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게 들이대는 그녀-_-

이원영2007.02.14
조회12,921

내가 근무하던 피씨방은 대형 마트 옆에 있는 학원 상가 건물에 위치하고 있어서

 

낮에는 손님이 제법 많지만 마트 영업 시간이 끝나고 학생 출입 금지 시간인 야간엔

 

손님이 거의 없는 피씨방이다

 

 

 

글 쓰는 게 직업인 나로서는 선배의 부탁도 있고 어차피 깨어 있는 시간이기에

 

야간에 피씨방을 대신 봐 주고 있었다

 

일한 지 한 달 동안 손님이라고는 매일 와서 ‘써든’을 하는 두 명의 단골손님 말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서 가끔은 혼자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는 그런 피씨방이다


 

 

그날도 역시 단골손님 두 명만 있던 여느 때와 다름 없던 날이었다

 

연재독촉에 시달리던 나는 간만에 필 받아서 신 들린 듯 글을 쓰고 있었다

 

 

 

그 때 피씨방 문이 열리면서 모자를 눌러 쓴 여자애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한 눈에 딱 봐도 가출 청소년 같은 고딩틱한 아이였다

 

그러나 가뜩이나 손님도 없는데 간만에 온 손님 내쫓는 것도 뭐 해서

 

그냥 별 말 없이 카드를 건네줬다

 

그러자 그 여자애가 갑자기 모자챙을 들고는 날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민증 검사 안 하나요?”


 

 

뜻밖이었다. 자기 입으로 민증 검사 안 하냐고 묻다니


 

 

“미성년자는 지금 시간에 출입금지잖아요? 왜 민증 검사 안 하죠?”


 

 

난 할 말을 잃고 잠시 멍하게 그 애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어서 더듬더듬 말했다


 

 

“아 죄, 죄송합니다... 그럼 민증 좀...”

 

 

 

“저 민증 없거든요”

 

 

 

“네?”

 

 

 

“민증 없어요. 분실 했거든요”


 

 

난 황당한 표정으로 그 애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애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또박또박 내게 말했다


 

 

“861231-21xxxxx 이름 최강자”

 

 

 

“네?”

 

 

 

“그게 내 민증 번호예요. 의심 나면 핸드폰 소액 결제로 내 민증 번호 증명할 수 있어요”


 

 

그 애는 이렇게 말하고는 볼 일이 끝났다는 듯 획 돌아섰다

 

난 멍하게 그 애의 뒷 모습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꽤나 놀라고 있었다

 

일단 그 애가 미성년자가 아니라 무려 86년생이었다는 게 놀라웠고

 

둘째로 분위기는 불량학생인데 말 하는 건 무지하게 똘망똘망했고

 

셋째로 그런 똘망똘망한 애의 이름이 ‘최강자’라는 게 놀라웠다

 

(요즘 시대에 딸래미 이름을 ‘강자’로 짓는 아브지도 있다냐!)


 

 

여튼 심상치 않는 여자애였다. 온 몸에서 ‘아우라’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잠시 넋이 나갔던 나는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글에 집중하였다

 

오늘은 기필코 보채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업데이트를 해야만 하리라...


그 때였다


 

 

“저기요”


 

 

문득 고개를 드니 그 여자애, 최강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아 네에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금연석에서는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거죠?”

 

 

 

“네?”

 

 

 

“저 두 사람 지금 금연석에서 담배 피우고 있거든요”


 

 

최강자는 손가락으로 단골 손님을 가리켰다

 

물론 금연석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손님이라곤 꼴랑 둘 밖에 없는 이 피씨방에서 금연석 흡연석 따질 건 없잖은가


 

 

“아... 지금은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서요...”

 

 

 

“손님이 없어도 금연석에서는 담배 피우지 말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 물론 그게 원칙이긴 하지만... 어차피 손님도 없으니...”

 

 

 

“전 손님 아닌가요?”

 

 

 

“아... 물론 그렇지만... 손님께서 그냥 다른 자리에 앉으시면 안 되실런지...”

 

 

 

“전 흡연석 자리에 앉기 싫거든요”

 

 

 

“아 지금 시간엔 더 이상 손님이 오지 않거든요. 앉으셔도 괜찮으시...”

 

 

 

“아뇨. 전 흡연석 자체가 싫어요. 저 손님들보고 옮겨 달라고 해 주세요”


 

 

그녀는 또박또박 똑 부러지게 내게 말했다

 

정말 이름대로 ‘최강자’였다

 

할 수 없었다. 난 단골손님들에게 ‘컵라면 서비스’를 하면서 흡연석으로 자리를 유도했다.

 

 

 

단골들에게 컵라면을 서비스 하면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까칠한 그녀 성격에 단골들에게만 컵라면 줬다고 따지기라도 하면

 

꽤나 피곤해질 거 같아서 그녀에게 가서 물었다


 

 

“컵라면 하나 드시겠습니까?”


 

 

그녀는 날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강매하시는 건가요?”

 

 

 

“아뇨-_-; 컵라면은 써비스입니다”

 

 

 

“써비스요? 원래 돈 받고 파는 거잖아요?”

 

 

 

“아~ 그렇긴 한데 저 두 분에게 서비스 했는데 손님께도 서비스 하는게 맞을 거 같아서요”


 

 

속으로는 ‘니가 난리칠까봐 그런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_-

 

최대한 정중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최대한 신뢰를 줄 수 있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녀는 오늘 피씨방 들어와서 처음으로 살짝 표정이 풀리면서 말했다


 

 

“음... 전 그냥... 마음만 받을게요”


 

 

마.음.만.받.을.게.요

 

마.음.만.받.을.게.요

 

마.음.만.받.을.게.요

 

 

 

“아 네에...”


