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아버진 새어머니를 얻으셨습니다. 제가 7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와 떨어져 할머니와 먼친척이 있는 시골로 이사가게 되었습니다. 그해 저희 할머니는 69세이셨습니다. 생활비 5만원에 할머니와 저는 끼니를 연명해야 했습니다. 또 얼마동안은 몇개월에 한번씩 돈을 받아서 쓴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3학년이 되서야 아버지가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셨고 두세달에 한번씩은 꼭 오셨습니다. 생활비는 당연히 5만원이지요..
전 그때 먼친척집을 떠나 빈우사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쪽방하나가 전부인 곳에서 할머니와 같이 살았지요.. 연탄불에 윗풍은 무지 심했고요... 끼니는 거의 라면에 밥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래야 양이 많다고 해서요... 그래도 도와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부대햄도 얻어다 먹고 고아원에서 옷도 얻어 입고 그러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던해에 다시 이사를 하게되었습니다. 그 전에 살던 우사는 완전시골이여서 지금비유를 하자면 동막골?? 슈퍼도 하나도 없고 걸어서 30분정도는 걸어나가야 조금한 구멍가게가 있었으니까요. 학교는 한시간 정도 걸어다녔습니다. 버스 가 시간마다 있긴했는데, 너무 어려서 버스탈줄을 몰랐었습니다. 할머니도 너무 옛날 분이시라 잘 모르고, 버스를 타려면 외각으로 걸어서 나가야했거든요.
그래서 시내로 이사를 하게 되었지요,.. 그때 부턴 생활비가 20만원이되었습니다. 제 용돈도 5만원이고요. 월세는 아버지가 따로 내주셨구요,..
집안 가전 제품은 TV랑 조금한 냉장고가 고작이여서 빨래는 손으로 해야했고 기름보일러도 아니여서 연탄을 매일 갈아껴야 했죠,..
고등학생이 되서야 기름보일러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철이 조금만 더 일찍들었다면 할머니께서 고생을 덜하셨겠지만 저도 철이 늦게 들게 되어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초등학교때 매달 찾아오시는 아버지는 학년이 올라가자 발길을 끊으셨습니다. 또 고등학교때 제가 취업을 일찍 나가게되었는데 그때부터 생활비도 끊겼습니다.
철이 들어 할머니를 조금더 편하게 모실생각을 해야 했던 저였는데, 어리석게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때였습니다. 취업을 나가 일을 하다가 졸업하기 직전에 사정이 있어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일자리를 빨리 찾아야 했고 다급했던 저는 아는 오빠가 소개시켜주는 일을 하려고 맘먹었습니다.
그 3달동안 할머니는 저만 기다리고 생활비는 제로였지요..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가 다시 일자리를 찾고 닥치는 데로 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고 얼마 안지나서 남친도 만나게 되고 또 얼마 안지나서 아버지가 찾아 오셨습니다. 할머니를 이제 모셔가겠다고 이젠 니인생 잘살라고 하면서,...
철이 덜들은 나머지 좋기만 했습니다. 남친도 있겠다. ㅎㅎ
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간후 전 조그마한 교회 옆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며 즐겁게 살고 있었지요,..그렇게 산지 한 3달쯤 지났을까? 밥늦게 집에 들어오는데 누가 문 앞에서 할머니가 왔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옆에 교회에 할머니가 와 계셨더군요,.. 할머니가 아버지랑 못살겠어서 돈5만원으로 택시타고 왔답니다. 집을 못찾아서 경찰서에 이틀계시다가 예전 다니던 목사님이 찾아주셔서 교회에 계셨다는겁니다. 너무 속상해서 아버지한테 막퍼부어 댔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 모시면 이런 고민은 끝나겠지만 제 인생도 평탄하진 않았습니다. 어려서 부터 교육이라고는 교자도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몸으로 부딪치고 아닌길이라도 직접가봐야 아는 인생을 살았으니깐요.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출을 받아 큰집이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지요,.. 너무나 기분이 좋고 감격이여서 제가 너무 대견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너무나 대견한 나머지 욕심이 나더군요,.. 공부에 대한 욕심이요... 그래 공부도 할수 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껏 안해본일도 없고 많은 경험을 했으니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되겠다 싶어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하지만 빚도 있고 매달 최소한에 생활비가 감당이 되질 안더군요.. 아침 8시에 나가서 새벽 2시나 되야 들어왔는데,.. 제생각대로 되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다시 직장으로 나가야 할시점에 할머니가 아프셨습니다. 어버지가 보고싶다더군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생전안하던 전화를 해서 오라했지요,..
