孤愛(고애 : 고독한 사랑) -1

나오2007.02.12
조회157

 

   가출       

                                          

                                            

                                         

  “참 지랄 맞게도 날만 좋네, 에라이 썩을놈의 하늘아”

  저 멀리 북부대로가 실처럼 굽이치는 모습을 내려다보던 카이라는 뜬금없이 맑은 하늘을 향해 감히 미천한 피조물로서는 해선 안 될 그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급기야 육두문자가 나오고 하늘의 아빠 엄마를 운운하더니 허공에 돌팔매질까지 하였다.

  미타나 산(山), 그 중에 가장 낮은 능선인 남쪽 자락의 열두 번째던가 열세 번째던가 봉우리에 서서 그렇게 하늘을, 세상을 향해 온갖 띵깡을 부리는 녀석은 현재 가출을 감행한 상태였다. 또한 가출이라는 명제에 딱 어울릴만한 나이인 아직 십대의 제법 뽀송한 솜털을 가진 소년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혼자 발광하던 카이라가 힘에 부쳐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어라 올라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현재 그가 앉아있는 이 봉우리는 미타나의 산세(山世)에서만 따지자면 그만그만한 축에 끼는 산봉우리였지만 그럼에도 내려보는 시선속으로 몇 개의 산봉우리와 그 봉우리들의 정상을 휘감아 도는 구름 몇조각을 굽어 볼 정도 높이의 산 정상이었다. 카이라는 천천히 몸을 돌려가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오른쪽으로 그만그만한(?) 산들이 줄지어 크게 돌아 저 멀리 북쪽 하늘과 맞닿은 끝에서 인간족들이 감히 세상의 지붕이라 일컫는 미타나 산맥의 미타나 주산(主山)이 감히 근접할 엄두조차 안나는 위용으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가만히 한숨을 내쉰 카이라는 다시 반대로 몸을 돌려 남쪽을 바라보았다. 열여섯 평생에 한번도 밟아본적 없이 그저 들리는 풍문이나 혹은 이따금 미타키안 마을을 들르던 보따리 장사치에게 들었던 게 전부인 바로 그 북부대로가 가물가물 보이고 있었다. 저 길에 가보리라 다짐했었지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로 저 길을 따라 걸어 드넓은 세상으로 반드시 나가리라 다짐했었지만 그 꿈이 가출의 결과물로 인한것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한적 없던 터라 불현듯 두려움이 일었다.

 “염병. 이래 죽으나 저래 뒈지나 마찬가지. 오크 머리나 돼지 머리나, 보리술이나 밀술이나, 취하긴 마찬가지, 겉보기엔 비슷은 매 한가지다!”

  제법 호기롭게 외치고 벌떡 일어난 카이라는 이제껏 걸어 올라왔던 길 저 굽이쯤을 일별하고 뒤돌아 비탈길을 뛰어 내려갔다. 아자~ 아자~ 아직은 굵지 못한 아이들 특유의 고음이 연이어 퍼지며 주르륵 주르륵 비탈길 따라 미끄러지듯 뛰어 내려갔다. 그렇게 미타나 산 남쪽 능선 열 두 번째던가 세 번째던가 하는 산봉우리 위로 봄기운 충만한 하늘은 화창하기만 하였던 것이다.


                                            


 “에헤헤. 에헤헤헤헤. 훌쩍. 키잉.. 저기요~ 용사님들~~ 제가 감히 용사님들을 눈앞에 두고도 눈이 멀어 미쳐 몰라봤어요. 자칭 현자 메이슨 할아버지께서도 일찍이 설파하셨듯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면 안된데요. 산다는게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님을 저라고 왜 모르겠어요? 그저 힘없고 배 고픈게 죄라면 죄인거지요. 그렇죠? 용사님이 미천한 저도 아는 사실을 모를리 없을꺼에요. 아하하하하하~ 그런데 그 시큼한 모이야 열매는 왜 꺼내세요? 아.. 이런 절 씻겨주시는 거군요. 이거 몸둘바를.. 용사님께서 손수 저를 위해 고귀한 손을 드시다니.. 미천한 소인은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으헉~ 읍읍읍~ 우어어엉.......”

