여자의 외모에 집착하는 스타일이었다 "확실히 심은하래니?" 통신에서 한두번 속아 본 놈이 아닐텐데 녀석은 이번엔 확신에 찬 듯 말했다. "그 애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심은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했대" "이 정신 나간 놈아!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말이 '엄마 친구 아들이...' 하고 '내 친구들이 그러는데...' 잖느냐! 맨날 속고도 또 그러냐!!" "이번엔 정말이래. 내가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정말이래" 물론 난 절대 그 말을 믿지 않았다.아니, 설사 그녀가 심은하를 닮았다 해도 그 시각에 부산을 내려가겠다고 설치는 녀석의 정신상태가 올바른지 그것을 더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말린다고 들을 놈도 아니었기에 난 그저 그녀가 심은하를 닮아서 녀석이 이번만큼은 성공하기를 기도했다. 녀석은 다음날 내게 대출을 부탁하고 수위 아저씨에게 우리 엄마가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말하라고 하고선 나갔다 (이젠 우리 엄마까지 응급실에 입원시키냐구! 그리고 왜 니가 나가는건데 -0-) 하여튼 녀석을 보낸 후 난 간만에 새벽 2시까지 통신을 하고선 (새벽엔 녀석이 컴을 점령하다시피 한다) 느즈막히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12시 수업에 맞춰 자명종을 11시에 맞춰 놓은 나는 자명종 소리에일어났다. 그리고 지금쯤 부산에서 그녀를 만나고 있을 녀석을 상상하며 녀석의 비어 있을 침대를 바라봤다. "헉!!!" 난 녀석의 침대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비명을 질렀다!! 비어 있어야 할 침대에 녀석이 쓰러져서 자고 있는게 아닌가!!! 어찌 된 일인가 싶어 녀석을 두들겨 깨웠다. "야! 너 부산에 안 갔어?" 녀석은 피곤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갔다 온거야" "잉? 벌써 갔다 왔다구?" 그렇다. 녀석은 밤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그녀 얼굴을 보고 바로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것이다-_- "그녀가.. 심은하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더냐?" 당연히 아니니까 올라왔을 거라는 내 추측과는 달리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분명 심은하 이미지를 갖고있었어" "헉.. 근데 ... 왜 올라왔냐?" 나의 말에 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그런거 있잖냐... 이미지는 심은하인데... 생긴 건 고릴라 닮은 거 말야..." "-_-;;......" "그래도 이번엔 다행인 거 같다" "왜?" "전화로 질질 끌지 않고 바로 얼굴 봤으니까 말야. 그말에 속아서 전번 같은 꼴 났으면 어케 할 뻔했냐?" 이 와중에서도 긍정적 사고를 잃지 않는 녀석이 난 새삼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그놈의 긍정적 사고방식 때문에 녀석은 그 뒤로도 쉴 새 없이 밤기차를 타고 부산, 대구, 광주 찍고 전주, 대전 등등-_-... 전국 방방곡곡을 누리면서 벙개를 하러 다녔다 녀석의 부모님은 녀석에게 다시 한 번 최신형 컴퓨터와 노트북까지 사 주셔야 했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다시 내 손에-_- 싼 가격에 넘어오게 되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정말 녀석은 '불효자'로서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건데 엄청난 반전 (이라고 해야 되나) 있었으니 녀석은 '이미지만 심은하'를 수백번도 더 만난 뒤 결국! 진짜 '심은하급' 여자를 만나 지금은 딸까지 낳아 알콩달콩 잘 먹고 잘 살고 있다-_- 그에 반해 '채팅 허무론'을 주장했던 나는 여직까지 장가도 못 가고 이래 살고 있다-_-... 인생 진짜 살아봐야 안다니까-_-... ps 이건 뭐 반전이라고 해야 되나 어쩌나 잘은 모르겠는데 녀석의 딸래미는 녀석이 숱하게 만나고 다녔던 여자들처럼 이미지만 심은하이고 생긴 건 고릴라-_-인 여의도 광장에 백만 명 모아 놓고 그 속에 섞어 놔도 찾을 수 있을만큼 녀석을 닮은-_-... (딸이 아빠 외모 닮는다는 게 맞는 말인듯) 하여튼 이 글을 보는 남자들! 2세를 위한답시고 예쁜 여자 찾지 말라구! 그런 남자일수록 자기랑 똑 닮은 딸래미 낳을 수 있으니깐-_-! 작가 미니 홈피 : http://www.cyworld.com/harang2006