아버지가 제가 사는 꼴을 보더니 할머니를 모셔가겠다하는 겁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거 같아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 그럼 내인생을 살자 하고 공부를 하기로 맘먹고 대학에 진학을 했지요,.. 당시 25세 였습니다. 학교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게 되어 열심히 였습니다. 아침 9시에 가면 12시가 되서야 집에 오는 생활을 했습니다. 두달만인가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어서 아버지한테 찾아 갔습니다. 저희 아버진 몇십년째 고물상을 하시는데 고물상안에 할머니를 모시는 겁니다. 고물상 안으로 찾아 갔는데 할머니가 정신병자 처럼 하고 있는것이 였습니다.
정신일 반 나가서 저도 제대로 못알아 보고,... 한참뒤에서야 절 알아보시더군요....
밥은 식당밥에 반찬이라곤 김치가 고작이니... 전 가슴이 아파 학교를 접기로 맘먹었습니다. 제가 다시 모시기로요 그래서 두달만에 어렵게 직장을 잡았고 할머니를 다시 모셔왔지요,..
회사를 다닌지 일년이 안되서 회사가 경제적으로 힘들어 급여가 안나오시 시작했습니다.
결국 또 할머니를 보낼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가 돈이 하나도 없어서요...
그래 또 할머니를 보내고 전 제생활을 수습하던 와중 남자를 만나게 되어 아이가 생겼고 지금은 혼인하였습니다. 시부모님께서 애초에 할머니를 모시라고 하더군요,.. 전그저 할머니랑 살았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는데 그런말씀을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그래서 집을 얻어 할머니와 저와 신랑과 아이가 살려고 맘먹었습니다. 아버지께 할머니 모셔가겠다고 했더니 너나 잘살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할머니란 짐이 무겁긴했습니다. 할머니가 처음으로 아버지랑 1년을 살았고 지금은 적응했겠지 하고 시부모님과 살기로 맘먹었습니다. 우리 시부모님도 어렵게 사시고 사정이 있서 그때 당시 비닐 하우스에서 살고 계셨기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기로 맘먹었습니다. 애기 낳고 한달쯤 지나서 할머니께 증손주 보여드릴려고 찾아갔습니다. 사실 월미도 놀러가려고 맘먹고 갔는데 할머니가 삐적 말라 뼈뿐이 없더군요.. 게다가 할머니를 본 첫대면이 맨밥에 고추장 비벼 드시고 있더군요... 신랑을 설득해 모셔왔습니다. 시부모님께 전화로 허락 맞고 그냥 무작정 모셔왔습니다.
시부모님이 이해해 주시고 할머니께 많이 잘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살면서 치매를 얻었고 또 할머니가 너무 옛날 분이라 서로 코드도 맞지 않는데다 제가 산후풍에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여서 다시 할머니를 아버지께 보냈습니다...
구정이라 할머니께 인사차 들렸습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맨밥에 김치하나 놓고 드시더군요...
저희 집에서 가실적에 왼쪽 팔목이 넘어져서 부러졌습니다. 반기브스를 한상태였는데 치매로 팔을 다 풀러놨었습니다. 다시 병원을 가야했는데 휴일이라 가진 못했고 아버지께 신신당부를 했었죠...
헌데 병원도 안갔나봅니다. 지금은 벼가 붙긴한상태 간은데 팔목뼈가 툭튀어나와있고 얼굴이며 손이며 상처 투성이에 세수도 못했는데 검으디 검은 얼굴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밑심이 없어 이틀에 한번꼴은 팬티에 변이 묻는데 옷도 안갈아 입혀져 있고 빨래는 해주는 건지...