   시큼한 맛에 검붉은 빛 나는 모이야 열매가 입안가득 밀려 들어왔다. 천상 촌놈인 카이라가 모이야는 이렇게 생으로 먹을만한 열매가 못됨을 모를리 없었지만 이건 그야말로 불가항력, 속절없이 발버둥만 치며 최대한 가련한 표정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저 용사라 불러주었던 족속이 과연 나의 이 애절함을 알수있을런지는 극히 회의적이었다. 아니 이 어수선한 분위기와 짧은 시간동안 경험한 그들의 성품으로 봐선 절대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버려가며 굽실거리는건 생명연장이라는 원대한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난 살고 싶어’

 ‘아직 난 숫총각이란 말이야’

 ‘아니 총각으로 죽을수는 있어도 나는 절대 식사거리가 될 수없어~~~’

 ‘이 씹어먹을 오크 놈들아~ 나 먹기만 해봐. 내가 죽어도 못죽어. 아니 니네들 먼저 씹어먹기 전엔 절대 죽어도 안죽어~ 이 오크쉐이들아~’

  그렇다. 엊그제 그 화창한 날에 미타나 남쪽 능선 열두번째던가 열세번째던가 산 봉우리에서 봤던 북부대로는 너무나 멀었던 것이다. 찬장을 뒤엎듯 뒤져 가지고 튀었던 빵 쪼가리는 가출 하룻만에 다 떨어졌고 천상 촌놈이 아니었다면 죽어도 진작 굶어 죽었을 고생을 한끝에 오붓하니 노루 한 마리 굽고있던 오크 세 마리를 본 순간 한마디로 죽어도 좋아였던게 죄라면 죽을 죄였던 것이다. 아니 처음에는 너무 좋았었다. 기세좋게 패대기 칠때만 해도 자신이 마치 인간의 전설, 패왕 크라이젠 대제가 된 기분이었다. 대충 깍아 손에 든 나무 막대기는 대제의 신검 뮤온에 버금갔으며 강탈한 노루 고기를 뜯을때는 대륙을 석권한 대제가 부하이자 친구들에게 베풀었다는 최후의 만찬이었음에 달리 무어라 할것인가...

 ‘어?? 최후의 만찬??? 자칭 현자 메이슨 할아버지 말마따나 그 만찬 이후로는 친구고 부하고 주군이고 없이 다 함께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잖아. 그리하여 오욕과 영광의 길을 걸어 마침내 형장에서 사라져간 대제의 종말은???? 커헉~ 나의 운명은 천년도 더 전에 그처럼 역사가 이미 예언을 했었구나. 정녕 저 흉악한 오크의 아가리 속으로 쳐 먹혀 끝날 내 생이더란 말인가.. 오오 대제여!!! 어찌하여 영웅의 길은 운명의 시샘속에 스러져야 한단 말이나이까?’

 그 와중에도 복수의 몬스터, 오크의 습성을 생각도 못하고 먹는것에 눈 멀어 오크 세 마리가 슬금슬금 사라진걸 신경한번 안쓴 자신의 잘못을 인정 못하는 카이라였다. 아니 부른 배를 득득 긁으며 행복해 하다가 여섯 마리가 되어 쫓아온 오크 추격단을 한번 더 짓이겨주면서 내심 영웅 소설을 쓰던 카이라였으니 생명연장의 꿈이 무너지는건 당연한 결말이었음에도 끝끝내 하늘에게 원망을 돌리는 뻔뻔함을 보여준거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회한을 곱씹고 있는 중에도 모이야 열매는 참으로 당연하다는 듯 카이라 온 몸 구석구석에 꼼꼼히도 발라지고 있었다. 고급 입들은 사용않는 것이지만 평범한 입을 가진 이들에게 모이야 열매는 보통 고기를 연하게 하고 특유의 노린내를 없애는 향신료로 널리 쓰이고 있는 열매였다. 작년 건너 마을 가젤씨 댁의 마당에서 방복하던 닭한마리를 슬쩍 해와 바로 이 모이야 열매를 쳐 바르면서 얼마나 흡족해 했었던가. 그리하여 내내 흐르는 침을 주체 못해 하마터면 생닭을 먹을 뻔 했던 기억이 새로운 카이라였다. 아닌게 아니라 나무 줄기에 꽁꽁 묶여 처박힌 자신 주위로는 이따위 짓을 왜 하는지 납득이 전혀 되지 못한 오크 떼가 병풍처럼 둘러 서 있었다.