PC통신 시절 벙개 이야기
오늘자 뉴스를 보니 PC통신 하이텔이 드디어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하이텔 유머작가였던 내 마음도 무척이나 싱숭생숭하다
지금은 DC인사이드 대표인 김유식도 하이텔에서 같은 유머작가였고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 역시 PC통신 시절 같이 연재되던 소설이었는데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은 그 때를 추억하며 PC통신 시절 벙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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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97년 초였지 싶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 살았던 나는 같은 방 친구가 컴 관련 전공을 하는 덕분에
돈 한푼 내지 않고 학교 전화선 끌어다가 24시간 내내 통신을 하였더랬다.
전화비가 무서워서 통신을 못 하던 그 시절
우리는 하루 종일 통신에 접속해 놓고 날밤을 새기가 일쑤였다.
특히 녀석의 컴은 당시 최고의 사양을 갖추었기에
우리는 거의 예술적인 컴의 세계로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내 친구의 관심사는 온니 채팅이었다.
정말 하루 24시간 내내 채팅방에 방 개설해 놓고 말 그대로 ‘죽 치고’ 살았다
시도 때도 없이 벙개를 하여서 새벽에 기숙사 나가느라고 경비 아저씨한테
멀쩡한 엄마 응급실에 많이 입원시키고 그랬었다-_-
(경비 아저씨는 녀석 엄마가 불치병 환자인 줄 알았단다)
오늘 나는 내 친구가 겪은 벙개 중 두 가지 이야기를 여러분께 할까 한다.
<에피소드 1>
그 친구가 그녀를 만난 건 새벽 1시였다.
새벽 1시라는 시각은 퀸카가 채팅방에서 활동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원래 퀸카들은 남자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적당하게 하고
너무 늦지 않은 시각에 잠자러 간단다) 뜻밖에도 그는 퀸카를 만났다고 몹시 흥분하였다.
그녀는 전북대학교 피아노과에 재학중인 1학년 여학생이었다. 168의 키에 죽이는 몸매,
그리고 길고 긴 생머리가 매력적인 여인이란다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보고 그렇다고 한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조심스럽고 차분했으며 어조도 얌전하며
그 안에 애교도 물씬 넘치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은 직감적으로 그녀가 퀸카였음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둘은 첫 만남에서 거의 10시간-_-이나 되는 시간을 쉬지 않고 채팅하며
서로를 느꼈*-_-*다고 했다.
다음날 그녀의 전화번호를 입수한 그는 채팅 대신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이 꽤나 부자였던지 당시 학생들이 갖고 다니던 삐삐나 시티폰 대신에
무려 핸드폰을 들고 다녔었고 녀석은 그녀의 핸드폰으로 무쟈게 전화를 걸어댔다.
얼마나 오래 전화를 걸었냐면, 내가 잠자기 전에 녀석이 그녀의 핸드폰으로
전화통화를 하는 것을 봤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그때까지도
통화를 하고 있을 정도였다-_-;
내가 미친 거 아니냐고 물어보니 녀석은
'사랑에 빠져서 그래'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씨부렁거렸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여자를 전화통화만으로 사랑할 수도 있는 건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 둘은 비상식적으로 전화통화로 밀어를 나누면서
아주 오래 된 연인처럼 그렇게 발전되어 갔다
"자기~~ 오늘 많이 기다렸지? 내가 오늘 수업이 늦게 끝나서 그랬어. 너무 미안해"
"나도 널 사랑해. 정말 죽고 싶을 만큼 너가 그리워. 우리 그냥 이대로 결혼해 버리고 말까?"
