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어머니,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잔인한 나.

인천카수2007.02.28
조회45,886

헉.. 톡이 되어있었네요.. 그냥 무심코 글만 남기고 신경 안쓰고 있었는데..

메인에 내 글 뜨는 거 보고싶었는데 ㅠㅠ

제가 글을 좀 안일하게 쓴것 같은데 어머니 몸 불편하다는게 장애가 아니고

허리, 목에 디스크가 있으세요. 다시 읽어보니까 찡하네요 ㅋㅋㅋ 이 글 쓸때도 울면서

썼었는데.. 지금은 어머니랑 동생이랑 매일 미래의 우리에 대해 얘기를 하곤 합니다.

내가 돈을 벌어서 어머니 가게도 차려주고 동생 대학도 보내주는 등등..

소설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좀 이해가 안가는데.. 제 부랄 친구들 중 제가 가장 평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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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올해 22살의 건장한 청년입니다.

몇분이나 글을 읽을지 모르지만 그냥 사는얘기 몇자 적어봅니다.

 

우리집은 어머니 저, 5살 어린 여동생 이렇게 세식구가 살고있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좀 불편하시고, 동생은 이제 올해 고등학교를 올라가게 되구요.

제가 20살이 되면서 서울로 혼자 올라와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못사는 집이란 소리 들을 까봐

주위 신경 하나 안쓰고 인정사정 없이 버티고 버텨서 서울 상위권 대학에서

장학금 받으면서 혼자 아르바이트로 방세 생활비 다 하면서 버티고 버텨온 지금의 내 모습입니다.

집안 사정때문에 하고 싶은거 제대로 해본 적 없고 조금이라도 집에 보탬이 되려고

군대도 ROTC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수연구실서 100만원 가까이 생활비를 지원받으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저는 남들 눈을 굉장히 의식하는 편입니다.

물론 집에서 돈을 전혀 가져가지는 않습니다만..

친구들과 동창 모임같은데서도 집안 사정을 알고 돈 내지 말라하면 오히려 술값 다 계산하고

그러는 편입니다. 그리고 오직 내가 잘되야 집안이 산다는 일념하나에

모든 아르바이트 비용이며 장학금 다 저 학원다니고 책 사는데 다 써버리 곤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하루에 2-3시간 자면서 2년을 생활했습니다.

마음이 약해질까봐 가까운 집(인천)에도 한두달에 한번씩 갈까말까 했습니다.

참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가끔 집에 가면 갈비, 닭 먹을 것도 많고.

여자 둘이서 호화롭게 살고 있데요..

그래서 인천에 갈때마다 엄마랑 동생한테 있는대로 짜증을 내곤 했습니다.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는 제가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이죠...

왠지 나만 힘들고 가족에게 까지도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얼마전 하루는 너무 화가 나서 엄마랑 동생과 크게 싸웠습니다. 싸우고 나서 어머니가

저에게 냉정한 놈이라 하더군요. 사실 어이가 없었습니다. 내가 누굴 위해서

누구들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리고는 냉정한 놈이라는 말이 머리에 남아있는 채로 다음에 친구들 만나서 술을 한잔하고

인천의 집으로 새벽에 들어갔었습니다. 평소에는 항상 인천에 간다라고 말을 하고 가는데

그날은 아무얘기 없이 간거였죠.. 집에 들어가니 그 추운겨울에 왜 보일러를 안틀고 잡니까..

말이 집이지 바깥 날씨보다 더 추웠습니다.. 그냥 그런 생각으로 뭘 좀 먹으려고 부엌을 가니까

냉장고며 어디며 텅텅 비어있데요. 그래서 오늘 시장을 안봤나 그냥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동생 학교가고 어머니 일나가시고..

다시 부엌에 가보니 역시 삼계탕이며 이것저것 몸에 좋은 것들 맛있는 것들이 잔뜩 이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먹고 오래간만에 졸업앨범을 보다가 서랍속에 어머니 월급 내역서가 있더군요.