 “크르르. 취익취이익.”

 “취익. 줄줄줄 흡. 꿀꺽~”

등과 엉덩이에 열매를 짓이겨 바를때는 차라리 나았지만 빙글 돌려 얼굴로, 가슴으로, 모이라를 발라갈 때 쯤에는 카이라의 머릿속은 텅 비어갈 수밖에 없었다. 짙은 갈색에 거칠고 투박한 피부. 흡사 돼지를 연상시키는 코와 아랫입술을 비집고 위로 삐죽 솟은 두개의 송곳니. 그리고 무엇보다 더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저 숨소리와 그 숨에 베인 썩어가는 짐승의 노린내라니. 제 2차 추격대가 눈앞에서 불쑥 솟아났을 때에야 그 무리가 열 마리를 훌쩍 넘어간걸 확인하고 슬슬 도망가야겠구나 생각하긴 했었다. 하지만 어느 새 뒤쪽 수풀 사이에서 조잡하지만 창과 활 비슷한 무기로 무장한 오크 이십여 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뛰어 나오는 순간 카이라는 바로 무릎을 꿇으며 최대한의 존경의 염을 담아 신검 뮤온(?)을 두손 떠 받들어 바치며 머리를 조아렸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오크가 나서 그 신검 뮤온(?)을 받아 들때만 해도 속없이 서광이 보이구나 했었지만 곧바로 그 신검 뮤온에 팔 다리 묶인채 오크 야영지까지 들려 왔던 것이다. 그런 과정후 지금 카이라의 몸은 모이야 열매의 검붉은 즙과 주위를 둘러싼 참을성 부족한 오크들의 타액에 뒤범벅 되고 있었다.

 “..... 그러해서 제가 눈이 뒤집혀 감히 용사님들의 식사를 다 먹어버리고 말았던 거죠. 아차 싶어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제가 때려 죽일 죄인인 거죠. 악. 아니다. 그건 아니구요~ 저에게 하해와 같은 은총을 베풀어 은혜를 모르는 인간이란 종족의 숙명을 벗어버릴 수 있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용사님. 게다가 이놈은 무척이나 고기가 질길뿐만 아니라 냄새도 심해서 용사님들의 찬꺼리로는 부족할 뿐이랍니다. 그러니 제발 자비를..”

  입안 가득찬 열매를 애써 내뱉고 카이라는 필사의 궁극 아부를 떨어보지만 오크떼는 장차의 식사꺼리에(?) 이미 해탈 내진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듯 몽롱해 할 뿐이었다. 그나마 자신에게 얌념장을 바르고있는 우두머리 오크가 약간의 관심을 가져줄 뿐이란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차치하고 말이다

 “퍼억”

 “커억”

배를 강타 당한 카이라가 입을 쩌억 벌리자마자 오크 대장은 카이라가 바닥에 토해낸 모이야 열매 즙을 척척 긁어 모아 다시 카이라의 입안으로  가득 밀어넣을 뿐이었다.

“에이 퉤~ 그래 좋아 이 오크쉐이들아~ 잘 먹고 잘 살어라~ 누구 입에 풀칠할지 모르겠지만 잘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고 니네 십팔대 조상까지 아주 자알~ 빌어 쳐먹을꺼다. 나 죽어서 니네 십팔대 조상 보면 내가 다 잡아먹을테니 내 때깔이 더 곱겠군. 푸하하~ 쉬파, 내 말이 말인지 소인진 몰라도 내가 알게 뭐야. 염병 말만 꼬이네. 더럽게 침좀 그만 흘리고 줄을 서 줄을. 무식한 놈들아. 그래서야 순서는 커녕 국물도 안남겠다”  

 막판이다 싶은 카이라의 온갖 욕지꺼리에 갑자기 오크 떼들은 정적에 휩싸옇다. 이윽

고 오크 떼들은 크게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취이익 쿠르르 쉬아 챠이 흐약 카악 쿰 취익 슘!