위 말은 그놈과 그뇬이 전화통화를 한 지 일주일 지난 다음부터 자주 듣게 되는 대화였다.
어떻게 단 한번도 보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내 질문에 녀석은
'Power Of Love'만 외치고 있었다. 기막힌 놈...
그렇게 전화통화로 한 달을 보내던 그 놈과 그녀가 서울에서 만나던 날...
전날 밤부터 그렇게 설쳐대며 준비하던 그 놈은...
만나기 바로 전까지도 계속 핸드폰으로 밀어를 주고 받던 그놈은...
그녀를 만나고 들어온 그날 저녁 내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올 때 전화국에 들렸는데 이번 달 전화요금이 80만 원이란다 ㅠ.ㅠ"
녀석은 그녀와 만나자마자 그동안의 꿈에서 바로 깨어났다고 한다-_-
이런 말도 안 되는 여자애랑(뭐가 말도 안 되는지는 그냥 미루어 짐작하자.
그녀의 외모인지 성품인지-_-) 왜 미친짓을 했는지 자신을 때려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고 했고, 그동안 나왔을 전화비가 너무 걱정이 돼서
그녀를 대충 돌려보내고 바로 전화국으로 달려 갔단다.
IMF 한 가운데 있던 그 시절의 80만 원이 돈 한 푼도 못 버는 대학생에게 얼마나 큰
돈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녀석은 그거 메꾸기 위해서 자신이 그렇게도
아끼던 컴퓨터를 내게 넘겨야 했다-_-v
항상 녀석의 컴을 빌려 쓰던 나는 도리어 녀석에게 내 컴을 빌려 주는 처지로 변하게 되었다.
역시 인생은 반전의 연속인가 보다.
<2>
컴을 팔아먹었으면서도 녀석의 채팅은 멈추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미친듯이
채팅에 빠져 들어갔다. 이제껏 쏟아 부었던 것을 건지기 위한 보상심리 때문에 그러는거
같은데 그게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녀와의 사건 이후 녀석은 즉석 벙개에 큰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전화로 며칠 동안
의견 조율하고 감성지수 맞춰봤자 일단 만나보면 모든 게 소용 없어진다는 진리를
깨달았다나-_-...
처음엔 서울 지역의 여자들과 벙개를 하던 그 녀석은 가끔 경기도 인근까지 벙개팅을
하기 위해 내려가는 모험을 감수하더니 급기야는 내게 폭탄 선언을 했다.
"나 지금 부산 좀 내려갔다 올게"
그 녀석이 내게 그 말을 꺼낸 건 밤 10시가 넘는 시각이었다.
"부산엔 왜 가냐? 너 혹시.. 벙개하러 거기 가냐?"
녀석은 놀라는 내 표정을 바라보며 감동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심은하 닮았대"
심은하...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심은하...
그녀가 나오면 이 친구는 거의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심은하 광팬이었다
특히 자신 같이 '오랑우탄'처럼 생긴 외모는 2세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심은하급을 만나줘야
자식에게 '몹쓸 짓'을 안 하는 거라면서 그는 여자의 외모에 집착하는 스타일이었다
"확실히 심은하래니?"
통신에서 한두번 속아 본 놈이 아닐텐데 녀석은 이번엔 확신에 찬 듯 말했다.
"그 애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심은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했대"
"이 정신 나간 놈아!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말이 '엄마 친구
아들이...' 하고 '내 친구들이 그러는데...' 잖느냐! 맨날 속고도 또
그러냐!!"