어머니는 장애우 복지관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셨습니다.

월급이랑 우리집 생활보조금까지해서 총 60만원이 좀 안되더군요.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집 총 수입,. 갑자기 눈앞이 깜깜하더군요. 내가 서울로 온지 2년입니다.

2년동안.. 서랍속에 어머니 한달 병원비 내역서 가 15만원에서 20만원이 들더군요.

어머니 동생 내 핸드폰 비 10만원정도 영수증, 한달 월세 20만원.

도대체가 어이가 없어 반 미친 상태로 온집안을 뒤졌습니다.. 동생 책상 서랍.

참고서, 심지어는 교과서도 선배들한테 물려받은 걸로 장식되어있고.

동생하고 엄마 교통카드도 서랍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추운 그 먼거리를 교통비 아끼려고 둘다 걸어다닌겁니다.

가계부를 보니 제가 오는 그 한달, 두달에 한번 텀마다 시장을 보는겁니다.

동생 일기장이며 달력에도 오빠오는 날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제가 온다고 할때마다 집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속인거죠..

나만 고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작 가스비 몇 만원 아끼려고 그 추운방에서 자는 모습,

냉장고 텅텅 비어있는대도 그냥 지나친 나.

어머니가 왜 냉정한 놈이라 했는지 절실히 깨달게 되더군요.

그후로도 그냥 내색안하고 지냈습니다. 다만 제가 집에 안부전화가 집에 찾아가는 횟수가

좀더 늘어났죠. 그리고는 동생 중학교 졸업식이었습니다.

예전에 동생이 처음으로 저한테 애교를 부리면서 오빠한테 부탁이 있다고 한적이 있었습니다.

뭐냐고 처음인 부탁이길래 기분좋게 말해보라 했죠.

다른건 자기가 다 알어서 하겠는데 졸업앨범비는 오빠가 좀 내주면 안되겠냐 하더군요.

정말 아무런 의심도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그냥 줬습니다.

그게 동생이 엄마 생각해서 내 주머니 사정 생각해서 조심히 말한건지도 모르고

또 참고서나 교과서를 물려받는지도 모르고 교복을 물려 받는지도 모르고

그냥 그래 졸업앨범비 5만원 여깄다 하면서 줬습니다.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졸업식날 졸업앨범을 보고는 어머니가 근데 졸업앨범비를 안내지 않앗냐 하더군요

그때 동생이 선생님이 추천을 하고 어쩌고 하면서 둘러댄겁니다.

어린녀석이 얼마나 속이 깊은지 ..

근데 이미 어머니 알고 계시더군요 같이 술한잔 하면서 우시면서 말씀하시더군요.

왜 그런 것 까지 벌써 너에게 우리가 짐이 되야하냐고. 동생은 엄마가 아직 젊으니까

다 알아서 할텐데 너는 너 공부하기도 힘들고 너 생활비 못해주는것도 엄마가 미안한데

왜 집에 신경을 쓰냐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내가.. 내가 나쁜놈이었습니다.

뭐가 진짜 가족을 위한건지도 모르는 바보같은 놈이었고.. 지 혼자서 큰 줄 아는..

혼자 대학에서 세상에서 사회에서 인정받는다고 뒤도 한번 안돌아본 정말 냉정한 인간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힘들게 사시는 분들 힘내세요^^

우리 가족도 어머니께서 더 없이 사는 사람들보다 잘살고 있는거라 복받은 줄 알아라 라는 말에

항상 감사히 살고있답니다.

맞는 말이에요 ^^ 어머니 한달 60만원 남짓한 돈으로 저 서울에 대학보내고 동생 재개발 지역

인문계 고교로 진학했으니. 말다한거 아닙니까.. 앞으로 좀만 더 고생하려구요..

그동안 우리집안 무시했던 분들 두고봅시다..ㅋㅋㅋㅋ

 

 

사랑하는 어머니,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잔인한 나.