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바라보다가 바다를 잃어버렸습니다. 바닷가를 거닐며 바다를 찾고 있습니다. 당신에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것은 당신을 잃는 것입니다. 당신을 다 안다는 것은 당신에 대하여 눈을 감는 일입니다. 사랑도 그러합니다. 이 가을에 이젠 떠나야겠습니다. 멀리서 더 깊이 당신에 젖고 싶습니다. 당신의 눈동자와 흔들리는 가슴 물새들의 반짝임도 울음소리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들어야겠습니다. 당신이 보내신 편지를 읽듯이 멀리서 떨리는 손으로 등불 아래서 펴보아야겠습니다.
세 여자 이야기 (10)
바다를 바라보다가
바다를 잃어버렸습니다.
바닷가를 거닐며
바다를 찾고 있습니다.
당신에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것은
당신을 잃는 것입니다.
당신을 다 안다는 것은
당신에 대하여 눈을 감는 일입니다.
사랑도 그러합니다.
이 가을에 이젠 떠나야겠습니다.
멀리서 더 깊이 당신에 젖고 싶습니다.
당신의 눈동자와 흔들리는 가슴
물새들의 반짝임도 울음소리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들어야겠습니다.
당신이 보내신 편지를 읽듯이
멀리서 떨리는 손으로
등불 아래서 펴보아야겠습니다.
이성선의 "바다를 잃어버리고"
동욱은 자신을 보자마자 쓰러질 듯 절규하던 유진의 모습을 생각하며 오
랜 시간을 외면한 채 지금에서야 돌아온 자신이 죽도록 싫었다.
지금쯤 동욱의 집안에서는 동욱을 수소문해 찾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에 가족의 존재조차 무시한 채 이젠 유진과 앞으
로만 갈 것이다. 동욱은 시간이 늦었음에 불구하고 유진의 오피스텔로
향할 준비를 했다. 며칠만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하던 유진의 얘기 때문
에 서두르지 않았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의 찬기운이 동욱의 시린 마음을 더욱더 파고들었다.
동욱의 차가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녀와 진희가 급하게 뛰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을 부르기도 채 전에 차를 타고 어딘가로 출발했다.
동욱은 유진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여러번 해보았지만 연락이 되질 않았다
동욱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예감이 좋질 않았다.
한 시간 남짓 지난 듯 했다. 진희의 차가 아까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녀와 진희는 술에 만취되어 있는 유진을 부추기며 차에서 내리고 있었
다. 동욱은 그제서야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고, 그들의 사이로 뛰어가
유진을 낚아채듯 업고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와 진희는 갑작스럽게 달려온 한 사내를 바라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유진의 몸은 아주 오래전보다도 말라있었다. 항상 유진의 마른 몸을 바
라보며 동욱이 늘상 했던 얘기가 기억이 났다.
'우리 유진이 내가 아줌마 몸으로 만들어버릴꺼다. 이게 뭐냐? 나무젓
가락보다 더 말라있잖아... 내가 이따만한 풍선처럼 불려놓을꺼다..."
'에이, 아줌마처럼 되면 또 놀리려고 그러는거죠?."
'아니야. 나두 아저씨처럼 되면 되는거지... 우리 아저씨 아줌마처럼
되면 서로 볼만하겠다.. 그치?."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눈가가 젖어있는 유진을 바라보며 동욱은 가슴이
저려왔다. 유진의 손을 꼭 잡은 채 동욱은 또다시 죄책감에 흔들려 다시
는 유진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더욱더 굳은 마음을 다졌다.
유진이 깊이 잠든 걸 확인한 후 그제서야 유진의 방에서 나왔다.
잘 정돈된 거실에서는 그녀와 진희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동욱이 나오기
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가 나오자마자 앉아있던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침묵을 깬 건 잔뜩 화가 나 있는 듯한 진희였다.
"잠깐 얘기 좀 하고 가요!."
"진희야... 다음에 하자.. 이미 늦었고, 유진이 깰 수도 있잖아."