너무나 많이 일이 있고 사연이 너무 길어서 말을 다 짤라 먹었지만, 저희 할머니는 아버지가 총 5번 모시고 갔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초등 6학년때 6개월을 못살고 내려왔습니다. 이유인 즉슨 아파트에 살았는데 아파트 현관문을 할머니가 못여십니다. 문을 안잠가 놓고 나가도 못열면 갇친생활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셨답니다. 문잠가 놓고 나가고 밥을 차려놓고도 며느리가 진지드시란 말을 안한답니다. 할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면서 저밥을 먹어야하는지 내가 먹나 안먹나 보려고 시험해 논거라고 저한테 말합니다. 두번째는 아까 말했다 싶이 할머니가 못산다고 택시타고 오고 세번째 부턴 할머니 집에 안살고 고물상에 살았습니다. 식당밥먹으면서 고물상이 외진데 있어서 어니 마실나갈때도 마땅치 않고 내가 할머니 구경시켜주려고 산 휠체어는 비바람 다 맞아 녹슬어 쓰지도 못하는 지경이고 제가 찾아가서 할머니 좋아하는 음식이며 과자며 사다주면 새엄마가 나 왔다간거 표시난다고 갔다 버리던지 개주던지 하던게 여러번이고, 챙피한 얘기지만 한여름에 제가 찾아간일이 있어서 땀이 너무나서 고물상 수돗가에서 샤워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봤나봅니다. 지나가가 보면 보이는 곳은 아니였지만 창문으로 봤다면서 소문이 났나봅니다. 저도 듣고 낮뜨거워 죽는줄 알았지만 그걸 할머니한테 퍼붰나 봅니다. 할머니랑 통화하려고 사준 핸드폰을 망치로 다 깨부서 버리고,..
지금 연세가 96세 이십니다. 나이에 비해 정정하시지만 약간에 치매도 있고 젊어서 허리를 다쳤는지 지금은 허리뼈 12개가 다 주저 앉저 있고 너무늙고 오래되서 감각이 둔해져서 안아픈거지 무진장 아팠을거 아닙니까...
또 머리가 매일 아프다 해서 ct도 찍어봤었는데 지금 연세가 많이 드셔서 머리에 흐르는 혈관이 막혀서 머리가 아픈거라고 어쩔수 없다고 하는데,..
오래사셔야 한 2년 더 사실꺼 같고 금방돌아가실꺼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학대아닌 학대를 받으며 살고 계시니... 저희 할머니는 무진장 단순합니다. 말 몇마디 해주고 먹을꺼 같다주면 그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할머닌 그런사람보고 내딸 내 아들 이러십니다. 지금 할머니 한테 저희 시어머니는 무진장 좋은분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단순한 사람인데,.. 왜 할머니를 그렇게 모시는지 솔직히 너무 못됐다고 생각됩니다. 아버지 입장과 새엄마 입장을 충분히 압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실 분이고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 조금더 잘해드리고 조금더 대우해 드리면 어디가 덧나는지 울 새엄마는 인천에서 젤 큰교회 권사라고 들었습니다. 기독교에 십계명에 나오지요
부모를 공경하라...
교회는 왜 다니는지....
저한테 보였던 행동을 보면 할머니한테 어떻게 하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러면서 매일 핑계는 저랍니다. 저때문에 할머니가 저러신다고,..
완전부인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불효에 이유가 될순 없지요,..
어떠한 이유라도 불효가 정당한 이유가 될수 없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솔직히 어떻게 사시는지는 짐작과 제가 본 모습으로 추측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생각이 8,90%는 맞는 다고 봅니다. 우리 집에선 저가 할머니를 가장 많이 알고 확실이 알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남은여생을 조금이나마 편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시는게 제 소망입니다.
여러분 저희 할머니 도와드릴 방법이 없을까요???
아버지가 완전학대를 하는것이 아니라 방송탈얘기도 아니고
아버지가 살아계시기에 정부에서 도움을 받을 여건도 안되고
할머니가 자식이 하나이기에 저아니면 아버지라서 오갈때도 없는 신세입니다.
구정때 갔더니 할머니가 죽을라고 두끼?? 굶었답니다. ㅎㅎㅎ
그랬는데 안죽는다고,.. 지금 저희 할머니 매일 제생각하고 죽을날만 받아놓고 사시는 거 같습니다.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한번 챙겨주나 생일도 아버지랑 3일 차이나는데 그것도 모르고 살겁니다.
저희 할머니 좀 도와 주세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글이라도 올려 봅니다.
