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올해 스무살이 된 학생입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의 감사한 사랑이 내가 살면서. 가장 큰 행복이라 생각하여 여기다 글을 적어봅니다. 어릴때부터 워낙 저는 정이라는게 일찍 깨어 있었습니다. 집안 문제로 부모님이 할머니와 떨어져산다 하길래. 때를쓰면 소리를 질렀습니다. (솔직히.. 할머니 아니면 장난감 누가사주나 하는 괘씸한 마음에 그만..) 아무튼 전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면서 부모님,여동생 보러 가끔 혼자 버스타고 왔다 갔다 했지만요. 유치원 통학은 할머니께서.. 항상.. 도와주셨어요.. 짧은 2~3년간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인근에 초등학교가 없던 우리 동네라. 결국 부모님 곁으로 보내야 한다는 통화를 듣고. 할머니한테 몹쓸말만 골라했습니다. 10원짜리 몰래 꺼내서.슈X마X오 껌도 사먹었구요.. 부모님과. 함께 살게되었고.. 할머니는 외로이. 서울로가셔서 혼자 살게됬습니다. 96년도. 저의 할머니의 환갑이되어. 전.. 어버이날 선물했던 카네이션을.. 색종이로 바꿔만들어서 대충대충 꽃모양으로 만들어 드렸습니다. 알면서도. 고마워 하시는 모습을 보니 쑥스럽기도 했지만;; 한참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저희 부모님은 할머니와의 사전대화없이. 지방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워낙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가 안 좋으셨기 때문에요..) 거기엔 이모와 이모부들이 반겨주었지만.. 썩 그리 좋진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그립고. 보고싶었으니까요.. 그 당시 아주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이사가던날 3일후에 할머니가 직접 찾아와 저희 가족이있는줄 알고 제가 좋아하는 피자를 사오셨다네요. 무슨영문인지 모른채 그날 5시간을 쭈그려서 기다리셨다고 합니다. 이사 갔다는거는 그 아주머니의 남편에게 알게된거구요.. 어머니가 할머니한테 전화하지말라는 말과함께.. 바보같이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을 시점에.. 어린나이에 큰상처를 받게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일이 어쩌다 같은 여직원이랑 있는걸 다른뜻으로 오해해 알게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결혼했을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믿어서 드렸던 통장 등등.. 아버지에게 받은 모든 위자료 할거없이. 단돈 10원없이 집밖에서 쫓겨냈습니다.(물론 그중에 할머니 재산 80%도 있었습니다..) 워낙 어린나이에 큰 충격을 받아.. 그나마 있는 짐을싸서.. 밤에 잠을자다 이상한 소리에 잠을깨서 몰래 문을 열어봤더니 이모부들이 아버지에게 아무말하지말고 꺼지라는 소릴듣고.. 그런 아버지에게 아무 도움 줄수 없어서.. 방안에서 소리없이 울고만 있었습니다. 밤몰래 제가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할머니 보고싶어.. 할머니한테 갈께"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말을 하자 목이메인 목소리로 "내 새끼 할머니 몰래거기까지 얼마나 고생하냐.. 내 새끼.." 라는 말에.. 반갑기도 했고.. 제 머리속에서 할머니라는 존재가 흐려져서.. 눈물만 났고.. 어머니가 너무 원망 스러웠습니다. 결국 아버지 저 동생은 할머니 품으로 단칸방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게 됬습니다. 동시에 imf 로 실직을 하신 우리 아버지께선.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우리가 놀랄까.. 아버지가 실직하셨다는걸 부인하고.. 맛있는 김치찌개를 항상 끓여 주신게 생각 나는군요. 세월이 흘러. 중3 졸업식 하던날. 할머니는 전보다 거동이 불편하신 모습으로. 저와 사진을 찍었는데. 눈물이 흐르더군요. 전 세상에서 우리할머니가 제일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을 못이겨 내시는 모습을 보구요. 갑자기 우릴 막대로 막듯이 내쫓아 보낸 어머니가 원망 스러웠습니다. 일부러 졸업해서 기뻐하는척 하면서. "할머니 조금만 참아 , 내가 진짜 고등학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할께" 라는 약속을 한채. 