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게 들이대는 그녀 - 밝혀진 비밀

이원영2007.02.23
조회10,945

 

지금 내 손에 최강자의 지갑이 있다

 

대한민국 0.01%의 귀족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신용카드와

 

백만원권 수표가 몇 장이나 들어 있는 최강자의 지갑은

 

예상대로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지갑

 

 

...이 아닌 7800원짜리 도라에몽 캐릭터 지갑이었다


 

 

지갑 내용물과 지갑의 분위기가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카드에 영문으로 ‘최강자’라고 써 있는 걸로 봐서는

 

지갑 겉에는 볼펜으로 ‘최강자’라고 쓴 걸로 봐서는

 

이 지갑이나 지갑 속의 내용물이나 최강자 것이 분명했다


 

 

수백만원 현금이 7800원짜리 지갑에 들어 있다니...


 

 

내가 8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해 왔지만

 

이렇게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소설 속에서도 못 보았었다

 

아무리 생뚱맞다고 해도 개연성이라는 게 있어야 되는데

 

이 녀석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파격적인 캐릭터였다



 

 

 

 

“아웅~~~ 잘 잤다~~”


 

최강자가 기지개를 길게 하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어머! 벌써 일어나셨어여?”


 

 

최강자는 놀란 듯 내게 묻는다


 

 

“벌써 일어난 게 아니라 아예 안 잤습니다”

 

 

 

“안 잤어요? 오늘 밤에 일 나가지 않나요?”

 

 

 

“나갑니다”

 

 

 

“근데 왜 안 잤어여?”

 

 

 

“지금 내가 안 잔게 중요한 게 아니구요

 

 최강자씨 뭐 혹시 뭐 잃어 버린 거 없습니까?“

 

 

 

“저요? 글쎄요?”

 

 

 

“잘 생각해 봐요. 뭐 잃어 버린 거 없는지”


 

 

최강자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아함~~ 간만에 푹 잤더니 개운하넹~”


 

 

기지개를 하며 긴장 풀어진 눈으로 날 보는 게 아닌가


 

 

“오빠 나 배고파”


 

 

난 경악을 하며 최강자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동문서답의 귀재라고 해도 그렇지!

 

잃어 버린 거 없냐고 물었더니

 

오빠 배고파 라니!

 

그것도 반말로!

 

이 싹퉁바가지가 어이상실도 유분수지!

 

수백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 버리고 배고프단 말이 나오냐구!


 

 

더 이상 상대하다가는 나까지 개념을 상실할 거 같아서

 

난 말 없이 도라에몽 지갑을 최강자에게 내밀었다


 

 

“어. 내 도라에몽이다”


 

 

놀랍게도 최강자는 아무런 리액션 없이


 

 

“어. 아홉시 뉴스 시작할 시간이군”

 

 

 

“어.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군”


 

 

이따위 대사를 날리듯 아무런 감흥 없이

 

‘어. 내 도라에몽이다’ 라는 대사를 날리고는

 

내 손에 들린 자기 지갑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는 게 아닌가


 

 

“최강자씨 어제 피씨방에 이 지갑 놔 두고 그냥 나왔습니다”

 

 

 

“피씨방에다가요?”

 

 

 

“네! 지갑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그냥 나왔다구요 그냥!”


 

 

난 최강자가 얼마나 엄청난 실수를 할 뻔했는지 알려주기 위해

 

강한 어조로 한 자 한 자 강조해서 말했다

 

최강자는 그런 날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날 쳐다보던 최강자는


 

 

“아~ 피씨방에다 그냥 두고 나왔구나~”


 

 

이건 마치...


 

 

“아~ 하리수가 결혼하는구나~”

 

 

 

“아~ 대통령이 탈당하는구나~”


 

 

신문에서 자기와 상관없는 기사를 읽은 듯 말하고는

 

길게 기지개를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


 

 

난 얼음 땡 놀이를 하듯 그 자리에 얼음 하고 굳어 버렸다


 

 

얘 지금 뭐 하자는 플레이냐...

 

수백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 버릴 뻔 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이런 허무에 가까운 리액션을 한 것도 모자라

 

아무 일 없다는 듯 오줌 싸러 화장실로 고고씽한단 말인가...

 

그만큼 오줌이 마렵다는 거냐 아니면

 

지갑 잃어 버린 게 오줌 싸는 일보다도 하찮은 사건이라는 거냐...


 

 

그 때였다

 

갑자기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오빠!”


 

 

최강자가 화난 듯 큰 목소리로 날 부른다

 

뭔가 싶어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에그머니나!”