제가 지금껏 살아온 27년은 무지 힘든 세월이였습니다.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아버진 새어머니를 얻으셨습니다. 제가 7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와 떨어져 할머니와 먼친척이 있는 시골로 이사가게 되었습니다. 그해 저희 할머니는 69세이셨습니다. 생활비 5만원에 할머니와 저는 끼니를 연명해야 했습니다. 또 얼마동안은 몇개월에 한번씩 돈을 받아서 쓴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3학년이 되서야 아버지가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셨고 두세달에 한번씩은 꼭 오셨습니다. 생활비는 당연히 5만원이지요..
전 그때 먼친척집을 떠나 빈우사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쪽방하나가 전부인 곳에서 할머니와 같이 살았지요.. 연탄불에 윗풍은 무지 심했고요... 끼니는 거의 라면에 밥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래야 양이 많다고 해서요... 그래도 도와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부대햄도 얻어다 먹고 고아원에서 옷도 얻어 입고 그러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던해에 다시 이사를 하게되었습니다. 그 전에 살던 우사는 완전시골이여서 지금비유를 하자면 동막골?? 슈퍼도 하나도 없고 걸어서 30분정도는 걸어나가야 조금한 구멍가게가 있었으니까요. 학교는 한시간 정도 걸어다녔습니다. 버스 가 시간마다 있긴했는데, 너무 어려서 버스탈줄을 몰랐었습니다. 할머니도 너무 옛날 분이시라 잘 모르고, 버스를 타려면 외각으로 걸어서 나가야했거든요.
그래서 시내로 이사를 하게 되었지요,.. 그때 부턴 생활비가 20만원이되었습니다. 제 용돈도 5만원이고요. 월세는 아버지가 따로 내주셨구요,..
집안 가전 제품은 TV랑 조금한 냉장고가 고작이여서 빨래는 손으로 해야했고 기름보일러도 아니여서 연탄을 매일 갈아껴야 했죠,..
고등학생이 되서야 기름보일러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철이 조금만 더 일찍들었다면 할머니께서 고생을 덜하셨겠지만 저도 철이 늦게 들게 되어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초등학교때 매달 찾아오시는 아버지는 학년이 올라가자 발길을 끊으셨습니다. 또 고등학교때 제가 취업을 일찍 나가게되었는데 그때부터 생활비도 끊겼습니다.
철이 들어 할머니를 조금더 편하게 모실생각을 해야 했던 저였는데, 어리석게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때였습니다. 취업을 나가 일을 하다가 졸업하기 직전에 사정이 있어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일자리를 빨리 찾아야 했고 다급했던 저는 아는 오빠가 소개시켜주는 일을 하려고 맘먹었습니다.
안양이라고 짐을 다 싸들고 오라하더군요... 순진함 맘에 짐을 싸들고 갔더니 다단계이더군요,..
돈없이 돈벌수 있다기에 한번해보자 했건만,... 3달정도 미쳐있다가 정신을 차렸지요...
그 3달동안 할머니는 저만 기다리고 생활비는 제로였지요..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가 다시 일자리를 찾고 닥치는 데로 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고 얼마 안지나서 남친도 만나게 되고 또 얼마 안지나서 아버지가 찾아 오셨습니다. 할머니를 이제 모셔가겠다고 이젠 니인생 잘살라고 하면서,...
철이 덜들은 나머지 좋기만 했습니다. 남친도 있겠다. ㅎㅎ
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간후 전 조그마한 교회 옆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며 즐겁게 살고 있었지요,..그렇게 산지 한 3달쯤 지났을까? 밥늦게 집에 들어오는데 누가 문 앞에서 할머니가 왔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옆에 교회에 할머니가 와 계셨더군요,.. 할머니가 아버지랑 못살겠어서 돈5만원으로 택시타고 왔답니다. 집을 못찾아서 경찰서에 이틀계시다가 예전 다니던 목사님이 찾아주셔서 교회에 계셨다는겁니다. 너무 속상해서 아버지한테 막퍼부어 댔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 모시면 이런 고민은 끝나겠지만 제 인생도 평탄하진 않았습니다. 어려서 부터 교육이라고는 교자도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몸으로 부딪치고 아닌길이라도 직접가봐야 아는 인생을 살았으니깐요.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출을 받아 큰집이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지요,.. 너무나 기분이 좋고 감격이여서 제가 너무 대견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너무나 대견한 나머지 욕심이 나더군요,.. 공부에 대한 욕심이요... 그래 공부도 할수 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껏 안해본일도 없고 많은 경험을 했으니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되겠다 싶어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하지만 빚도 있고 매달 최소한에 생활비가 감당이 되질 안더군요.. 아침 8시에 나가서 새벽 2시나 되야 들어왔는데,.. 제생각대로 되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다시 직장으로 나가야 할시점에 할머니가 아프셨습니다. 어버지가 보고싶다더군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생전안하던 전화를 해서 오라했지요,..