취이익 취이익 쿰 슘 캬악 크 나훔 췩췩췩

췩췩 인간.. 고기 취이익. 크르르 취아악

갑자기 주위 기온이 한 십여도는 더 올라간 듯 후끈해졌다. 기이한 열기. 더욱 거칠어지는 숨소리. 아예 내놓고 흘러 넘치는 타액 덩어리. 후욱후욱 끼쳐오는 짐승의 냄새.

‘쉬파 엿됐다. 이 흉물스런 놈들이 기어이 이 어르신을 날로 먹으려 하는구나.’

카이라가 이젠 끝장이구나 생각할때쯤, 우두머리 곁에 쪼그려 앉아 유독 군침을 삼키던 극악 무식한 외양의 오크 한마리가 펄쩍 뛰올랐다

 “아파~ 이 오크쉐이야. 쉬파 먹어도 씹진 말란 말이야~ 으악~ 대제여! 신이여! 망할 하늘이여!”

여리디 여린 나의 종아리에 저 위험한 송곳니를 들이 밀다니, 저 쉐이 십팔대 조상부터 오늘 밤 저승 찬거리다라는 말은 채 내뱉지도 못하고 찢어지는 비명을 토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없이 더더욱 이빨을 쑤셔박는 오크놈. 그러자 주위에서 시끄럽게 췩췩 거리던 나머지 오크의 눈이 돌아간건 정말 순간이었다.

 “빠악!!!!”

 “쿠에에에엑~~”

지난 해 영주님 생신에 맞춰 황송하옵게도 친히 하사해 준 돼지 잡을 때의 그 돼지 멱따는 비명이 왜 지금 나오지?

열매즙과 타액에 붙어버리기 직전인 눈꺼풀을 힘껏 치켜 뜬 카이라의 눈 앞으로 이해할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종아리를 물어 뜯던 오크놈은 머리가 깨져 한편에 뻗어 있었고 그 주위로는 아무 규칙도 없어보인 조합으로 집단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그 와중에 쓰러진 다른 오크의 그나마 연해 보이는 뱃살을 물어 뜯는 녀석까지도 있었다.

 ‘어? 이것이 대체 어찌된 시츄에이션이지?’

그러나 누구하나 자초지종을 친절히 알려줄꺼라면 그건 오크가 아닐 것이다.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을 식사거리로 만든 족속이니만큼 자신의 의문을 친절히 설명해줄리는 더더욱 없지 않겠는가. 역시나 카이라의 의문에는 상관없이 수많은 오크 떼들은 지네들끼리 열심히 서로에 대한 적대적 기세를 불태울 뿐이었다.

 “꽤엑~”

또 한 마리가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아니 아직은 떡은 아니었나? 피떡이 된줄 알았던 그 오크는 힘겹게 눈을 뜨다 카이라의 벗은 몸을 보더니 사라져가던 광기가 다시 번득였다. 부들부들 떠는 손을 들어 카이라의 몸에 걸친뒤 흡사 똥싸는 듯한 기합과 함께 쭈욱 몸을 당겨와서는 대뜸 흉측한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다시 한번 하늘을 원망하는 카이라. 역시 하늘은 협박에 약한지 곧장 연이어 들리는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 이윽고 다시 한번 그 기억도 새로운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카이라의 허벅지를 물어뜯으려던 오크는 저 멀리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얼추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숫자들만이 땅에 두발로 서서 스스로가 제일 강자임을 증명하려 하였다. 이제는 이 난데없는 집단 난투극의 방법도 달라져서 서로들 경쟁적으로 카이라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놈이 왼쪽 팔을 물면 저놈은 오른 다리를 물어뜯고 그럼 그 옆이나 뒤에 다른 놈들이 식사거리를 선점한 먼저의 오크 몸통을 들이 받아 저 멀리까지 날려 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빨을 쑤셔박고 있었다. 급기야 거의 열 마리 정도가 한 범벅이 되어서 땅바닥을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다. 이제는 누가 먹이이고 누가 포식자인지도 구분 가지않을 지경이었다. 그저 걸리는 대로 아무 팔이든, 다리든 물어뜯는 오크들. 악에 받쳐 물어 뜯다보면 오히려 자신의 신체 어딘가가 통째로 뜯겨 나가는듯한 고통이 물밀려 오고 그러면 염치불구하고 목놓아 비명을 지른 다음에 발작적으로 내쳐 남의 다리를 더 흉폭하게 물어뜯어 버리는 그런 잘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지 라는 모드였다. 아! 물론 우리의 카이라는 인간의 격에 맞게 양손으로 꼬집고 할퀴고 비트는등 다양한 공격까지 선보이고 있었고.