 

 

화들짝 놀라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최강자가 글쎄 자기 팬티를 손에 든 채 날 노려 보는 게 아닌가


 

 

“이 팬티 봤어요 안 봤어요?!”

 

 

 

“앗!... 그, 그게...”

 

 

 

“봤어요 안 봤어요?!”


 

 

최강자가 열 받은 듯 다그쳐 묻는다

 

난 마치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뭐야! 그럼 이 팬티 본 거예욧?”

 

 

 

“네......”

 

 

 

“그럼 나 노팬티인 것두 알고 있었던 거예욧?!”


 

 

난 차마 입에서 대답 소리가 안 나와서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만 더 푹 숙였다


 

 

“이런 젠장! 노팬티인 줄 알고 있어써!”


 

 

최강자는 열 받은 듯 ‘쾅!’ 소리를 내며 욕실문을 닫았다


 

 

억울했다

 

누군 팬티 보고 싶어서 본 줄 아냐구

 

니가 수건걸이에 떡 하고 걸어 놨는데 안 보고 배기냐구

 

그리고 말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이 세상 어느 남자가

 

노팬티로 자기 침대에서 잠 자는 여자를 그냥 놔 두냐구

 

덮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자제했던 거라구


 

 

난 억울함을 항변하듯 화장실 문을 노려 보았다


 

 

“벌컥!”


 

 

화장실 문이 열리며 최강자가 나온다

 

난 잽싸게 고개를 숙여 반성모드로 들어갔다

 

최강자는 내 앞을 스쳐 지나쳐 침대에 걸터 앉았다

 

고개 숙인 내 앞으로 최강자의 곰돌이 팬티가 보인다

 

잽싸게 고개를 들어 멀뚱멀뚱 천정을 쳐다 보았다


 

 

“뭐하고 앉아 있어욧!”


 

 

최강자가 호통 치듯 말한다


 

 

“얼른 밥이라도 시키라구. 나 배고프다니까”


 

 

난 잽싸게 핸드폰을 들었다


 

 

“뭐 먹고 싶으세요?”


 

 

나의 질문에 최강자는 특유의 동문서답으로

 

날 한심한 듯 쳐다보며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남자가 무슨... 줘도 못 먹냐”



 

터엉.......................................................


 

 

 

줘.도.못.먹.냐

 

줘.도.못.먹.냐

 

줘.도.못.먹.냐

 

줘.도.못.먹.냐

 

줘.도.못.먹.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줘도 못 먹냐니...


 

 

설마...

 

설마...

 

설마...


 

 

난 넋이라도 나간 듯 멍하게 최강자를 바라보았다


 

 

“뭐해요. 밥 안 시키구”


 

 

최강자는 만사가 귀찮은 듯 침대에 벌렁 누웠다

 

난 손에 든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최강자씨”


 

 

난 최강자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무표정하고 경직된 표정으로 최강자를 쳐다보았다

 

내 모습이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한 최강자는

 

침대에서 일어나 날 가만히 쳐다보았다


 

 

“당신 지금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나의 굳은 표정에 최강자는 대답 없이 날 쳐다 보았다


 

 

“내가 웬만하면 이해해 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나 도저히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 안 되고 있거든

 

 지갑에 돈도 많으면서 피씨방에서 잔 것도 그렇고

 

 굳이 우리집 와서 잠을 자겠다는 것도 이상하고

 

 그리고... 왜 나한테 당신 몸을 주겠다는 거지?

 

 왜 줘도 못 먹냐구? 내가 언제 당신 몸 달라고 했나?

 

 처음 본 남자하고 자고 싶을 만큼 잠자리가 급했나?

 

 그렇게 급하면 호스트바라도 가면 될 것을 왜 나하고...“

 

 

 

“잠자리가 급한 건 사실이에요”


 

 

최강자는 다른 때와는 달리 차분한 어조로 내 말을 끊었다


 

 

“지금 오빠가 한 말이 틀린 건 아니예요

 

 나 잠자리가 급한 것도 사실이고

 

 처음 본 오빠하고 잠자리를 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있어요“

 

 

 

“이유...?”

 

 

 

“네. 분명한 이유”


 

 

최강자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니?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어떻게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난... 전혀 이유를 모르겠는데...”

 

 

 

“작가가 그 정도 추리력도 없나요?”


 

 

어라......

 

내가 작가인 줄 최강자가 어떻게 알고 있지...?

 

내가 작가라고 말한 적 없었는데...?