아버지가 제가 사는 꼴을 보더니 할머니를 모셔가겠다하는 겁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거 같아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 그럼 내인생을 살자 하고 공부를 하기로 맘먹고 대학에 진학을 했지요,.. 당시 25세 였습니다. 학교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게 되어 열심히 였습니다. 아침 9시에 가면 12시가 되서야 집에 오는 생활을 했습니다. 두달만인가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어서 아버지한테 찾아 갔습니다. 저희 아버진 몇십년째 고물상을 하시는데 고물상안에 할머니를 모시는 겁니다. 고물상 안으로 찾아 갔는데 할머니가 정신병자 처럼 하고 있는것이 였습니다.
정신일 반 나가서 저도 제대로 못알아 보고,... 한참뒤에서야 절 알아보시더군요....
밥은 식당밥에 반찬이라곤 김치가 고작이니... 전 가슴이 아파 학교를 접기로 맘먹었습니다. 제가 다시 모시기로요 그래서 두달만에 어렵게 직장을 잡았고 할머니를 다시 모셔왔지요,..
회사를 다닌지 일년이 안되서 회사가 경제적으로 힘들어 급여가 안나오시 시작했습니다.
결국 또 할머니를 보낼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가 돈이 하나도 없어서요...
그래 또 할머니를 보내고 전 제생활을 수습하던 와중 남자를 만나게 되어 아이가 생겼고 지금은 혼인하였습니다. 시부모님께서 애초에 할머니를 모시라고 하더군요,.. 전그저 할머니랑 살았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는데 그런말씀을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그래서 집을 얻어 할머니와 저와 신랑과 아이가 살려고 맘먹었습니다. 아버지께 할머니 모셔가겠다고 했더니 너나 잘살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할머니란 짐이 무겁긴했습니다. 할머니가 처음으로 아버지랑 1년을 살았고 지금은 적응했겠지 하고 시부모님과 살기로 맘먹었습니다. 우리 시부모님도 어렵게 사시고 사정이 있서 그때 당시 비닐 하우스에서 살고 계셨기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기로 맘먹었습니다. 애기 낳고 한달쯤 지나서 할머니께 증손주 보여드릴려고 찾아갔습니다. 사실 월미도 놀러가려고 맘먹고 갔는데 할머니가 삐적 말라 뼈뿐이 없더군요.. 게다가 할머니를 본 첫대면이 맨밥에 고추장 비벼 드시고 있더군요... 신랑을 설득해 모셔왔습니다. 시부모님께 전화로 허락 맞고 그냥 무작정 모셔왔습니다.
시부모님이 이해해 주시고 할머니께 많이 잘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살면서 치매를 얻었고 또 할머니가 너무 옛날 분이라 서로 코드도 맞지 않는데다 제가 산후풍에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여서 다시 할머니를 아버지께 보냈습니다...
구정이라 할머니께 인사차 들렸습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맨밥에 김치하나 놓고 드시더군요...
저희 집에서 가실적에 왼쪽 팔목이 넘어져서 부러졌습니다. 반기브스를 한상태였는데 치매로 팔을 다 풀러놨었습니다. 다시 병원을 가야했는데 휴일이라 가진 못했고 아버지께 신신당부를 했었죠...
헌데 병원도 안갔나봅니다. 지금은 벼가 붙긴한상태 간은데 팔목뼈가 툭튀어나와있고 얼굴이며 손이며 상처 투성이에 세수도 못했는데 검으디 검은 얼굴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밑심이 없어 이틀에 한번꼴은 팬티에 변이 묻는데 옷도 안갈아 입혀져 있고 빨래는 해주는 건지...
