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 이불이 축축하다. 예전부터 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오면 땀이 유달리 많이 나는 편이었다. 어제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들었던 원피스는 얼룩이 배일 정도였다. 시간을 보니 예전 기상시간과 별다를 바가 없다. 잠시 망설임이 든다. 출근을 하지 말까?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어제의 전화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머릿 속에 가득했다. 게다가 소장과 바로 다음날 얼굴을 맞닥뜨리는 일도 왠지 어색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축축한 속살부터 씻어내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구겨진 원피스를 벗었다. 아이보리 색 브라와 팬티를 차례로 벗어 세탁기 옆 플라스틱 바구니에 넣고 욕실로 향한다. 샤워기에서 이내 뜨거운 물이 쏟아진다. 샴푸가 들어가지 않도록 눈을 꼭 감은 채로 전신에 가벼운 비누칠을 한다. 아직은 주름이 만져지지 않는 매끈한 피부의 촉감에 안도감이 간다. 비눗기를 머금은 물방울이 긴 다리를 타고 욕실 바닥을 흐른다. 눈을 뜨고 세면대 위의 작은 거울을 응시한다. 오늘따라 거울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파리했다. 그 시선을 피하고 싶어 서둘러 욕실을 나선다. 연구소에 나가기로 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더욱 더 어제 전화에 대한 생각에 사로 잡힐까봐 두려웠다. 상대방이 꼭 나와의 통화를 원한다면 언제까지나 피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두려움 속에 싹트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어떤 끌림이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생각이 나를 집 밖으로 몰아낸다. 옷을 입고 집 밖에 나서 택시를 잡았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별 불편함이 없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창 밖의 경치에 시선을 향하지만 머릿속엔 온통 어제 그 전화 생각이다. 만일 오늘 다시 전화가 온다면? 나는 담담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자꾸만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2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흘러간 시간. 이미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 그 사람의 아들...............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내게 무슨 말을 하려 한 걸까? 달리는 택시 안에 앉은 내 몸은 상념에 지쳐 물을 먹은 솜처럼 깊숙이 가라 앉았다.
페이퍼 챠일드 #11
#11.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 이불이 축축하다.
예전부터 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오면 땀이 유달리 많이 나는 편이었다.
어제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들었던 원피스는 얼룩이 배일 정도였다.
시간을 보니 예전 기상시간과 별다를 바가 없다.
잠시 망설임이 든다.
출근을 하지 말까?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어제의 전화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머릿 속에 가득했다.
게다가 소장과 바로 다음날 얼굴을 맞닥뜨리는 일도 왠지 어색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축축한 속살부터 씻어내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구겨진 원피스를 벗었다.
아이보리 색 브라와 팬티를 차례로 벗어 세탁기 옆 플라스틱 바구니에 넣고
욕실로 향한다.
샤워기에서 이내 뜨거운 물이 쏟아진다.
샴푸가 들어가지 않도록 눈을 꼭 감은 채로 전신에 가벼운 비누칠을 한다.
아직은 주름이 만져지지 않는 매끈한 피부의 촉감에 안도감이 간다.
비눗기를 머금은 물방울이 긴 다리를 타고 욕실 바닥을 흐른다.
눈을 뜨고 세면대 위의 작은 거울을 응시한다.
오늘따라 거울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파리했다.
그 시선을 피하고 싶어 서둘러 욕실을 나선다.
연구소에 나가기로 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더욱 더 어제 전화에 대한 생각에 사로 잡힐까봐
두려웠다.
상대방이 꼭 나와의 통화를 원한다면 언제까지나 피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두려움 속에 싹트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어떤 끌림이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생각이 나를 집 밖으로 몰아낸다.
옷을 입고 집 밖에 나서 택시를 잡았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별 불편함이 없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창 밖의 경치에 시선을 향하지만 머릿속엔 온통 어제 그 전화 생각이다.
만일 오늘 다시 전화가 온다면?
나는 담담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자꾸만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2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흘러간 시간.
이미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
그 사람의 아들...............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내게 무슨 말을 하려 한 걸까?
달리는 택시 안에 앉은 내 몸은 상념에 지쳐 물을 먹은 솜처럼
깊숙이 가라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