 “으악. 돼지새끼가 사람무네”

 “쿠에엑”

 “꽤에에에에엑”


                                           


“허어. 거 참.. 인세에 다시 못볼 장관이로세..”

약 10옥터 떨어진 전나무 숲 사이에서 실소와 함께 나온 말소리였다. 약간의 허탈함이랄까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맞딱뜨린 경우에 보이는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 웃음이었다. 사내의 목소리는 군데군데 가래가 끓는 듯한 탁한 음성이었다.

“그거 참, 저놈들 한무리 부대와 마주칠때는 이 흉켈 어르신의 명이 다하나 했더랬는데. 어딜 그리 바삐 가느라 본체 만체 하나 싶어서 죙일 따라 다닌 보람(?)이 여기 있었구먼.”

자칭 흉켈이라 부른 사내는 장년의 나이쯤에 좀 낡고 지저분했지만 분명 기사의 투구를 완비하고 있었다. 성난 고슴도치 수염이 얼굴에 수북했고 간간히 씨익 웃는 미소의 끝자락에는 잔인함이랄까? 평범 이상의 어떤 결단력이 있어 보였는데 전반적인 인상은 기사라기 보다는 흡사 산도적떼의 두목과 같았다. 자신의 뒤로 한 3옥터 쯤 떨어진 곳에 얌전히 서있는 애마를 돌아본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게나 던져둔 바스타드 소드를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 애석하도다. 이 어르신의 무예를 저까짓 오크에게 선을 보이다니.. 뭐 그래도 기사인 내 신분이 죄라면 죄인지라 어려움에 처한 인간을 나 몰라라 할수는 없지 않겠어. 난 너무 마음 여린게 탈이야. 아암 그렇고 말고. 그나저나 저 꼬마애 쓸만한거라도 들고 있음 좋을건데...”

경계고 뭐고 아무 필요 없었다. 그냥 산책이나 가듯이 아니면 옆동네 물 좋은 술집으로 원정가는 양아치들마냥 유유자적, 건들건들 걸어갔다. 가끔 쓰러진 오크들 중에 꿈틀거는 놈이 있다 싶으면 드립다 장작패듯 바스타드 소드로 후려쳤던게 다였다. 그 거칠 것 없는 걸음이 멈춘 다음에 흉켈의 입에서는 난감한 중얼거림이 흘러 나왔다. 그렇다. 정의의 기사가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크들은 자신의 출현을 전혀 의식하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딱 좋을 정도의 숫자만 남았고 그보다 반길만한 몰골로 피떡이 되어있는 오크무리가 아니었다면 맹세컨대 흉켈 어르신은 여기 서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이~ 거기? 여기좀 봐주지~~”

다시금 극도의 인내를 발휘하여 십여마리 뿐인 오크 떼들에게 영웅의 등장에 집중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흉켈이었지만...

 “꾸에엑 꽥꽥꽥”

 “이 돼지 새끼야 어딜 물어 쉬파~”

  휘이이잉~~

  ...........

 “아니 그러지 말고 여기좀 봐보라니깐”

 “새꺄~ 넌 이제부터 제사상 받긴 틀렸어”

 “크르르. 취이이익 크아아악 췩췩취익”

흉켈은 참 난감하였다.

이미 자신의 능력으로 잠재울 정도로 숫자까지 줄어든건 한참 전이었다. 아니 지금 정도는 훈련소 신출내기 사병 정도도 식후 운동감으로 악다구니 쓰고있는 저것들을 영원히 잠재울수 있을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흉켈 자신은 명색이 그 이름도 거룩한 기사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런 고귀한 존재인 이 흉켈이 친히 왕림했건만 이 미천한 생명체들이 본체만체하니 배알이 뒤틀리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아니 배알 꼬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폼이 안나잖아~”

아. 묘사에 억지스러움이 있었다. 본인이 아니랜다. 자랑스런 기사의 명예는 커녕 뒤틀린 선민의식이라도 있을까 심히 의심되는 정말 특이한 세계관을 지난 기사가 바로 이 흉켈 어르신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더 이상의 시간 낭비는 정말 폼 안나는 등장일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른 흉켈은 주저하지 않았다.