"됐어! 지금 해야겠어. 잠깐이면 돼."
동욱은 머뭇거리다 진희의 앞에 앉았다.
"커피 드릴까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아니요.. 됐습니다."
그제서야 진희도 자리에 앉았고 흥분해 있는 감정을 삭히기 시작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진희가 어떤 말을 할지 불보듯 뻔했고... 그녀
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동욱씨! 이러는 거... 예의가 아니지 않나요? 지금에 와서 지나간 사
랑 되찾겠다고 온거라면 그거 너무 뻔뻔스러운 거 아니예요? 저...
유진이 가족도 아니고, 유진이 대변인도 아니지만 이런 말 할 자격은 있
다고 생각해요... 이제와서 유진이 혼란스럽게 만들고... 정말 이게 뭐
예요? 잘 버티고... 그리고 잘 지내고 있는 애 또다시 저렇게 만들고,
이제와서 달라지는 게 뭐예요? 말해보세요... 이제와서 바뀌는 게 있냐
고요?." 진희는 아까와는 달리 또다시 흥분된 얼굴로 변하고 있었다.
"할 얘기 없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 유진이하구 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걱정해주는 건 좋지만 저보고 떠나라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이미 오랫동
안 떠나있었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겁니다."
"이봐요! 당신이란 인간 정말 뻔뻔하군요! 삼년 전에도 우리한테 그렇게
말했던 거 기억나요! 우린 믿었어요... 끝까지 그 고귀한 사랑 지켜낼
거라고... 근데 그렇지 못했어요!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이란
인간이 알기나 해! 그 후에 유진이가......!!."
"진희야! 그만해... 이제 그만해..."
그녀는 자살하렸고 했던 유진의 얘기를 하려는 진희의 말을 끊어버렸다.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그 시간을 떠올리며 그녀와 진희는 울고 있었다.
동욱은 그녀가 극도로 흥분하며 진희의 말을 끊어버린 것에 대해 긴장하
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무슨 일이 있었던거예요?... 네?."
"동욱씨! 그만 가주세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네요."
그녀는 다그치듯 동욱을 눈을 외면한 채 말을 꺼냈다.
"아니요! 전 알아야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저희 집에서 또
유진이에게 상처를 줬나요?."
동욱의 말에 더욱더 화가 난 듯 진희가 쏘아붙였다.
"그게 그렇게 알고 싶어요? 말하죠! 당신이 그렇게 아끼고 그렇게 사랑
하던 유진이가 죽으려고 했어요! 됐나요? 죽지 않았음 폐인이 되어있을
그 애를...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는 한 사람이 가엾지도 않아요? 당신
때문에 다 망쳤어. 그걸 알기나 아냐구... 흑흑흑..."
"무슨 말이죠? 죽으려고 했단 말인가요? 유진이가... 나 때문에..."
"이제 다들 그만해요... 이런다고 무슨 소용이야? 정말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유진이 지금 복잡해요. 유진이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자고
요. 우리가 이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 다 알잖아요."
동욱은 정신이 나간 듯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한 차례 회오리가 지나간 듯 사방의 고요함은 더욱더 진지했다.
진희는 아직도 울분이 가시지 않는 듯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진희를 부추겨 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언젠가는 이런 상황이 올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안기며 끝이 날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술에 취한 유진이 그녀를 보면서 하던 얘기가 떠올랐다.
"글쎄.... 지석씨가 나를 사랑한대... 하하하... 정말 웃기지? 어떻게
그렇게 바보같을 수가 있지? 세상 정말 웃기지?."
체념한 듯 포기한 듯 중얼거리는 유진의 목소리엔 슬픔이 가득 배어있었
다. 갈팡질팡하는 유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하면 지나친 친근함일까
아니다. 유진의 슬픔을 안다고 얘기해야 더 옳을것이다.
유진은 아직도 옛사랑을 잊지 못한다... 그 잘난 사랑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이젠 남아있던 작은 자존심마저 버리는 것임을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