할머니의 사랑속에 9년이란 또다른 시간동안 전 아픔과 고통들을 이겨냈습니다. 수능시험도 무사히 마쳤구요. 하루는 2007년의 새해가 밝는날 "할머니 나 이제 곧있음 군대가겄네 ㅋㅋ" "사내새끼가 당연히 가는거지. 썩을놈 기껏 처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새해첫날부터 복받으란 소린 안하고있어." 라고 대꾸하시더라구요. 내심 이거 내가 잘못했다 라는게 느껴졌습니다. 다 컸는데 고작 하는 소리라곤 실실웃으면서 간다는 얘기니까.. 두번이나 얘기없이 사라질까봐 두려워 소리없이 화장실에서 울고 계신 할머니 속타는 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힘든 시절동안 극복해내시고 날 믿어주시던 아버지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고있습니다.. 할머니 역시. 손자가 학교에서 인적사항 말하기 좀 어려워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밤새 우시기도 했고. 식사라곤 김치찌개 와 된장찌개 만해줘서 미안하단 말 뿐이였지만.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시력을 보호해주는데(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피자보다도 잘먹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구요. 손자가 공부한다고. 밤늦게 과일 깎아주시다 식탁에서 잠들어 있길래. 따뜻한 담요로 덮어드렸던 생각도 스쳐지나가네요. 현재 20살인 나이에.. 좀 이상하게 보실지 몰라도 할머니와 옆에서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잡니다.. 그만큼. 정이 최고라는 얘기겠죠 ㅎ.. 부끄럽진 않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밖에 없는 제 할머니이니까요. 평생 절 위해 애쓰셨던 할머니... 아파했던 세월들 혼자 외로워 했을 나날들. 진정한 마음을 알아주지도 못하고. 당신을 부끄러워하면서 화만냈던 날 용서하세요. 제가 백번이고 천번이고.. 잘해드려도 모자르겠지만.. 앞으로 평생동안 잘해볼께요.. 할머니 사랑합니다 -모두 기운내세요-
평생 나만 바라보고 아껴주는 우리 할머니. 사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전 올해 스무살이 된 학생입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의 감사한 사랑이 내가 살면서. 가장 큰 행복이라 생각하여 여기다
글을 적어봅니다.
어릴때부터 워낙 저는 정이라는게 일찍 깨어 있었습니다. 집안 문제로
부모님이 할머니와 떨어져산다 하길래. 때를쓰면 소리를 질렀습니다.
(솔직히.. 할머니 아니면 장난감 누가사주나 하는 괘씸한 마음에 그만..
)
아무튼 전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면서 부모님,여동생 보러 가끔 혼자 버스타고 왔다 갔다 했지만요.
유치원 통학은 할머니께서.. 항상.. 도와주셨어요.. 짧은 2~3년간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인근에 초등학교가 없던 우리 동네라. 결국 부모님 곁으로 보내야 한다는 통화를 듣고.
할머니한테 몹쓸말만 골라했습니다. 10원짜리 몰래 꺼내서.슈X마X오 껌도 사먹었구요..
부모님과. 함께 살게되었고.. 할머니는 외로이. 서울로가셔서 혼자 살게됬습니다.
96년도. 저의 할머니의 환갑이되어. 전.. 어버이날 선물했던 카네이션을.. 색종이로 바꿔만들어서
대충대충 꽃모양으로 만들어 드렸습니다. 알면서도. 고마워 하시는 모습을 보니 쑥스럽기도 했지만;;
한참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저희 부모님은 할머니와의 사전대화없이. 지방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워낙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가 안 좋으셨기 때문에요..)
거기엔 이모와 이모부들이 반겨주었지만.. 썩 그리 좋진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그립고. 보고싶었으니까요..
그 당시 아주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이사가던날 3일후에 할머니가 직접 찾아와 저희 가족이있는줄 알고 제가 좋아하는 피자를 사오셨다네요. 무슨영문인지 모른채 그날 5시간을 쭈그려서 기다리셨다고 합니다. 이사 갔다는거는 그 아주머니의 남편에게 알게된거구요..