우어어어~~

부웅~ 부웅~

섬세함이나 날카로움과는 전혀 닮은곳 하나 없는 둔중하지만 무식하기 짝 없는 소리가 퍼지고 순식간에 오크 서너마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한덩어리로 구르던 덩어리에서 한쪽이 그렇게 뜯겨나가자 마자 알몸에 온갖 끈적인 물질로 뒤덮인 인형이 퉁기듯 튀어 올랐다.

 “크크크크크크크크크, 쿠흐흐흐흐, 음하하하하하핫”

살점이 찢겨 너덜거리거나 말거나, 몇 년전부터 누구 한명에게 보여준적 없는 자신의 소중한 곳이 심하게 방울 치든 말든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소년은 흉측한 광소를 흘리며 두 눈으로는 시뻘건 귀기를 줄기줄기 내 뿜으며 서 있었다.

죽어 죽어, 으흐흐흐 한방에 그만 죽어버려, 새꺄~

말과는 달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오크 한마리의 손가락 끝부터 발가락끝까지 자근 자근 밟아버리는 카이라였다. 주방에 침입한 바퀴를 밟듯 그렇게 체중을 실어 꾹꾹 짓이긴 다음 마지막으로는 우드득 우드득 발을 비벼보이까지 하는 카이라였다.

퍽!!!!

으음.. 스르륵 털썩.

 “꼬맹아. 그냥 자고 있거라. 이런 사악한 무리는 정의의 기사인 이 흉켈 어르신에게 맡기고 아이는 좋은것만 보고 좋은것만 먹고 좋은것만 생각해야 하는 법이란다”

흉켈이었다.

장대한 몸집을 흔들며 벌큼 벌큼 웃는걸로 미루어 봐서 방금 카이라 뒷목에 작렬했던 일타는 그의 솜씨임이 틀림없었다. 카이라를 대충 한켠으로 걷어 낸 그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남은 오크 무리를 섬멸하기 시작하였다. 날카롭게 번득이는 눈은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겠다는 듯 쉬임없이 적들의 행동을 좇았고 굳게 다문 입매는 노련한 검사들의 흐트러짐 없는 호흡 그대로였으며 저 한치의 어긋남도, 망설임도 없는 무정한 칼질은 그가 진정한 승부사 기질의 소유자임을 말하고 있었다. 다만 그 상대들이 특이하게도 땅바닥에 붙어 뒹구는 상황인지라 엉거주춤한 화장실 폼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끄흑.. 뒷골이야.”

천상 촌놈인 카이라가 경이적인 회복력을 보였다. 골을 쥐며 휘청하는 위태한 자세로 용케 몸을 바로 세워가고 있었다. 순간 장작패던(?) 흉켈의 어깨도 움찔거리더니 급하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흐으으으으으읍~~ 하아!!

정신을 맑게하는 낭랑한 기합성이 흉켈의 입에서 터져 나오며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가 땅을 스치듯 휘돌다 허공으로 치솟았다. 쿵하는 구름발을 내딛는 소리가 그 뒤를 따르고 다시 한번 원을 그리며 바닥을 스치듯 도는 바스타드 소드. 한번, 두번, 세번, 네번 힘찬 구름발 소리와 사선으로 수직으로 수평으로 어지럽게 돌아가는 거대한 도의 그림자.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압!!!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드래곤의 날개짓 소리가 이럴까. 장쾌한 남성의 기합성이 하늘을 울리고 천지를 찢어 발기는듯한 굉량한 파공음이 하늘을 가를때 먼지와 자잘한 돌맹이들은 태풍처럼 비산하였다

콰앙~

그리고 찾아온 이 숨막히는 듯한 정적..