 

 

뭔가 가슴이 콱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며 내 자리로 돌아왔다


마음만 받겠다니...

 

이 분위기에서 저따위 대답이 어울리기라도 한다는 건가...


 

 

여튼 까칠하게 댐비지 않은 게 어디냐는 심정으로 난 다시 글 쓰는 데 집중했다

 

아까의 신들린 듯한 글빨은 어디론가 다 날아가고

 

진도 드럽게 안 나가는 상태로 억지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빠드드득!!! 빠드드득!!!”


 

 

어디선가 쇠파이프 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소름끼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며

 

어디서 들려오는 소린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골손님 둘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열심히 게임을 하는 게 보였다

 

그렇다면 저 쇠파이프 가는 소리는...


 

 

나는 상당히 불길한 기분으로 최강자가 앉아 있는 자리로 가 보았다


 

 

“에그머니나!”


 

 

난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그녀가 키보드에 옆얼굴을 기댄 채 날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무서웠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무서웠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만큼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


 

 

겁에 질려 가만히 서 있던 나는

 

비로소 그녀가 눈 뜨고 자고 있는 줄-_- 깨닫게 되었다

 

눈 큰 애들이 잘 때 눈 뜨고 잔다고 말은 들었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괴기 영화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눈 뜨고 이빨을 갈고 있었다

 

더 기가 막힌 건 키보드의 비닐에 그녀의 침이 범벅으로 흘러 내리고 있었다-_-...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똑 부러질 정도의 똘망똘망함...

 

사람 질리게 할 정도의 까칠까칠함...

 

그러나 어울리지 않는 오버스러움-_-...

 

게다가 이렇게까지 놀라운 추잡스러움이라니-_-...


 

 

그녀 앞에 선 나는 어쩔까 잠시 망설였다

 

그냥 이대로 놔 둬야 하나

 

아니면 눈이라도 감겨줘야-_- 하나

 

이빨 상하지 않게 자갈이라도 물려줘야 하는 건지


 

 

뭣 보다도 이대로 놔 뒀다간 키보드에 침 들어가서-_- 망가질 거 같았다

 

(침이 들어가서 키보드가 망가질 정도라니!!!)


 

 

할 수 없었다

 

일단 그녀의 눈부터 감겼다

 

그리고 머리를 살짝 들어서 키보드를 빼냈다

 

키보드 겉에 씌운 비닐을 타고 침이 주르르 밑으로 흘렀다

 

(이거 그냥 놔 뒀으면 나중에 일어나서 ‘스르릅!’ 하고 다시 입으로 마셨겠지!)


 

 

차마 입에는 자갈을 물리지는 못했지만

 

자는 자세를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쿠션으로 가슴과 머리 부분을 대 주었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고 새근새근 잠만 잘 자고 있었다

 

진짜 최강자다-_-b


 

 

 

 

다음날 오전 7시

 

무려 여섯 시간동안 한 자세로 ‘아주 달게’ 자던 최강자가

 

드디어 기지개를 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자기 어깨에 덮여 있던 내 겉옷과

 

품에 안겨 있는 쿠션 등을 멍하게 바라보던 그녀는


 

 

“...... 앗!”


 

 

이제야 상황파악이 됐는지 깜짝 놀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잤어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무안한 듯 모자챙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살짝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요?”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이구 그런 말이 어딨어요. 피곤하면 당연히 잘 수도 있지요”

 

 

 

“그래두... 공공장소인데... 시끄럽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크게 인사를 했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니...

 

설마 그녀는 자신이 이빨을 갈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는 뜻인가?


 

 

“그럼 혹시... 본인 잠버릇을 알고 있으신 거예요?”


 

 

나의 질문에 그녀는 그 큰 눈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듯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 뜨고 자는 것두 알구요... 이빨 가는 소리가 심한 것두 알아요...”


 

 

이런...

 

침을 홍수처럼 흘리는 건 모르는가 보네-_-...


 

 

“저두 제 잠버릇을 알아서여... 그래서 찜질방두 못 가구여...

 

 그래서 잠을 며칠 째 못 자서 오늘 실례가 컸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을 며칠째 못 자다니...

 

확실히 가출한 것은 맞긴 맞나 보군...


 

 

“괜찮아요. 뭐 여기 피씨방이야 손님도 없는데 이빨 좀 갈면 어때요.

 

 그리구 눈 뜨고 자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 방해 되는 것도 아닌걸요”

 

 

 

“앗... 그렇게 이해해 주시는 거예요...?”

 

 

 

“그럼여~~ 이해 못 할게 뭐가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안쓰러워서

 

 보호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왜 ‘보호해 주고 싶다’ 라는 접대용 멘트를 생각없이 날렸었단 말인가...


 

 

저렇게 똑부러지고 까칠했던 이유가

 

빈틈 많은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왜 알지 못했었단 말인가...


 

 

"저기... 그러면요... (우물우물우물...) 되나요...?"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면서 뭔가 우물우물 거리지 않는가...

 

 

 

"네?"

 

 

 

난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었다

 

그런데 그녀,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면서 밝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잔뜩 감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내가 '네?" 로 되물은 것을 '네^^' 라고 대답해 준 걸로 착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퇴근한 뒤에

 

내 뒤를 쫄레쫄레 쫓아서 날 따라 왔고-_-...

 

난 그것도 모른 채 바보처럼! 아무 생각도 없이!

 

앞장 서서 그녀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고야 말았으니!!!!

 

(우어억!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흥분해서 쓰다 보니-_-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편에서 하도록 하자

 

그럼 여러분 오늘은 이만 안령-_-/

 

 

 

작가 홈 : http://www.cyworld.com/harang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