어머니가 할머니한테 전화하지말라는 말과함께.. 바보같이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을 시점에..
어린나이에 큰상처를 받게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일이 어쩌다 같은 여직원이랑 있는걸 다른뜻으로 오해해 알게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결혼했을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믿어서 드렸던 통장 등등.. 아버지에게 받은 모든 위자료 할거없이.
단돈 10원없이 집밖에서 쫓겨냈습니다.(물론 그중에 할머니 재산 80%도 있었습니다..)
워낙 어린나이에 큰 충격을 받아.. 그나마 있는 짐을싸서.. 밤에 잠을자다 이상한 소리에 잠을깨서 몰래 문을 열어봤더니
이모부들이 아버지에게 아무말하지말고 꺼지라는 소릴듣고..
그런 아버지에게 아무 도움 줄수 없어서.. 방안에서 소리없이 울고만 있었습니다.
밤몰래 제가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할머니 보고싶어.. 할머니한테 갈께"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말을 하자
목이메인 목소리로
"내 새끼 할머니 몰래거기까지 얼마나 고생하냐.. 내 새끼.."
라는 말에.. 반갑기도 했고.. 제 머리속에서 할머니라는 존재가 흐려져서.. 눈물만 났고.. 어머니가 너무 원망 스러웠습니다.
결국 아버지 저 동생은
할머니 품으로 단칸방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게 됬습니다.
동시에 imf 로 실직을 하신 우리 아버지께선.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우리가 놀랄까.. 아버지가 실직하셨다는걸 부인하고.. 맛있는 김치찌개를 항상 끓여 주신게 생각 나는군요.
세월이 흘러. 중3 졸업식 하던날. 할머니는 전보다 거동이 불편하신 모습으로. 저와 사진을 찍었는데.
눈물이 흐르더군요. 전 세상에서 우리할머니가 제일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을 못이겨 내시는 모습을 보구요. 갑자기 우릴 막대로 막듯이 내쫓아 보낸 어머니가 원망 스러웠습니다.
일부러 졸업해서 기뻐하는척 하면서.
"할머니 조금만 참아 , 내가 진짜 고등학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할께"
라는 약속을 한채. 할머니의 사랑속에 9년이란 또다른 시간동안
전 아픔과 고통들을 이겨냈습니다. 수능시험도 무사히 마쳤구요.
하루는 2007년의 새해가 밝는날 "할머니 나 이제 곧있음 군대가겄네 ㅋㅋ"
"사내새끼가 당연히 가는거지. 썩을놈 기껏 처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새해첫날부터 복받으란 소린 안하고있어." 라고 대꾸하시더라구요. 내심 이거 내가 잘못했다 라는게 느껴졌습니다. 다 컸는데 고작 하는 소리라곤 실실웃으면서 간다는 얘기니까.. 두번이나 얘기없이 사라질까봐 두려워
소리없이 화장실에서 울고 계신 할머니 속타는 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힘든 시절동안 극복해내시고 날 믿어주시던 아버지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고있습니다..
할머니 역시. 손자가 학교에서 인적사항 말하기 좀 어려워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밤새 우시기도 했고.
식사라곤 김치찌개 와 된장찌개 만해줘서 미안하단 말 뿐이였지만.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시력을 보호해주는데(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피자보다도 잘먹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구요.
손자가 공부한다고. 밤늦게 과일 깎아주시다 식탁에서 잠들어 있길래. 따뜻한 담요로 덮어드렸던 생각도 스쳐지나가네요. 현재 20살인 나이에.. 좀 이상하게 보실지 몰라도 할머니와 옆에서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잡니다.. 그만큼. 정이 최고라는 얘기겠죠 ㅎ..
부끄럽진 않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밖에 없는 제 할머니이니까요.
평생 절 위해 애쓰셨던 할머니... 아파했던 세월들 혼자 외로워 했을 나날들.
진정한 마음을 알아주지도 못하고. 당신을 부끄러워하면서 화만냈던 날 용서하세요.
제가 백번이고 천번이고..
잘해드려도 모자르겠지만.. 앞으로 평생동안 잘해볼께요..
할머니 사랑합니다
-모두 기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