카이라는 눈을 비볐다. 무언가 자신이 모른 사이에 대단한 일이 일어났다며 본능은 쉬임없이 경고를 보내왔고 눈에 스며든 모이야 열매인지 내 피인지 오크들의 피인지 그도 저도 아님 땀인지 모를 어느 것을 닦아내었다. 따금거리는 눈을 필사적으로 뜨고 가까스로 시야를 확보한 카이라에게 사선으로 뉘엿 넘어가는 태양빛에 역광으로 번쩍이는 이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한쪽 무릎을 땅에 꿇고 있는 이의 모습.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가 땅에 거꾸로 쳐박혀있고 그 손잡이 끝을 두손으로 굳게 움켜쥔 기사!!!!!!

투구는 무릎 앞에 굴러 떨어져 있었고 몸은 급격하게 위아래로 크게 오르 내린걸로 봐서는 틀림없이 방금 일생일대의 일격필살을 날리고 무리한 한 수 끝에 찾아오는 육체의 격심한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걸로 추정되었다. 얼른 주위를 둘러본 카이라의 눈은 경악으로 부릅 떠졌다.

 “어찌 이럴수가... 그 많던 흉악한 돼지 새끼들이.. 모두.. 모두.. 모두 피떡이 돼었어..”

그렇다.

못잡아도 삼십마리 이상 되어 보이던 그 오크들은 한결같이 거대한 회오리 바람에 쓸렸던 듯 어디 성한데 한군데 없이 만신창이가 되어 몽땅 뻗어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더 가공할 만한 사실은 외따로 엎어져 있는 오크들은 마치 맹수가 발톱을 세워 찍어 누른것처첨 살점들이 뭉텅이로 뜯겨 있기까지 하였다. 오오 게다가 땅박에 어지럽게 나있는 저런 흔적이라니..

카이라의 눈은 더할수없이 커졌다.

 “이건.. 이건.. 마.. 마. 마마마마마법. 마법이야 마법.”

 “형제! 이것은 마법이 아니라네. 이것은 검사의 검에 의한 흔적이라네. 크어 쿨록쿨록”

카이라는 믿을수 없었다. 자신도 나름으론 검을 만져왔지만 검에 의해 이러한 위력이라니? 생각은 커녕 꿈에서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경지였기에 마음속을 울리는 충격은 가히 경악이었다. 자칭 파란만장 길고 긴 자신의 열 여섯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눈에 보이는 경지는 보도 듣도 못한 것이었다. 카이라는 떼로 피떡이 되어 엎어져있는 오크 무리를 내려다 보았다. 이와같은 상황을 검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검 한자루로써 찌르고 베고... 으음.. 이건 숫제 장작을 팬거군. 이건 도끼도 그냥 도끼가 아니라 솥뚜겅 사이즈 정도로 팬거구 저건 아예 찢어낸거잖어.. 어찌 인간의 몸으로 단 한번에 이만큼의 기오막측하고 신기묘묘할 정도의 전혀 다른 검을 발출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게 아니래도 이 바닥에 새겨진 마치 지렁이가 기어간 듯한 흔적들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 흔적의 끝에는 어김없이 오크가 죽은 듯 자빠져있는 사실로 미뤄볼 때, 이는 칼질을 하면서도 오크들이 절대 도망을 못가게 기이한 힘으로 이놈들을 얽어맸다는 건데.. 딸랑 검 한자루로 그런 불가사의한 요술같은 일을 벌일수 있단 말인가? 카이라는  지렁이 기어간 것 같은 수많은 어지러운 흔적들을 손끝으로 만져가며 중얼중얼 거렸다. 인간이 아니야. 그냥 검술도 아니야. 이건 이건.. 이건 마치.. 그러니깐. 그래 맞았어 검신이야 검신.. 검의 신이야!

흉켈은 카이라의 이런 중얼거림을 다 듣고 있었다. 숨이 가빠서 헐떡인건 맞지만 그래도 명색이 기사인데 범인들 보다는 귀나 눈 등 감각이 발달해 있는데다 온통 신경을 카이라에게 집중을 했으니 못들을리 없었다. 게다가 소년의 저런 반응은 자신의 기대 이상을 한참 넘어서는 것이라 참으로 싸가지가 있는 어린 자식이구나 싶어 그저 흡족할 뿐이었다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