 

 

난 의혹이 가득한 눈으로 최강자를 쳐다보았다

 

최강자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특유의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닉네임은 하랑

 

 PC통신에 첫 번째 소설 ‘삼수생의 사랑이야기’ 연재

 

 이후 조선일보에 두 번째 소설 ‘원통한 남자’ 연재

 

 네이트 작가게시판에 세 번째 소설 ‘14년의 러브스토리’ 연재

 

 웃대에 네 번째 소설 ‘고딩 연예인과 사귄다면’ 연재

 

 이후 영화와 시나리오 작업에 전념하고 있음“


 

 

믿을 수 없었다...

 

지금 그녀는 내 작가 경력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다, 당신... 정체가 뭐, 뭐야...?”


 

 

나의 질문에 그녀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 기억 안 나요? 오빠 홈페이지에 들락거리던 그 초등학생 독자?”


 

 

초등학생 독자?


 

 

“벌써 8년 전이네? 그 때 오빠 처음 개인 홈페이지 열구

 

 내가 방명록에 글 남기구 그랬잖아요“

 

 


이봐이봐

 

당연히 기억해 줄 수 있을 거란 눈으로 보지 말라구

 

방명록에 글 남기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었고

 

무려 8년 전의 일을 기억할 나도 아니라구


 

 

“기억 안 나나 보네? 음... 이건 기억 나죠?

 

 내가 오빠의 열렬한 독자라고 하니까 오빠가 그랬잖아요

 

 이렇게 어린 독자가 있어서 감동적이라구

 

 오빠 글 읽고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 달라구 말이예요

 

 나한테 이런 말 한 건 기억 나죠?“


 

 

이런......

 

난 원래 미성년자 독자들한텐 그렇게 멘트를 날린다구...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요

 

 나 나중에 크면 오빠 불쑥 찾아 가겠다구

 

 나 찾아 가면 꼭 만나 줘야 된다구

 

 그러니까 오빠가 나한테 그랬잖아요

 

 걱정 말고 올라오라구

 

 올라오면 잠자리는 책임지겠다구요“


 

 

텅!!!!

 

난 누가 물이라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났다!!


 

 

“헉! 이, 이봐요 최강자씨!

 

 혹시 내, 내가 옛날에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그 잠자리가 그 잠자리는 아니었을 거라구요!

 

 내, 내가 무슨 초등학생한테... 말도 안 된다구요!“

 

 

 

“물론 그런 잠자리는 아니었겠지만요

 

 그 초등학생이 벌써 자라서 아가씨가 되었잖아요

 

 이렇게 육감적이고 탱글탱글한 아가씨가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잠자리 내용도 바뀌어야 되지 않겠어요?“


 

 

최강자는 금방이라도 날 잡아 먹을 듯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하면서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이, 이봐요 최강자씨...

 

 우, 우리 진정하고 마, 말로 합시다“

 

 

 

“이상하네? 오빠 글 보면 무지 야하고 이런 장면 즐겨 쓰던데

 

 오빠 이런 거 마다할 사람으로 전혀 보이지 않는데?“


 

 

이, 이봐...

 

물론 나도 이런 걸 즐기긴 하지만...

 

당신은 지금 너무 대 놓고 들이대고 있다구...

 

이렇게 겁나게 들이대는데 선뜻 나서는 놈이 더 이상한 거라구...


 

 

최강자가 다가올수록 나는 더욱더 뒷걸음질쳐 도망쳤다

 

그러나 계속 도망다니기에는

 

우리집 원룸은 너무 사이즈가 작았다-_-

 

 

 

난 몇 걸음 도망가지도 못 하고

 

결국 벽에 막혀 덜덜 떠는 신세가 되었고

 

최강자는 음흉한 눈으로 내 얼굴로 천천히 자기 얼굴을 가져왔다


 

 

그녀의 숨결이 내 얼굴에 닿는 순간

 

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눈을 감았고

 

마음 속으로 각오를 하고 그녀의 처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날 바로 잡아 먹지 않고

 

내 귀에 대고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 오빠 글 보면서 울고 웃고 자랐거든요...

 

 내 삶의 가장 즐거운 추억이었어요...

 

 그리고 나... 죽기 전에 마지막 추억으로...

 

 잠자리는 꼭 해 보고 싶었거든요...

 

 마지막 추억을 오빠하고 나누고 싶었거든요...“


 

 

그녀는...

 

마치 유언을 남기는 듯...

 

내 귀에 속삭이고는 조용히 나를 끌어 안았다...

 

 

<다음편에 계속...>

 

 

지난 글은 http://www.cyworld.com/harang2006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