너무나 많이 일이 있고 사연이 너무 길어서 말을 다 짤라 먹었지만, 저희 할머니는 아버지가 총 5번 모시고 갔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초등 6학년때 6개월을 못살고 내려왔습니다. 이유인 즉슨 아파트에 살았는데 아파트 현관문을 할머니가 못여십니다. 문을 안잠가 놓고 나가도 못열면 갇친생활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셨답니다. 문잠가 놓고 나가고 밥을 차려놓고도 며느리가 진지드시란 말을 안한답니다. 할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면서 저밥을 먹어야하는지 내가 먹나 안먹나 보려고 시험해 논거라고 저한테 말합니다. 두번째는 아까 말했다 싶이 할머니가 못산다고 택시타고 오고 세번째 부턴 할머니 집에 안살고 고물상에 살았습니다. 식당밥먹으면서 고물상이 외진데 있어서 어니 마실나갈때도 마땅치 않고 내가 할머니 구경시켜주려고 산 휠체어는 비바람 다 맞아 녹슬어 쓰지도 못하는 지경이고 제가 찾아가서 할머니 좋아하는 음식이며 과자며 사다주면 새엄마가 나 왔다간거 표시난다고 갔다 버리던지 개주던지 하던게 여러번이고, 챙피한 얘기지만 한여름에 제가 찾아간일이 있어서 땀이 너무나서 고물상 수돗가에서 샤워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봤나봅니다. 지나가가 보면 보이는 곳은 아니였지만 창문으로 봤다면서 소문이 났나봅니다. 저도 듣고 낮뜨거워 죽는줄 알았지만 그걸 할머니한테 퍼붰나 봅니다. 할머니랑 통화하려고 사준 핸드폰을 망치로 다 깨부서 버리고,..
지금 연세가 96세 이십니다. 나이에 비해 정정하시지만 약간에 치매도 있고 젊어서 허리를 다쳤는지 지금은 허리뼈 12개가 다 주저 앉저 있고 너무늙고 오래되서 감각이 둔해져서 안아픈거지 무진장 아팠을거 아닙니까...
또 머리가 매일 아프다 해서 ct도 찍어봤었는데 지금 연세가 많이 드셔서 머리에 흐르는 혈관이 막혀서 머리가 아픈거라고 어쩔수 없다고 하는데,..
오래사셔야 한 2년 더 사실꺼 같고 금방돌아가실꺼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학대아닌 학대를 받으며 살고 계시니... 저희 할머니는 무진장 단순합니다. 말 몇마디 해주고 먹을꺼 같다주면 그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할머닌 그런사람보고 내딸 내 아들 이러십니다. 지금 할머니 한테 저희 시어머니는 무진장 좋은분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단순한 사람인데,.. 왜 할머니를 그렇게 모시는지 솔직히 너무 못됐다고 생각됩니다. 아버지 입장과 새엄마 입장을 충분히 압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실 분이고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 조금더 잘해드리고 조금더 대우해 드리면 어디가 덧나는지 울 새엄마는 인천에서 젤 큰교회 권사라고 들었습니다. 기독교에 십계명에 나오지요
부모를 공경하라...
교회는 왜 다니는지....
저한테 보였던 행동을 보면 할머니한테 어떻게 하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러면서 매일 핑계는 저랍니다. 저때문에 할머니가 저러신다고,..
완전부인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불효에 이유가 될순 없지요,..
어떠한 이유라도 불효가 정당한 이유가 될수 없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솔직히 어떻게 사시는지는 짐작과 제가 본 모습으로 추측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생각이 8,90%는 맞는 다고 봅니다. 우리 집에선 저가 할머니를 가장 많이 알고 확실이 알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남은여생을 조금이나마 편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시는게 제 소망입니다.
여러분 저희 할머니 도와드릴 방법이 없을까요???
아버지가 완전학대를 하는것이 아니라 방송탈얘기도 아니고
아버지가 살아계시기에 정부에서 도움을 받을 여건도 안되고
할머니가 자식이 하나이기에 저아니면 아버지라서 오갈때도 없는 신세입니다.
구정때 갔더니 할머니가 죽을라고 두끼?? 굶었답니다. ㅎㅎㅎ
그랬는데 안죽는다고,.. 지금 저희 할머니 매일 제생각하고 죽을날만 받아놓고 사시는 거 같습니다.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한번 챙겨주나 생일도 아버지랑 3일 차이나는데 그것도 모르고 살겁니다.
할머니를 모시는게 아니고 정말 똥개를 키우듯이 할머니를 모십니다.
이거 명백히 학대아닙니까????
정말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너무 긴 글인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춤법 많이 틀렸겠지만 이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