"이번엔 정말이래. 내가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정말이래"
물론 난 절대 그 말을 믿지 않았다.아니, 설사 그녀가 심은하를 닮았다 해도 그 시각에
부산을 내려가겠다고 설치는 녀석의 정신상태가 올바른지 그것을 더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말린다고 들을 놈도 아니었기에 난 그저 그녀가 심은하를 닮아서
녀석이 이번만큼은 성공하기를 기도했다.
녀석은 다음날 내게 대출을 부탁하고 수위 아저씨에게 우리 엄마가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말하라고 하고선 나갔다
(이젠 우리 엄마까지 응급실에 입원시키냐구! 그리고 왜 니가 나가는건데 -0-)
하여튼 녀석을 보낸 후 난 간만에 새벽 2시까지 통신을 하고선
(새벽엔 녀석이 컴을 점령하다시피 한다) 느즈막히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12시 수업에 맞춰 자명종을 11시에 맞춰 놓은 나는 자명종 소리에일어났다.
그리고 지금쯤 부산에서 그녀를 만나고 있을 녀석을 상상하며
녀석의 비어 있을 침대를 바라봤다.
"헉!!!"
난 녀석의 침대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비명을 질렀다!!
비어 있어야 할 침대에 녀석이 쓰러져서 자고 있는게 아닌가!!!
어찌 된 일인가 싶어 녀석을 두들겨 깨웠다.
"야! 너 부산에 안 갔어?"
녀석은 피곤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갔다 온거야"
"잉? 벌써 갔다 왔다구?"
그렇다. 녀석은 밤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그녀 얼굴을 보고 바로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것이다-_-
"그녀가.. 심은하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더냐?"
당연히 아니니까 올라왔을 거라는 내 추측과는 달리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분명 심은하 이미지를 갖고있었어"
"헉.. 근데 ... 왜 올라왔냐?"
나의 말에 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그런거 있잖냐... 이미지는 심은하인데... 생긴 건 고릴라 닮은 거 말야..."
"-_-;;......"
"그래도 이번엔 다행인 거 같다"
"왜?"
"전화로 질질 끌지 않고 바로 얼굴 봤으니까 말야.
그말에 속아서 전번 같은 꼴 났으면 어케 할 뻔했냐?"
이 와중에서도 긍정적 사고를 잃지 않는 녀석이 난 새삼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그놈의 긍정적 사고방식 때문에 녀석은 그 뒤로도 쉴 새 없이 밤기차를 타고
부산, 대구, 광주 찍고 전주, 대전 등등-_-...
전국 방방곡곡을 누리면서 벙개를 하러 다녔다
녀석의 부모님은 녀석에게 다시 한 번 최신형 컴퓨터와 노트북까지 사 주셔야 했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다시 내 손에-_- 싼 가격에 넘어오게 되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정말 녀석은 '불효자'로서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건데
엄청난 반전 (이라고 해야 되나) 있었으니
녀석은 '이미지만 심은하'를 수백번도 더 만난 뒤 결국!
진짜 '심은하급' 여자를 만나 지금은 딸까지 낳아 알콩달콩 잘 먹고 잘 살고 있다-_-
그에 반해 '채팅 허무론'을 주장했던 나는 여직까지 장가도 못 가고 이래 살고 있다-_-...
인생 진짜 살아봐야 안다니까-_-...
ps
이건 뭐 반전이라고 해야 되나 어쩌나 잘은 모르겠는데
녀석의 딸래미는 녀석이 숱하게 만나고 다녔던 여자들처럼
이미지만 심은하이고 생긴 건 고릴라-_-인
여의도 광장에 백만 명 모아 놓고 그 속에 섞어 놔도 찾을 수 있을만큼 녀석을 닮은-_-...
(딸이 아빠 외모 닮는다는 게 맞는 말인듯)
하여튼 이 글을 보는 남자들!
2세를 위한답시고 예쁜 여자 찾지 말라구!
그런 남자일수록 자기랑 똑 닮은 딸래미 낳을 수 있으니깐-_-!
작가 미니 홈피 : http://www.cyworld.com/harang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